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예수포럼 / 한국기독교연구소 주최 ⓒ 당당뉴스 송양현

<나의 어릴적 생애>

▲ 정진홍 교수(한림대 과학원) ⓒ 당당뉴스 송양현

<6.25의 아픔>

결정적인 변화를 맞게 된 것은 6.25다.
나는 전쟁과 전장을 구별하고 싶다. 전쟁에는 이념이 있고, 영웅도 있다. 그러나 전장 즉 싸움터에는 이념도, 승자도 패자도, 정의도 없다. 그저 있는 것은 살육뿐이다. 전장에는 심지어 증오조차도 없다고 생각한다. 살기 위한 살육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전쟁의 수준으로 미화되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전쟁문화, 전쟁문화사는 있어도 전장문화, 전장문화사는 없는 것 같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전장을 전쟁으로 보는 것이 성경에 너무나 많다.
선친은 시신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셨다.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실종신고를 했다.
전쟁 때 다 없어졌다. 사람도 없어졌고, 집도 없어졌고, 내 삶을 지탱한 기존의 모든 것이 다 없어졌다. 상실, 소멸이라 개념화 할 수 있는 것을 어릴 때부터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아직도 기억할 수 있다.
지금도 해가 뉘엿뉘엿하면 집에 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느끼는 것이 내가 갈 집이 없는데, 내가 집에 가야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집에 간다.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고, 저녁도 잘 먹고 잠자리에 든다. 그 순간 또 생각이 든다. 집에 가야겠다. 초조하고, 집에 가서도 집에 가야겠다고. 그래서 뭘 남기질 못한다. 남의 손에 없어지기 전에 내 손으로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일기장도 없앴다. 전쟁이 끝나면 전쟁 이전으로 돌아갈 것 같았지만, 전쟁 이후에는 오히려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고싶었던 청소년기>

어머니께서는 대단히 자존심이 강하셨다. 집안도움을 받지 마라. 갚을 수 없다. 자존심도 없어진다. 남의 도움은 반드시 갚아야 된다. 그래서 나는 자존심이 있다.
누님은 중3을 마치고 직장에 가고 저는 고아원에 가서 어머니는 내 아래동생들만 데리고 사셨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나는 종교인의 삶이라고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삶속에서 드러나는 종교적인 삶의 태도. 내가 살고 있는 기관의 성직자들의 신앙과 태도. 내 자신이 살면서 종교적인 삶으로 그 삶을 지탱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성.
어머니는 신앙이 없었으면 살아가시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을 회상하면서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난 한 번도 절망해본 적이 없다. 왜? 희망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살줄 알았으면 경제학을 하던지 아버지처럼 법관을 했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꿈꾼 것은 죽음이었다. 어서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난 신앙, 하나님, 기독교라는 것은 이런 맥락 속에 있다.
참 죽고 싶었다. 그런데 자살을 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성적이 웬만했다. 고아원에서 지내다 나이가 되니 만 16세가 넘어가니 모자원으로 갔다. 고2, 고3때 일을 해주면서 전쟁미망인들 틈에서 지냈다. 미래에 대한 꿈같은 것, 이런 어휘가 참 낯설었다. 정말 괴로웠다.

어른이 되기 전에 죽어야지. 어른들은 참 추하니까. 정직하지 않으니까.
새벽이면 존경하던 전도사님이 나를 깨워서 등잔불 켜놓고 나보고 공부하라고 하시고 새벽예배를 가신다. 그리곤 5시 반부터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새벽예배를 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할 자신이 없었다. 예수를 믿어 좋은 사람이 될지 안 될지 판단이 안 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도해야 될 당위성은 분명했었다.
대학입학시기가 되니 선생님이 불러서, 너희 집안을 살리려면 의대나 법대를 가라고 했다. 그래야 너희 가족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다. 이 말이 참 따뜻한 충고였지만,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꼭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것에...
철학과를 가려고 했다. 어서 죽어야 되는데 읽고 싶은 책이나 읽고 가야겠다. 종교학과를 10명 뽑는데 이런 학과도 있나 싶어서 들어갔다.
고아원에서 같이 자라던 형이 있었다. 나는 공부를 잘했고, 그는 공부를 못했다. 이름대면 누구나 잘 알만한 목사님의 조카이다. 그 목사님은 조카를 건사하지 않았고, 거북이과자 굽는 공장에 취직했다. 그런데 내가 서울 온지 일주일쯤에 약을 먹었다. 다행히 죽지 않았는데, 곧 다시 약 먹고 죽어버렸다.
가끔 힘들 때면, 두 사람 몫을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시절>

