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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하느님의 영광인가? 사람의 영광인가?
정기호  |  texas.ch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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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1월 10일 (토) 04:36:51 [조회수 : 3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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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서 사람들에게 눈으로 보이는 현상을 세계라고 말하고, 드러나지 않은 것을 계시라고 한다. 드러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이므로 예수를 믿는 다는 행위와 믿음이라는 말은, 교회 안에서 보이는 현상 즉 이 세계를 보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아니하 는 계시를 보도록 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가 열려야 한다.

요 13:31-32에는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 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의 영광을 구분 해 볼 수 있다. 요 5:44에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도 아니하니 어찌하여 나를 믿을 수 있느냐” 하였다.

서로가 영광을 취함은 이 세상에서 난리가 나는 현상이다. 서로가 영광을 주고 받는다.(박사학위, 법관, 의사, 좋은 대학교 진학, 사업성공, 운동경기 승리,증권대박, 등) 이런 영광은 드러난 이 세상(세계)의 일이다.. 그러나 오늘의 크리스챤들은 유일하신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거나 믿지도 않는다. 교회안에 성도들이 계시의 세계, 비밀의 세계를 믿으면, 즉 예수를 믿는 자들이 모인,지금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과연 일어날 수 있는가?

교회와 교회가 서로 원수가 되고, 교파와 교파가 반목하고, 서로 제주장이 옳아, 내교 회에서 하는 일을 다른 교회에서 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몰아 붙이므로, 죽은 후 천당가겠다는 사람들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똑같이 천당에서 일어난다면, 원수끼리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게 되는데 그들의 마음에 과연 천국이 있는 것인가? 같은 교회 안에서도 서로가 시기와 질투가 일어 나 반목하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박수칠 수 있는가?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한다 한다는 말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믿는 것인가? 믿지 않는가? 지금 교회가 믿지 않고 있다고 보아도 문제가 없다. 사람들은 보이는 세계에 나타난 것만 축복인 줄 안다. 이를 두고 서로 영광을 돌린다고 난리다. 예배학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은 인간에 대한 숭배는 없어져야 마땅한데, 예배라는 이름 을 붙여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장례예배, 칠순축하 예배, 결혼예배. 돐예배, 박사학위 축하 예배, 감리사 취임감사 예배, (감독) 등이다. 무슨 모임만 있으면 예배를 붙인다. 잘못된 일이다. 예배는 주일 낮에 드리는 공동예배만 하나님께 영광을 찬양하는 순서다. 나머지는 예배가 아니라 수요기도회, 주일 저녁 기도회,수요기도회, 속회 모임, 성서연구모임 등으로 불러야 한다. 묵도, 조용한 기도도 마찬가지다.(이를 안하면 이단인가?)

현재 필자가 나가고 있는 연합감리교회는 다같이 묵도하심으로라는 말이 전혀 없다. 목사가 자연스럽게 교우들과 인사말을 나누면서 예배에 임하게 된다. 지금 행해지는 연합감리교회의 예배 의식은 그대로 한국 교회에 전달되었는 바 “다같이 묵도하심으로”는 일제 시대에 신사참배에 대한 묵도로 시작하는 순서가 일본의 강제점령이 끝난지 반세기도 훨씬 지났으 나 한국 감리교회는 고칠 줄 모른다.

늙은 목사들이야 의식이 없는 수준이라고 보아줄 수 있으나 젊은 이들은 새로운 학문의 세계를 접한 분들이 이런 잘못된 관행들을 스스로 고칠 줄 모르고 선배들의 잘못된 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예배 순서를 개혁하려면 목사위에 군림하는 장로들, 묵도를 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몰릴가 겁이나고 밥그릇 잃어버릴까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개혁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본다.

