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목회연구소 사순절 특강 2008. 3. 3.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구 미 정(여성목회연구소 연구실장/숭실대 기독교학과 겸임교수)

1. 들어가며

2008년 사순절이다. 말 많고 탈 많았던 2007년도 시간의 힘 앞에서는 당할 재간이 없었던지 슬며시 꼬리를 감췄다. ‘빵상 아줌마’만큼이나 웃겼던 허경영 말고는 별다른 이야깃거리를 낳지 못한 12월 대선이 허무하게 끝난 지점에서 우리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심정으로 이명박호에 탑승했다. 기독교적 프레임에 충실하게 구원의 방주를 자처하는 이 배의 목적지는 분명해 보인다. 밀어붙이기의 달인 이명박이 한 주먹을 불끈 쥐고서 ‘실용정부’를 외칠 때부터 이미 알아보지 않았나? 이 배는, 살아도 경제, 죽어도 경제, 무조건 맘몬을 향해 내달리리라는 것을.
그리고 설날맞이에 들뜬 기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우리는 대한민국 국보 1호 숭례문이 불에 타서 폭삭 주저앉는 끔찍한 재앙을 보았다. 만약에 예언자 하박국이 환생하여 이 참담한 광경을 보았더라면, 이렇게 기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 힘이 곧 하나님이라고 여기는 이 죄인들”(합 1:11)을 용서하여 주소서. (아니 용서하지 마소서.)
돈맛을 알고 돈의 노예가 되면 무례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예의는 배려와 존중, 공감과 연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무한경쟁과 무한축적을 씨줄·날줄로 하여 공교하게 짜여진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매트릭스(matrix) 안에서는 그런 말랑말랑한 단어들이 놓일 자리가 없다. 예의를 차리다가는 남이 나보다 먼저 고지를 점령할 텐데.
전소된 숭례문의 불길한 표징 위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이명박 정부가 영 미덥지 않은 것은 나만의 노파심일까? 역사상 두 번째로 맞이하는 ‘장로 대통령’ 시대에 기독교는 과연 그간의 추문을 깨끗이 청산하고 희망의 종교로 거듭날 수 있을까? 아니면 기어코 바벨론 제국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꼴을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어쨌거나 이런 미친 세상 속으로 하나님은 계속해서 육화되고 계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게 신앙의 역설이요 신비일 터. 교회력에서 대림절 바로 다음에 아주 길고도 중요한 절기로 사순절이 있다는 데 뭔가 깊은 의미가 담겨있을 법하다. 그것은 말하자면, 기다림(대림절)과 만남(성탄절) 다음에는 반드시 고통(사순절)이 따른다는, 고통 없이 얻어지는 생명(부활절)은 없다는, 뭐 그런 것 아닐까?
다시, 2008년 사순절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민족의 신앙 역사에서 1907년은 소위 영적 대각성의 카이로스였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회개의 영을 받아 마침내 미친 세상의 질서를 한바탕 신명나게 뒤흔들었던 전복의 해였다. 그로부터 50년이 두 번이나 지난 2007년, 불행히도 ‘Again 1907’의 ‘영광’은 재현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작금의 한국교회가 ‘영광의 교회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판타지 혹은 로망이 아닐까 모르겠다.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10만 기독교인들이 보는 가운데 내로라하는 교회 지도자가 감동적인 회개장면을 연출했건만 영적 대각성의 불씨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위에서 강제하고 아래에서 동원되는 방식으로는 결코 ‘운동’이 되지 않는 탓이다. 무릇 운동이란 아래로부터 위로, 주변으로부터 중심으로 쳐 올라가야 폭발적인 뒷심을 받는 법이다. 보여주기식 이벤트성 행사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순절의 의미가 사뭇 남다르다고 본다. 바벨론의 가치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 돈이 노골적으로 신의 자리를 대치한 지점에서 한국교회는 2007년의 실패를 자인하고 스스로 “굵은 베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아······ 저마다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돌이”킬 일이다.(욘 3:6, 8) 그러면 혹시 또 누가 아는가?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리고 노여움을 푸실지”.(욘 3:9)
이 글은 여성목회연구소 주최 사순절 특강을 위해 준비되었으므로, 여성의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밝히는 작업을 중심과제로 삼는다. 조직신학에서 전통적으로 기독론적 연구라 명명된 이러한 작업은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을 뿌리로부터 재고하고 반성하는 데 중요한 길라잡이가 되리라 본다.

2. 그 물음 : 우리를 주체로 부르시는 예수의 도발

기독론은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 짓는 핵심적인 내용이다. 더욱이 기독론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기독교 신학 전체의 성격과 기독교인의 실천적인 행동이 좌우되므로, 기독론이야말로 기독교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론적 탐구의 역사적 추이를 살펴볼 때 신학적 패러다임이 바뀔 때마다, 혹은 더 쉽게 말해서 신학 하는 삶의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미지 역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신학(theology)이 하나님(theos)에 대한 인간의 말(logos)로서 그 말을 하는 주체가 놓인 상황과 또 그 상황에서 경험된 삶의 내용에 따라 신학적 차이가 생기는 것처럼, 기독론(christology) 역시 그리스도(christos)에 대한 인간의 말(logos)로서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구성되어 왔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기독론은 참으로 역사적이며 상황적이다.
이러한 입장은 그동안의 전통 신학적 입장과 다른 것이다. 소위 ‘정통’을 고집할수록 신학자들은 대체로 성서로부터, 계시로부터 연역적으로 이끌어낸 교리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위로부터의 방법론’에 의지했었다. 그러나 신학이 ‘상황’에서 나온다고 믿는 해방신학, 제3세계 신학, 여성신학 등은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을 선호한다. 이 방법에 따르면, 신학을 한다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인간의 경험을 성찰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경험이 신학을 잉태시키고 양육하는 터전이 된다.

