2. 잠 못 이루는 시애틀에서

헐값 대 금값

“여기요, 여기!”

“안녕하세요?”

“아, 딸 하나로구나! 많이 컸구나!”

시애틀 공항에서 김순휘 목사가 딸과 같이 서서 반겨 주었습니다. 비행기를 내리자마자 먼저 전화가 왔습니다. 딸의 친구를 조금 전 비행기로 전송하고 나를 맞는 것이랍니다. 누구나 손님을 치르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며칠 묵은 딸의 손님을 보낸 자리에서 또 묵을 손님을 싣고 가야하는 김목사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점심부터 먹으러 가요.”

집에서 아침을 든든히 먹고, 이른 점심까지 먹고 출발했는데, 17시간 전에 먹은 점심을 또 먹으러 집으로 가잡니다. 18일 오후 5시 30분에 인천에서 떠났는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 18일 오전 11시에 도착한 것입니다. 하루를 두 번 살게 되었습니다. 부인과 아들도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이 내일부터 시작하는 기차여행의 기차표를 구하는 일입니다. 출발하기 전에 집에서 미국 전역을 기차로 한 달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카드를 예매해 놓았습니다. 내일 출발하는데 이상이 없겠는지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기차역을 인터넷에서 찾아 김목사가 운전을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시애틀에만 역이 6개나 있답니다. 그 중에 연합역 Union Station 은 모든 기차가 모일테지 짐작하고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영어가 짧아 길을 물어 보지도 못하고 두리번 두리번 찾아가, 주차장에 1시간 요금을 지불에 표를 창문에 붙여 놓고, 아우쳐 Voucher 를 내 보이자,

“역을 잘못 찾아 왔군.”

다른 역으로 가랍니다. 오른쪽으로 돌고, 왼 쪽으로 돌고, 어쩌고저쩌고 일러 주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겁니다. 주차 요금은 1시간짜리를 지불 했겠다, 그 시간까지 옆에 있는 워싱턴주 역사박물관을 들르기로 했습니다.

그리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몇 만 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미국 북쪽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역시 눈에 띄는 것은 인디언의 생활부터 소개를 했는데, 지금은 그 인디언을 가까이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소개한 원주민들의 생활 도구들은 어릴 때 농사짓는데 쓰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물건을 담은 짚으로 만든 바구니, 반짓고리로 쓰던 것과 비슷한 바구니, 수렵에 사용했을 창, 깃털달린 모자 등, 동네 박물관에 가면 어김없이 처음부터 소개하는 우리네 조상들의 생활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거 우리 아버지가 짚으로 잘 만드시는 망태기야.’

그러나 그들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느 곳에 보호구역이 있다지만, 살던 땅에서 쫓겨난 것은 틀림없었습니다.

그 정복의 역사가 오늘날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느낌에 입맛이 씁쓸했습니다. 북한을 굴복시키려는 시도나, 이라크에 아직도 군대를 보내고 있는 것들 말입니다.

시애틀에 내리자마자 하늘로 곧게 쭉쭉 뻗어 올라간 아름드리 나무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에 전시된 나무는 테두리의 반쪽을 세워 놓았는데 내 키보다 컸습니다. 나무도 모형이 아니고 실재 나무를 잘라다 놓고는 만져서 나무결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건축할 때 비싸게 사서 쓰는 미송루바 같았습니다.

“어디에 가면 통나무 그루터기 아래로 도로가 나서 차가 통과하는 나무도 있데요.”

“그래요? 이 나무를 보니까 그럴만도 하겠네요.”

