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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스런 주거 환경 오히려 몸 망친다<논어>에서 배우는 교회 개혁(4)
최종운  |  pingan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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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2월 11일 (화) 07:46:52 [조회수 : 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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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君子 居無求安(자왈군자 거무구안)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거처하는 데 편안한 것을 구하지 아니한다.

입고, 먹고, 잠자는 것을 의식주라고 합니다. 이 세가지는 우리 인간들이 아담과 하와 이후 종말까지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공자가 말한 거무구안(居無求安)이란 군자가 사는데 있어 편리함과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처음에 말하였지만 군자란 의인이자 리더이기도 합니다. 사회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형이상학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인 장로와 목사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정황을 보면 군자들이 별로 없는 것 같고 소인배들이 투기, 검은 돈 챙기기,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대도시에 집중된 사치스런 주거 공간을 보면 인간의 죄성은 어디에라도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인간이 거처하는 데도 필요 이상으로 돈을 쓰지만 소인은 치지하고라도 군자도 그것을 모르고 편안함만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든 양극화의 골은 깊어져 가고만 있습니다. 주택 환경 낙후 지역을 재개발하여도 토박이 주민들은 살지 못합니다. 그것은 고급아파트로 변신하기 때문에 임대료와 관리비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입주권을 팔고 다시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사회는 지도층인 군자들은 편안한 삶을 넘어서 재산 증식을 위한 투기에 혈안이 되어 아파트를 시장에 거래하는 상품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정부 정책도 '시장경제는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경기 부양책 일환으로 투기 세력과 함께 거주 공간에 불과한 아파트를 시장 상품으로 생각하고 유통시키기 위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주택 정책은 여기서부터 계속 단추를 잘못 끼어가고 있습니다.

필요 이상의 공간, 오히려 해

아파트 평수와 집 평수, 사는 동네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합니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그리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불필요한 주거공간을 싫어한 공자는 불편하지만 작은 주거 공간을 좋아하였던 것 같습니다. 군자는 그런 곳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살아갈 길을 고민하였습니다. 필요 이상의 넓은 공간은 오히려 해를 줍니다.

인간에게 실내에서 활동하기 좋은 주거 공간은 한 사람을 기준으로 10평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실내 주거 공간의 기운과 사람의 기운이 조화가 됩니다. 두 명의 식구가 산다면 20평 정도의 아파트가 적당하겠지요. 만약에 40평 아파트에 2명이 산다면 안락한 주거 공간이 되지 않아서 조화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집안 분위기가 썰렁하게 됩니다. 아무리 인테리어를 하여도 사람의 기운이 공간의 기운에 압도되므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질병을 유발하는 간접인자가 되기도 합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일수록 정신병에 많이 노출되는 것은 이와 상관이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고층일수록 지기(地氣)를 받지 못하여 몸이 비정상으로 되어갑니다. 넒은 주거 공간에 살수록 가족들의 친밀도는 떨어지고 범죄에 노출되기가 쉽습니다. 한 세대 전만하더라도 방 한 칸에 많은 식구들이 올망졸망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친밀도는 자연 발생적이며 지금과 같은 가족 문제나 이기주의는 없었습니다.

사람 사는 규모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러 받은 땅이 갑자기 천정부지로 올라서, 로또 당첨으로 갑자기 돈이 굴러 들어와서, 졸무가 되어 평수 넓은 아파트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가 화목한 가정에서 불행한 가족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언론의 가십보도를 통하여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졸부가 된 가족들은 대개가 살벌하다 못해 가족 해체까지 이르는 지경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거무구안(居無求安)의 부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방 한 칸에 흥부 가족과 같이 식구가 많지는 않더라도 5~10명의 가족들이 올망졸망 모여 두레상에 둘러않아 밥을 먹었습니다. 이불 하나로 온 식구가 같이 덮고 잤습니다. 그때는 지금의 재활용 수거함에 버려지는 옷보다 더 못한 옷을 입고 지금의 개집보다 못한 더러운 방에서 생활하였으니 참으로 불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맛은 그때가 더 좋았습니다. 지금과 같은 각박함이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거주하는 공간은 자연을 떠난 인위적인 주거 공간이 절대적입니다. 초가, 기와집에서 슬라브 단독 주택으로, 다가구 연립 주택으로 지금은 초고층 아파트로 주거 공간이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편안한 공간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욕구는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언론에 의하면 국내에 50억 원을 호가하는 초호화 아파트가 별천지의 세상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게 전자동으로 제어되는 원격 조정 장치로 외출 중에도 아파트 안의 전자기기를 조정하는 것은 물론 옥상 혹은 베란다에 채소밭과 꽃밭이 구비되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엔트로피 극대화 공간

지금의 아파트라는 공간은 그리 좋은 공간은 아닙니다. 병든 공간이고 생명을 단축하는 공간으로 엔트로피가 극대화한 공간입니다. 평수가 넓을수록 고층일수록 우리 몸에 유무형적으로 해악을 가져다줍니다. 청소년들의 성적과 인생비관으로 인한 자살과 주부들의 가정불화, 우울증 탈출구로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엔트로피가 증대된 주거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자제력을 상실한 순간 단 몇 초의 망설임의 여유도 주지 않는 공간이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입니다. 과거에는 자살하기 위해 강으로 절벽으로 갑니다. 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립니다. 걸어가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모질게 먹었던 마음들이 풀어지기 마련입니다.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나무와 풀들을 바라보면 생명의 에너지가 생성됩니다. 특히나 강물을 바라보면 우울했던 마음도, 자살하려는 마음도, 누그러지게 됩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놓으신 자연의 환경이 주는 치유 효과입니다.