2-1. 전통ㆍ정통 기독론의 공식

복음서에 보면 흥미롭게도 기독론적 질문이 예수 자신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먼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 막 8:27; 눅 9:18)고 묻는다. 이에 제자들이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는 그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채 재차 묻는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 16:15; 막 8:29; 눅 9:20) 예수가 정작 알고 싶은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 아니라 대답하는 ‘나’의 생각이며 마음이다. 초점이 질문을 제기한 예수로부터 답변을 제공하는 사람에게로 옮겨진다. 이 본문의 주체는 더 이상 예수가 아니라 대답하는 사람들이다.
그동안 기독교 신학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의 질문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기독론을 형성해 왔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베드로의 유명한 신앙 고백,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마 16:16)를 기독론적 ‘정답’으로 받아들였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에 대해 ‘인자’, ‘하나님의 아들’, ‘주님’, ‘왕’, ‘어린 양’, ‘포도나무’, ‘말씀’ 등 다양하고도 풍부한 표현들이 사용되었던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그리스도’가 가장 대표적인 고백 언어로 꼽힌 것이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히브리어 ‘메시아’에 대한 헬라어 번역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annointed one)’를 뜻한다.
그 뒤 헬라 철학의 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할 필요에 직면한 고대 로마 교회는 빌립보서 2장 6-11절에 나오는 바울식 표현대로 ‘본질(substance)’이라든가 ‘본성(nature)’과 같은 형이상학적 언어를 가지고 기독론에 접근하여, 치열한 말싸움 끝에 니케아(325)ㆍ칼케돈(451) 신조를 탄생시켰다. 이는 예수가 참 하나님이며 동시에 참 인간(vere Deus, vere homo)이라는 공식으로서, 이후 기독론적 정통이 되었다.
도르테 죌레는 이러한 정통 공식이 언제나 가현설(docetism)의 경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인간이 각자 독특한 성질을 지닌, 하나는 하늘에 있고 다른 하나는 땅에 있는, 마치 물과 기름과도 같은 별개의 존재들인 한, ‘신-인(God-man)’ 그리스도는 “거지로 변장하고 나타난 왕자”나 “인간의 탈을 쓰고 이 땅 위를 거닌 신”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리스도는 ‘우리 중의 하나’이기는커녕, 그저 우리와 같이 보였을 뿐인(seeming) 그리스도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이 ‘위로부터의 기독론’을 궤변이라고 몰아세운 것은 온당한 지적으로 보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해방신학의 패러다임은 복음서의 가난한 예수를 비참한 빈민촌에 사는 민중들의 삶과 동일시함으로써 서구신학의 가현설을 극복하고 있다. 예수는 “거리에서 땀 흘리는 하나님, 햇빛에 그을린 얼굴의 하나님, 우리가 하는 것처럼 보고 느끼는 노동자 그리스도”로 이해된다. 이처럼 우리의 생생한 삶의 한복판에서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이 진지하게 다루어질 때 비로소 예수는 ‘오늘 우리에게’ 유의미한 구원자가 될 수 있다.

2-2. 남성 예수가 여성을 구원할 수 있는가?

여성의 경험을 신학의 새로운 출발점이요, 자료요, 규범으로 삼는 여성신학은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온 기독론에 가장 날카로운 해부의 칼을 들이댄다. 아무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 기독론적 전제 자체, 곧 하나님이 고유하게 ‘남성’으로 육화하셨다는 주장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있다. 수세기를 걸쳐 신학자들의 생각 속에 숨겨진 기독론적 전제는 하나님이 스스로를 ‘열등한 성’으로 육화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남성의 우월성을 확인시켜 준다는 것이었다. 예수가 성육신한 하나님으로서 ‘남성’의 몸을 입었다는 사실은 그가 ‘아버지’ 하나님의 남성됨을 대변한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 남성만이 제자로 부름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예수의 남성성은 여성 안수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어 왔다. 1976년에 발표된 가톨릭의 공식 문서에 따르면,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일하는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예수와 자연적 유사성(natural resemblance)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와의 ‘자연적 유사성’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엄밀히 말하면,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던 젊은 유대인 예수와 “흑인, 중국인, 네덜란드인... 부유한 성직자”등도 자연적 유사성이 없다고 해야 옳다. 하지만 비유대인이나 33세를 넘은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와 같은 인종 집단이나 동년배 집단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직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이와는 달리 유독 여성만 성직에서 제외된 것을 보면, 자연적 유사성이란 오직 남성성만을 가리킨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확실히 여성을 “잘못 태어난 남성(misbegotten male)”으로 보는 중세적 고정관념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한 남성우월주의는 여성의 자기비하와 자기부정을 촉진하며 여성으로 하여금 온전한 인간성을 실현하지 못하고 영원한 “제2의 성”에 안주하도록 만든다.
남성이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과 동일하고, 여성은 타락의 상징인 이브의 성과 동일하다고 보는 차별적 이원론은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여자의 머리는 남자”(고전 11:3)라고 하는 성서적 이미지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남성 중심적인 상징들을 통해 여성의 억압적 현실은 은폐되고 합리화된다.
메리 데일리는 신학자들이 기독론적 전통에 대한 여성신학의 도전을 무시하는 데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신학자 대다수가 남성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다는 것이고, 둘째는 ‘정통’에 도전하는 데 따른 죄책감 때문이며, 셋째는 신학교에서 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직업적인 염려 때문이고, 넷째는 ‘정통’에 남아있을 때 얻게 되는 긍정적인 보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데일리는 이와 같은 이유로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교회제도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하는 기독론을 ‘그리스도 우상론(Christolatry)’이라고 비판한다.
그리스도 우상론으로서 여성의 경험과 무관한 전통적 기독론은 과거에 행해진 “한 번에 만인을 위한(once and all)” 구원 행위를 강조한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지만,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로 죽은 예수의 피의 공로 덕분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에 의존하기만 하면 은혜 가운데 살게 되지만, 교만하게 그 사랑을 거절하면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이런 식의 기독론은 여성이 구원을 얻기 위해 외부의 일방적인 힘에 의존하도록 만든다. 거기서 얻어지는 은혜의 경험이란 단지 죄의 부정적 결과로부터 처벌을 면했다는 안도감이지, 철저한 자기 확신에서 오는 총체적인 인간성을 회복하는 경험이 아니다. 리타 나카시마 브락이 지적한 것처럼, 전통적인 구원론의 도식은 상호의존성과 호혜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 중심의 위계적인 온정주의(paternalism)로 전락하고 만다.

