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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함정 (3)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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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2월 11일 (월) 09:26:46 [조회수 : 2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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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은 교회력 일 년 가운에 경건 훈련을 하는데 집중을 기울이는 절기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다리며,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되새기며 자신도 참여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은 다른 날과는 달리 주님의 수난을 몸소 겪으며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경건한 모습을 보이는데 전력을 다하는 절기입니다,

절기의 강조의 이면에는 다른 날은 아무렇게 해도 어떻게 해도 괜찮고 이 절기만은 축하와 특별한 경건의 모양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약간은 위험한 율법적 요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주일의 개념이 안식일의 개념으로 다가 온 것 같이 사순절의 절기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고통, 부활의 현장성은 우리가 평생 살면서 시공간에 관여치 않고 가져야 하는 경건의 모습입니다. 성탄절의 의미 역시 그렇습니다.

다른 날에서는 이를 강조하지 않고 이 절기에서 만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편의에 따른 구분이라 생각되어 집니다. 교회력이 새로운 율법으로 우리의 온전한 신앙생활을 방해하지는 않는지 신학자들은 이에 대한 해답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교회력은 마치 인간의 행사인 삼일절, 현충일, 광복절, 제헌절, 장애인의 날, 등과 같은 행사자체에만 의미를 두는 날로 변질되었다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가령 평소에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관심이 없다가 이날만큼은 온 나라가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가 그날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 듯이 다시 원 위치되어 장애인들은 무관심의 영역이 되어 가는 것처럼 수난절 역시 그런 인간의 편의주의, 행사주의로 빠졌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집니다. 사순절기간 동안은 언어생활도 조심하고 부부생활도 금하게 하는 것은 율법화의 의미가 극치를 이루는 족쇄라고 생각합니다.

지난70-80년대 정부 최우선시책으로 가족계획이란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둘만 낳아 기르자. 또 조금 지나서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또 조금 지나서는 아예 올해는 아이를 한명도 낳지 말자로 까지 캠패인을 전개한바 있었습니다. 이런 캠패인에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성경을 인용하여 설교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해에 한명도 낳지 않았다면 20년 후에 국방병역 자원수급과 성비, 결혼에도 문제가 발생되었을 겁니다. 인위적인 성비조절과 낙태 등의 후유증이 지금 사회문제화 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단적인 예는 인간의 질서가 얼마나 가변적이고 불완전 한 것임은 불과 20여년이 지나서야 판명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가족계획은 전면 폐기되고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모든 특혜도 정반대가 되어 지금은 많이 낳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정부정책의 방향도 극과 극으로 수정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한때는 시국사범으로, 대역죄인 국보법위반 사형수가 민주화 정부가 들어서서는 민주투사로, 애국지사로 명예회복되는 것을 보면 인간의 질서가 얼마나 허약한 것임을 판명이 됩니다.

