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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신화인가? 역사인가?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한 예수신화 학파의 진지하고도 심각한 도전
정강길  |  minjung2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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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1월 16일 (수) 15:42:00 [조회수 : 3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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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 도허티의 예수 연구 문제작 『예수퍼즐』 드디어 국내 번역 출간!

얼마전 교보문고를 다녀왔었는데 내 눈을 소스라치게 깜짝 놀라게 했던 일이 있었다.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는데 바로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 얼 도허티(Earl Doherty)의 문제작인 『The Jesus Puzzle : Did Christianity begin with a mythical Christ?』이 드디어 번역되서 나온 것이다. 얼 도허티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심지어 이들 예수신화 학파의 주장이 자신들의 입맛에도 맞다고 생각되는 진영인 안티기독교 진영조차도 얼 도허티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는 형편이다. 
 
얼 도허티는 나 자신이 『미래에서 온 기독교』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 있지만, 사실 예수신화 학파의 탄탄한 이론가로서는 『예수는 신화다』를 썼던 프레크와 갠디(T. Freke & P. Gandy)가 아니라 실상은 이번『예수 퍼즐』의 얼 도허티를 꼽아야 할 것이다.
 


▲ 얼 도허티 지음, 강경수 옮김,  『예수퍼즐』(씽크뱅크) 표지.


흔히 국내에선 『예수는 신화다』책 사건으로 인해 이를 중요한 책으로 꼽는다지만, 같은 예수신화 학파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얼 도허티의 연구에 비하면, 프레크와 갠디의 예수 연구는 그다지 이론적 배경의 강도(intensity)가 빈약한 편이며 놀라운 게 전혀 못된다. 특히 프레크와 갠디의 주장들은 대부분이 고대 영지주의 문헌에 지나치게 치중해있는 데다 기존 역사적 예수 연구 학계의 비평적 성과들은 거의 고려되지도 반영되어 있지도 않고 있는 점들은 이들 예수 연구의 치명적 한계이기도 하다.
 
반면에 이번에 국내에 소개된 얼 도허티의 『예수 퍼즐』은 지금까지의 기존 역사적 예수 연구의 비평적 성과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예수는 신화였다"는 자신의 주장을 펴나가고 있기에 그 이론이 훨씬 더 탄탄한 맛이 있다.
 
이미 본인의 『미래에서 온 기독교』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예수신화 학파의 결정적인 매력은 복음서와 바울서신을 포함한 서신들 간의 괴리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에 그 흥미로운 매력이 있다. 바울의 선교전략이 아무리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변명을 하더라도 복음서와 서신들 간의 괴리는 그 정도를 넘어선 것이다.

어떻게 그리스도론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선 신약성서에서 큰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신약의 서신들, 특히 바울서신들은 왜 그다지도 끔찍하게 침묵할 수 있었단 말인가. 실제적으로 바울은 역사적 예수에 대해선 몰랐거나 자신의 기독론으로선 불필요했었다고 보는 게 보다 솔직하고 정확한 맥락일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입장은 현대적으로 보면 거의 불트만의 입장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만큼 가현설적인 입장에 가깝다는 얘기다.
 
도허티는 이 책 부록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그때 당시 있을 법한 "바울과 몇몇 새 개종자들 간의 대담"를 통해서도 바울이 역사적 예수를 알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매우 설득력 있고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진보 기독교인들조차도 이러한 입장에 대해 웬만하면 억지로라도 바울을 좋게 보려하는 경향이 강하다. 굳이 바울이 역사적 예수를 몰랐다고 깍아내릴 필요는 없다고 보는 것인가. 나 자신의 입장은 바울은 역사적 예수를 몰랐었다고 보며 설령 알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기독론과 신학적 입장에서는 그것이 불필요한 것으로 자리매김되어 있었다고 본다. 분명히 그것은 초기 기독교의 다양한 맥락에서 다른 전승에 기초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얼 도허티의 예수 연구는 바로 이 점을 매우 설득력 있게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나 또한 도허티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초기 복음서에 해당하는 마르코 복음서가 창작된 픽션이라고 본다. 마르코의 수난설화는 중간 판본이 없다. 그나마 그 가능성을 제기했던 크로산의 <십자가복음서> 가설은 펑크나 버튼 맥에서조차도 비판받을 만큼 설득력 있진 못하다. 마르코가 창작한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나는 이를 팩션(faction=fact+fiction)이라고 부른다.

