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철 늦은 눈이 오보록이 쌓이더니 이후 며칠 날씨가 꽤나 푸근하다. 아내와 난 등산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겨울 동안 러닝머신에만 의존했던 운동을 이제 슬슬 야외로 뻗어나가는데 둘은 이의가 없었다. 등산객이 뜸한 돈 안 내는 산은 아직 눈이 쌓였을 테니 그래도 사람이 많이 다니는 산으로 택하자고 생각했다.

계룡산 국립공원 입구

그러나 우리 부부는 이것쯤으로 화가 나지 않을 정도의 넉넉함은 있는 사람들이다. 이미 그런 일이 보편화된 대한민국 좋은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까. 우리의 매몰찬 마음은 등산로 입구에서 치를 떨기에 이르렀다. ‘문화재 관람료, 성인 2,000원’, 이런 문구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계룡산 동학사에는 무슨 문화재가 있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문화재는 주로 절 안에 있으니까.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남매탑이고 남매탑은 동학사를 거치지도 않는다. 벌써 오래 전부터 이런 말도 안 되는 처사에 마음이 좋지 않았던 차인데 어쩌랴 국립공원 입장료라고 생각하고 낼 수밖에. 산에 오르려면 누구나 그 매표소라는 곳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되게 돼 있으니 다른 도리가 없다.

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문화재 관람료라는 걸 내고 산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의 나들이여서 그런지 산의 품에 안겼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보드라워졌다. 아직도 눈이 듬성듬성 등산객을 반기고 음지쪽에서는 등산길에서도 지적지적 눈들이 신음을 내며 녹아가고 있었다.

한참을 가다 아직 녹지 않은 눈길을 만나자 아내는 더럭 겁이 난 모양이다. 그만 가고 싶다는 것이다. 눈길에 넘어져 그 상흔으로 지금도 가끔 고생을 하는 터라 그녀의 그런 마음이 이해가 갔다. 나만 잠시 더 오르다가 이내 아내가 머문 곳으로 내려왔다. 아내는 이내 내려와 동학사 쪽으로 가 있었다.

	김학현 목사

그런데 그 주변으로 동전들이 흩어져 있는 게 아닌가? 그때 번뜩 본전 생각이 났다. 얄궂다. 왜 이때 문화재 관람료 생각이 났을까? 문화재는 한 점도 구경하지 않고 문화재 관람료에는 턱에도 못 미치는 동전 몇 닢을 집었다.

그러나 이게 왠 조환가. 그 일 후 계속 그 동전 몇 닢이 나를 옥죈다. 다음에 가서 다시 그 자리에 올려놓고 와야겠다. 목사가 절 돈을 훔쳤으니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실 턱이 있는가? 하하하. 다시 그 놈의 문화재 관람료라는 것을 지불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가쁜 숨이 턱에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