2-3. 속죄 기독론과 케노시스 기독론을 보는 불온한 시선

여성신학자들은 전통적인 속죄 기독론에 대해서도 의심의 해석학을 적용한다. 속죄 기독론은 안셀름에 의해 발전된 교리로서, 하나님의 성육신 사건을 “속죄”와 “보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영광과 정의는 인간의 죄에 의해 훼손되어 왔으므로 인간이 자기의 범죄를 보상해야 하지만, 죄인된 인간은 그의 무능성과 유한성 때문에 스스로 적합한 보상을 제공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며 인간’이신 그리스도가 대신 죄값을 지불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속죄양으로 등장하고, 그의 대속적 죽음이 중요하게 강조된다.
로빈슨 감독은 이러한 신화적인 속죄 교리가 오늘날에는 무의미하다고 지적한다. 하나님께 완전한 희생제물을 드림으로써 그의 노여움을 풀고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달랜다는 것이 현대인에게는 부활이야기보다도 더 믿을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본회퍼 주장한 ‘남을 위한 인간(man for others)’으로서 예수에 호소하게 된다. 예수는 자기 자신을 깨끗이 비운 채 온전히 남을 위한 관심만으로 궁극적이며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냈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로빈슨은 이와 같이 자기를 비운다(kenosis)는 개념에 기초한 기독론만이 그리스도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성신학자들은 여성의 삶 자체가 자기를 비운 삶, 곧 자기부정과 자기희생으로 점철된 삶이었기 때문에, 여성의 경험에서는 ‘자기 비움 기독론(kenotic christology)’이 도리어 유해하며 위험하다고 한다. 오히려 여성에게는 무분별한 의존이나 자기상실 대신에 여성 역시 남성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귀중한 존재라는 자아각성과 자아실현이 필요한데, 자기를 비우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라는 식의 케노시스 기독론은 그러한 자아실현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여성신학자들은 속죄 기독론이 하나님에 대해 “피에 굶주린 하나님(bloodthirsty God)”의 이미지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피 흘린 희생제물을 받아야만 노여움을 푸는 하나님상은 지배-종속 관계를 부채질하며, 전쟁과 폭력을 옹호하는 이미지를 낳는다. 죌레는 속죄가 고난과 무조건적인 복종에 연결되는 점을 들어, 이것이 “기독교적 피학대증(christian masochism)”을 유발한다고 본다. 한편 브락은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죄를 대속할 희생물로 하필이면 그의 순전한 아들을 택했다는 사실이 “우주적인 아동학대”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리고 데일리는 속죄 기독론이 여성의 고난을 죄의 결과라고 설명함으로써 “속죄양 증후군(scapegoat syndrome)”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한다. 여성은 무죄한 예수가 십자가의 고난을 묵묵히 견뎌낸 것같이 현재의 고통을 인내하도록 요청받으며, 예수가 보여준 모범, 곧 죽기까지 순종하는 희생의 미덕을 내면화시키도록 요청받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속죄 기독론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죽음 혹은 죽은 것과 다름없는 무(無)의 상태를 강요하는 “시체 애호적인(necrophilic)” “거룩한 폭력(Holy Terror)”이 된다.

3. 서구 여성신학은 이렇게 답한다

여성신학은 신학함에 있어서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강조한다. 여성신학이 전통 신학과 다른 점은 단순히 경험에서 출발한다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이제껏 배제되어온 ‘여성의’ 경험을 신학의 자료로 삼는다는 데 있다. 여성들은 고통과 억압의 한가운데서 날마다 겪는 구체적인 투쟁과 구원의 경험을 토대로 여성해방적 기독론을 펼쳐나간다. 여성신학에서 중요한 기독론적 질문은 예수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여성들이 과연 구원을 경험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3-1. 반(反)그리스도

그런 의미에서 급진주의 여성신학자 데일리는 ‘예수가 여성해방가였는가 아닌가’의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흑인 여성신학자 재클린 그랜트 역시 그러한 갑작스런 발견으로 예수의 이미지를 여성 억압의 도구로 사용해온 수세기 동안의 관습이 근절되지 못한다고 본다. 오히려 여성들은 자기의 경험 안에서 타당한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리하여 데일리에게 있어서 예수는 “모델 파괴자(model breaker)”이며, 추종자들에게 “그들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확인하도록 용기를 파급하는 자, 이른바 “전염적인 자유”를 전달하는 자로 이해된다. 이러한 예수는 그 자신의 그리스도 상징까지 해체하도록 자신을 개방하기 때문에, “반(反)그리스도(Antichrist)”야말로 여성운동이 지향해야할 좀더 완전한 단계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탈기독교를 선언한 데일리는 ‘반그리스도’와 동시에 ‘여성들의 재림’을 주장하게 된다. 이것은 남성을 절대화시켰던 기독교 신학의 “첫 번째 도래”와는 달리, 이원적인 성 정체성을 극복하면서 여성과 남성을 계급적이고 분열적인 성차별적 정서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 이른바 “여성적 원칙(Female Principle)의 도래”를 말한다.

