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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사람들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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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9월 02일 (화) 06:59:10
최종편집 : 2008년 09월 19일 (금) 15:04:52 [조회수 : 3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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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가 개판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우월적 지위의 남용으로 사회생태계가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의 삶이기보다는 우월과 열등의 구분으로  반상의 차별이 있게 하고 인간의 탐욕과 꾀로 빚어진 투쟁과 착취의 삶을 살기에 인간적이기 보다는 살벌한 삶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사랑도 투쟁, 공부도 투쟁이 되어 버렸습니다. 믿음도 투쟁과 착취의 패러다임이 하나님의 은사적 삶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수능 100일이 훌쩍 지났습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100일 주(酒)를 마시는 괴상한 풍습들이 학생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수능이 마치 작전 하듯이, 전투하듯이 인생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행복문으로,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등용문으로, 우월의 지위와 열등의 지위를 가로짓는 분수령으로 생각하기에 우리 사회는 수능을 조선시대의 과거 급제마냥 국가적인 행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악착같이 따라 붙는 것은 돈과 학력의 굴레입니다. 사랑과 행복은 돈과 학력이 보장시켜 주는 것은 아닌데 이 시대는 돈과 학력이 우상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결혼도 수능점수로 당락이 좌우 되는 변수로 작용 할 것 같습니다. 수능의 점수가 상위권에 있는 학생들은 탄탄대로임은 말할 것도 없는 우리 사회는 바람직하지 못한 반 생태적 사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다 머리가 좋도록 하지 않으시고 소수에게만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달란트)의 삶을 살면서 그 은사적 삶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시고 서로를 섬기며 봉사하도록 하게 한 것입니다. 이런 은사의 삶에는 귀하고 천하고가 없습니다. 즉 우월과 열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우월과 열등의 집단으로 너무나도 확연하게 구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월의 집단에 들기 위해 밤낮 잠을 자지 않고 공부에 메달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교육 정책이고 당면한 학생들의 고난의 현장이지요. 전부 머리가 되면 몸통은 누가 될것이며, 손, 발, 꼬리는 누가 하라 말입니까?

사회의 직업구분과 기능이 각자의 재능과 은사 차이로 인해 되어진다면 서로가 공평하고 즐거운 삶의 현장이 되겠지만 수능점수와 실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구분지어 우월감과 열등감으로 상호 적대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지옥의 현재화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자동차 부속이 모두 작동되어야 자동차가 굴러 갑니다. 엔진과 기어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면 차는 굴러가지 못합니다.

하찮은 부속 하나라도 제 기능을 하고 있어야 차가 안전하게 굴러 가듯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그런 대등한 삶을 사는데 부족함이 없는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비로소 행복한 생태적 삶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기성세대는 잘못된 우월적 지위와 삶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가지도자인 정치인들과 기업들의 부정과 부패의 삶이 그렇습니다.

반사회적인 사회가 된 것은 우리사회가 합리적인 사회가 되지 못해서이고 무엇보다 정치나 정책, 특히 공무원들의 공무수행이 중립적이고 합리적인 시행보다는 어느 일방의 목소리를 더 중시하는 행정편의주의와 봐 주기식, 비리와 부패에 둔감한 토착 비리적 관행행정에 길들여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여겨집니다.

법원의 전관예우라는 관행도 악습중에 악습입니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한 것이라고 하지만 판사에 따라 유죄가 되고 무죄가 되는게 바로 돈의 힘입니다. 아무리 돈과 권력이 있어도 유죄는 유죄로 판결되어야 합니다. 유전무죄, 무전 유죄라는 단어가 사라져야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세상이 온통 그러한 패러다임으로 고착화되어 진통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지만 지금 세상은 열린사회입니다. 과거 공포정치의 닫힌 세계가 투명한 열린사회로 모든 국민들의 귀와 눈과 입이 자유로이 듣고 ,보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대통령도 지금 국민들 앞에 꼼짝 못하고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이라도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지 못하는 시대가 된 세상에 국민 한 사람이라도 열등에 있는 어느 한편이라도 상대적 손해를 보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대통령의 판공비가 농촌 사람들의 피와 땀이라는 것을 인식하다면 함부로 펑펑 사용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공무원들의 수당 역시 그러합니다. 뇌물 떡값 등의 관행도 사라져야 할 우월적 지위의 부산물입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입시정책의 혼선은 우월적 지위를 보장 받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수능 총파업을 하여야 하고, 농민들은 F.T.A 에 대항하기위해 농사 총파업을 벌어야 하고, 결혼 적령기에 있는 처녀 총각들은 고비용, 사치 호화비용의 사회적 부담에 따른 결혼 총파업을 선언하여야 합니다. 성도는 성도대로 거짓 선지자, 삯군목사 퇴출을 위해서 교회파업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워낙 파업종류가 많아서 한 번 해보는 말입니다.