이 세계(나타난것)의 것은 구약(육적) 차원이므로 복으로 불리운다. 솔로몬은 인간이 모든 영광을 체험하고 전도서에서 모든 것이 헛되며 이는 육적인 차원의 영광이라고 38회나 밝혔다. 나와도 들 어가도 최고의 복을 누린 것을 솔로몬의 경험하고 내린 결론이다.솔로몬 만이 이를 누릴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한지 사흘만에 이를 주지 않는다고 모세에게 돌을 던지며 원망이 터져나왔다. 솔로몬은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장수나 부귀를 구하거나 다른 나라를 쳐부수어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백성들을 억울하게 재판하지도 않았고, 편견을 가지고 백성을 다스리지도 않았다. 그가 유일하게 구한 것은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백성들을 굽은 판결로 억울하게 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 마음을 보시고 전부를 누리게 하셨다. 달라는 자에게는 주시지도 않았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이 무엇인가? 신약은 영적인 차원의 책이다. 신약에서는 땅의 영광을 구하라고 하는 곳이 한 곳도 없다. 오직 구하라는 것은”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다. 그러나 이 시대의 소위지도자들과 신자들은 달라고 금식하고 울고 불고 매달리도록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은 대로 따른다. 그들의 주장은 “금식하고 울고 불고 매달리면 하느님께서 지시는 척하고 주신다고 주장한다. 즉 병고쳤다고(귀신 물러갔다고.-김기동,신천지, 이초석등), 성령을 주신다고, 앉은뱅이 낳았다고(체면술이다) 박수치고 영광돌린다고 하는 것은 서로가 주고 받 는 영광이다, 육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영광 돌린다면 어느차원인가? 육적인 구약 차원이다.

서로가 주고 받는 영광은 예를 들면- 박사학위 취득에 대하여 친구가 찾아와 아들 어렵게 공부시켜 박사학위 얻으니 영광일세, 수고만았네,,,, 시골 동네에서 판검사 나오면 프랑카드 붙이고 영광을 주고 받는다. 그러면 소위 심령 대 부흥회에서 찾는 영광은 과연 진짜 영광인지 찾아보자.

요 6:1-15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다. 장정만 오천명이 밥을 먹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 이를 두고 영광이라고 하지 않았다. 지금쯤 이런 기적이 베풀어지면 간증하러 다닌다고 세계 교회가 다 뒤집어졌을 것이다. 14절에 예수를 억지로 임금으로 삼으려 하므로 산으로 피하셨다고 하였다.

요 5:1-9에 38년된 예수께서 38년된 환자를 고쳐주셨다. 성경은 이런 병고침을 영광이라고 하지 않 고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하였다. 왜? 간증집회 열라고? 우리 나라에서도 전염병환자를 격리 시키듯(조류독감, 전염성질환, 알콜중독, 마약중독, 정신질환(전염성은 아니지만 격리시킨다. )등의 환자들을 격리 시키듯, 당시에는 나병환자를 격리수용했다. 제사장에게 보이라는 이유는 제사장이 병낳은 증서를 써주어야 자유몸이 되고 그리운 고향으로 되돌아 갈 수 있 기 때문이다.

38년된 환자가 일어나면 지금은 비디오나 디지탈 카메라고 찍어 온 세계에 간증하느 라고 굉장할 것이다. 타 종교에나 무당도 병고친다. 정신적인 문제다. 현대교회의 치병역사는 100명중 하나가 나올까 말까이다. <2004년에 있었던 일이다.죽어가는 암환자에게 100만원 내면 안수기도 해 병고친다고 장담하여 필자의 처외사촌 처남이 돈 갖다 바쳤는데 며칠 후 장례식 했다. 자녀들은 목사에게 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지 않느냐고 항의하고 교회도 나가지 않았다. 다른 이종 처남도 같은 사람에게 100만원 갖다 주었으므로 200만원 받았고 기도해 주었는데 죽었다. > 전도관 계통에는 100만원, 200만원, 300만원 기도 패키지가 있다. 100만원은 안수기도, 300만원은 하룻밤 자면서 교주에게 특별한 은총을 받는 날이므로 매우 심각하다고 한다.