대학에서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대학에 대한 배신감은 컸다. 당시 유명한 목사 한 분이 교수로 있었다. 그에게 이러이러한 것을 물으면 “그런 것은 이단이야!”라고 단정하셨다.
내 물음을 묻지 못하고 내 물음 아닌 물음을 배워 물어서 정형화된 대답을 들어야 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런 건 아니다. 내 물음에 솔직하지 못하다니.’
그래서 사는 세월이 참 괴로웠고, 대학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많았다. 그런데 나한테 대한 가족들의 기대감이 컸다. 어머니도, 누이들도... 그리고 용기가 없어서 자살도 못했고, 자퇴도 못했다. 그냥 살았다. 4년 동안 가정교사하고, 군대를 갔다.

제대하고 2년 동안 무급조교를 했다. 그런데 무급조교로는 살 수도 없는데 연애까지 했다. 그러다 이화여대 부속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칠 교사를 구한다고 해서 취직했다.
아주 독특한 학교였다. 교복도, 출근도, 아이들 지정좌석도, 직원 조례도 없었다. 첫 출근을 했는데 아무도 뭘 하라고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알아서 하는 것이었고, 참 독특한 경험이었다.
가르쳐야 할 과목은 중1은 구약, 중2는 신약, 중3은 교회사였다. 시골에서 올라와 제가 앉을 책상과 걸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설레던지. 그래서 전지를 사서 사도바울의 1차, 2차 전도여행 그림을 그려 열심히 준비해 가르쳤다.
그런데 한사람도 듣질 않았다. 최고의 노력을 했는데, 분노와 실망과 좌절감이 컸다.
몇 주가 지나 어떤 학생이 질문을 했다. “선생님 그 나이에 뭘 못해서 성경선생님을 합니까? 뭘 못해서 하나도 들을 필요가 없는...” 처음으로 느꼈다.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를 쓰고 있는가? 그것을 당연하듯 말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런데 자기의 언어가 얼마나 소통이 불가능한 언어인가를 모른다.
가정교사하면서 4년 동안 교회를 못 다녔다는 것이 내겐 축복이었다. 기독교인의 방언에서 조금 떨어져있었기에 그것을 알 수 있었다. 기독교인의 말과 사유가 얼마나 알아듣기 힘들고 얼마나 자폐적인 것인지.
그래서 그 이후로는 아이들 데리고 연대 뒷동산에 가서 놀다왔다. 이대 총장 공관에 가서 놀고, 아니면 찬송이든 아무 노래든 부르고 놀고...
주기도문도, 십계명도 아이들에게 못 가르쳤다. 그런데 그때 배운 학생이 지금 신학대 교수가 되어 찾아온다. 가끔 기적은 일어난다. 

<종교학>

엘리아데(M. Eliade)라는 종교학자의 책에서는 각종 종교 대신에 여러 문화적 심볼리즘들이 나온다. 가령, 사람은 어떤 경험을 했기에 태양의 심볼리즘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내용이다. 특정 종교를 말하지 않고도 인류의 종교경험을 말할 수 있다는 것에 전율을 느꼈고, 그래서 종교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종교학을 배우며 충격을 받았다. 종교사를 공부해보니까 종교도 흥망성쇠의 역사를 갖고 있는 현상이더라. 어떤 종교는 생겨나고 어떤 종교는 사라졌다. 역사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종교도 흔적도 없이 망해져 없어지는구나. 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고대 이집트 종교는 연대기적으로 3천년을 이어간 종교였다. 라 혹은 레라고 불리던 태양신의 종교였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해답을 준 종교이다. 3천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태양신 아래서 죽었을까?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태양신 아래서 태어나고, 축복을 기원하고, 그 축복 속에 결혼하고 자식 낳았을 것이고, 태양신 속에서 영생하리라고 생각하고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폐허가 된 신전밖에 없다.
신도가 없어지면 신도 사라진다.

