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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바울의 기독교가 원래는 정통이 아니라면?『사해사본의 진실』이 말하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간의 내막
정강길  |  minjung2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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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3월 17일 (월) 07:24:36 [조회수 : 4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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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해두루마리 자료를 온전하게 공개하라!

1947년 사해사본의 발견은 20세기 최대의 성서고고학계의 발견이다. 흔히 쿰란문서라고도 부르는 사해사본은 크게 <성서문헌>과 <분파문헌>으로 나뉘는데, 이중에 기독교 정통의 뇌관을 건드리는 폭발력을 지닌 것이 바로 <분파 문헌>(공동체 규칙들, 성서주석들, 신학적 논문들 등등)이라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이 문헌은 결코 즉각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었다.

<분파>라는 딱지는 발굴 초기에부터 개입된 가톨릭 당국의 국제학자단이 붙인 이름이다. 이들은 이 분파 문헌에 대한 공개를 무려 40년이 넘도록 지연시켰다. 국제학자단은 이 자료에 <분파>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서 이 문헌에 대한 관심을 은연중에라도 약화시키고자 했었고, 마치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 주류에서 이탈한 작은 분파 공동체의 문헌인 양 그렇게 합의된 것처럼 받아들이도록 조종했었다.

결국 20세기 중반에서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사해문서에 대한 온전한 공개 여부를 놓고서 공정한 공개를 원하는 소수 학자들과 사해사본을 은근히 잘 공개하지 않으려 했던 기존 기독교(가톨릭) 당국에 속하는 국제학자단 사이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었다는 것이다.

마이클 베이전트와 리처드 레이는 『사해사본의 진실』이라는 이 책을 통해 그 전반부에선 바로 이러한 내막으로 인해 학자들 간에 일어났던 구체적인 사건들을 그동안 수집한 여러 언론기사를 비롯한 자료분석과 함께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의 후반부에선 사해사본의 내용과 관련하여 쿰란 공동체와 초기 기독교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이로써 왜 저들이 그동안 사해사본의 공개를 지연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게 한다.

 
사해사본의 진실 : 초기 교회의 비밀을 담은 쿰란의 문서
마이클 베이전트,리처드 레이 공저/김문호 역 | 예담 | 2007년 12월
 

유대교 율법 신앙과 기존 에세네파 이해에 대한 수정

흔히 우리는 유대교에 대한 이해에 있어 율법을 강조하는 신앙이란 잘못된 신앙이요, 형식적인 의례적 행위를 강조하는 낡은 신앙으로서 이해할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존 기독교에 있어 바울 신앙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이해일 뿐이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에 대한 열심'이라는 것은 단순히 종교적 의례와 행위에 대한 형식적 강조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민족의 뿌리와 관련이 있는 민족적인 종교 신앙으로서 그 당시의 유대교는 여러 다양한 분파들이 있었음에도 그러한 다양한 분파들 가운데서도 대체적으로 <율법에 대한 열심>은 그 밑바닥에 공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오늘날의 기존 기독교가 이해하고 있는 유대교 율법주의와는 다른 것인데, 이점에 대해선 굳이 사해사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오늘날 현대 신약학자들 사이에서는 일반화된 정설로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전에 세기연의 바울신학 포럼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단지 이것이 아직 교회 현장에까지는 들어가 있지 않은 것뿐이다.

사해사본과 관련해서도 흔히 사해사본의 쿰란 공동체가 에세네파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알고 보면 그것은 요세푸스나 필로, 플라니우스가 묘사했던 그런 이미지의 에세네파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이에 대한 근거와 자세한 내용은 290-297 참조). 그렇기에 우리는 에세네파에 대한 개념부터가 달리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선 에세네파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 이들이 보는 에세네파는 당시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반예루살렘 운동, 반바리새파 분리 운동을 지칭하는 여러 이름들 가운데 광야에서 발견된 또 하나의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세네파, 이새파, 나사렛파와 동일한 지칭에 대한 변화무쌍한 지칭의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흡사 ‘카이사르’를 카이저, 시저, 차르라고 음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사해사본의 진실』이 쿰란공동체와 관련해서 내리는 결론은 그 쿰란공동체가 예루살렘에 근거지를 둔 ‘초기교회’와 동등한 공동체로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추종하던 ‘나조레안들’이었을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해두루마리의 ‘하박국서 주석’은 쿰란의 지배 집단인 ‘공동체 평의회’가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야고보와 바울 그리고 안나스, 이 세 분파 간의 관계

하지만 『사해사본의 진실』에서 밝히는 더 놀라운 이야기가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초기 기독교는 의인으로 불리는 야고보 노선의 기독교가 있었는데 바울 노선의 기독교가 결국은 갈라져 나간 것이라고 말한다. 즉, 쿰란 공동체는 의인 야고보 노선의 공동체였다는 것이다.

