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최종운칼럼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논어에서 배우는 교회개혁 (11)…하나님 공의가 나타나도록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7년 12월 28일 (금) 16:37:48 [조회수 : 2784]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子曰 視其所以 觀其所由 察其所安 人焉수哉 人焉수哉.”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하는 소이(행동) 을 보고, 그 소유(동기)를 관찰하고, 소안(편안히 여기는) 바를 살피면,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어떻게 숨길 수 있겠는가.”

   
 
   
 
사람이란 자고로 그가 현재 하는 행동을 보고 그가 그렇게 하게 된 원인을 파악하게 됩니다. 즉 과거의 행적과 전력을 알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장사꾼이 아무리 돈을 벌어도 언행을 보면 지성을 알 수가 있고, 졸부의 행동도 그렇습니다. 강도, 사기꾼이 회개하고 신학해서 목사가 되어도 그 하는 행동을 보면 과거의 전력을 알 수가 있습니다.

소이(所以)는 ‘지금하고 있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소유(所由)는 현재의 상태에 이르게 된 동기나 이유, 원인을 말합니다. 소안(所安)이란 편안이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즉 여러 가지 취미와 기호, 그가 하고 싶은 것과 갖고 싶어 하는 것, 성취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통합해서 보면 그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를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정체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소이의 대표적인 행동은 골프입니다. 골프야 외국에선 건전한 스포츠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부정적인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는 게 보편적인 정서이자, 사실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모든 정치적, 경제적 부패 사슬고리와 로비가 골프를 치면서 매개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돈깨나 있고 권력깨나 있고 먹고 살만한 계층에서는 국내 골프를 뛰어넘어서 해외 원정 골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물론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아무런 제약이 없지만 그분들이 과연 그렇게 할 만한 과거의 떳떳함이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하물며 목사들까지 골프로 여가를 보낸다니 말이 됩니까? 참으로 한심스런 작태입니다.

우리는 정부 개각 시나 고위공직자 임명 시에 평소에는 그 사람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지만 신분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과거의 전력이 드러나게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국민들은 “아니 저럴 수가”, “그분이 어떻게”, “그렇구나” 하면서 평소에 몰랐던 새로운 사실에 대한 놀라움을 표시합니다. 그래서 정부 각료에 임명 시에 흠결 사항으로 좌천되기도 하고, 아니면 ‘최단명 장관’이란 오명으로 낙마하기도 합니다.

아는 만큼만 행동해도

국민의 종으로서 국가고위공직에 이르는 사람들이 한결 같이 과거의 행적과 전력 때문에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것을 보면 정말 우리나라에 인재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서글픔과 분노가 느껴집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부패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인선 시에 엄격한 기준으로 추천 받아 철저히 조사하고, 검증하였을 텐데 언론에서는 금방 새로운 범법, 부패, 비리 사실이 공개됩니다. 정말 국가를 리드할 공인의 일꾼(종) 인프라가 너무도 빈약하구나 하는 사실에 아무리 OECD 회원국이니, 선진국이니, 세계적인 0000라고 화려한 수식어가 붙여도 국가적인 청렴도에 대해서는 최하위의 수준에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학문의 업적과 정치적 리더십이 아무리 뛰어나도 도덕적,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 흠이 있는 사람들은 공직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머물러야 합니다. 아무에게도 영향력을 끼쳐서는 안 됩니다. 누군가로부터 정치인들은 숨 쉬는 사실 빼고는 전부가 거짓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터지면 일단은 오리발을 내미는 것은 정치 공식입니다. 나중에야 어찌되던 말입니다. 멀쩡한 사람도 정치를 하면 속물이 되어버립니다. 협잡꾼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교수도, 목사도, 신부도, 스님도, 다 해당됩니다. 하물며 아무런 도덕적 기준이나 절제력도 없는 일반 정치인들과 고위공직자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분들이 아무리 윤리 강령을 달달 외우고 사무실에 도배를 하고 그런 옷을 입고 다닌다 해도 믿을 사람은 없습니다. 공무원들의 채용 과목에는 윤리 시험이 있습니다. 윤리 시험을 만점 받았다고 하지만 그 사람이 윤리적인 행정 업무를 수행하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관공서를 출입하다 보면 현관이나 사무실 벽 액자에 미사여구의 표어가 걸려 있는 것을 봅니다. 저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감만 허공에 가득 찹니다. 실제로는 눈 감고 아웅하는데 말입니다.

