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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2007 교회의 날 세번째 행사 '자신에게 길을 묻기'
송양현  |  song-100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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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0월 26일 (금) 15:51:18 [조회수 : 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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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교회의 날 물음 하나 ‘이웃에게 길을 묻기’란 시간을 통해 쏟아진 교회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 물음 둘 ‘자신에게 길을 묻기’란 시간을 가졌다.

김종원 조직위 집행위원장(새민족교회)의 사회로 김기석 목사(청파중앙교회), 안선희 교수(이화여대), 피경원 교우(향린교회), 김디모데 전도사(한남대 KSCF)가 패널로 참석했다.

다음은 이날 진행된 토론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 왼쪽부터 김디모데 전도사(한남대 KSCF), 안선희 교수(이화여대), 김종원 조직위 집행위원장(새민족교회), 김기석 목사(청파중앙교회), 피경원 교우(향린교회) ⓒ 당당뉴스 송양현  
 

지난 화요일에 열린 '이웃에게 길을 묻기'에서 정리된 개신교의 부정적 이미지>

기름진 이미지, 다단계 업체, 예수를 파는 행태
사회적 갈등 만드는 곳에 개신교 있다. 실로 암적인 존재
소수자들, 약자들의 인권신장 발목 잡는다.
민주화와 인권운동 개신교 긍정적 역할 인정하나 사회갈등 증폭, 무속신앙 맹비난
개신교의 정치참여는 온 국민과 시민을 기독교화화는 패권주의
진보진영에 대해선 돈 때문에 보수권 숙주 노릇 하지 말라

사회자/  이웃으로부터 들은 것을 해명하거나 정확한 이해를 돕는 작업도 중요하다. 더불어 개신교 비판의 원인을 깊이 성찰하는 시간이다. 이웃에게 길을 묻는 시간은 오해도 있었고 지나친 표현도 있었다. 하지만 의미 있고 중요한 시간이었다. 이런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할 것이라 여겨진다.

1.자신이 생각하는 기독교 이미지

안선희/ 개신교 부정적 이미지가 확대된 것은 인터넷 영향이 컸다. 지금껏 자신들의 이미지를 몰랐다면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찰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폐쇄적이란 말을 우리 스스로 긍정한다. 폐쇄적, 공격적이란 것은 종파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소유한 유일한 집단이란 의식과 우월성이 폐쇄성과 결합해 공격성을 만들었다. 다종교 상황을 한국 사회 내에서 종교적 시장 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다른 종교에 비해 후발 주자로 시작한 기독교가 조급한 나머지 다른 종교 집단과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려 했기 때문이다. 외부인에 대해 폐쇄적이고 교단 상호간 폐쇄적이다.

교단간 폐쇄적이란 것도 인정한다. 개 교회 공동체성은 함양됐으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폐쇄적이고 타인에 대한 공격성으로 드러났다. 이미지가 바뀐다고 해서 개신교가 개혁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두고 오래오래 꾸준히 뼈를 깎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독선과 오만, 자기중심적인 신앙이다. 성공 이미지와 기름진 이미지란 비난에 대해서는 많은 개신교인의 삶은 실제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개신교 설교가 적극적 사고방식의 변형이다. 성공학 매뉴얼로 여겨진다.

김기석 목사/ 교회가 자정능력을 잃었다.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철저히 목회자의 문제이다. 교회가 스스로 성장해가기 위해 제일 먼저 들었던 말이 구원의 방주였다. 이 말에 배타성이 있고 세상과 구별하는 배타주의가 담겨 있다. 오늘에 와서 계몽의 주체가 아닌 계몽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개신교가 이정도의 부정적 이미지로 여겨지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초월적 전망을 사람들에게 주는 것을 실패했기 때문이다. 개신교회가 현세적 물질주의란 사람들의 욕구에 철저하게 편승한 것이 오늘의 교회를 기형적으로 만들었다. 그런 욕구를 부정하면서 초월적 전망을 제시했어야 했다. 때문에 점점 자기 울타리 속에 있다 보니까 소통의 능력을 잃었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실을 잃어버리게 된다. 차이에 대한 존중을 배우지 못했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다.

김디모데/ 독선적인 기독교인에 대해 말하는 것은 소통의 문제이다.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교인들은 말은 잘 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않는 독선적인 모습이 있다. 교회 건물들이 주위와 전혀 어울리지 않게 건물을 짓는다. 그런 교회들을 보면서 비판을 하고 있다.

