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해온 '노년의 기도문'은 17세기 한 수녀의 기도문이라는데

아무리 들어도 꼭 우리 동창 누군가의 기도문 같다.

            "주님

            주님께서는 지금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로 늙어버릴 것을 저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 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 좋아하는

            그런 사람 되지 않게 하소서

            ...................

오늘은 동물원에 왔으니 동물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徒步가 불편한데다가 햇빛이 뜨거워 지나치면서 보기로 했다.

코뿔소도 더운지 그늘에만 있고....

기린도 바위에서 흐르는 물을 핥고 있었다.

사람에게 노획되어 고향을 등지고 떠나왔을 동물들

여기가 그들의 고향이라고 간판을 달았지만

어찌 여기가 아프리카일 수 있을까?

아프리카가 아닌 서울의 한복판인 것을....

나는 연민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동물의 눈빛은 체념을 넘어선 달관의 경지여서

속죄를 겸한 축복의 기도를 보내면서 그 곁을 지나쳤다.

경쾌한 음악이 들리자 한가했던 홍학(후라밍고)들이

떼를 지어 날갯짓을 한다. 그게 볼 만 해서 사람들은 모여든다.

보이지 않는 운명의 사슬에 묶인 홍학의

슬픈 群舞를 보고 나서, 나는 죄인인양

사죄하는 마음을 박수로 얼버무렸다.

부디 怨 없이 살다가 다음 생엔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나는 코끼리차를 타고 내려와 다시 친구와 합류했다.

휴식을 겸한 자리에서 후배는 내게 cass 한 통을 주었고  

나머지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아침에 반가운 편지를 받은 하루의 시작은

이렇게 즐거운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고맙고 감사하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오늘을 회상하니

다리를 절면서 춤 추는 홍학 한 마리가 눈에 어른거린다.

아파도 인간을 위해 춤을 추어야 하는 그의 형편

어디 가엾은 것이 어디 홍학뿐이랴마는.

바라보는 모든 것은 나의 스승이다가

나의 자화상이다가....

나는 오히려 진통제라도 먹지만

아무 대책도 없을 홍학이 마냥 가엾다.

오늘은 아픈 동물을 위해 기도라도 하고 자야겠다.

자비는 기도로부터 시작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