야고보가 예수의 형제라는 얘기도 있지만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그가 훗날 예수라고 알려진 인물을 직접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점이며, 또한 초기 교회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매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야고보 노선의 초기 교회 운동은 당시 로마제국과 그 괴뢰 정부인 헤롯 왕조에 대한 대항적 성격의 유대 민족주의를 내포한 흔적들이 있는데, 특히 헤롯 왕조와 결탁된 사제계급들과는 매우 대립적인 전선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때 의인 야고보 노선의 기독교와 바울 노선의 기독교는 서로 다른 예수를 전했었다는 것이다(고후11:3-5). 바울은 특히 예수를 직접 알던 관계도 아니었고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솔직히 바울 노선의 기독교가 그 당시 로마제국과 긴밀히 결탁된 기독교(혹은 로마제국이 용인할 수 있는 그러한 기독교)가 아닌가 하는 미심쩍은 점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나 자신에게서도 설명되지 못했던 의문이 들었던 지점은 바울 역시 사도행전에 따르면, 로마 군인들에 의해 잡혀가고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해사본의 진실』에서 말하는 바울은 누구인가?

『사해사본의 진실』은 말하길, 바울이 로마제국의 군인들에게 끌려간 시점을 보면 바울이 군중들로부터 위협받는 위기상황에서 오히려 로마군대가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데려간 것이 아닐까 싶은 정황(사도행전21장28절 이하)이 있다는 것이다. 『사해사본의 진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바울을 로마제국의 비밀첩보자 혹은 정보제공자일 가능성마저 제기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를 흡사 ‘증인보호프로그램’ 같은 것으로 비유한다.

내가 보기엔 다소 과하다는 생각도 드는 제안이지만, 적어도 바울 노선의 기독교가 당시 유대 민족적 성격을 벗고 헬라 문명권에서의 이방 지역 선교를 목적으로 한 것은 분명하며, 그렇기에 로마 행정부 하에서도 여전히 용인될 수 있는 그러한 기독교를 전파한 것 역시 충분히 납득될 수 있는 지점으로 여겨진다. 즉 바울이 전파한 기독교는 당시 헬라문명권하의 로마제국의 입장에서 볼 때도 식민지였던 유대 민족의 대항성이 약화된 어느 정도 안전한(?) 성격의 기독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바울 노선의 기독교는 당시 초기 교회의 지도자였던 의인 야고보 노선의 기독교와는 대립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초기 교회는 분명하게도 유대 민족적 성격을 매우 많이 띠고 있었다. 여기에는 열혈 민족해방주의자 젤롯당(열심당, Zealot)도 참여할 만큼 그 색조가 분명하였다(흔히 젤롯당을 폭력주의자로 보는 이해들도 있는데 이것 역시 착각이다. 그것은 안중근을 폭력주의자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어느 정도 제약된 상황에서의 대항폭력을 두고서 그것 자체만으로 폭력주의자라고 내모는 것은 비약일 뿐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오히려 더욱 신중한 자들이었다고 한다).

