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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의 추억 (1)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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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5월 07일 (수) 19:57:45
최종편집 : 2008년 05월 08일 (목) 00:51:34 [조회수 : 2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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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은 인간의 교만을 극대화한 건축물입니다. 창11:4에 보면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며  오만한 인간의 일치단결된 문명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현재도 죄성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께 엎드리기 보다는 항상 하나님께 도전하는 방식의 문명으로 진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도전하는 문명, 과학등 모든 분야가 압축된 것이 현재 자본주의 문명사회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국가적으로 파시즘과 나치즘 등의 독재권력 형태로 국민을 억압했고 우리나라의 군사독재권력은 경제성장과 국민의 의식을 양방향으로 당근과 채찍질을 동시에 해가며 통치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민의 우상이 되어 지금도 그러한 우상의 향수병에 젖어 있는 일부국민들이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극도의 우상숭배체제가 북한주민들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게 하고 우상으로 숭배케 하는 것이 북한의 정치시스템입니다.

노아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며 번성하며 편만하여 그 중에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니므롯이라는 카리스마적인 리더가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들을 규합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오히려 도전하기 위해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도시문명을 건설하며 그들을 강력하게 통치하며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도시문명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순응하기 보다는 인간의 질서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창조질서를 따르려면 불편함과 수고가 있지만 인간의 질서를 따르면 편안함과 쾌락과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어느 시대든지 항상 인간의 질서를 죄의 문화로 포장하는 구조가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인간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와 문명을 우상으로 숭배하게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바벨탑을 무너뜨리시고 사람들을 흩어버리셨습니다. 그때부터 인간들의 언어는 혼잡되어 서로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고 바벨탑의 공사는 중단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온 사방으로 흩어져 각각의 언어로 부족을 이루며 살게 되었습니다. 바벨탑사건으로 인한 종족들은 저마다의 언어의 전통이 전해져 지금과 같은 국가와 언어가 있게 된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자들에 의하면 바벨탑은 달과 별을 숭배 하는 우상종교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그런 탑의 흔적들이 바벨탑이 무너진 후 가는 곳 마다 작은 탑들을 쌓았다고 합니다. 동남아 불교문화의 높은 탑도 그런 전통의 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절에 가면 탑을 볼 수 가 있습니다. 탑(塔)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그 안에 모셔놓고 부처를 예배하듯이 하였으나, 불교가 널리 전파되면서 건립되는 모든 탑에 진신사리를 모실 수가 없으므로 후대에는 다른 사리나 불경, 작은 금동불 등 공경물이 될 수 있는 것들을 탑 안에 대신 넣어 예배하거나 탑돌이를 하면서 소원성취를 비는 광경을 보게 됩니다.

탑은 무엇을 상징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지도자의 업적을 기리는 탑과 공업발전을 의미하는공업탑도 있고 북한의 주체사상을 선전하는 탑도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종합하여 보면 인간의 잘남을 만천하에 들어내어 자랑하여 보자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탑이 향하는 곳은 하늘입니다. 높은 곳은 모든 사람들이 잘 보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높은 하늘에 더 가까이 접근 해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쌓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형의 탑도 탑이지만 무형의 탑도 많이 쌓고 있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은 인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게 되면 그 기도가 헛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새벽기도에서 드리는 기도, 철야예배에서 드리는 야단법석의 통성기도 등의 정성은 불교적 가치관에서 파생되어지는 공든 탑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에서 공이라는 단어는 정성을 의미합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이 속담은 인간의 공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에 찬 자기확신의 의미입니다.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잠을 안자고 열심히 공을 들이고 시간을 투자한 만큼 점수가 올라갑니다. 기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열심히 생산활동을 하여 기업이 성장하게 되고 목회를 하는 목사에게는 목회를 열심히 하여 목회성공의 깃발을 날리는데 모든 공이 헛되지 않을것이란 소망을 바라보고 공을 쌓습니다. 따라서 공든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정성 들여 일을 하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되고, 그 결과가 헛되지 않는다는 좋은 말입니다.

저수자가 개미구멍으로 인해 둑이 무너지는 것 처럼 애써 쌓은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공을 들여 만든 탑이라 해도 구멍이 생기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지고 말지요. 이처럼 조그만 실수가 큰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랍니다. 일을 할 땐 열심히 하고 열심히 공부한 만큼 결과는 오게 되어 있지만 그 결실의 과정에서 한순간 딴 데 눈을 팔면 무너지기도 쉽다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열심히 살기 위해 공을 들이는 것도 좋지만 개미구멍으로 그동안 쌓아놓은 신앙생활에 먹칠을 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시험이 들었다는 말이지요.

인간의 노력으로 아무리 정성을 들여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은 탑이나 건축물도 한 번의 화재로 전소되고 마는 것처럼, 많은 노력과 정성으로 쌓은 공덕도 불길처럼 타오르는 단 한 번의 분노와 질투로 인해서 한꺼번에 무너지고 말게 됩니다.

어떤 사람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행위로 정성을 표현하게 됩니다. 이런 예화는 전설에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정성이 갸륵해서 소원성취가 되고 부모의 병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들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움직이게 하기 위해 성경일고, 기도드리고, 헌금을 드리고, 봉사하고, 전도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축적되고 정성이 갸륵하여 소원성취가 저절로 도어질것이라는 샤마니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하는 <정성이 부족해서>, <기도가 부족해서> 라는 말의 쓰임새를 살펴보면 정말 뿌리깊은 우리의 무속신앙과 불교 유교에서 파생되어진 인간의 노력을 의미하는 공(功)입니다. 공을 들여야 신이 감동해서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일종의 지극정성= 소원성취라는 공식이 성립됩니다.

결국 바벨탑은 하나님을 감동시시켜 보려는 인간의 묙망도 내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교회는 대형교회로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브랜드목사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보려는 인간의 탐욕이 하나님의 은혜를 담보보로 하여 활가를 치고 있습니다. 허지만 이 모든것이 인간의 무너질 욕망의 탑임을 알아야 합니다. 수만명의 교인수도 허수(가라지)임을 알아야 합니다. 브랜드 목사는 거짓 삯군 목사요,거짓 에언자일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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