기독교가 없었던 때가 있었다. 구약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창조를 말하지 말고, 쉽게 얘기하면 예수님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지 않은가? 그리고 기독교가 생긴 후 이제 2000년이 지났다. 이런 얘기에 흔들리면 신앙도 아니다.
신도가 사라졌는데 신이 의연히 살아있을 것이다? 예수 잘 믿어야 예수가 잘 살아있을 수 있다.

천도교에서 말하는 양천주(養天主)는 하나님을 내 맘에 모시고 키우라는 말인데, 그 책임이 나한테 있다는 것이다.

그 말처럼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영속하게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에게 책임을 넘기지 말라. 역사가 얘기해준다. 그래서 종교학을 공부하면서 정말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여러분은 낡은 세계, 저는 다른 세계에 있다는 대조적인 표현이 아니다.
종교학을 계속 공부하면서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나의 신앙의 고백이다.
사람들이 종교가 뭐냐고 물으면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사람의 인식의 지평 속에서 생기는 인식의 구조는 다르다. 어려운 얘기 아니다. 일상을 생각해보면 된다. 물질을 보고 실존으로 결단하고 그런 거 아니다. 

<인식의 언어와 고백의 언어>

제자하나가 군대에 갔다가 늦게 돌아왔다. 선배노릇하다 왕따 당하고 빙빙 돌다 연애를 시작했다. 그러더니 얼마 안 가서 헤어졌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단해서 ‘나 너 사랑해’라고 했는데, 그 여자가 날 사랑하는 이유를 대라고 해서 그 순간 정이 뚝 떨어져 헤어졌다고 했다.
잘 했다고 했다. 그 이유를 따지면 사랑이냐. 나 예수 믿는다. 그 이유를 나에게 따지지 마라.

종교 언어라는 것... 사투리라고 표현했다.
언어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인식의 언어는 육하원칙에 의해 서술될 수 있어야 하고, 인과가 분명하고, 논리적이어야 하고 개념적 정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언어를 통해 끊임없이 인식지평이 넓어져야한다.
또 하나는 고백의 언어다. 나 너 사랑해. 이유를 댈 수 없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이유를 대는가?
종교언어는 고백의 언어다. 성경은 고백의 언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것은 고백의 언어다. 실증을 넘어선 언어다.
여러분이 하는 고백의 언어를 실증하려 하지 말라. 논리로 정형화하지 마라.
고백의 언어는 특징이 있다. 인식의 언어는 인식 지평을 넓혀준다. 그런데 고백의 언어는 인식지평을 넓혀주지는 않지만 자기 신념을 더 굳게 강화시켜준다. 여기에서 오는 한계가 있다. 고백의 언어는 자기 신념에 투철해지기 때문에 배타적이 된다. 안 예쁜데 예쁘다고 고백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직 크지 못한 기독교인들이 많다.
고백은 성숙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철나기 전에 하면 독선과 배타성으로 상처주고 만다. 선교하고, 전도하는 것 이런 수준에서 하는 것 아닌가?

고전 13: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사라집니다.
고전 13:11 내가 어릴 때에는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안 보이는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 것이 들려야 철이 난 것이다. 보이는 현상만을 갖고 현상이라 하면 철이 덜난 것이다.
고백의 언어는 실증되지 않는다. 이 언어를 실증할 수 있는 길은 논리적, 개념적 언어를 빌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뿐이다.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행동이다. 사랑하냐? 이유를 대봐라. 이유는 댈 수 없다. 행동뿐이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할 때 거기에 수많은 언어, 수많은 섬, 인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그런 가운데 하나의 국가를 꾸려나가는데, ‘우리는 하나의 신을 믿는다’라는 공감을 형성하고 살고 있다. 이슬람 국가인 것이다. 지나가다 교회가 있었다. 목사님이 나오셨는데, 꾀죄죄하고 궁상맞고, 위엄은 하나도 없다. 이슬람 국가에는 선교의 자유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선교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당신이 사는 곳의 지도를 보여줬다. 곳곳에 빨간 십자가가 표시되어 있고, 교회가 세워진 때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슬람 법 때문에 교회가 많이 세워졌다. 말을 못하니까 행동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예수 믿으라는 소리 한마디 안하고 그저 도와주면 자기네들이 교회를 세우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