교회설교 역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은 내 팽개치고 군사독재 정부를 옹호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권으로 찬양, 아부하는 어용교회가 이번에는 자본주의 맘몬의 질서를 찬양하여 자신의 목회성공에만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가족계획의 출산정책도 일방적인 정부정책의 시녀가 되어 전에는 낳지 않는 것이 하나님 뜻으로 설교하다가 이제는 많이 낳아 기르는 것이 하나님 뜻으로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질서에 충실한 교회임을 부정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창조질서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현대인들의 삶의 바탕이 이미 핵가족화, 개인주의, 파편화된 삶이 구조화 되어 있고, 가족이란 개념이 결여되고, 육아의 부담과 교육비등의 부담, 당대의 행복만, 독신으로서의 삶의 편의성 등의 사조가 팽배해 져 있고, 결혼의 무의미성과 아이를 가지는 일에 반감을 가지는 반 창조질서적인 삶의 행태가 보편화되어 있는 정서는 돌이킬 수 없는 인간의 질서에 기초한 교회의 잘못과 정부시책의 과오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경건의 이야기로 오겠습니다. 종교개혁자의 거목 칼빈의 위대한 저술인 기독교강요에 경건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경건에도 참 경건이 있고 거짓경건이 있습니다. 참 경건은 참 종교를 낳고 거짓 경건은 거짓 종교를 낳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에게는 경건이야말로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런 경건이 우리의 능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사순절 기간 동안의 경건은 거짓 경건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질적으로 죄성에 포로로 잡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율법화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우리는 경건의 능력에 이르도록 노력하려는 정성을 보이는 과정적 경건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됐다> 하시며 만족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비울사도는 디모데 전서에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권면하셨지요.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나무는 경건이란 뿌리에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경건이란 뿌리에서 종교란 줄기가 나오고 종교란 줄기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열매가 주렁주렁 맺힌다고 합니다. 그 열매의 충실여부는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고 경외하는데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위기는 경건의 능력이 없이 경건의 모양으로만 자본주의의 가치관이 글로벌 가치관으로 맘몬의 복을 받기 위해 은 넓은 길이 아닌 축복의 고속도로에 질주를 하며 복을 받겠다는 몰려드는 목사와 성도는 있어도 경건의 능력으로 좁은 길을 걸어가면서 맘몬의 경제에 저항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려는 경건한 능력을 가진 목사와 성도를 찾아 볼 수 없는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사회나 교회나 물론 좋은 전통도 많습니다. 지금은 이런 전통을 낡은 것으로 치부해 세대간의 의사소통 단절과 정당한 권위를 가진 어른의 부재로 사회의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정치의 도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은 심히 우려스런 사안으로 생각됩니다. 보수정통신앙과 진보적인 신앙사이의 괴리감도 그렇습니다. 전자는 경건의 모양을 후자는 경건의 능력을 강조하는 부분적 차이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적절한 믹스가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요즘은 시대조류인지 방송국의 프로그램에서도 온통 개그적인 요소가 가미됩니다. 부흥회도 그렇습니다. 질 웃기는 부흥사가 명강의 부흥사로 인기가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인 와이사츠의 로만칼러는 입고 있는데 경건의 능력은 없습니다. 어찌 복음이 개그로 탈바꿈 했습니까? 찬양은 단순한 오락으로, 기도는 이방인의 주문으로 전락한 지 오랩니다.

교회가 율법적 경건의 모양은 있는 데 자본주의가 죄성을 극대화하는 맘몬의 시대에 복음으로 경건의 능력을 발휘하여 사탄의 권세가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모두 죄악의 꿀물을 빠는데 익숙해져 맘몬의 덫과 함정에 깊이 빠져 있는 상황입니다.

물질의 부자이기 보다는 마음의 부자가 어떤 것인지를 모델로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이게 진정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복음의 핵심인 산상수훈의 현재화가 아닐까요? 이제 한국교회는 모든 기득권을 한낱 티끌과 재로 여겨서 하심(下心)하여 겉으로는 잘살고 되어 호의호식하며 웰빙에 미쳐 유리하고 방황하는 민족을 물질이 주는 쾌락의 허망함을 일깨워 하나님 앞으로 나오도록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발적 가난으로 대형교회를 작은 교회로 축소분할 하여야 합니다. 불필요한 고비용 구조를 저비용구조로 개혁하여야 합니다. 암세포를 도려내고 정상세포를 이식하거나 정상세포가 재생이 되도록 기다리며 성경이란 말씀으로 양육하여야 합니다. 거대한 세포는 암세포이므로 대형교회로 목회성공하는 꿈을 버리면 좋겠습니다.

물론 생태적인 관점에서 보면 대형교회의 존재는 1% 정도가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기능적 세포가 모여 장기조직을 만들고 그다음 장기기관을 만들고 그다음에는 장기 계통이 만들어져 우리 몸이 건강한 신진대사로 유기적인 개체가 존재함을 알고 건강한 작은 세포로 다시 출발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불필요한 경건의 모양을 포장하기 보다는 경건의 능력을 배양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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