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김세진기자의 기사입니다.

	▲ 홍윤경 이랜드일반노조 사무국장이 이랜드일반노조의 투쟁상황을 설명하고 있다.ⓒ뉴스앤조이 김세진

"예수님은 병들고 약하고 소외받는 자를 위해 오셨는데,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예수님이 원하는 삶이 아닐까요?"

오후 내내 혜화동에서 집회를 했고 저녁은 김밥으로 때웠다는데 홍윤경 이랜드일반노조 사무국장에게서 피곤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집행유예로 풀려나기까지 60일 동안 구속됐고 두 달 반 동안 수배 기간도 지내면서 287일간 계속되는 파업투쟁을 지켜내는 그 힘은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릴 때부터 보수적인 교회에서 자라나, 대학시절 최루탄을 던지는 친구들 곁에서 찬양을 불렀던 기독동아리 출신인 홍 사무국장은 케냐 단기선교를 다녀온 후 선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 후 1991년 자신의 선교지로 이랜드를 택했다. 회사에서 찬양팀 활동도 하던 그는 촉망받는 사원 중 한 사람이었으나 사내에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간 배워온 보수적 신앙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고민해 봐도 노조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기독청년아카데미의 '사회선교학교' 수강생 8명이 4월 4일 저녁 7시 을지로 민주노총을 찾아 홍윤경 사무국장과 이랜드 노동운동과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대화를 나눴다. 

비정규직 연봉 1000만 원, 자녀의 1년 등록금 1000만 원

홍윤경 사무국장은 한 여성 조합원이 남긴 말을 전했다.

"과장이 시키는 대로 고객이 침 뱉어도 웃으면서 순응·순종하면서 살아오다가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투쟁을 시작했는데, 그 과정 속에서 엄청난 대가를 치루면서 이제는 처음으로 (비정규직 투쟁의) 역사의 주체가 돼 있는 걸 발견했어요."

"우리들의 바람은 적어도 자식에게 이런 구조를 물려주지 않는 것이기에 이 투쟁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홍 사무국장은 비정규직 연봉이 1000만 원인데 자녀 1년 등록금이 1000만 원인 현실이 엄마를 투쟁의 개체로 서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또 정규직·남성 위주였던 투쟁운동에 비정규직·여성이 참여하게 된 것에 의미를 두었다. 또 이랜드일반노조가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으로 떠오르면서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망이 돼, 투쟁을 그만둘 수 없다고 밝혔다.

"파업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던 아줌마들이 박스 한 장을 깔고 자면서 교대로 도시락을 싸가지고 왔어요. 밤이면 전화통화를 하며 가족이 그리워 울음바다가 됐지만 아침에는 아줌마들이 계산기를 닦고 화장실 청소도 했어요. 다시 돌아올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비정규직 당연시 여기는 사회풍토와 교육의 부재가 문제

홍 사무국장은 IMF 이후 신자유주의와 노동 유연성의 바람이 불면서 사회가 비정규직의 존재를 전과 달리 당연시하게 됐고, 기업가는 이윤을 챙기지만 노동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더러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누가 비정규직으로 들어오래?'라고 말하는 것은 취업난이 극심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사람에게는 '밥이 없으면 라면 먹으면 되지'라는 말과 같다며, 무엇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젊은이 대부분이 스스로가 노동자라는 인식이 없어요."

홍 사무국장은 노동자가 억울하고 부당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을 교육의 문제로 돌렸다. 즉 공교육이 조합에 대해 가르치지 않고 은연중 파업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 그러나 프랑스는 중학생에게 단체교섭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중·고등학생에게 입시가 아닌 현장 공부를 통해 '나는 어떤 노동자로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고, 청년에게는 자신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삶의 질이 나아지는 세상을 고민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홍 사무국장은 한 선배가 제안했다는 "자식에게 5000만 원에서 1억 이상 물려주지 않고 나머지를 사회에 환원하는 운동"이나 "최저 임금 5배 이상 수입을 누리지 않겠다"는 운동이 일어났으면 하는 기대를 내비쳤다.

노동자와 자본가에게 공평하지 않은 법

"저는 유통매장에서 선전지를 나누고 피켓을 들고 행진만 했는데도 300만 원의 벌금이 나와 정식 재판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노동자 1000명을 해고하고 국정감사 증인을 회피한 박성수 회장의 출국을 막는 법적·제도적 장치도 없어요."

