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 사상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또 다른 경우는 바울 사도의 남은 자 사상입니다(롬 9-11장). 남은 자는 옛 언약의 백성인 유대인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새 언약 안으로 부르시고자 하시는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가 편지를 쓰고 있는 그 때에도 유대인들 중에는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올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남은 자들은 옛 언약이 완전히 파기되기 이전에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역사에 있어서 실패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로서 그 절대적 주권으로 이루십니다. 그 과정에서 이집트의 바로 왕과 같이 어떤 이들을 강팍케 하셔서라도 반드시 이루십니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롬 11:26)는 말씀은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결과입니다. 바울 사도가 편지를 쓸 때에는 미래의 일이지만 현재의 우리에게는 성취된 과거의 일입니다. 옛 언약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은 이미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멸망과 돌성전 파괴를 통하여 사라졌습니다. 현재의 이스라엘은 성경의 이스라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한 불신 국가일 뿐입니다.

어떤 이들은 타락과 구속을 병 주고 약주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타락하지 않도록 하지 않고서는 구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타락은 하나님께서 주신 병이 아니라 아담이 스스로 취한 병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속은 자신의 잘못으로 병든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병 주고 약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병든 사람을 치료하시고자 하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두 종류의 은혜

성경에 이야기되는 은혜는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비신자가 신자 되어 구원을 얻는 은혜와 신자가 신자답게 살아감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은혜입니다. 그 은혜들은 주체가 하나님이시며 객체가 동일한 사람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반면에 그 은혜가 주어지는 시점과 그 시점에 있어서 사람의 상태가 서로 다르다는 면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거듭나기 이전과 이후, 거듭나지 못한 사람과 거듭난 사람이라는 차이입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은혜의 성격에도 변화가 생겨납니다. 전자의 은혜는 불가항력적인 데에 비하여 후자의 은혜는 가항력적이라는 것입니다.

가항력적이란 그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는데, 사람에 의해 거부되어 헛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듭나게 하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도록 하시기 위해 단 한 순간도 은혜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거듭난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소욕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옛 사람을 따라 자기 고집으로 곧 육신의 소욕으로 그 성령님의 소욕을 거스릴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바르게 받지 않고 헛되이 받는 것입니다. 지난 교회 역사에서 확인되는 교회의 모습과 신자로서의 현재 자신의 삶에서 확인되는 바입니다.

교회 역사적으로 구분되어야 할 은혜들이 구분되지 않고 섞임으로 인해 서로 다른 소리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의 은혜로 뒤의 은혜를 덮어버리는 경우와 뒤의 은혜로 앞의 은혜를 덮어버리는 경우입니다. 전자는 거듭난 이후의 은혜도 불가항력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하나님의 은혜는 절대적으로 열매를 맺는다고 주장합니다. 후자는 거듭나게 하는 은혜도 가항력적이라고 생각하여서는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거부합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주장이 성경적으로 옳다면서 상대방을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성경은 그 이해에 있어서 언제나 문맥과 역사적 정황 등이 바르게 고려되어야 합니다. 한 사건이나 문장을 그냥 보편화시켜서 한 교리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교리는 언제나 전체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한 결과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