예수 연구에 대한 도허티의 이론과 나 자신의 입장

왜냐하면 나는 그것이 그 당시의 여러 다양한 메시아 운동과 예언자 운동들과 사건들이 한 명의 서사적 인물의 언행으로 집약되는 조합된 형태라고 보기에 오히려 <다중예수론>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예수신화 학파인 얼 도허티와 차이가 있다. 오히려 나 자신의 다중예수론의 입장에서 볼 경우, 예수신화 학파의 주장들마저도 거침없이 검토될 수 있고 어찌보면 도허티의 많은 부분들과도 중첩된 주장을 펼치고 있는 점들도 있다.
 
이것은 『미래에서 온 기독교』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역사적 예수 불가지론자인 로버트 M 프라이스(Robert M. Price)의 연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프라이스는 이번 얼 도허티의 본작에도 추천사를 한 방 날리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주장하는 다중예수론은 우리나라의 민중신학적 의미와도 결합되는 <새로운 기독론>으로서 예수신화 학파의 이론들마저 넘어서는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기독론이자 <사건론>이기도 하다. 분명히 말하지만, 지금까지의 그리스도론(Christology)은 대체로 어떤 한 인물에 대한 인물론이었지만, 사실상 기독론은 인물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는 바로 그 <사건론>인 것이다.
 
요컨대 예수 그리스도는 그저 한낱 순수 창작 신화로 치부되기보다는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고난과 고통의 현장인 밑바닥 민중사건들 가운데 늘 역사해왔었다는 사실이다. <갈릴리>란 바로 그 사건의 현장인 것이다. 갈릴리는 언제나 우리네 밑바닥 삶의 고통의 현장이자 역사 속의 민중사건의 현장을 의미한다. 그러한 갈릴리는 고통과 질곡의 모든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계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에서 갈릴리는 처음 시작이자 끝으로 다시 연결된다. 

마르코 복음서는 분명히 다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면서 끝맺는다(사실 기존 민중신학의 역사적 예수 연구는 이 부분을 너무나도 잘 설명해내고 있는데, 아마도 내 생각에 예수의 부활 사건을 민중신학적 해석만큼이나 극적인 설득력으로서 해석해내고 있는 경우란 예수신화 학파를 비롯하여 기존의 모든 역사적 예수 연구들 가운데서도 결코 온전하게 보질 못했었다).

마르코의 머리 속은 바로 그때까지 마르코가 겪어왔고 살아왔던 그의 삶(혹은 마르코 공동체)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 역시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즉, 마르코(혹은 마르코 공동체)는 척박한 삶의 현장인 갈릴리에서 바로 그러한 밑바닥 삶의 구원과 해방을 경험했던 것이며, 바로 그러한 의지로서 희망의 마르코 복음서를 쓰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밑바닥 삶과 함께 하는 하나님 나라 운동에 고백적 언어인 <케리그마로서의 그리스도>를 부여한 것이었고, 그럼으로써 하나님 나라 운동 전승과 그리스도 숭배 전승이 서로 결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마르코에게서의 그리스도란 곧 사건의 퍼스날리티인 것이다. 사실상 이것이야말로 마르코가 복음서를 쓰게 된 강력한 동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궁극적으로 말하는 역사적 예수의 실체란 곧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는 민중구원 사건에 다름 아닌 것이다. 마로코는 바로 이 점을 꿰뚫어보고서 이를 서사적으로 종합화해놓았던 것이다. 비록 나 자신이 얼 도허티의 주장에 죄다 동의하진 않는다지만, 나름대로는 충분히 추천할만한 예수 연구서라고 생각되어진다.
 