비디오로 소개하는 화면에는 몇 아름드리 나무를 흥부 박 켜는 톱으로 둘이 톱질을 합니다. 얼마나 큰지, 넘어지는 것을 보고 피해도 한참을 있다가 ‘쿵’합니다. 계곡물에 떠내려 보내 내려서, 바다에 뜬 통나무를 배로 당겨 날라다가, 기계 밀고 돌리고 뒤집어 얇은 판으로 켜서 쌓아 놓은 것을, 끝도 안 보이는 허허벌판에, 또 하나의 산더미 같이 쌓아 놓았습니다. 나무집이 많은 지역의 일면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어른들은 송판이 필요하면 손수 만들어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통나무를 잘라서 몇 달 말린 후에 지게로 지고 옵니다. 껍질을 벗기고 먹줄을 튀겨 줄을 그은 다음, 삼각대를 고여 비스듬히 세워 놓고, 어른들 둘이서 하루 종일 톱질을 합니다. 1/3쯤 남으면 뒤집어 놓고 거꾸로 켜 와서 잘랐던 곳과 만나게 합니다. 중간 중간에 쐐기를 여러 번 박아야 했고, 쌓이는 톱밥이 땀방울이었고, 그래도 얻는 송판을 고작해야 여나므 개 뿐이었습니다. 집을 짓는 데는 아까워서 못쓰고, 마루를 깐다든지 풍구를 만든다든지 가구를 만드는데 썼습니다. 통나무도 깊은 산에 가서 잘 골라야 송판으로 껴서 쓸 수가 있었습니다.

“엄마, 오늘 우리 송판 켜?”

송판 켜는 날은 큰일 치르는 날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나무라면 우선 곧게 뻗고 보고, 그것도 한 아름으로 안을 수도 없는 것이 끝도 없는 숲을 이루고, 길이도 얼마나 긴지, 넘어지는 것을 보도 슬슬 피해도 사람이 안 보이고 나서야 쓰러지고, 흑백으로 나오는 화면은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에서도 구경할 수 없었던 풍경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처음 들어갔을 때 건축현장에서 노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모래가 모래와 시멘트를 섞은 것이고, 바니루가 비닐이 아니라 판넬이고, 반생이 10번선에서 6번선까지 철사고, 아시바가 지지대라는 것을 욕과 함께 배우면서 생활비를 벌 때였습니다. 가늘고 긴 장대를 가로 세로로 묶어 지지대를 만드는 나무가 바로 여기서 어린나무를 베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단관으로 클립을 끼워 얼마든지 이었지만, 당시는 아래서 하나하나 들어 올려 굵은 철사로 묶었습니다. 굵은 나무는 송판으로, 덜 자란 나무를 지지대로, 지천으로 깔린 나무를 아무거나 잘라 팔기만하면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귀하디 귀한 물건으로 금지옥엽처럼 썼습니다.

먹지도 않고 쓰레기로 버리다가 돈이 된다니까 팔아서, 우리는 비싸게 주고 사먹어야하는 소의 내장과 똑같습니다.


미안하지만, 하루 더


“기차표 주세요. 예매 했어요.”

“모든 표가 매진입니다.”

역을 한군데 더 들르고야 카드를 예매한 암트랙 Amtrack 을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599불을 입금한 바우쳐 Voucher를 건내주고 여행일정표를 보여주며 표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돈을 지불한 탑승권은 카드로 주겠지만 좌석은 이미 매진이 되어서 탈 수가 없답니다.

“방학을 일주일 전에 했고, 독립기념일이 다가와 이 일정대로는 표가 없어요.

“일정표는 당신 희망사항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5일 후 좌석권을 줄 수 있을 뿐이예요. 그 때 걸로 줘요?”

이거, 난감했습니다. 김목사네 집에서 5일을 주야장창 묵어 제킬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버스로 몇날 며칠을 시달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후딱 지나가고 마는 비행기를 타기도 싫었습니다. 생각 끝에 코스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그럼, 가장 북쪽으로 가는 노선에는 표가 있나 보세요.”

“알았어요. 잠시 기다리세요.”

대륙을 횡단하는 네 개의 철도 노선 중에 가장 남쪽의 것을 계획하고 왔는데, 틀렸습니다. 컴퓨터를 이리 두드리고, 고개를 저리 갸웃하더니, 좋은 소식이 있다며 좌석권을 주었습니다. 타코마에서 출발해서, 시애틀을 거쳐, 시카고에서 갈아타고, 뉴욕까지 갈 수 있는 표였습니다. 예매한 30일 자유 이용권은 환불하고 새로 돈을 내고 표를 끊었습니다. 남부를 돌아가자면 일주일은 걸리고 더 여러 군데를 가고 싶었는데, 탑승객이 많아 좌석권을 구하기 어려우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겠다는 계산을 했던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의사를 전달하고 받느라고 참 힘들었습니다. 짧은 영어로 말하려니 잘 표현할 수가 없었고, 무슨 말을 하는지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천천히 말하는 데도 다 접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핵심적인 내용은 문장으로 적어서 보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금방 알아먹는 모양입니다. 잘 모르는 단어는 핸드폰에 단어검색을 하면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김목사가,

“글을 써서 보여주면, 영어를 좀 한다고 인정을 해요. 미국은 문맹률이 많거든요.”