"삼성일반노조는 삼성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실형 3년 6개월을 받았으나 삼성특검의 당사자인 이건희 회장은 어떤 처벌이 내려질까요?"

홍윤경 사무국장은 법이 공정하지 않다며 임금 체불시 10배 손해배상, 부당해고 시 대표이사 구속 등 자본가에게 더 강력한 법적 제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국장은 기업이 비정규직보호법의 허점을 악용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기 위해 용역을 쓰는데 이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비록 노무현 정부는 이랜드를 처벌하지는 못했으나 강제 용역 전환은 문제라고 지적하였지만, 이명박 정부의 경우는 오히려 용역 전환은 아무 문제가 없고 대신 불법파업을 엄단하겠다고 쪽으로 나서고 있어서 매우 답답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홍윤경 국장은 법이 바뀌기 위해서는 노동자를 잘 아는 국회의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투쟁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부위원장을 이번 총선에 진보신당 비례대표 2번으로 추대했다. 이남신 부위원장은 이랜드일반노조원의 생계비를 위해 17년 동안 일한 대가로 받은 퇴직금을 선뜻 내놓았다. 평생 번 돈이다. 홍윤경 사무국장도 퇴직금을 내놓았으나 액수가 작다며 부끄러워했다.

태양은 배신하지 않는다     

	▲ 홍윤경 이랜드일반노조 사무국장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김세진

한 수강생이 "많은 투쟁이 있었지만 사회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15년 투쟁하면서 달라진 것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홍 사무국장은 "박정희 시대에는 노동조합만 해도 잡혀갔지만 지금은 권리를 주장하고 정당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됐다"면서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이 작은 걸음이 진보의 과정"이라며 "가정이 있는데도 이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진보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홍 사무국장은 “작지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신앙의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빛이 보이지 않지만, 해가 뜨기 전 새벽이 칠흑같이 가장 어두운 법이죠. 앞이 안 보이지만 태양이 떠오른다는 믿음은 누구에게나 있고 태양은 배신하지 않아요.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태양에 반사되어서인지 순간 홍윤경 사무국장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홍윤경 사무국장, "딸을 위해 투쟁한다"

2007년 9월 추석을 앞두고 홈에버 면목점을 점거했을 때, 홍윤경 사무국장이 직접 파업을 인솔하게 되었다. 파업이 3시간 만에 진압되고, 홍윤경 사무국장이 구속됐다. 그리고 홍 사무국장이 구속되어 있는 동안 이랜드일반노조 김경욱 위원장과 이남신 부위원장이 출소됐다.

홍 사무국장은 수배기간 동안 혼자 투쟁을 책임지는 것이 피곤하고 힘들었기에 구속된 시간 동안이 오히려 쉬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구속 기간 중에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고 딸과 연락이 안 된 것이 마음 아팠다.

2007년 7월 홍윤경 사무국장에게 수배명령이 떨어져 한동안 집에 가지 못하고 민주노총에서 생활하게 됐을 때, 당시 10살이던 딸이 아빠와 함께 민주노총에 놀러오기도 하고 이야기도 했다. 저녁마다 전화 통화한 것은 물론이다.

그가 구속되자 시어머니가 딸을 돌보게 되었고 딸은 엄마가 미국에 가 있는 것으로 알았다. 전화로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홍윤경 사무국장은 남편에게 "내가 딸에게 편지를 쓰겠으니 보여주고 면회에 데리고 오라"고 부탁했고 남편은 고민 끝에 딸에게 편지를 보여주었다. 엄마가 무슨 생각으로 노동자를 위해 일하는지, 어떤 과정으로 구속되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이해를 부탁하는 편지였다.

큰 딸 진솔이는 어리광이 많은 아이인데도 편지를 보고 "아빠, 진작 얘기하지. 난 이해할 수 있어"라며 "엄마를 존경해요"라고 말했다. 한 달 만에 딸과 만나게 됐다. 특별한 배려로 얼굴을 마주보는 특별면회를 하게 됐고 그 후로 딸은 편지를 보내왔다.

올해 11살인 큰 딸이 사춘기에 접어들어 엄마를 이해하다가도 반항하고 감정의 기복이 있다. 그런 딸에게 "엄마는 돈도 못 벌지만 널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는 걸 분명히 한다. 딸 주위에 있는 부주의한 어른 몇이 "네 엄마는 왜 자식을 버리고 노동자만을 위해 일하나"라고 물었나 보다. 그 질문에 홍 사무국장은 딸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너를 위해서"라고, "네가 살아갈 세대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없고 일 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