(굳이 동의하지 않는 점에 대해 한 가지만 얘기한다면, 이를테면 마르코 복음서의 기록연대를 너무 늦게 잡은 점을 들 수 있겠다. 도허티에 따르면 마르코의 묵시종말적 분위기는 유대전쟁으로 인한 예루살렘 성전 멸망 직후 뿐만 아니라 85-90년에도 합치된다고 말하면서, 그 논증에 있어선 20세기 모든 문서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나온 것은 아니라는 조금 오도된 비유를 들고 있다(『예수퍼즐』2권 p.107. 참조). 하지만 그 자신도 다음 문장에서 인정하고 있듯이 어쨌든 확률적으로는 그 시기야말로 여전히 그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기에 해당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기에 나 자신은 마르코 복음서의 기록연대를 예루살렘 멸망이 있은 후인 70-75년으로 보며, 굳이 이보다 훨씬 더 늦게 잡을 이유로서는 아직까지 결정적인 근거는 없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급진적인 『예수퍼즐』의 도허티를 대할 때 보다 중요한 사실은, 비록 도허티가 나 자신과 입장이 다른 예수신화 학파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신약학계 성과들을 솔직하게 그리고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는 어느 진지한 예수연구가의 수고와 노력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 바로 그 핵심이 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본인은 이 책을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구약시대 연구의 충격적인 문제작이라면, 휘틀럼의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을 들 수 있겠는데, 그에 버금가는 신약연구의 충격적인 문제작으로서 이번 도허티의 『예수 퍼즐』도 그 못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번 도허티의 『예수 퍼즐』도 괜찮지만, 예수세미나 회원이자 성서 고등비평 연구가인 로버트 M. 프라이스의 예수 연구야말로 하루빨리 국내에도 소개되길 바라는 바이다).
 
그만큼 이번에 얼 도허티의 『예수 퍼즐』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참으로 좋은 자극이 될만큼 경하할만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이 책의 진가를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알아볼 지도 걱정된다.

기존의 보수 기독교, 진보 기독교 , 안티 기독교 모든 진영에게 권하는 『예수 퍼즐』

보수 기독교를 잘 대변한다는 한기총이 예전에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판매 금지하도록 출판사에 압력을 행사한 바 있는데, 실제적으로 판매금지를 시켜야 할 더 끔찍한 책은 바로 본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워낙 학문적으로 나가고 있기에 이 책의 진가마저 제대로 알아볼는지부터가 의문이기도 하다.
 
예수신화 학파에 대해선 보수 기독 진영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솔직히 국내에선 그 어떤 신약학자나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조차도 혹은 그 어떤 진보 기독학자들조차도 적어도 지금까지는 예수신화 학파의 연구에 대해선 본격적인 연구와 비판을 가하지는 않았었다. 기껏해야 거의 가볍게 무시하는 정도로 지나갔었을 뿐.. 어쩌면 무시하고 지나가는 게 더 속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더욱 분명하고 솔직하게 검토를 해나가지 않을 수가 없을 걸로 본다.
 
끝으로 안티기독교 진영에게도 한 마디 한다면, 이번에 나온 얼 도허티의 책이라도 좀 읽고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해서도 공부 좀 하라고 말하고 싶다. 어차피 얼 도허티의 핵심 주장은 "예수는 신화다!" 라는 것이기에 니네 안티들 입맛에도 맞을테니까 어찌되었든 성서비평 공부라도 좀 하고서나 니네들이 싫어하는 그 예수를 까대든지 말든지 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이미 얼빠져 있는 멍청한 보수 기독교인들한테나 가서 설치지나 말고 진득하게 공부도 좀하는 튼튼한 안티가 되란 말이다. 문자주의 기독교인들에 대해 똑같은 방식으로 문자적으로 성서를 반론하는 꼴이란 얼마나 우스운가. 보수 근본주의자들의 이론적 배경이 협소한 만큼이나 안티기독교인들의 이론적 범주 역시 너무나 빈곤하고도 허술한 것이다.
 
안티들은 순진한 보수측 기독교인들한테는 무슨 이론적 우위를 점한 것마냥 잘도 설쳐되지만 성서비평이나 다양한 신학적 맥락과 정보를 인지하고 있는 진보 기독 진영에 대해선 꼼꼼하게 이론적으로 제대로 공박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안티들이 보기에 진보 기독 진영은 기독교가 망하는 것을 오히려 지연시키는 쑥주 노릇만 한다고 여겨지는 터라 더더욱 얄미운 것이리라.
 
그만큼 워낙 국내 안티기독교인들은 만에 하나 이론적으로 뒤질 경우엔 반론은 제대로 못하고 그저 볼멘소리 마냥 냉소적인 욕지꺼리나 찍찍 내뱉던가 그것도 안되면 비판하는 대상에 대한 다른 약점꺼리나 있는지 뒤적거리는 얄팍한 꼼수나 쓰던가 할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얼 도허티의 책을 계기로 해서도 이제는 안티들 역시 더욱 폭넓게 공부하여 감정적 배설이 아닌 냉철한 이성으로서 이론의 우위성을 겨누고자 하는 튼튼한 이론가들도 좀 생산되길 바란다. 아마도 얼 도허티가 국내 안티기독교인들이 바이블 속의 예수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이러쿵저러쿵 써 갈겨 놓은 것을 직접 봤었다면 얼마나 코웃음쳤을지도 짐작될 정도다.
 