대법원장이 과거 변호사 시절 수임료가 누락되어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세무 업무는 숫자가 생명이고 더군다나 소액이 아니라 거액인데 누락이 생겼다는 것은 억지에 불과합니다. 지속되는 고위공직자를 비롯한 국가의 녹을 먹는 공무원들의 청렴의무 위반 사실을 보면 이만큼 우리나라의 3권의 기관인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부패했다는 객관적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입법, 행정, 사법의 부패 사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속된 말로 ‘칼 들지 않는 강도’니 ‘합법적인 도둑놈’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지난날 행정 관서를 출입한 경험도 증명합니다. 법원에 가면 누구나 아들 낳으면 판사, 검사 시키겠다고 다짐합니다. 인허가 문제로 관공서에 가면 공무원의 위세에 기가 죽습니다. 경찰서나 파출소 앞을 지나가면 괜히 주눅이 듭니다. 운전하다가도 교통순찰차가 지나가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각종 규제나 미미하고 사장된 법규를 내세워 단속하는 법규 위반 범칙금은 모르긴 몰라도 빽 있고 로비 능력이 있다면 빠져나갈 사람은 다 빠져나가고 일반 국민들만 억울하게 당합니다. 결국 그 돈으로, 각종 수당으로 자기들의 배를 불립니다. 국민들의 돈을 합법적으로 수탈하는 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현재 망국병인 부동산 투기 문제도 공직자들만이라도 국가의 일꾼으로서 법을 지키고 윤리적 정도를 지켜서 자제를 한다면 부동산 광풍은 잠잘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공무원들이 국가예산을 내 돈과 같이 근검절약 한다면 국가예산의 20%는 충분히 절약되어 그 돈으로 노령화 복지사업에 충당되고도 남습니다.

공명현상이 침투된 한국교회

이쯤에서 교회 안으로 눈을 돌려보면 앞에서 언급한 사실과 별반 다르지 않는 모습이 눈에 띄게 됩니다. 사회 구조가 어떤 현상이든 개인과 개인 간, 조직과 조직으로 항상 공명현상으로 전염되게 마련이거든요. 이런 공명현상은 정직과 도덕적, 준법에 대해서는 아주 미미하지만 불법과 탈법, 비리, 범죄에 대해서는 증폭되어 나타나고 있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즉 이 말은 사회 구조에서도 그러하지만 교회 안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복음적으로 소금과 빛의 에너지가 사회로 공명현상이 되어도 시원찮은 판국에, 오히려 교회가 썩어 사회가 부정적인 현상이 생겼다고 사회는 냉소로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어떻게 복음이 순수하게 전해지겠습니까?

그렇다면 미래의 한국교회가 가야 할 방향은 정해졌습니다. 죄악적인 사회로부터 전염되는 공명현상을 전부 제거하면 됩니다. 출세 성공 개념을 수정, 일체의 뇌물과 촌지 거부, 물신 숭배 거부, 명예 감투 쓰지 않기, 세습하지 않기, 목사가 거드름 피우지 않고 일꾼화하기(종화, 청지기화), 교회 조직의 관료화 탈피, 대형 교회 건물 짓지 않기 등 이정도만 실천한다고 해도 초대 교회와 같이 좋은 소문이 사회로 공명되어 복음이 복음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교회개혁의 나비효과를 바라다

공의의 하나님이 다스리는 이 세상에 인간이 숨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여 나무 아래 숨은 것 같이 우리도 이리저리 숨는 것에 익숙하였습니다. 영원히 숨길 것 같은 우리의 죄들이 들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공자가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를 숨길 수 있겠는가”를 두 번 반복한 것은 비록 그가 하나님을 몰랐지만 이런 하나님의 공의를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강조 하실 때는 “진실로 진실로” 두 번 반복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공의가 인간의 죄로 인해 가려지고, 더렵혀지고 말살되는 사회와 교회 구조는 개혁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철저히 낮아지고, 소유를 포기하고, 자본주의의 죄된 풍습을 버려야 가능합니다. 이런 실천은 사회보다 교회가 먼저 하고 교회 안에서도 브랜드 목사와 대형 교회가 앞장 서야 합니다.