말은 하지만 읽거나 쓰지 못하는 사람이 많답니다. 딸과 아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내용을 보았더니 에세이를 많이 쓰더랍니다. 고등학생이고 중학생인데도 읽고 쓰기가 많답니다. 우리나라야 읽고 쓰기는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모두 마치고,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외우고 또 외우느라 정신이 없는데 말입니다. 영어가 그만큼 익히기 어려운가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어가 규칙에 어긋나는 단어가 좀 많아야지요. a를 적어놓고 '아'로 읽기도 하고, '어'로 읽기도하고, '애'로 읽기도 하고, 같은 단어를 이 세가지 경우로 다 발음하기도 합니다. 예매를 했던 Amtrack도 '암트랙'인데 어떤 사이트에 가면 '앰트랙'이라고도 합니다. '암'이 한글로 癌 암을 연상시키거나 暗 어두움을 생각나게 하니까, 그게 싫어서 '앰'으로 읽으려고 하는가 봅니다. 미국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자부심이 있는 말일 것입니다. 아메리카 America 를 상징하는 암 Am 이니까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영 듣고 싶지 않은 말입니다.

또 하나 영어를 어렵게 하는 것은 묵음입니다. 그걸 왜 붙입니까? 발음하지 않으려면 아주 쓰지를 말지. 한글에는 발음되지 않는 철자가 없습니다. 있는 대로 읽으면 되니까 얼마나 쉽습니까?

영어를 또 어렵게 하는 것은 같은 철자를 두 개 연거푸 붙인 것입니다. Letter Little Add 등. 하나만 쓰면 됐지 쓸데없이 붙이니까 어려워지고, 그러니까 문맹률이 30%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썼어요. 단어 외우라고 백지에 단어당 20번씩 써 오라면, 볼펜 두 개를 묶어서 써가지고 가는 숙제를 많이 했잖아요.”

“그러게 말이에요. 문장으로 봐서 외우는 사람이 있고, 글씨로 써서 외우는 사람이 있는데, 다 똑같이 그놈의 숙제 하느라고....”

그 때 썼던 단어를 휘갈겨 써서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왔습니다. 이 아니면 잇몸입니다. 우리 영어실력을 형편없다고는 못할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가려고 했는데 하루를 더 묵어야 겠습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북쪽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철저하게 준비를 한다고 해도 현장에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인간사인 걸 어쩌겠습니까? 멀리서 왔고 또 어렵게 왔다는 핑계로 하루 더 신세를 지기로 굳혔습니다.

‘미안하지만....’


확인하지 않으면 안녕하지 않은 나라

“예, 다녀오세요. 나는 가까운 공원에 나가볼께요.”

이튼날 아침 김목사는 약속된 모임에 나가고 나는 그동안 혼자 공원을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페더럴 파크 Federal Park. 페더럴 웨이 Federal Way 동네에 있는 공원이라고 그냥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었습니다. 축구장이 5개, 소프트볼 경기장이 4개, 어린이 놀이터가 하나, 그 둘레를 산책길과 자전거 타는 길이 있었습니다. 길을 빼고는 둘레는 나무가 심겨져있고, 그 안에는 모두 잔디가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그런 게 있다면 우선, ‘잔디를 밟지 마세요’라는 표지가 붙어 있을 것이 틀림없는데, 어디고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아무나 들어오라고 잔디가 누워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10시쯤 공원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들어가 노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차가 한 둘 오더니, 오는 사람들마다 개를 한 마리씩 목줄을 잡고 내렸습니다. 조그만 흰 강아지, 새까만 강아지, 송아지만한 개, 중개도 더러 있었습니다.

‘하기야 개라도 한 마리 데리고 오는 것이 혼자 온 나보다는 덜 심심하겠군.’