일반 의학은 8-90% 치료한다. (암, 에이즈 등 난치병도 가능한 시대가 온다) 전에 가난한 시절에는 신유의 역사가 강했다. 수십년 전의 60년대의 일이다. 그러나 현대 과학 문명이 발달한 지금에는 1/ 100도 되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새로워져야 한다.

막 5:35-43에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기사가 있다. 주님은 고치신 후 경계하라고 하였다. 교회에서 교인이 병낫고, 집사고, 승진하고, 좋은 대학가고, 판검사 되면 영광돌리고 주고 받는다. 만일 교인이 환란과 핍박을 받으면 저주 받았다고 한다. 신약에 저주가 어디있는가? 이미 정죄하는 율법은 요한의 때에 폐지되었고, 예수님 부터는 복음이므로 복음에는 저주가 없다. 현대교인들에 율법이 유효하다면 이미 교회에 다니는 자들은 다 죽었어야 한다.

마 8:5-13에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심>이 나온다. 여기서도 영광이라고 하지 않았다.
오늘 교회는 돈을 많이 바치면 주보에 내고 영광이라 한다.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을 싸게 쳐서 일하게 하고 많은 이익을 낸 장로 경영자는 교회에 수십억을 십일조로 바쳤다. 목사는 착한 교인, 축복받은 장로라고 광고하지만 일반 사회와 노동계에서는 손가락질 당하고 비반을 심하게 받고 있다. 즉 오늘의 신자나 지도자들은 육적인 사건이 잘 되면 영광이라고 말하고 감사 예배를 드린다. 과연 하느님께서 받으시는 감사예배인가? 형제를 억울하게 한 일이 생각나거든 제단에 제물울 두고 달려가 그와 화해한 후 예배하라고 주님은 가르치셨다.

요 11: 40에 <나사로가 죽은지 사흘이 된 후 무덤에서 나오자 “네가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 하였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예수와 바울과 사도들께서 <영광>이라는 말을 사용했는가?

마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그 행한대로 갚으 리니라” 하였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 사건이 영광이다. 재림이라는 말은 복음서에 없다. 다시 오시고 가시고, 다시가시고, 다시 오심이 반복되는 것이다. 재림은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지어낸 말이다.

영광이라는 말의 뜻을 성서에서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마 24:30-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자체가 영광. *마 25:31- 예수님이 오시는 사건이 영광. 치병이 영광이 아니다. *막 8:38- 내 말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면 인자가 올 때 너를 부끄럽게 하지 않겠다. *막 13:26 –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고후 1:20 “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느리라” 그러므로 보이는 현상은 진정한 영광이 아니다.

아벨은 하늘에 꿈을 두고 속히 떠나온 본향을 가겠다고 소망을 하늘에 두었다. 아브라함의 아들 중 이삭은 하늘에,보이지 않는 계시의 세계에 희망을 두었다. 이스마엘은 땅에 소망을 두었다. 예수님 은 33년 동안 하늘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음을 자처하셨 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썩어지심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썩어지는 밀알이 영광이라는 것이다. 십자 가의 죽음이 영광이라는 것이다.

땅의 것을 포기하고 예수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의 삶을 하나님은 받으신다. 또 그렇게 살도록 성경을 가르치고 가도록 안내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받으신다. 현대인은 보이는 세계만, 땅의 것만 나오면 그것으로 영광이라고 한다. 돈봉투 돌려 감독된 후 취임식에서 <이 자리에 서게하신 하느님께 영광돌린다고 말하는 감독은 돈과 교세의 힘으로 자기의 영광을 취한 것이다. 하느님은 돈봉투 돌려 감독된 자를 감독으로 인정하실까? 과연 하느님의 영광인가? 사람의 영광인가?>

계 14에는 3가지 열매가 나온다.(믿지 않는 세계의 열매, 참포도 열매(어린양이 인도하는 대로 따르는 자, 보이지 않은 세계를 사모 하며 십자가를 지고 뒤따르며 그것이 영광이라는 자) ,들포도 열매(진노의 포도즙 틀에 넣에 그 피가 1600리까지 넘쳐 흐르게 한다.)