한편 야고보 노선의 기독교는 결국 외부적으로는 당시 사두개파 사제단(헤롯이 임명한) 대사제 안나스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로마 행정부와 로마의 꼭두각시인 헤롯 왕조와의 왕들과 결탁하여 민족과 종교를 배신하였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야고보는 안나스의 지지자들에게 죽고 만다. 하지만 야고보가 죽은 뒤에 유대 전역에서는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나는데 이때 안나스 역시 친로마 부역자로서 피살당한다. 유대 민족들의 반란이 계속 거세시자 로마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베스파시아누스를 사령관으로 삼아 원정대를 급파하기에 이르고 결국 유대전쟁과 예루살렘 성전 파괴로까지 이어지는 최후의 비극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야고보 노선의 초기 기독교는 내부적으로는 바울 노선의 기독교와 대립하였고 외부적으로는 로마제국하의 헤롯 왕조와 결탁된 사악한 사제와 그 지지자들과 대립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황들을 유심히 살피면서 결국 야고보 노선의 기독교에 입장에서 볼 경우 사해두루마리에 나오는 ‘거짓말쟁이’와 ‘사악한 사제’는 각각 바울과 안나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사해사본의 진실』이 말하고자 하는 것

『사해사본의 진실』을 꼼꼼하게 따져 물을 경우 결국 바울 노선의 기독교가 정통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는 점이 사해 두루마리의 공개가 계속 지연되었던 이유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기독교는 분명히 바울 노선의 기독교를 정통으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 그 충격적 내막이 있었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 『사해사본의 진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전반부는 사해 두루마리 공개 지연의 배경과 그 내막을 둘러싸고 공개를 주장하는 소수 학자들과 국제학자단과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을 이루고, 후반부는 사해 두루마리 내용을 통해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다.

전반부는 매우 사해사본의 공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매우 꼼꼼하게 접근하는 터라 역으로 조금 지루하게 읽힐 수 있는 부분이지만, 후반부는 직접적으로 기독교와 관련되는 내용이라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후반부의 주장의 설득을 위해선 전반부의 꼼꼼함이 필요했기 때문에 부득이한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일단 『사해사본의 진실』이라는 책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첫 번째로 발견된 문헌자료에 대한 정직하고도 투명한 공개다. 진실은 당연히 알려져야만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를 근거로 초기 교회의 역사를 새롭게 재구성한 점인데, 바울을 보는 입장이 매우 과하다고 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다시 조명해봐야 할 지점은 야고보와 바울 간의 관계 문제다.

솔직히 신약을 잘 살펴보면 두 개의 기독교 전승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갈릴리 전승의 기독교가 있는가 하면 바울로 인해 헬라화된 노선을 걷는 기독교가 있다. 바울이 전한 예수는 직접적인 역사적 예수가 아니다. 그는 사실 역사적 예수를 알았다고 보기엔 힘들다(얼 도허티는 예수퍼즐에서 이를 속속들이 논증하고 있다). 바울은 그럼으로써 사실상 다른 예수를 전한 것이다. 그것은 다메섹의 도상에서 만난 천상의 예수이자, 그 자신에 <의인론>에 의해 이미 신학화된 예수다.

과거의 익숙했던 것들과 전혀 다른 새로운 진실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오늘날 정통 기독교라고 자임되는 기독교는 분명하게도 바울 노선의 기독교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주류 보수 기독교가 대체로 역사적으로 지배이데올로기와 결탁되어 왔었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그렇게 볼 때 그 연속적 성격도 자연스레 설명된다.

무엇보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날로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알아왔던 기존의 주류 보수 기독교가 주장했던 신학적 내용들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사태들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만일 주류 보수 기독교가 원래는 정통성이 없는 비정통성의 기독교였다고 한다면 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내가 믿어왔던 것이 확실한 정통이요 확실한 진리라고 여겨왔는데 만일 이것이 아예 뒤집히게 되는 사건이 내 앞에서 발견되거나 일어나고 있다면, 나는 이를 외면하고 꼭꼭 숨겨둘 것인가? 아니면 이를 새로운 계기로서 새로운 기회로서 맞아들일 것인가? 과연 우리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사해사본의 진실』을 읽고 난 후, 나는 아무래도 1세기의 다양한 유대교 운동들 메시아 운동들과 연관하여 바울에 대한 그림을 다시 그려보는 각별한 재미도 느낄 수 있어 좋았었다. 참고로 『사해사본의 진실』은 특히 리처드 홀슬리의 『예수와 제국』(한국기독교연구소) 그리고 페르난도 벨로와 공저한 『예수시대의 민중운동』(한국신학연구소)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다. 왜냐하면 그 옛날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 일어났던 다양한 유대 민중운동, 해방운동들을 살펴보면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성격을 좀더 입체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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