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양수리에 도착할 때는 이미 세 시가 넘어

늦은 점심을 먹고 가까운 세미원으로 갔다.

안내원은 네 시까지라며 문전박대하는 것을

5분 전이라 우기면서 막무가내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도 어쩌는 수 없었던지 모르는척 고개를 돌렸다.

그 틈을 타, 문에서 서성이던 몇 사람까지 들어갔다.

때가 겨울인지라 사방은 썰렁하고

온실만이 초록빛을 지키고 있다. 

세미원의 바람은 차고, 연못은 얼었지만

그리도 와보고 싶던 곳이라 이나마도 다행이다. 

그러나, 그런 감격도 잠시 

나는 병원에 있을 한 사람을 생각하니 가슴이 메인다.

그리도 반기는 산천도 나를 위로해주지 못하니....

한여름의 영화를 남기고 고개 떨구고 있는 빈연밥이며

바람에 누운 갈대마저도 오늘따라 내 마음을 슬프게 한다. 

혹시 문병을 가면 내 목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날 것도 같은데

혹시 내 목소리에 놀라 더 의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병을 단념했다.

그리고나서도 영 개운치 않은 내 마음....

西山으로 넘어가는 해님을 붙잡고 하소연했다.

"어제까지도 멀쩡했던 사람이 어찌하여 오늘 이런 모습을 해야 합니까?"

"남도 이러하거늘 가족의 걱정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천지신명이시여, 도와주시옵소서."

햇빛은 부서져도 저리도 아름다운데

사람의 몸은 망가지면 아무 것도 아니구나.

인연 따라 만물이 생겨나고

인연이 다하면 없어지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면서

생각할수록 슬프고 안타까우니 이 어찌 한다?

지는 해도 아름답듯이

우리도 떠날 때 아름답게 떠나자.

내일, 적십자병원에 가서

비록 듣지 못한다하드라도

평안을 주는 말을 하고 와야겠다.

해는 드디어 지고

나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자리에서

生과 死를 잠시 묵상했다.

가고 옴에 연연하지 말고 如如하자고....

이렇게 두물머리에서 하루를 마감하고

뒤돌아본 그 곳은 영롱한 불빛으로 말한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사십시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