어떤 할머니는 걸음마를 뗀 손자를 강아지처럼 뒤에서 끈으로 잡고 따라다녔습니다. 강아지는 끌고 다니는 것이고 분명 손자는 보호하려는 것일 겁니다만,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은 비슷했습니다.

잔디밭에 들어가 걷다가 산책길고 들어섰습니다. 튼튼하고 보기도 좋게 설치한 철재 울타리 밖으로 맨땅도 있고, 쇄석을 깔아 놓은 곳도 있었습니다. 길가는 숲이 우거졌습니다. 앞에서 건장한 사내가 나타났습니다. 머리는 노란 것을 짧게 각을 지게 깎았고, 진한 썬글라스를 끼고, 근육이 울퉁불퉁한 팔뚝으로, 꼿꼿하게 서서 씩씩하게 걸어오는 겁니다. 순간 섬짓한 느낌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저런 덩치가 어떻게 하자고 치면 나같은 거야 한주먹거리도 안되게 생겼네.’

겉은 멀쩡해도 속은 주눅이 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오자 먼저 웃으며 손을 들었습니다.

“하이?”

“하이.”

나도 웃으면서 하며 답례를 했지만, 겁이 났다가 짓는 웃음이라 썩 보기가 좋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반가운 인사가 아니기는 그쪽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나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아니, 인사를 안 하고 그냥 지나쳤다면 지나치고도 뒤가 쭈삣 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인사를 하고 지나쳤으니 뒤에서 해꼬지를 할 리는 없을 거라는 안심이 들었습니다.

“고속도로는 1차선이 카풀노선이예요. 카풀이라고 해 봐야, 아무 차든지 두 사람 이상만 타면 되요.”

우리 고속도로에 주말과 공휴일에 버스전용차선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셋이 탔으니 당연히 카풀노선으로만 갔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전용차로는 버스에서 승합차까지 6명이상이 타면 전용차로로 갈 수가 있는 것에 비하면, 엄청 관대한 규정입니다. 그런데도 카풀전용차로로 가는 차가 많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차량이 나홀로 차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차를 타지 않고는 무슨 볼일이든 볼 수가 없어서 혼자라도 나와야 하고, 고속도로가 동네를 관통해도,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길을 체계적으로 잘 만들어 놓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지금은 카풀노선이나 일반 노선이 차이 없이 잘 다니지만, 휴가 때면 카풀노선을 달릴만 하답니다. 카풀노선은 쭉쭉 빠지지만, 다른 노선은 꽉꽉 막힌답니다. 주말에 승합차 타고 버스전용차로를 타고, 막혀서 짜증나는 승용차 약올리듯 달리듯이 말입니다. 그때만큼은 승합차 탈만 하지요.

“휴가 때 카풀을 하면 쭉쭉 달릴 수 있다는 건, 휴가 때도 여전히 나홀로 차량이 많다는 얘기잖아. 그럼, 결국 휴가도 혼자 가는 사람이 많다는 뜻 아니야? 아하, 휴가도 개나 데리고 가는가 보구나! 공원에 나오듯이.”

숙제가 풀렸습니다. 페리호에 찻값만 받고 사람값은 받지 않는 것은, 차를 함께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인 것을 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최고라더니, 그럴만도 했습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 동남아 사람들이 트럭 뒤에 여럿이 타고 아무렇지도 않게 가는 걸 보고, 우리가 후진적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승용차에 가득 끼여 타고 가는 걸 보고, 이 사람들이 우리를 후진적이라고 보는 건 아닌지 모릅니다.


스타벅스 커피의 거품이 한국에서는 많아


“스타벅스 세계 1호점에 가서 커피한잔 어때요?”

“좋지.”

청동으로 소방관이 불 끄는 형상을 만들어 놓은 코베공원 Kobe Park 옆에 차를 세워두고, 시애틀 중심 도로라고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시애틀은 흐린 날이 많아서, 기분전환 하려고 커피를 즐겨 마시다가 스타벅스라는 새로운 커피 마시는 방식을 창안해 냈답니다. 한잔 사 들고 시애틀 항이 보이는 야외의자에 앉았습니다. 커피맛이야 서울과는 어떤지 모르지만, 이야깃거리가 하나 생각났습니다. 서울에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들려주었습니다.