고후 3:1-11에는 새 언약의 일꾼과 옛 언약의 일군이 나온다. 후자는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 이요, 후자는 영의 세계를 바라보고 영에 속한 일을 한다. 육적인 영광을 곧 시들해 지고 없어진다. 정죄의 직분은 율법으로 부터 오고, 의의 직분은 영적인 직분이다.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 지않은 세계로 영이 열려야 한다.계시록에 열린문이 나온다. 누구나 믿는 자는 다들어간다. 그러나 침례교회는 침례교를 믿어야 들어가고, 감리교는 감리교회를, 장로교, 형제교회, 순복음, 이렇게 교권으로 닫힌문을 만들고 있다. 마지막 때 계시록은 열린문이다. 닫힌 문에서 교육을 받지말고 열린문 교육을 받아야 한다.

고전 3:1011에 “지혜로운 건축자는 그리스도외에 다른 터를 닦지 말라고 햐였다. 그런데 교회는 세상것을 가지고 영광이라고 하며 거기에 참여치 못하면 아예 시기 질투를 부추긴다.

벧전 1:4에 시들지 않고 썩지 않는 영광 곧 영생(계시, 복음,유일하신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영광)과 시들고 썩는 영광(율법,육적)이 나온다. 어디를 가야하는가?
고후 5:1 만일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요 하늘 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하였다, 우리는 죽는 것이 아니다. 썩을 장막을 벗 어나 영생을 덧입는 것이다.
요 5:44에 “유일하신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도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하였다.
요 7:39에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니라” 하였다. 여기의 영광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이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는 성령이 임하시지 않는다.

출 17:6에서 반석에 서신 여호와를 쳤다고 하였다. 그 때 생수가 터졌다. 고전 10:4에 반석은 곧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한 알의 밀알이 썩음으로), 죽으심으로 성령이 임하였다. 이것이 영광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나 같은 죄인이 고난을 받고, 감옥에 있고, 굶주리고 ,매 맞고, 헐벗고, 죽음의 위험을 당함이 영광이라고 하였다,사도들도 순교함이 영광 이라고 하였다. 조금만 힘들어도 저주 받았고, 조금만 불편하면 화딱지 내고저주 받았다 한다.

예수의 삶을 따라가다가 교단으로 부터, 교인들로 부터 저주를 받고 이단으로 몰려 출교 당하거나 나죽도 록 맞아도 화가 나지 않아야 진짜 예수쟁이다. 김준우 박사가 예수의 삶을 생활로 살아야 한다고 제자들을 가르키다가 교권에서, 학교에서 추방당했다. 교단과 학교는 보이는 삶의 축복을 추구하는 구약적인 세계다. 홍정수 박사가 주장하는 “예수의 삶”은 이단이 이아니라, 그를 이단으로 재판에 걸은 김모 목사와 재판위원들과 이 세상의 보이는 축복과 영광만을 구하는 자(놈자)들이 이단이다.

나같은 죄인이 예수를 알게되고 믿고따르며(나그네의 삶) 예수로 인해 고난 당하고 힘들게 되어 영광의 주님이 저를 점령하시니 진정 영광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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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동부중앙 (220.70.209.33)
2008-02-27 01:28:24
신포리에서
목사님!
안녕하세요.
황복진권사 입니다.미국 생활은 어떠신지요. 보고싶군요. 계속 좋은 글 써주세요.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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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2
감리인 (220.121.193.164)
2007-11-10 08:30:55
감동으로 마음에 쌓입니다
아멘 공감합니다. 마음에 은혜로 감동으로 쌓입니다. 목사님 같으신 분들이 감리교회에 얼마나 계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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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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