피경원/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집하다 보니까 타 종교를 적대시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 교회에 있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믿는 가치는 유일신 신앙에 입각해 정리되어 있는 자기 완결적인 신학체계를 확대 재생산하는 신학교, 신도들을 가르치는 목사 계급에 의해 굳건한 체제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자기 완결적인 체계를 갖고 자기 스스로를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류상태씨가 기독교가 반드시 소멸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 부분을 동의한다.

2.사회 속에서 보여지는 개신교의 행태(소수자 인권 신장 걸림돌, 맹목적이고 공격적인 선교 등)

안선희/ 가족 내 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 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은 인정한다. 전투적인 선교관이 많은 갈등을 빚는다. 순수한 종교적 의미가 탈색된 것은 개신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신교의 권력화 등도 일반 사회에서도 지닌 문제이다. 그러나 사회 내의 제도적인 종교가 지니는 공통적인 문제이며 한계이다. 이의 개선을 위해서는 사회 내의 권위주의, 조직 내의 계층간 문제, 성직자 윤리 뿐 아니라 모든 직업윤리를 해결하기 위해 기독교인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교회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문제와 해결이 되어야 한다.

김기석/ 교회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사회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맞다. 교회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 한 마디로 교회가 부자가 되더니 변심한 애인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서야 할 자리는 낮은 자리이다. 교회가 부자가 되면서 본래적인 일을 소홀히 했다. 우리가 회복할 것은 디아스포라의 시선 즉, 가장 낮은 자의 시선을 통해 교회를 볼 수 있을 때 교회의 설 자리를 바로 본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교회는 당신들의 천국이지 우리와 무관한 세상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이제 소수자의 시선에서 교회를 바로 볼 수 있는 자리까지 내려가야 한다. 부로부터 벗어나서 낮은 자리에 갈 것인가의 고민이다.

김디모데/ 기독교인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란 것이 그들에게 특별한 존재의 가치를 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암적인 존재’라고 하거나 갈비 기독교(갈수록 비호감인 기독교)라고 한다. 세습 문제,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 땅에 떨어진 도덕성, 신행 불일치, 성차별주의, 교회의 정치 세력화, 이단 사이비 종파, 잘못된 선교 등등... 아프간을 비판한 것도 선교방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에 대해 각인된 이미지가 그만큼의 울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경원/ 개신교가 빠른 속도로 정착한 것은 나름대로 긍정적 측면도 있다. 자본주의와 고도성장의 과정에서 개신교 전파 과정이 흡사하게 맞물렸다. 자본주의가 정착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에 대한 긍정적 또는 부정적 평가를 할 수가 있다. 여러 가지 중에서 몇 가지만 뽑아서 하나의 교리로 만들고 집단 체면을 거는 과정에서 개신교도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뒀다.(양적 성장) 사회복지사업이나 민주화 운동 등에 공헌도 했다.

3.긍정적, 부정적 측면

안선희/ 인권운동과 민주화 발전, 사회복지 사업에 뛰어든 것은 긍정적인 면이다. 반면, 기독교는 사회복지 단체를 운영해서 수익을 남겼다는 비판이 있었다.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과 봉사활동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최근 인권의식이 높아진 상태에서 일부 개신교에서 소수자 인권 침해하는 것은 부정적이다. 일부 개신교에서는 소수자 인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기석/ 긍정적인 측면은 사회민주화 기여와 사회복지에 적극성을 띄었다. 전쟁 이후 스스로의 자존심을 잃고 가난의식에 찌들었을 때 사람들을 격려하고 일으켜 세운 것은 긍정적 측면이 있다. 상한 심령을 부둥켜 안고 통계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다. 그리고 여전히 교회가 아름답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교회는 망할 것이라고 함부로 말은 못한다. 대형교회들의 부정성을 탈피하려고 하는 젊은 목회자들이 새로운 길 찾기를 하고 있다. 주류교회에서 탈주해 가고 있는 복음의 진수를 빨아들이려고 하는 젊은 그룹이 생겨나고 있다. 부정적 측면은 한국교회 강단은 성찰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천박해지고 흉함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도 교회 몸담고 있다면 교회가 지금도 갖고 있는 긍정적인 힘도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피경원/ 긍정적, 부정적 측면은 동전의 양면이다. 교회가 가르치는 것이 사회 참여적이다. 문제는 방향성이다. 긍정적인 것도 평가해야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게 가다보면 교리로 치우친다.

김디모데/ 긍정적인 면도 부정적인 측면으로 비춰질 수가 있다.