3-2. 새로운 인간

개혁주의 입장에서 여성신학을 하는 로즈마리 류터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주목하면서 독특한 “메시지 기독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녀는 예수가 ‘서로 섬김’을 통해 새로운 인간성을 실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남성이나 여성만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전 인류의 해방가였다고 주장한다. 해방가로서의 그리스도의 능력은 그의 남성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체제를 부정하고 새로운 섬김과 상호주체성의 확립을 구체화하는 능력에 있다. 류터는 “남성 구세주가 여성을 구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심각하게 제기하면서 예수의 남성성은 사회적․상징적 의미일 뿐이지, 결코 궁극적인 의미는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이제까지의 남성 그리스도 상징이 미친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비판적이지 못하다는 측면에서 양성기독론(androgynous christology)의 위험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엘리자벳 피오렌자의 지적대로, 가부장제의 억압적 기능을 충분히 인정하고 분석하지 않는 것은 성급한 기독교 변증론에 떨어질 수 있다.

3-3. 크리스타

예수라는 한 인물의 그리스도적 의미를 탐구하기보다는 구원의 공동체를 강조하는 브락에게 기독론적 과제는 “남성 예수가 여성을 구원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여성이 그리스도를 구원하는” 문제에 집약된다. 이것은 기독론이 여성 억압에 이용되어온 신학적․역사적 왜곡으로부터 그리스도를 구해낸다는 뜻이다. 브락은 ‘그리스도’라는 상징에 들어있는 무관계성과 영웅주의적 이미지를 변혁하기 위해, 새로운 상징 ‘크리스타(Christa)’를 제안한다. 크리스타 상징은 단순히 여성 그리스도를 의미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상한 심령을 치유하여 온전한 상호관계를 맺도록 도와주는 ‘에로틱한 힘(erotic power)’으로 표상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브락은 전통적인 기독론이 예수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하나님 나라 공동체, 곧 바실레이아(basileia)로부터 예수를 분리시키고 그리스도의 참 의미를 왜곡했다고 보고, ‘크리스타/공동체(Christa/Community)’야말로 새로운 기독론에 적합한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이 상징은 평등한 공동체 내에서 상호의존과 호혜성의 관계를 통해 여성이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여, 부정되었던 자아를 통합하고 자신을 긍정하는 온전한 인간으로 회복되도록 한다.

3-4. 지극히 작은 자

흑인 여성신학자 그랜트는 이러한 브락의 기독론이 그리스도를 다시 신성화한다고 비판하면서, 신학이 인간을 위한 잣대, 곧 인간이 스스로를 돌아보도록 해주는 권표(權標)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탁월성을 재평가하되 그를 비신성화(dedivinizing)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그녀가 보는 예수의 탁월성은 그가 자신을 ‘지극히 작은 자(the least)’와 동일시했다는 데 있다. 문자 그대로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갇힌 자”(마 25:35-36)인 흑인 여성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 고백된다. 이것은 예수가 흑인 여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랜트는, 하나님이 버림받은 자, 쓰레기 같은 자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기독론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보고, 배척과 멸시를 당하여 슬픔에 잠긴 사람들, 곧 지극히 작은 자들이야말로 기독론적 상징이라고 주장한다. 이 ‘지극히 작은 자’의 범주에는 흑인 여성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 어린이, 이방인 등 소외되고 힘없는 무수한 계층이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그랜트의 기독론은 “함축적인 보편성”을 띠게 된다.

이상에서 선택적으로 살펴본 서구의 대표적인 여성해방 기독론들은 모두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갖고서 다양한 상징과 이미지로 새로운 그리스도상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경험의 상이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렇게 풍부한 기독론이야말로, 마치 여러 색실이 모여 오색찬란한 주단을 짜듯이, 그렇게 조화롭게 공존하는 신학의 집을 세워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와는 다른 상황에서 예수를 받아들이고 구원을 경험하는 아시아 여성들은 어떤 모습의 기독론을 엮고 있는가? 서구신학의 식민지 상태로부터 벗어나고자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아시아 여성신학자들은 그들 나름의 경험에서 꽃핀 독자적인 기독론을 세워나가고 있다.

4. 아시아ㆍ한국 여성신학은 이렇게 답한다

아시아 여성들은 그들을 둘러싼 삼중의 억압구조 속에서 다음과 같은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 첫째, 아시아 여성들은 제1세계에 의해 억압받는 계층이다. 둘째, 아시아 여성들은 자국 내 엘리트 지배 계층에 의해 억압받는 노동자 계층이다. 셋째, 아시아 여성들은 뿌리 깊은 가부장제 문화로 인해 성차별을 당하고 있는 계층이다. 요컨대 ‘아시아성(Asianness)’과 ‘여성성(womanness)’이 아시아 여성신학을 탄생시키는 ‘서로 맞물린 상황(interlocking context)’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기독론은 서구의 그것과 많은 차이를 보이게 된다. 아시아 여성들이 생각하는 구원이나 해방은 서구 여성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의 고통과 투쟁이 그들과 다르고, 심지어 몸까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굶주림과 군사주의에 의한 고문, 성적 유린, 뿌리 깊은 종교적․문화적 차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찢어진 몸으로부터의 인식론”에 근거하여 아시아 여성들은 자신의 삶에 뿌리 깊은 고통이 두 가지 죄 때문에 생겨남을 깨닫는다. 하나는 “권력과 특권, 지식, 부를 향한 욕망”에서 나온 억압자의 죄이고, 다른 하나는 “내면화된 자기혐오, 억눌린 자들끼리의 폭력과 무지”를 포함하는 피억압자의 죄이다. 이와 같이 죄악으로 가득한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고난이며, 매일 매일의 힘겨운 투쟁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시아 여성들은 ‘해방’이라는 용어보다도 ‘생존’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죽음의 세력과 싸워야 하는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생명을 살리는 손(life giving hand), 곧 “보살의 손”이다.
아시아 여성들은 예수에게서 보살의 손을 경험한다. 중생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세상 속으로 육화된 부처 - 그가 바로 예수다. 성난 물결에 휩쓸려 생명이 위태로울 때 예수의 손을 붙잡고 다시 살아난 베드로처럼(마 14:22-33), 아시아 여성들도 예수의 손을 굳게 잡고서 날마다 죽고 날마다 다시 사는 종교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4-1. 임마누엘 예수

