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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의 축복과 저주가 있는 교회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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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1월 09일 (수) 08:17:21 [조회수 : 5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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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목회 현장이 아쉬워

현재 한국교회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공생애와 바울의 목회를 본받는 목사는 그리 많지 않다고 봅니다. 종의 자세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랑, 성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바울사도의 모습은 닮지 않으려 하고 언제나 지도자로 섬김을 받으려는 목회태도는 분명이 잘못 된 것입니다. 목회는 한마디로 예수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도의 실천행위입니다. 바울사도가 죄인의 괴수로, 오호라 곤고한 자로다 하는 식의 고뇌하는 목회현장이 지금도 나타나야 하여야 합니다.

유리하는 백성들을 향한 긍휼과 애통과, 사랑을 가슴에 담고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마음과 같이 성도와 함께 울어주는 진실한 청지기적 목회마인드가 없는 목사는 사표를 써야 개혁교회로,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로 바로 세워집니다. 무늬만 목사로 흉내 내려고 한다면 차라리 택시 기사로, 생산근로자로, 노가다로 생계를 유지하는 직업으로 전환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아무리 목사라는 직업? 이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도직이라 하지만 인간적 권위를 가지고 유치원 교사처럼 유치하게 가르치고, 밥벌이를 위해 직장생활로 여기고,  설교를 통해 협박하는 목사가 있다면 기본적으로 사도의 자격이 없습니다. 목사가 어떤 말을 해도, 설교시간에 성질부리고 협박해도 똥인지 오줌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성도들에게도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설교시간에 하나님 말씀 중간 중간에 사기치고 죽인다 해도 아멘하니 참으로 끔찍한 한국교회 영적상황입니다. 목사를 하나님처럼 떠받들어야 한다는 절대적, 봉건적 사고와 목사를 잘못 건드리면 천벌(?)을 받는다는 무당적 주술이 많이 작용하는 신앙정서에서 대다수의 성도들은 겁을 먹고 조용하게 시키는데로 수동적으로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처리 하신다고요


목사가 잘못하면 하나님이 직접 치리하시니까 목사를 건드리지 말라구요. 언뜻 보면 맞는 말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위기와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무당적 사고입니다. 일종의 협박적인 말입니다. 괜히 찝찝하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비리와 부패와 불법의 상황을 피해간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직접 처리하시는 게 어디 하늘에서 불로, 벼락으로 칩니까? 그게 아니지요. 사람을 통해서 아니면 짐승으로 통해서라도 바로 잡는다는 것입니다. 중세의 무소불위의 전적타락한 로마카톨릭의 교황권력도 종교개혁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펼쳤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 직접처리하시니 가만 버려두었다면 결코 개혁교회가 탄생하지 않았고 복음이 이처럼 우리에게도 오지 않았을 겁니다.

동일한 동양문화권인데도 우리나라에서는 부흥의 불길이 보름달집을 태우는 것과 같이 활활 타 올랐는데 왜 일본에서는 기독교가 1%도 안 되는 기독교인이 있을까요? 그것은 문화차이일 것입니다. 문화와 종교는 항상 기득권의 위치에 있는 문화와 사상을 바탕으로 해서 정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컨대 중국에서는 불교가 도교의 문화와 사상의 기초위에 세워져서 겉으로는 도교가 보이지는 않지만 의식구조의 작동원리는 도교가 에너지원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식구조의 불교현상이 바로 불교수행법으로 정착한 것이 선(禪)입니다. 선은 중국토착종교인 도교의 수행방법과 인도 달마대사의 명상수행이 불교적으로 융합되어 새롭게 불교의 패러다임으로 정착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문화적으로나 사상적 근저에는 불교, 유교, 샤마니즘이 깔려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들어온 유교와 불교는 또다시 우리나라 기득권 토착문화인 샤마니즘에 채색되어 겉으로는 본래의 경전을 따르지만 속으로는 세 가지 짬뽕된 샤마니즘문화를 신앙 에너지로 작동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불교와 도교의 새벽 예불과 명상수련이 새벽기도회로 정착된 것은 세계 기독교 교회사상 유례없는 현상입니다.

유, 불, 선의 복합적인 신앙패러다임


조선후기에 기독교가 우리나라 양반학자들이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나라는 이미 고유의 하느님(하늘님)이란 종교적 개념이 있었습니다. 오래전 시베리아 대륙으로부터 건너온 온 샤마니즘과 중국서 건너 온 도교와 융합된 불교가 조선시대에서는 사대부와 전 국민의 정치이데올로기이자 국민들의 윤리는 유교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모두가 혼합(믹서)된 상태 말 그대로 짬뽕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기독교인이지만 심층적인 의식구조속에는 유교가 깔려 있고 또 그 아래에는 불교가 진치고 있고 또 그 아래 깊숙한 심층의식구조 속에는 도교, 선도와 샤마니즘이라고 하는 무속이 꽁꽁 숨어 있습니다. 단지 한국교회는 표면적으로 복음으로, 영성으로, 영빨로, 목회성공으로, 치유은사 부흥회로, 복음이 변질 위장되어 한국교회 신앙패러다임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원리와 방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졌기 때문에 시공간을 달리하지만 보편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단지 죄성에 따라 심하고 약하고의 약간의 차이는 있지요. 성경을 보더라도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에 사로잡히느냐 이방문화와 사상에 사로잡히는 사탄의 역사에 동참하느냐의 양 갈래 길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죄성을 가진 인간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구약성경의 줄거리는 이방문화와 사상이 하나님문화와 사상을 침범하고 도전한 것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 사탄의 역사는 하나님의 문화와 사상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교묘하게 말입니다. 현재의 복음은 실용적인 복음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풍전등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구약적 상황이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연출되고 있습니다.