국내본은 각각 1, 2권으로 나왔는데, 혹시 보수 기독 진영의 한기총 작자들이 이번에도 또 판금조치를 할지도 모를 터라 가급적이면 빨리 서점에 가서 확인해보고 미리미리 잽싸게 사두길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예수 이론과 진지하게 한 번 겨눠보길 바라는 바이다.

특히 도허티의 예수 연구는 기존의 역사적 예수 연구 문제에 관심하는 분들일수록 나름대로 큰 자극과 도전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적어도 예수신화 학파라고 해서 결코 무시하거나 비껴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정강길 / 『미래에서 온 기독교』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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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문 (124.80.223.75)
2008-01-19 00:14:41
댓글들을 읽으면서.
예수나 그리스도가 당시에 아주 흔한 명칭이라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학자들의 공통된 인식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1) 마가의 창작설, 2) 그리스도가 메시아 사건의 퍼스넬리티, 3) 역사적 예수의 실체가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는 민중구원 사건, 4) 다중예수론 등의 논리는 학자들 사이에서 보통 받아들여지지 않는 독창적인 학설로 판단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지적하신대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수를 한 명의 인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존의 논설보다는 연결 고리들 사이에 더 탄탄한 논리가 있어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경우이건 간에 예수를 민중과 소외된 자들을 떼어놓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없습니다.

어쨋든 저의 단순한 생각들이구요. 좀 더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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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0
목사 (83.196.118.203)
2008-01-18 11:57:33
잘 읽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그리스도론(Christology)은 대체로 어떤 한 인물에 대한 인물론이었지만, 사실상 기독론은 인물론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는 바로 그 <사건론>인 것이다."

라고 하신 말씀에 공감을 합니다.

그러므로 안티 기독교는 설자리가 없죠.
기독교가 원래 그것을 말하고 있고
성서가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복음서는 예수라는 한 인물로 그려있고.(당시 흔한 이름이었던 예수'구원자')
바울서신은 버려진 민중을 유대인과 동등하게 보는 운동(교회운동,거져주는 동질 신분(은혜))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결국 바리새들이 바랬던 하나님 나라가 자신들에게만 오는 것을 기다린것과는 다른 하나님 나라 운동아니겠습니까?
잘 읽었습니다.
리플달기
5 10
무릇돌 (121.141.148.251)
2008-01-17 21:12:41
예수와 그리스도는 본래 보통명사가 아닐까요?
예수도 그리스도도 본래는 흔한 보통명사였으리라고 봅니다.
이것들이 어찌어찌 하나로 엮이고 고유명사화하면서
기독교가 시작되지 않았을까요?
사실, 하느님도 예수도 믿음보다 중요(유용)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이끌어내기 위해 예수도 하느님도 필요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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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9
미선이 (122.46.66.76)
2008-01-16 22:06:16
밑에 지나가다님~
위의 도허티의 '예수퍼즐'은 어디서 먼저 나왔나요? 분명히 책을 보니 위의 책은 2007.12.12 초판1쇄로 나왔으며, 한국어판 저작권은 독점계약으로 씽크뱅크 출판사에 있다고 나오는데..

아마도 지나가다님이 2005년에 나왔다고 얘기한 건, '지저스 퍼즐'(이가서)을 말한 것 같은데, 그건 위의 책과 또다른 책으로서 도허티의 소설이랍니다. 혼동하시면 안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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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9
지나가다 (124.50.121.71)
2008-01-16 21:44:08
2005년에 이미 번역 출간되었던 책입니다.
"드디어 번역되서 나온 것"이 아님.
리플달기
8 9
하늘문 (124.80.223.75)
2008-01-16 20:52:13
재미있네요.
그리스도를 메시아 사건의 퍼스넬리티로 보고, 역사적 예수의 실체가 하나님 나라 운동이라는 민중구원 사건이라면, 왜 예수라는 이름을 썼을까요? 그것도 다양한 공동체에서 획일적으로 말입니다. 그 당시 여러 공동체들이 조직적이지도 않았는 데 말입니다.

다중 예수론의 근거중에 하나일 마르코 복음이 팩션(faction=fact+fiction)이라면, 예수는 단지 이름만 내준 사람일까요? 어디까지가 예수라는 실제 인물의 fact인지도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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