아시아 여성들은 예수가 ‘예수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지, ‘예수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예수가 가난한 자 중의 가장 가난한 자요, 민중 가운데 민중인 아시아 여성들의 편을 들어주었다고 믿고, “고난과 순종”의 경험을 통해 예수를 만난다. 많은 아시아 여성들에게 예수는 새로운 연인이자 친구, 고난 받는 종이다.
필리핀의 리디아 라스카노는 도시 빈민운동을 통해 예수를 ‘예수이기 때문에’ 선택한 적극적인 계기를 소개해 준다. 그녀는 예수의 고난을 “수동적 고난”과 “능동적 고난”으로 구분하고, 이 두 가지 고난이 아시아 여성들의 삶에서 예수와의 연대감을 형성하며, 예수와 더불어 정의를 위한 투쟁에 동참하도록 이끌어준다고 말한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인도의 모니카 멜랑히톤은 예수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현실을 대표하는 자”로 묘사한다. 임마누엘로서의 예수는 힌두문화 속에 뿌리박힌 성 고정관념으로부터 인도 여성들을 해방시키며, 힌두문화를 변형시키는 존재이다.
한편 홍콩의 곽퓨이란은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에 함께 우신다”는 글에서 어머니로서의 예수 이미지가 아시아적 경험에 가장 적절하다고 지적한다. 마치 한국의 에밀레종에 얽힌 민담에 나오는 어머니처럼, 예수는 아시아 여성들의 고통과 슬픔의 탄식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함께 느낀다는 것이다.
여성의 삶에 임재해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여성적 이미지는 인도의 가브리엘 디트리히에게서 또 다른 이미지로 생생하게 표현된다. 그녀는 매달 주기적인 여성의 피흘림/월경을 십자가의 피흘림/보혈과 연결시키고 있다. 예수는 생명을 주는 피흘림을 통해 “영원 전부터 생명을 위해 피를 흘려온” 여성들과 연대한다. 여기서 생물학적 몸으로 인해 고통 받는 여성들의 억압적 현실은 적극적으로 재평가된다.
그러나 아시아 여성신학자들은 예수를 고난 받는 종으로, 예언자적 메시아로 고백하면서도 고난 자체를 미화하거나 고난으로부터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 또한 인식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시아에 만연한 불교와 힌두교 전통에서는 삶을 고통으로 보고 운명론적으로 순응하도록 가르쳐 왔기 때문에,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예수의 이미지가 여성들에게 단지 고통을 수용하도록, 즉 ‘정한(情恨)’에 머무르도록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여성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고, 여성에게 쌓인 ‘원한(怨恨)’을 풀어주는 일이다.

4-2. 신-인 그리스도

아시아 여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여성과 억압받는 자들의 상징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정체성과 선교를 위하여 “예수의 인성과 신성 모두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여기서 물론 그들이 이해하는 예수의 ‘신-인’ 이미지는, 그의 인격에 있어서 어쭙잖은 두 가지 본성이 뒤섞여 있다고 하는 니케아ㆍ칼케돈적 정의와 전혀 다르다.
이를테면, 인도의 모니카 멜랑히톤은 예수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유한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의 인성을 확인한다. 대부분의 아시아 여성이 축복과 환호보다는 멸시와 천대 속에서 태어난 것같이 예수도 낮고 천한 말구유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목수일을 도와 노동에 참가했고, 공생애에 들어서는 굶주림과 갈증, 집 없음의 고통을 느끼기도 했으며, 의심과 슬픔 가운데 매장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그가 주장하고 행사했던 놀라운 권위”는 예수의 신성을 증거하고 있다. 그가 자신에게 부여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성령의 세례를 주고 병자를 고치며 귀신을 축출한 것은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신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멜랑히톤은 성육신을 통해 예수가 남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까지도 포함하는 새로운 인간성의 대표자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녀에 의하면 예수의 남성성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이교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남성으로 확증하는 것은 “이교/힌두교적인 성 개념을 하나님에게 적용시키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4-3. 바리데기 예수

예수의 인성과 신성의 의미를 밝히는 또 하나의 통찰은 한국의 이우정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녀에 따르면 전통적인 한국의 신 개념은 대개 “살아있는 동안에 뛰어난 일을 한 특별한 사람이 죽은 뒤에 신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특별한 사람이 신이 되는 과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통속적 코스를 밟아야 한다.