정치가 바르게 되지 않은 것은 최소한의 정치학 원론대로 되지 않아서이고 경제가 이렇게 어렵게 된 것은 최소한의 경제원론대로 되지 않아서이고, 사회 법질서가 무너진 것은 헌법을 비롯한 법정의가 실현되지 않아서입니다. 공무원들의 비리, 부패가 근절되지 않은 것은 윗물이 흐려서이고 공무원 복무지침이 사장되어 있는 문서로밖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고 한국교회가 이렇게 사회적 신뢰도가 떨어진 것은 성경의 원리로 목회를 하지 않아서입니다.

우리나라의 고질병중의 하나가 정치인들이 나라를 위한 애국심은 독차지 하고, 관료들은 행정을 좌지우지하는 주인 행세로 하면서 무슨 일이 터지면 자신들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무책임, 무소신(所信)과 보신(保身)하는 데만 급급하기만 하여 우리나라의 꼴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누구 하나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정치인, 관료들이 없었습니다. 있다면 애꿎은 하급공무원만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도덕적 우월감과 정치적 관료적 기득권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감히 건드리지 못한다는 법적, 도덕적 초월의 영역에 있다는 오만과 독선으로 무장하여서 현실적으로 모든 화살이 피해나가도록 한 것이지요.

교회 역시 목사들은 신앙적 우월감으로 하나님 다음의 이세상의 권세를 가진 사람인데 감히 누구를 건드려 하는 식으로 성도들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신앙 권력적 우월적 지위에 놓여 있어 교회안에서 누구라도 건드릴 수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의 머리를 예수그리스도라고 해놓고서는 실제의 머리는 목사가 하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권력의 최상위에서 마피아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감히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종을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라고, 천벌을 받을 것이라고, 공갈과 겁을 주며 더 나아가서 교권에 도전하는 역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지요.

미국이라는 나라도 지구촌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강국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자국의 국익에 반하는 것이라면 무력으로 차단하고 각종 보호 무역정책을 써서 경쟁력을 유지하며 경제발전을 이루었으면서도 가난한 약소국의 나라들에게는 자유무역과 자유 시장 정책이 부자가 되는 길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권유하는 미국과 그 앞잡이들이 생태적, 토착적 국가경제를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앞잡이들은 대개가 우월적 지위에 있는 기득권의 세력이며 부패세력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권력의 기생세력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이 부르짖는 신자유주의 무역정책은 권투시합으로 보면 헤비급과 라이트급의 경기를 하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결과는 뻔한데 말입니다. 공정한 경기가 되려면 체급이 같은 선수끼리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체력적으로 우월적 지위에 놓여 있는데 어떻게 공정한 경기가 되겠습니까?

국회의원, 시위원, 청와대, 행정부등의 관료들의 정치적, 도덕적 우월적 지위는 대단합니다. 감히 그들의 우월적 지위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동지애로 똘똘 뭉쳐 세비를 인상하고, 떡값을 받아먹고, 정부예산을 떡 주무르듯이 배분하고 합법적으로 행정절차와 서류에 아무런 하자 없이 간접적으로 나눠 먹습니다.

그런 특별한 우월적 지위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특혜와 밥그릇 챙기기는 결국 나라전체의 살림살이를 어렵게 만드는 꼴은 엔트로피 1법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의해서 증명이 됩니다. 결국 서민들의 삶만 힘들어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콩 한쪽도 나눠먹는 공동체의 인심이 소멸되어지고 반쪽의 콩도 100명으로부터 착취하여 한사람이 독차지 하여 먹도록 하는 것이 현재의 자본주의 제도이며 부패한 정치, 행정 관료, 부동산 투기꾼들의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처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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