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년 만에 자유로이 고국 땅을 밟은 재독 통일운동가 이영빈 목사. ⓒ뉴스앤조이 최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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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주년을 맞아 남과 북이 한 자리에 모여 '우리끼리'의 통일 의지를 확인한 8·15민족대축전에서 재독 통일운동가 이영빈 목사(80)가 느낀 감회는 특별했다. 독일로 건너간 지 50년 만에 부인 김순환 선생(78)과 함께 자유로이 고국 땅을 밟았기 때문이다.

"출가한 자식이 별거 중인 부모를 화해시키는 심정"으로 해외에서 통일운동을 했다는 그는 서슬 퍼런 군사정권 초기 북한을 방문하고 남북 기독교인 모임을 주선한 '죄'로 국내 입국이 불허됐다. 1988년 잠시의 유연한 정국 속에 세미나에 초청돼 국내에 들어온 적도 있으나, 1991년에는 김포공항까지 왔다가 안기부에 의해 강제출국 당했다. 송두율 교수 문제로 시끄러웠던 2003년, 이 목사는 30여 명의 해외민주인사들과 함께 입국이 허가됐지만, 그 스스로 입국을 거부했다.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많은 젊은이들이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우리만 자유롭게 고향에 찾아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남북이 서로 오가고 정부당국이 인정하는 민족행사가 열릴 만큼 달라진 시대상황이 그들을 50년 만의 귀향길에 오르게 한 것이다.

기독교와 사회주의 대화 물꼬 터

지난 8월30일 여성평화의집에서 만난 노부부가 들려준 인생 내력에는 해외 통일운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독일에 밀려든 한인 간호사·광부들을 목회하며 산업선교활동을 이끌던 이 목사는 4·19혁명, 윤이상 '동백림' 조작 사건 등을 접하면서 유학생들과 함께 한국의 민주회복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국내 민주화운동에 적극 뛰어들게 된 계기는 73년 남산 부활절 사건과 '한국그리스도인선언'이었다. 10만 명이 운집해 합동부활절예배를 드리는 자리에서 박형규 권호경 조승혁 등이 유신독재체제에 항거하자는 전단지를 배포하다 구속된 이 사건에서 영향을 받은 이 목사는 에큐메니컬 목사들과 ‘재독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을 결의했다. 이듬해 윤이상 송두율 등과 규합해 '한국민주사회건설협의회'(민건회)를 발족했으며, 77년 일본 도쿄에서 발족한 '한국민주통일운동해외동포연합회'(한민련)에 동참했다.

분단국이면서도 서신과 전화가 오가는 독일에 비해 모든 교류가 단절된 남북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던 이 목사는 기독교인들이 통일운동의 다리가 되자는 생각에 북한 기독교와의 만남을 시도했다. 유럽에 있는 한인 신학자들을 규합해 1980년 '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기통회)를 조직한 후 북한 기독교와의 접촉 이전에 사회주의 집권자들과의 대화를 선행해야겠다고 판단해 <통일과 기독교>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이 목사는 "기독교인들이 반공주의적 태도로 북한과 대립을 악화시켜 민족의 화해보다 분열을 조장한 책임을 반성하고 북한과 통일 대화를 지향하는 진보적 기독자들의 입장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냈다고 전했다.

이 목사를 비롯한 기통회의 노력은 결국 북한 노동당을 움직여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긴장을 푸는 데 물꼬를 텄다. 이 목사 부부는 1981년 기통회 대표 자격으로 종교계 인사로는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그의 방북은 그 해 1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남북 기독교계 인사들이 분단 이후 처음 한 테이블에 앉은 제1차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기독교 신자 간의 대화'로 이어졌다. 북한에서 35명의 인사들이 오스트리아로 날아왔으며 이듬해 핀란드 헬싱키에서 제2차 대회가 열리는 등 1983년을 빼고 1987년까지 통일 대화는 계속됐다. 북한 김일성대학은 1990년에 종교학과를 신설하고 기독교 강좌를 제일 먼저 시작했다.

이 목사의 방북은 한국 사회에 통일하려면 북한과 직접 만나서 부딪쳐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산하의 통일위원회 설치와 고 문익환 목사의 방북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송두율 교수는 훗날 남북 기독자 대화를 두고 "주체사상과 기독교신앙이 똑같다거나 또는 주체사상과 기독교신앙이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만남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입장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서로 같은 것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대화이기?다양성이 존중된 폭력 없는 통일의 모습을 보여준 남북통일 대화의 귀중한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이 목사의 통일운동 여정에는 아픔이 많았다. 방북 후 한인사회에서는 친북인사라는 꼬리표가 붙은 그를 경계했고, 그의 '급진'적인 통일운동으로 인해 한국사회 민주운동에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한 한민련이 '우선 민주화, 이후 통일'이라는 노선을 걸으면서 결별했다. 또 안기부의 압력을 받은 KNCC가 WCC를 통해 북한과의 대화 모임을 지원하려는 스위스 및 독일 교회를 만류하는가 하면, 몇 차례 테러의 위협을 겪기도 했다.