지금은 과거의 평면 구조의 거주 공간이 아니라 입체적 고층 공간인 아파트가 인기가 있습니다. 토지 이용률과 도시 문명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적의 공간과 편안한 주거 공간으로 인식되어 수요가 많아졌습니다. 그런 과수요로 인해 수도권 지역에서는 돈 놓고 돈 먹기식의 투기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과거의 평면 저층 위주의 주거 공간에서는 그냥 걸어서 오르내리고 생활하였습니다. 이러는 생활 중에 자연스럽게 운동 효과가 있기도 했지만 지금은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수고가 없이 아주 편리 신속하게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활 중에 얻어지는 운동 효과는 없어지는 것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부족한 운동을 하기 위해 헬스장을 찾는 어리석음을 연출합니다. 지난 제 글에서 언급하였지만 헬스장이 하드웨어적으로는 운동하기가 아주 좋은 공간이지만 소프트웨어적으로는 좋지 않은 공간입니다. 그것은 실내 공기가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전자기파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아파트의 거주 공간은 재료 자체가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 지은 흙과 나무로 지은 재료가 아니고 인간의 죄성이 가미된 화학적 재료가 거의 다 차지하기 때문에 아무리 초호화 공간이라도 결국은 탐욕의 죄성이 가득 찬 병든 공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언론에는 "아파트 건축 자재가 실내 공기 오염의 주범이다"고 경고하면서 "아파트 실내 공기 오염도가 위험수준에 달한다"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실내에는 천식 등 알레르기성 질환을 일으키는 여섯 종류의 화학 물질 '알데히드' 류가 검출되었고 '알데히드' 농도가 세 종류에서 서울이 제일 높았다는 것입니다. 건축자재 중에도 바닥재, 벽지, 인테리어, 가구 등의 접착제가 문제가 큽니다. 시멘트에서도 라돈 방사능, 석회독이 방출될 수 있습니다.

요즘 급속하게 퍼지는 비뚤어진 웰빙 중에 하나가 찜질방 문화입니다. 찜질방에서 잠을 잤는데 몸이 더 뻐근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산소 농도가 희박하고 미세 먼지의 오염이 때문입니다. 찜질방에 도배한 가짜 황토나 화학제품 마감에서 머리가 띵한 현상이 일어나며 피부가 따갑거나 하는 것도 인체에 해로운 포름알데헤드성 유기 화합물의 발현으로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준다고 하겠습니다. 찜질방의 시설이 하루 빨리 친환경 건축 자재로 시공되었으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는 않는 문제입니다. 굳이 원한다면 일인용 찜질방이 치료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에 만들어야 하지만 그것은 상업적으로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기 때문에 만들지 않지요.

성경과 다른 우리의 삶

우리 조상들은 주거 공간과 기초 공사의 단계에서 참숯, 소나무숯, 자갈, 소금을 묻었습니다. 옛 황토방 바닥재로 화강암이나 편마암 구들장 위에 황토 흙을 바를 때 볏짚을 황토와 섞어 발랐습니다. 이렇듯 친환경적인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오늘에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주는 문명의 편리함과 주거의 안락함 속에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보존하는 일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최우선적인 삶이 무엇인지 삶의 고민하는 신앙적 자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세상 문명이 주는 안락함과 쾌락을 추구하는 이중적인 삶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메시지와 삶의 현장과는 커다란 괴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메시지가 병들었거나 우리들 자신이 병들었거나 둘 중의 하나가 잘못된 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에게 직접 먹이시고 입히시고 잘 수 있는 처소를 주셨습니다. 공중의 새도, 들의 백합화도, 여우도 먹이고 입히고 굴에 자게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들도 그러합니다. 비바람을 피하여 어디에라도 우리가 누워있는 곳이면 잘 수 있는 곳이고, 거친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먹을 만한 음식입니다, 입을 만한 옷이면 유행과 패션을 고려하지 않고 입을 수 있는 옷입니다. 기독교 영화에 나오는 집과 옷과 음식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입는 옷은 헝겊을 어깨에 둘둘 말아 걸친 것에 불과합니다.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새로운 땅으로 가는 여정을 생각하여 보면 도저히 지금과 같은 의식주 환경은 상상도 못합니다. 세례 요한의 의식주도 형편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고 계시는데 어떤 사람(한서기관)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는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의식주에 비해 예수님 당시의 의식주는 지금 개집과 가축 우사보다도 더 열악한 환경이었을 겁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예수님은 이리저리 떠도는 유랑 생활을 하시면서 제대로 먹고 자고 쉬지도 못하셨을 것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집이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말씀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집이 없어도 하나도 부족하거나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열심히 하늘나라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 보내시면서 두 벌 옷을 갖고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느 집이건 들어가서 먹고 자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미리 모든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의 의식주란 지금과 같은 고비용의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손님 대접에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조상들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재워주고 밥 먹여주고 차비까지 주어 보내는 미풍양속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리 반 푼어치도 없는 상상입니다. 우리는 각박한 세상 인심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풍요와 정신의 풍요는 반비례하는 죄성의 원리와 역사적 경험이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범죄와 비리와 투기, 병든 음식 문화로 전 국민이 범죄자, 도박꾼, 환자가 되어가는 것은 그만큼 죄성이 가득 찬 문명의 편리함과 안락함을 추구한 결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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