① 좋은 가문의 출신이어야 함
② 유별나게 출생해야 함
③ 특이한 유년시절을 보냄
④ 일찍이 고아가 되거나 숱한 고난을 겪음
⑤ 고난의 상황에서 구출 받거나 아니면 양부모를 만남으로써 살아남음
⑥ 다시 위기에 빠짐
⑦ 투쟁을 통해 영광스런 승리를 얻게 됨

그런데 여성 영웅의 경우에는 이 도식의 맨 마지막에 가서 “투쟁 대신에 고난과 사랑, 인내와 희생을 통해” 신이 된다는 특이성이 있다.
그 한 예가 바로 ‘바리데기 이야기’이다. 한국의 무속신앙에서 바리데기는 죽음의 장애를 극복하도록 하는 원초적 힘을 가진, 만인을 위한 저승 인도자를 의미한다. 한(恨)을 품고 죽은 원혼(怨魂)을 달래는 것이 무당의 임무라면, 이 무당이 원혼을 저승길로 인도하기 위해 끌어들이는 권세가 바로 바리데기인 것이다. 일종의 한풀이 굿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바리데기 무가(巫歌)는 바리데기가 어떻게 해서 그러한 권세를 얻게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약 3-6시간가량 구연된다. 여기서 잠깐 바리데기 이야기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바리데기는 버려진 공주다. 부친인 오구대왕의 기대와는 달리 일곱 번째(또는 아홉 번째)로 태어난 딸이기에 버림받은 바리데기가 되었다. ‘소박데기’에서처럼 접미사 ‘데기’가 이미 공주의 불행을 예언하고 있다. 대부분의 민담에서 불운의 상태로 등장하는 주인공이 미덕이나 장점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바리데기 역시 마음씨 착한 불운의 소녀였다. 그래서 오구대왕이 죽었을 때, 혜택 받고 복을 누린 손위 언니들을 제쳐놓고 바리공주가 불사(不死) 생명수를 얻고자 모험을 자청하고 나서게 된다.
시영산으로 생명수를 찾으러 나선 바리공주는 중도에서 갖은 시련과 고행을 겪은 끝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그 곳에서 만난 남편과 더불어 귀환한다. 그러나 바리공주를 시기한 언니들의 간계로 생명수를 약취당하고 공(功)을 빼앗길 뻔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마침내 죽은 부왕(父王)을 소생시킴으로써 바리데기 및 그 일가족이 무신(巫神)으로 섬겨지게 된다. 공주는 이제 죽은 사람들의 영혼까지 구원할 수 있는 신격을 누리게 된 것이다. 천상계, 곧 신들의 나라를 오가며 불행한 지상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덜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무당의 과업인데, 여기에서 이 고난의 공주는 그녀가 무속 신앙적인 구원자임을 드러내게 된다.

바리데기 신화는 결국 한 여성이 한의 사제, 곧 무당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바리데기는 하나님과 세상을 화해시키기 위해 희생 제물로 오신 예수, 또는 중생의 구원을 위해 자기의 구원을 보류하고 세상의 고통 속으로 돌아오신 부처(bodhisattva, 보살)에 비견된다. 바리데기의 위로의 손길을 통해, 쌓였던 한이 해체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그리고 산 자와 공동체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한풀이 굿은 집단적 회개와 치유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은혜의 잔치마당이 된다.
최만자는 예수를 “억눌린 자들, 특히 고난으로부터 해방을 추구하는 여성들 편에 선 새로운 인간”으로 보고, 해방을 위한 한국 여성들의 역사적 투쟁과 “메시아적 실천(Messiah-praxis)”을 동일시한다. 고통과 질곡의 한가운데서 투쟁하고 공동체적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한국 여성들이야말로 예수의 메시아적 실천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물 중심의 기독론이 흐를지도 모를 영웅주의적 경향을 배제하기 위해 ‘바리데기 공동체’를 새로운 기독론으로 제안하면 어떨까? 예컨대,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양심수들의 석방을 외치는 민가협 어머니들의 목요 시위나, 일제에 의해 강제 연행되어 군위안부 노릇을 해야 했던 ‘정신대’ 할머니들의 수요 시위를 생각할 때, 그들의 집단적 항거야말로 바리데기 공동체의 성격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피오렌자에 의하면, 은혜의 경험은 그리스도의 단독적 행위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 공동 창조자로서의 ‘나’의 출현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나’의 출현, 자아의 회복은 다른 인간과 세계를 포함한 좀 더 넓은 공동체의 창조를 통해 표현된다. 누룩과도 같이(마 13:33) 그처럼 확장되어 가는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치유 받고 치유하는 바리데기가 되는 것이다.

5. 나는 이렇게 답해 보련다

기독론은 결국 두 이야기의 만남 또는 합류(合流)를 통해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이야기와 지금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나의 이야기가 만나 서로 메아리쳐 합류한다. 우리에게 의미 있는 기독론은 그런 것이다. 이런 기독론이 가능하려면, 우선 교회에서 권위적ㆍ일방적으로 가르쳐온 이야기들과 거리를 두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는 예수의 이야기를 인간관계의 그물망 안에서 재구성해 보아야 한다. 성서의 여성들이 그를 만나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경험을 나누며 어떤 변화과정을 거쳐 구원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관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의 이야기에도 활력이 생기는 법이다.

5-1. (거꾸로) 예수에게 여성은 누구인가?