한국사람 들에게는 하나님존재를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인격적으로 말씀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전통 무속의 피조물인 하늘을 우상시한 하늘님(하느님)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산속의 신령님처럼, 사이비종교에서는 예수님을 미륵불이나 정도령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과 극락은 성경에서 말하는 지옥 천당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염라대왕의 심판은 천국에서 상급재판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대비는 끝도 없습니다. 사랑은 자비요, 구원은 왕생극락으로, 헌금은 불전(보시), 복채로, 성황당, 절은 교회로, 주지스님은 담임목사로, 신유은사 목사는 치병무당으로, 이밖에 동양철학자(역술인)들 자칭 도사로, 영험한 무당들도 모두 사탄의 조종을 받아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왜곡으로 인식되는 성령의 불길


한국교회가 일본과는 달리 대 부흥을 가져 온 것은 위와 같은 다양한 종교적, 사먀니즘의 의식구조를 근저로 가능하였다는 분석이 종교학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부흥회는 한국교회초기 부흥의 모태가 된 사경회의 전통을 이어받지 못하고 불교의 야단법석의 법회와 무당의 푸닥꺼리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교적, 무속적 감정이 성령의 불길로 왜곡 인식하고 있습니다. 마을마다 있었던 성황당이며 무당이 지금은 교회로 대체하였고 산속마다 있는 절은 기도원으로 변용 매치되지 되었다는 사실이 아무리 삼위일체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지만 부분적인 사탄의 역사는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는 온갖 샤마니즘 신앙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불길?, 성령의 역사?, 치유의 역사?, 예언의 역사?, 방언의 역사? 한마디로 복음의 본질에 무지한 무당푸닥꺼리판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당이 춤출 때 옆에 있는 모든 참석자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신명에 따라 춤을 추게 됩니다. 성황당, 무당집이 모두 예수 옷을 입은 무당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무당목사의 기적은 예수의 기적이라기보다는 도사나 중, 무당의 기치료의 기적처럼 그냥 조건반사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안에서 연출되어지고 있는 이적들은 대개가 심리학적 조건반사반응이고, 엑스타시, 의학적 플라세보현상입니다. 실제 무당들과, 정신세계에서나, 기치료에서나, 대체의학의 치료과정에서 나타나는 동일한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그러한 치유이적은 복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차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돌린다고 박수 몇 번 치고는 알맹이는 자기들이 다 챙기는 것을 보면 그게 무당목사가 아니고 뭡니까?

예수천당, 불신지옥의 전도표현법은 우리의 의식구조 심층부에는 불교에 나온 지옥상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쉽게 먹혀지는 것입니다. 우리사회는 무당에게 어떤 도덕이나 윤리를 바라지 않듯이 이제는 목사에게도 이런 상황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초창기에는 사회가 고도의 도덕성과 윤리적 덕목을 요구하고 교회도 그렇게 실천하였지만 이제는 사회환경이나 교회환경이 달라졌습니다.

무당과 같은 수준인 목사를 바라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보면 천박성과 타락성을 가지고 있는 무당목사의 존재가 바로 거짓목사임을 알게 됩니다. 현대교회는 목사가 은혜가 없으면 다른 교회, 다른 목사를 찾는 의식구조는 어떤 무당이나 점집이 용하지 않으면 시원찮은 무당과 점집을 버리고 다른 용한 무당집과 점집을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은사, 예언, 방언 부흥회를 보면 성령강림을 바라며 야단법석 카바레 음악으로 환각과 카타르시스를 유도하는 집회분위기는 무당의 징과 북소리가 대체한 것이고 목사의 찬양과 기도는 무당이 지껄이는 접신하는 기도와 동일한 구조입니다. 이것을 교회에서는 성령충만이라 하고 무당은 접신능력이라 하고, 조상신이 오셨다고 합니다. 실제 무당들도 치유와 예언과 방언을 합니다. 이런 것은 사탄의 역사이고 정신적, 기적(氣的) 메카니즘의 반응입니다. 기수련에서도 넘어지고 춤추고 헛소리, 환각의 상태에 빠집니다.

한국교회 주변에서 소위 이단과 사이비냄새가 나는 교회나 기도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샤마니즘 요소는 무당 푸닥거리에서도 유사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제 불당 앞에서 무병장수, 성공출세를 기원하며 절하던 아주머니가 오늘 예수를 믿어 교회당에서 자식성공과 기화제복을 기도하며 할렐루야 찬송을 부르고 있고, 어제 무당 앞에서 집안우환과 자식문제 액땜을 살풀이하던 사람도 전도를 받아 내일은 신앙간증으로 앞선 잘못된 종교에서 벗어낫다고 하지만 심층부에는 그대로 온존하고 있음을 간과하면서 신앙생활하고 있다는데 한국교회 정체성에 심각한 질적 위해요소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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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 (220.92.106.76)
2008-02-03 01:47:16
그런 표현으로 비교를 한다면
불교인이나 무속인이 이 기사를 보고 법회와 푸닥꺼리가 부흥회 수준으로 전락해버렸다며 기분나쁘게 받아들일텐데요. 자신의 종교가 소중하면 남의 종교는 더욱 소중한 법인데 그걸 모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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