남과 북의 '자주' 모두 살리자

▲ 김순환 선생. ⓒ뉴스앤조이 최소란

김순환 선생은, 북한에서 옷을 맞추러 상점에 들렀다가 동료가 "통일운동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얼마나 고생이 많냐"면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북한 여성들에게서 분단 50년 동안 늘 통일을 앞두고 살아온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미용실에서도 머리를 손질해준 미용사와 통일 얘기를 한참 나눈 경험을 통해 "나는 통일 '운동'을 하지만, 북한 여성들은 실제 말과 행동에서 통일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래서 "이제 이만큼 살게 됐는데, 굳이 뭐 하러 통일하나" 하는 자본주의적 개인주의가 자리 잡은 남한 사회가 더욱 안타까웠다.

이 목사는 이번 8·15대회의 주제가 된 '우리민족끼리' 즉 '남과 북을 합친 우리민족끼리'에서 통일의 시발점을 찾는다. 그는 "북한이 미국을 제국주의국가라고 부르는 동시에 소련과 중국에 대해서는 '대국주의국가'라고 말하면서 공산권 안에서도 소련과 중국에 대해 자립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했다”면서 북한의 자주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자주란 개념이 남한의 자본주의에서는 개인적 자주, 북한 사회주의에서는 민족적·공동체적 자주를 의미하는데, 이 두 가지 자주성을 모두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 목사는 "북한 사회에서 사회주의보다 '우리민족'이라는 의식이 앞서기 때문에 반드시 남북통일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김일성 주석과 만날 때마다 그가 반복한 얘기가 있다. 김 주석은 '우리는 전쟁 이후 노동자·농부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택했지만 이것이 영원히 계속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쪽의 자본주의와 우리의 사회주의가 연방제 통일이 돼서 10년, 20년 살다가 후손들이 좋은 제도를 결정하면 된다. 그러나 양쪽이 조선반도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단 민족적 동질감이 분명하면 2차적인 제도·이념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얘기다."

이 목사 부부가 독일이 통일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얻은 교훈은 무엇일까. 김순환 선생은 "독일은 동서 양측 모두 자기 세대에서 통일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갑자기 통일이 됐기에 준비가 없었던 게 사실이었고, 그러다보니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면서 "동독은 전부 포기하고 서독이 고스란히 가져갔다"고 봤다. 따라서 "우리가 독일과 같은 흡수통일을 반복해선 안된다"고 밝혔다. 또 "외세가 분할했으니까 통일도 이뤄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을 수 있는데, 우리를 분할시킨 외세는 통일?원치 않는다"면서 "반드시 우리 힘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공주의 버리고 복구주의 선교 포기해야"

이 목사는 "반공·반북사상을 가지고선 통일에 기여할 수 없다"면서 한국 교회가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감을 극복할 것을 강조한다. 특히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기독교가 있을 수 없다고 극단적으로 규정하고 사회주의냐 기독교냐 하는 양자택일의 사고방식을 빨리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기독교가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학이 자리잡은 독일의 예를 들며, 기독교인이 사회주의를 대하는 태도에 여유가 있는 독일 교회에게 한국 교회가 배우라고 주문한다. 또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는 절대적인 이념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제도이기에 민주사회에서는 여러 이념이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 목사는 한국 교회를 향해 "복구주의적 북방선교도 포기하라"며 쓴소리를 한다. 공식적인 교회가 단 두 개뿐인 북한을 향해 가짜 교회니 하는 의문을 가하고 남한 사회처럼 두 집 걸러 한 교회가 되게 많이 세우거나, 보수적인 대형교회를 지으라고 강요하지 말라는 얘기다. 김순환 선생은 "한국 교회가 교만을 버리고 북한의 상황을 이해해야 하며, 시간이 가면서 서로 자기반성하는 가운데서 허락되는 교회가 생기도록 해야 한다"고 전한다.

이영빈 목사 양력 1926년 7월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에서 이풍운 목사의 3남으로 출생. 1945년 해방 직후 감리교신학교 입학. 동기 박순경 정대호 허혁과 칼 바르트 신학 연구. 1948년 신학교 졸업 후 허혁 목사와 대전에서 제2감리교회 설립. 1955년 서독으로 유학. 1960년 안병무 선생과 함께 유학생 연구회 '퇴수회' 조직. 1965년 괴팅겐대학 박사학위논문 집필 중, 독일 교회의 요청으로 6천여 명의 한국인 이주 간호사 및 광부 목회 위해 독일 최대 광산지역인 루르지역 정착. 1969년 뮌헨대학 교목으로 취임. 제3세계 유학생 인권보호. 1974년 1991년까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파울게어하르트교회(독일인 교회)에서 목회. 1974년 독일 교포들과 규합해 '민주사회건설협의회' 발족. 1977년 일본 도쿄에서 발족된 '한국민주통일운동해외동포연합회' 동참. 1979년 '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 발족. 1981년 6월 기통회 대표로 북한 방문. 제1차 북과 해외 기독자동포 간의 대화 개최. 1988년 한국통일신학동지회(회장 홍근수 부회장 박순경 고문 문익환)가 주최한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의 신학 정립을 위한 학술회의' 초대돼 3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방문. 1991년 KNCC 주최 '기독교 평화통일협의회' 참석하고자 했으나, 안기부의 입국 거절. 2003년 '해외민주인사 귀국추진위원회'의 초청. 2005년 8·15민족대축전 참가차 한국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