복음서에서 예수는 여성을 지지하고 격려하고 긍정하는 분으로 묘사된다. 그의 행위는 당시 여성들에게 유대 전통에 포함된 각종 금기조항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는 파격적인 해방행위였다. 이를테면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요 4:7 이하)은 유대인 랍비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 여인과 만나 대화함으로써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신다. 예수의 파격은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인을 고친 데서도 드러난다.(막 5:25 이하) 유대 정결법에서 피의 유출을 부정하게 본 금기를 깨고 예수는 그녀와 접촉함으로써 치유하신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에게 율법을 가르치느니 차라리 태워버리는 것이 낫다”는 탈무드의 가르침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가사 일에 매이기보다도 예수와 대화하며 배우기를 열망했던 베다니의 마리아에게 예수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눅 10:42)고 격려하신다.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예수와 만난 여성들이 전통과 제도와 금기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을 보여준다. 거꾸로 말해 예수는 여성이 사회 속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자기를 실현해 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모든 것들에 도전함으로써 여성의 온전한 인간성을 보증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란 언제나 쌍방적인 것이다. 예수와 만난 여성들이 현실 안주형의 수동적 모습에서 적극적으로 은혜를 ‘쟁취’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듯이, 예수도 여성들과 만나 스스로 변화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가령, 혈루병 여인의 사례에서 예수는 능동적ㆍ자발적으로 그 여인을 고친 것이 아니다. 여자가 먼저 예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내 병이 낫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접근하여 그 믿음대로 치유를 얻어냈다. 한편, 예수 입장에서 보면 출혈하는 여자와 접촉했기 때문에 그 자신이 부정해지는 것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부정하다는 것은 사회문화적으로 소외되고 격리됨을 뜻한다. 그는 정말 기습을 당하고 자기 안에서 힘이 떠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여인의 열정과 믿음을 높이 평가하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그는 유대인 남성으로서의 자기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또 다른 예로서 가나안 여인과의 만남을 보면,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그녀의 간구에 예수의 첫 반응은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마 15:26)는 것이었다. 이방인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민족차별과 성차별이 담겨있는 말이었지만, 그 어떤 말도 여인의 끓어오르는 모성애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녀는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마 15:27)라고 응수함으로써 소원을 이루게 된다. 자기를 개에 비유할 만큼 스스로를 낮추면서까지 딸의 귀신들림을 고쳐주려고 애쓴 그녀의 집요함이 예수의 편견을 극복하도록 자극제가 되었던 것이다.
결국 여성들은 예수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 가족과 자신의 건강, 진리, 구원, 해방 등을 말이다. 그런가 하면 동시에 예수도 여성들에게서 중요한 점을 배운다. 여기에는 그리스도로서의 의미, 과제, 목표, 그리고 비전 등이 있다. 세 복음서에서 집중 보도되고 있는,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가 그 좋은 사례이다. 그 여성이 매춘부이든(눅 7:36 이하), 무명녀이든(막 14:3 이하), 아니면 베다니의 마리아이든(요 12:1 이하), 그녀는 예수의 십자가의 길을 예비하는 상징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예수로부터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라 극찬을 듣게 된다. 이처럼 여성들은 예수의 길을 함께 감으로써 예수로 하여금 예수가 되게 한다.

5-2. 예수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밥이 된다는 것

예수의 능력은 그가 약자들과 맺은 상호성에 있었다. 여성은 물론이고 세리든 창녀든 불치병자든 이방인이든 그들의 처지와 사회적 신분에 상관없이 예수는 어디서나 치유와 구원을 베풀었고, 함께 어우러져 밥을 나누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이렇게 철저히 민중적인 그를 가리켜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마 11:19; 눅 7:34)하며 손가락질을 해댔지만, 그의 밥상공동체는 누구에게나 개방된 열린 공간이었다. 그리하여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며 배불리 먹고 마실 수 있는 밥상공동체는 천국 잔치의 비유로 종종 애용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생명시인 김지하는 “밥은 하늘”이라고 노래했다. 밥은 일명 곡기(穀氣)라고 해서, 땅과 하늘의 모든 기운이 농축되어 있는 생명의 원천이다. 그 밥을 먹음으로써 하늘/하나님을 몸속에 모셔 들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천주(侍天主)의 행위는 밥을 혼자만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나누는 행위를 통해 체천주(體天主)로 이어지게 된다. 성서는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요 6:32-35 참고)이라고 증거한다. 예수는 인류에게 밥으로 오셨다. 우리는 그의 “살을 참 양식으로, 피를 참 음료로”(요 6:55) 먹고 마신다. 이러한 성례전적 행위를 통해 우리 역사 ‘작은 예수’로 살아갈 것을 요청받는다. 기근으로 허덕이는 땅에서 한 줌의 곡기로 목숨을 연명하는 인도 여성의 시에서도 예수는 ‘밥’으로 고백되고 있다.

매일 낮 열두시
작열하는 더위 속에서
하나님은
200그램의 죽의 모습을 하고
내게 오신다

곡식 낟알 하나하나에서 나는 그를 알고
그를 샅샅이 핥아먹으며
한 입에 꿀꺽 삼켜서
그와 하나가 된다
200그램의 죽으로
그는 나를 살아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예수는 가난한 여성들에게 밥이요 생명이다. 생존과 해방을 위한 아시아 여성들의 투쟁 속에서 예수는 언제나 자기를 개방하고 변혁하며 우리와 상호 관계를 맺고자 하는 친구로 경험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와의 ‘서로 사랑’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에게서 받은 생명력을, 고통 받는 다른 이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그러한 나눔과 섬김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서 그는 종의 모습을 취해 세상에 오셨다(빌 2:7). 예수가 남성으로 성육신한 것은, 헬라화된 중세 교부들의 주장처럼 남성이 더 우월한 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상 이 땅에서 더 나누어주고 더 섬겨야할 주체가 바로 남성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껏 가부장적 구조 안에서 여성의 희생 위에 군림해온 남성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여성과 동등한 제자직을 수행해 나갈 때, 그리스도의 이미지 역시 어느 한 성을 대변하는 왜곡된 모습에서 탈피하여 통전적인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5-3. 사람 예수 혹은 순이 기독론