4.교회의 정치참여

안선희/ 개신교는 현실참여적인 의견에 동의한다. 정치참여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제도정치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시민사회로서의 지킴이로서 비판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아무리 진보정권이더라도 성직자들이 정치에 진입하면 지배올로기에 사로잡힌다. 진보든 보수든 권력지향이란 말은 맞다. 비판적으로 참여하되, 제도정치와는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김기석/ 일반적으로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모든 행위는 정치적일 수 밖에 없다. 나의 선택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정치적인 행위일 수 밖에 없다. 어떻게 정치행위를 해야 하느냐. 근본적으로 예수정신은 탈권위주의이다. 우리의 스승은 한 분이라고 말한다. 결국 기독교 정신은 지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신학자들도 밝혀주고 있다. 정치에 참여해 권력을 획득하려고 할 때 변질될 수 밖에 없다. 기독교인은 자기를 부정하면서 이 힘으로 세상에 초월의 빛을 가져오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세상을 변혁시켜야 한다. 노골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데 이런 행태는 자기 속에 권력의지를 투영한 것 뿐이다. 내가 지지했던 사람도 비판할 것은 비판할 때만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누룩의 역할을 할 것이다.

김디모데/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큰 힘이나 엘리트적인 권력의 힘을 가져야 하나님의 나라가 오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활의 정치 안에서 참여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부합하지 않는 생활을 겪고 있다면 하나님 뜻에 맞게 바꾸는 생활의 정치를 해야 한다. 제도권 안에 들어가 힘을 발휘하는 권력지향형의 탈을 쓴 정치행태는 지양되어야 한다.

피경원/ 성경에 입각해 진보든 보수든 정당성을 확보한다. 권위주의적, 권력지향적으로 변했다. 우리가 비판적인 기구로 남아야 한다. 광야의 소리로 남아야 한다는 것은 공감한다. 권력으로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은 공감한다. 무정부주의적인 가치를 표방하기 때문에 대통령선거 등을 흥미 있게 보긴 하지만 대안적인 가치를 갖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정당은 권력을 쥐려고 한다. 기독교 사회책임이란 측면에서 하는 행동은 근본주의 신앙과 맞물려 있는데 수구 반동적인 세력화이다.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는데 그것은 책임져야 할 일이다. 눈 먼 자가 또 다른 눈 먼 자를 끌고 간다고 생각한다.

5.한국교회에 바란다.

안선희/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 성찰, 역지사지 등이 나왔는데 이 의견에 동의한다. 성숙한 신앙을 위해 의심할 줄 알아야 한다. 넓은 의미에서 자신의 삶을 부여하는 것이 신앙이다. 기독교인들은 지식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지성화 될 필요가 있다. 인문 사회과학적인 시각을 수용해야 한다. 교회 내부에서 해결할 문제는 평신도 교육문제-영적인 성숙은 인격적인 성숙과 함께 간다고 교육해야 한다. 신앙교육이란 것은 성서교육뿐 아니라 인격적인 성숙도 할 수 있는 교육에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지나치게 조급하게 개신교 신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도교적인 가치와 삶의 태도 등을 내면화하고 체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표어식의 신앙’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표어식의 신앙이 삶으로 확대되는 교육이 필요하다.

개신교는 너무 설교 중심적인데 설교를 내면화하는 때와 장소를 제공받지 못한다. 상식과 이상이 통용되어도 신앙적일 수 있다는 의식과 목회자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 기독교의 본질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의식과 사회와 윤리의식, 사회적 식견을 가진 자가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신학교육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너무 쉽게 목회자가 되는 길을 막을 수 있으면 좋겠다. 교회의 정치구조가 민주화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평신도 조직을 교회 정치 의결 기구로 인정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그리고 65년 정년을 지키는 것과 은퇴 후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것을 실현할 필요가 있다. 힘을 과시하는 ‘매머드급’의 행사 지양하고 시급한 사회문제를 실천적 연대가 필요하다. 개신교는 전체적인 조망 하에서 사회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좋은 기독교인은 좋은 시민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지나치게 경제주의적인 관점과 논리가 교회에 들어와 있다. 상업문화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필요하다. 사회문화와의 관계에서 대안적인 가치와 삶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에서 힘을 갖고 다수가 되려는 성공지향주의 변화 패러다임이 일어나야 한다.

김기석/ 천박을 넘어 깊이 있게 들어가야 한다. 목회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기 위한 노력, 영적인 감수성의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개신교인이 자기만족에 겨워 홀로 만족하는 자라면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

김디모데/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소통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보수적이거나 근본주의적인 사람들에 대해 인내를 갖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신학교육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평신도들도 목회자와 교회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 희망을 가져야 한다.

피경원/ 중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부정이다. 예수님의 가치를 단순하게 따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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