2007 평양대부흥운동이 구호로만 이벤트만 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대안으로 실천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저 추상적이고 몰사회적인 구호를 아무리 외쳐봤자 허공에 나는 겨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당위적인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알고서도 모르는 척 하는지, 한국교회의 미래가 걱정되지만 어쩌겠습니까? 미약하고 힘없는 무명의 필자이지만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지만 그래도 개혁의 목소리를 내어봅니다. 카오스 이론의 나비효과를 잘 아실 것입니다. 지구 한 쪽에서의 아주 미세한 변화가 그 반대편에서는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음을 전개하는 이론입니다. 예를 들어 태평양의 한 섬에서 나비가 날개 짓을 할 때 이는 바람으로 태평양 건너에서는 태풍으로 바뀐다는 이론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중국 베이징(北京)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 달 미국 뉴욕에서 폭풍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개혁의 법칙에도 그렇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역사와 중세 종교개혁의 역사에서도 카오스 이론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을 생각할 때 실망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개혁의 나비는 날갯짓을 하고 있는 숨은 개혁의 나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관련기사]

최종운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155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4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나그네 (68.238.231.91)
2007-12-30 03:56:34
태풍을 만드는 나비의 날개 바람을 기대하며
나비효과!.....
희망이 있는 얘기이고, 이루어 질수 있는 얘기이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얘기 이네요.
사회는 물론 교계와 교회의 목사들에게도 이 바람을 맞을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런 글을 읽고 있으면 이 바람이 나를 통해서도 좀더 커지기를 바라고 날개짓을 해 볼려고 하지만 밖에 나가면 오그라 들고 교회에 가면 준욱들고 하는것이 나만의 일일까요?

최 종운님이 올린 글이 나비의 작은 날개에서 나는 바람이 되어서 지구의 저쪽까지 옮겨 갈수록 커지길 바래 봅니다. 계속해서 쉬임없이 바람을 내는 날개가 되시길 바라는 마음 올립니다.
리플달기
7 6
t서대치 (121.129.18.145)
2008-01-16 18:14:20
팟스로마보다 더한 인간들
비판을 두려워하는 신앙은 tk기꾼 들 입니다 이런 인간이 카톨릭을
비롯한 타종교는 사탄 취급을 하며 배타적이며 죽어버리기를
통성기도하는 족속들입니다....언제나 철들까.....
리플달기
4 8
이필완 (121.160.10.67)
2008-01-16 13:47:04
안티는 많아도 교회 내부에서 교회를 비판하고 병폐를 꼬집는 곳은 너무 없습니다.
당당뉴스는 교회 내부에서 스스로의 문제를 지적하고 자각하는 매체가 되기를 원할 뿐입니다. 운영자 생각엔 교회가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잃은 것이 교회부패의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미담을 전하는 교회내부의 글은 많아도 스스로 뼈를 깍아내는 교회 내부의 비판과 병폐를 지적하는 글은 너무 적습니다. 기독교 내부에서 행하는 스스로의 비판과 지적도 안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님의 자유입니다.
리플달기
3 8
안티는싫어 (203.123.220.207)
2008-01-16 13:31:31
기독교 안티의 선두 주자. 당당뉴스!!
당당뉴스가 기독교를 개혁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없애버리자는 고도의 술수를
부리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는것은 왜 일까?

당당뉴스 편집자는 잘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과연 기독교의 병폐만을 꼬집어 기독교를 개혁할 수 있겠는가?

어떤 부모는 자기 자식에게 도둑놈 사기꾼 운운하며 자극을 주어
정신을 차리게 한다는 얼토당토않는 교육 이념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은 자식에게 상처만 주었고 말 그대로 사기꾼으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지적이 필요하지만 이토록
타종교인들이 열광하는 기독 정신의 말살 정책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한심한 일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누워서 침뱉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맡은 자리에서 나 하나만이라도 열심히 예수의 제자로
성장하는 것이 옳은 일일 터..

제발 심사숙고 하기를 바란다.
리플달기
3 8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