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 정신은 어디에? - 외면당한 아이들의 인권 - 
                                                                                                         광주성빈여사 전임 원장 남영숙

“성빈여사는 광주의 자존심이다”
특정인들의 기득권을 위해서 짓밟힌 아동의 인권과 성빈여사의 자존심을 되찾아야 한다.

그동안 사랑과 기도와 물질로 한결같이 성빈여사와 딸들에게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후원자님들과 자원봉사자 선생님들 그리고 관계기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

아동학대 문제로 말미암아 그 동안 쌓아왔던 성빈의 대외적 이미지와 위상이 큰 상처를 입은 것에 대해 전임 원장으로서 송구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아울러 무서워서 말 못한 채 고통당하고 상처입은 딸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외면당하고 있는 인권을 되찾아 주고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오늘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1991년 4월 1일, 인천YWCA총무로 일했던 나는 조아라 회장님의 부르심을 받고 광주YWCA 성빈여사에 입사했다.
남편은 80년 5.18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었고, 석방된 후 암울한 시국과 광주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몸부림치다가 84년 3월 급성 백혈병으로 소천하였다. 그리고 27년이 지난 금년 6월 남편 故 김영수 목사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며 상처입은 광주에 늘 빚진 마음으로 살던 나는 남편이 그렇게도 아끼고 소중히 여기던 고향동네로 내려 와서 가장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껴안아 보살핌으로써 그가 못다 이룬 일들을 내가 대신 하겠노라 결심하고 혼신을 다했다.

내가 처음 만난 ‘성빈’의 환경은 참으로 열악했다. 물론 앞으로 더 많은 발전과 진보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기는 하지만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형편이 많이 좋아졌다. 아이들의 삶도 직원들의 복지도 향상되었다.

광주성빈여사는 나의 인생의 황금기인 40세부터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곳이다. 그동안 뼈가 녹는 아픔을 견디며 조아라 회장님의 후임자로서 그 분의 신앙과 삶의 철학을 본받아 가난하게, 진실하게,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앎과 삶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성빈의 딸들과 한 집에서 17년을 살아왔다.

성빈 딸들이 희망을 갖고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해 불철주야로 일했다. 그동안의 경험과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을 총동원하여 후원자를 확보하였으며 아이들의 복지향상을 위해서 열심을 다했고 몸을 불살랐다.

민주적 운영을 위하여 직원 채용시 공개 면접을 실시하였고 직원 연수 겸 야유회로 제주도를 비롯한 국내 유명 휴양지로 1년에 두 번씩 다녀왔으며 일본 등 해외연수, 여행도 두 차례 다녀오는 등 직원 복지향상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하루가 24시간으로는 짧았다. 48시간이면 얼마나 좋을까? 늘 그런 생각을 했다. 시설의 발전과 아동과 직원의 복지에 최선을 다하려니 그만큼 할 일이 많았다.
덕분에 아동복지시설로서 성빈은 광주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졌으며 건강하게 시설운영이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정받았고 타 기관에 모범이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나의 갈 길을 당당하게 걸어왔다. 그리고 옳다고 생각한 대로 용기 있고 과감하게 일해 왔다. 하나님과 조아라 회장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다. 성빈여사 딸들을 품고 살았고 광주를 품고 살아왔다.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프로그램을 선정하여 성장시켜왔고 직원들에게는 일본의 M.K. 택시회사의 직원들처럼 자부심을 갖고 일하도록 적극적으로 이끌어왔다.

그러나 오늘 나는 진실이 왜곡된 사건 한가운데 외롭게 서 있다.
아동학대의 주범인 생활지도원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감춘 채, 강제해고를 주장하며 우리를 부당해고자로 고발했을 뿐 아니라 진실공방으로 시간이 지연되고 자신들이 불리해지자 심지어는 나에게 아동학대의 누명까지 씌우고 있다. 이 얼마나 얄궂은 일인가?

아동학대가 발각된 후 사직서를 내고 퇴사한 그들은 적반하장으로 언론기관을 통해 부당해고를 주장하였고 관계당국에 우리를 고발하였지만 자신들이 아이들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했던 일들을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지워낼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들의 눈을 볼 수 없어 사직서를 낸다 말했던 그들은 공포 속에 살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어 증언한 정직한 아이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음을 자신들만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공공서비스 노조에 가입하고 언론을 선점하여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었다. 성빈 아동들은 진실이 왜곡되고 있는 사실 앞에 커다란 충격을 느꼈고 학대받은 사실을 증언한 아동들은 불안에 휩싸이고 있다. 상습적 학대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아동들을 치유하기에도 시급한 성빈 가족들은 그들이 뿌려놓은 여러 가지 고발 사안에 답변서를 쓰면서 진실을 되찾고자 오늘도 여념이 없다.

도대체 우리의 외로운 싸움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만 하는가. 아이들의 진실은 방치된 채 아동학대냐 부당해고냐 하는 진실공방은 언제까지 이어져야 하는가. 아이들의 목소리를 관심 있게 들어줄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도대체 5. 18정신은 어디로 사라졌으며, ‘살아있는 광주정신’은 오늘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그 많던 양심세력은 다 어디로 갔는가.

12월 10일, 그들은 우리에게 타협을 제의했다. 부당해고 고발을 취하했으니 아동학대범의 표지를 떼어달라고, 그리고 복직시켜 달라고. 그러나 우리는 아이들의 인권을 놓고 그들과 거래할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12월 14일 다시 부당해고로 우리를 고소하였다. 아이들은 다시 증언대에 서야한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악몽과 같았던 고통의 순간들을 또 다시 떠올려 말하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까다로운 심의 과정을 거쳐 보건복지부와 광주시로부터 지원받게 될 2008년 아동숙사(아파트식 쾌적한 생활공간) 기능보강 건축비 10억여원과 중앙공동모금회 청소년 자립지원 3년 연속 사업 1억원 예산이 그들의 방해로 철회되고 말았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나는 인권을 유린당한 힘없는 아이들에게 진실을 밝혀주고 빼앗긴 인권과 평화를 되찾아 주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국가가 보호해야 할 불쌍한 아이들을 맡아 부모와 같은 사랑과 정성으로 보육해야 하는 생활지도원들의 아동학대 사실이 지금처럼 왜곡된 채,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 한다면 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힘을 가진 수사기관 또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라 우리는 생각한다.

광주의 인권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사회적 약자로 부모 없이 외롭게 살고 있는, 소외된 아이들의 억울한 목소리에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될 것이다.

도대체 하나님은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들추어내시어 나를 이 격랑의 한 복판에 세워놓으신 것일까? (20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