“광화문 주변 거리 어디든지 점심시간이 되면 회사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나와. 점심은 2천 원짜리 김밥으로 간단히 먹거나, 5천 원짜리 한상 차려 먹어도, 커피만은 뚜껑덮은 스타벅스를 마시지. 이 커피 값이 얼만지 알아? 한잔에 5천원. 밥은 뭘로 먹든지, 스타벅스 한잔 안 들면 영락없이 촌놈처럼 보이고 말지. 세계 1호점에서는 2불 남짓 하는 것을 배나 더 주고 폼잡고 마시고 있지. 배보다 배꼽이 더 커.”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를 한번 보았습니다. 두지도를 건너다니는데, 간조든지 만조든지 배를 항상 쓸 수 있는 선창이 없어서, 배를 하나 사야 했습니다. 간조에 배가 걸어도 가벼워서 밀어 내릴 수 있고, 차 타는 곳에 둘래도 끌어 올릴 수 있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서 미국산 워커베이 Walkerbay 를 선택했습니다. 프라스틱인데도 도끼로 찍지 않는 한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고, 뒤에 바퀴가 달려서 어디든지 끌고 갈 수 있도록 가벼워서 였습니다. 엔진을 얹어도 57㎏밖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배값이 95만원인데, 엔진이 155만원입니다. 노를 저으면 엔진은 필요 없고, 어쩌다 먼 바다에 나갈 때만 엔진을 답니다. 정작 언제나 필요한 것은 배였는데, 배에다가 힘을 보태는 엔진 배꼽이 엄청 더 비쌌습니다. 그런데 배에 필요한 엔진이야 그만한 값을 한다고 봐야하지만, 스타벅스 커피에 가득한 거품 배꼽은 걷어 내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시애틀 스타벅스 커피의 거품보다, 한국의 스타벅스 커피 거품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끼니 때가 됐는데 어떻게 그냥 헤어져요. 밥이나 먹으러 가요.”

서목사가 또 앞장을 섰습니다. 오늘 작심하고 손님대접을 하는 모양입니다. 순두부를 먹었습니다. 순두부는 돼지 순두부, 쇠고기 순두부, 해물 순두부, 뭔 순두부, 무슨무슨 순두부 해서 모두 12가지 메뉴가 있었습니다. 여기다가 매운맛, 보통, 순한 맛 3가지를 각각 곱하면, 순두부 하나만으로도 자그마치 36가지나 되었습니다. 음식점 뿐 아니라, 이 근방에서는 한국 상점이 없는 것 없이, 다 있답니다. 영어를 몰라도 제약 없이 살 수 있답니다. 인심도 한국 인심이 그대로 였습니다.

“아, 잘 먹었다. 한국에서 처럼 맛있네.”

“먹었더니, 또 배가 불러, 그냥 못 들어가겠지요? 공원을 걸으면서 운동 좀 하고 가요.”

7시가 지났는데 아직 해도 있고, 좁은 집보다야 났지 않겠냐고, 넓은 공원으로 갔습니다.

우리 같으면 차가 오는 것이 보이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릴 텐데, 서목사는 무조건 차도로 발을 들여놓고 걷습니다.

“신호등이 없는 한 아무 때 아무 데고, 사람이 우선이라서, 차가 무조건 멈추어 서요, 여기서는. 횡단보도도 똑같아요. 사람이 보이면 차가 서야 해요. 무단횡단을 하면 사람이 벌금을 내는 경우가 있지만, 건너는 사람을 보고 서지 않은 차는 더 큰 처벌을 받아요. 차는 물건이라서 고장나면 고치고, 부서지면 버리면 되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생명이라서 돌이키거나 원상회복 할 수 없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이 사람들 생각이에요.”

우리나라는 고급차가 그 차를 탄 사람과 동격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차가 거리를 지배해서 사람을 밀어내고 사람이 차를 피해 다녀야 합니다. 이걸 언제 고쳐서 차는 단지 물건으로 보고 사람은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대접할 수 있을까요? 사람이 활개치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한 차 가득 끼여 가는 것을 보고 후진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못 봐준다고 해도, 거리에서 차를 사람보다 우선시 여기는 것을 후진적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