누군가의 밥이 되려면 기필코 자기 힘을 제한해야 하리라. 힘이 있어도 행사하지 않는 것, 그게 진정한 자기 비움이고 낮아짐이고 섬김이고 사랑일 것이다. 힘에는 여러 차원과 종류가 있겠지만, 통상 그것을 강제력 내지 지배력으로 이해할 때, 우리가 알거니와 그런 힘은 대개 남성의 전유물로 표상된다. 오호라, 그래서 예수는 아버지, 곧 가부장적 권력의 상징을 ‘새 가족’의 명단에서 제외시킨 것이로구나.(막 3:35; 막 10:30 참고) 마치 어린아이의 부름말처럼 그렇게 친밀하게 하나님을 ‘아빠(Abba)’라고 부른 예수는 새로운 공동체의 식구로서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를 초대한다. 이런 맥락에서 동정녀 탄생설은 부계혈통주의와의 단절 및 거부로 적극적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가부장제를 힘의 우위에 따라 서열을 가르는 수직 상하구조로 정의한다면, 예수는 그러한 가부장제를 넘어선 평등 공동체로서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를 구상하고, 우리를 그리로 초대하는 것이다.
힘이 있으나 그 힘을 자기 욕망의 도구로 행사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이를 가리켜 ‘사람 됐다’고 표현할 게다. 사람이라는 우리말은 ‘삶앎’에서 왔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저 자동적으로 살아가지 않고, 어떻게 사는 삶이 사람다운 삶인지 알며 매순간 자각적으로 사는 삶이야말로 삶을 아는 자의 삶이며, 그런 삶을 살아가는 자가 바로 (참)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귀한 것은 그가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정치인으로, 장군으로, 학자로, 판ㆍ검사로 오지 않으셨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처럼 먹고 마시며 우리가 겪는 희로애락을 몸소 겪으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의 고통은 진짜 사람의 고통이었다. 예수가 우리에게 구원자가 되시는 까닭은 사람의 아들이어서 가능한 것이지, 슈퍼맨(superman)이나 또는 가현설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사람의 탈을 쓴 신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사도신경의 한 구절,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는 그래서 예수의 인성을 확증하는 열쇠말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수는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사람이 하늘로부터 난 신령한 존재임을 가르치셨다. 사람이 지위나 돈이나 권력으로 환원되지 않고, 그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귀하게 대접받는 그런 세상을 여는 문이 되셨다. 담과 벽은 생명을 옥죄지만, 문은 생명을 해방시키는 법이다. 예수는 담을 허물고, 벽을 넘으며, 문을 열기 위해 오셨고, 우리더러 이 일에 헌신하라고 부르신다.
그러려면 우선 나부터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사람이 되려면 한참 멀었으니 이 노릇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사람이 되려면 순이만큼 맑은 영혼을 가져야 한다. 순이가 부럽다.
그러려면 우선 나부터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사람이 되려면 한참 멀었으니 이 노릇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사람은 절대로 거저 되지 않는다. 사람이 되기란 무진장 힘이 드는 일이다. 사장이 되고, 의사가 되고, 목사가 되고, 노동자가 되고, 환자가 되고, 평신도가 되기는 쉽지만, 사람이 되기는 진짜 어렵다.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순(淳/純/順)이’처럼 맑은 영혼을 가져야 한다. 그 속에 탐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진실로 새로운 존재인 ‘순이’가 되지 않고서는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풍요와 편리로 요란하게 치장된 이 시대, 성공과 지배만이 유일한 가치인 것처럼 추앙되는 바벨론 포로 시대에 ‘거룩한 바보’ 순이는 어디에 있는가? 그윽한 사람 향기가 그리운 시절이다.

순이는 뭐가 되고 싶어
나는 아무것도 안 될 거야

정말? 그래도 뭐가 될 텐데
정말로 나는 아무것도 안 될 거야

나는 사람이 될 거야

선생님이나 하나님은 절대로 안 될 거야
나는 진짜로 사람이 될 거야

- 배문성의 시 “대화”


6. 나가며

버트란드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비유를 제시한 적이 있다. 선물로 받은 귤 한 상자를 예로 들어, 그는 만약 우리가 포장을 뜯었을 때 맨 윗줄의 귤들이 상한 것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다. 아무도 “구색을 맞추려 일부러 그랬겠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전체적으로 신통치 않은 물건을 보내왔군”하면서 아예 내다버린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
이러한 입장은 급진적인 서구 여성신학의 기독론에 잘 들어맞는다. 그러나 흑인 여성신학자 그랜트는 데일리의 경우를 빗대어 말하기를, 가부장제와 함께 그리스도마저 버리는 것은 목욕물이 더러워졌다고 해서 아이를 함께 버리는 것처럼 위험한 일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아시아 여성신학자들도 대체로 기독론에 배어있는 가부장적 폐해는 지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수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데 동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인내심을 갖고 알뜰하게 상한 귤을 헤치며 쓸 만한 귤들을 골라내는 작업에 열중한다. 복음서에 나오는, 손에 등불을 켜들고 빗자루로 바닥을 쓸면서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이미지(눅 15:8-10)가 바로 이들의 신학적 작업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다. 아시아 여성들은 다양한 언어적, 문화적, 종교적 전통들을 활용하여 풍성한 기독론을 발굴하고 전개해 가는 중이다.
기독론은 박제화된 그리스도 연구가 아니다. 그것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예수의 물음에 메시아적 실천으로 응답하는 모든 이를 향해 열려 있다. 여성에게 의미 있는 기독론은 과거의 교리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경험을 통해 ‘생명을 주는 힘’으로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들 자신의 삶을 통해 살려내야 하는 존재이다. 오늘 우리는 거듭 새로운 기독론을 ‘살아가도록’ 초대받고 있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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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테 죌레, 『고난』, 채수일/최미영 공역, 한국신학연구소,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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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신에게 솔직히』, 현영학 역, 대한기독교서회,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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