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가다 점퍼 차림의 청년 하나가 길가에 놓인 국화 화분에 코를 들여다 대는 것을 보았다. 수많은 차와 행인들이 오가는 8차로의 길가에서 말이다. 국화는 시들하니 그리 신통하게 보이지 않아 향기라곤 날 것 같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청년은 코를 떼며 “향기가 없네.” 하며 맥없이 웃더니 갈 길을 갔다.

	국화 © 김학현

무엇이 꽃으로 하여금 향기를 잃도록 만들었는지 나는 모른다. 사람들은 공해 때문이라고도 하고, 자연적으로 자란 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억지로 꽃을 피운 탓이라고도 한다. 하여튼 요새 꽃에서 향기를 맡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런데 그 청년은 구청에서 내다 길가에 놓은 화분에서 향기를 맡으려 했던 거다.

이미 청년이 길 저 켠으로 사라지고 없는데도 난 멍하니 청년이 사라진 쪽을 보며 엷은 미소로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 꽃에서 향기를 기대하는 청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하다. 꽃에서 향기를 구하는 것이 당연한 행동인데도 난 차라리 청년이 이상한 짓을 한 것 같았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내 속에 그 청년의 순수함을 잃은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한참을 떼지 못하던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불신자들이 신앙인을 볼 때 어떤 기대를 할까? 그래도 몇 해 전만 해도 신앙인들이 불신자들보다 도덕적이고 양심적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더 사악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통계를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은 아마 그 청년처럼 처음에는 기독교인에게서 향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몇 번 그러다 향기를 맡지 못하자 실망해 버린 것이려니. 당연히 실망은 분노로 변하는 것이다. 더 사악해서라기보다 기대했던 것이 실망으로 돌아오자 분노한 것이라 말하는 게 옳을 거다.

향기 없는 꽃, 그래도 아름다운 자태와 색깔이 있으니 그런대로 보아 줄만하다. 빛을 잃은 그리스도인, 맛을 잃은 성도, 이는 무엇으로 보아주랴? 그러고 보면, 향기 없는 꽃만도 못한 게 향기를 잃은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가끔 꽃은 그래도 그 청년처럼 향기를 맡아보려는 낭만주의자라도 있는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서 향기를 맡아보려고 하는 사람조차 없다면 이 얼마나 황량한 일이냐. 그래도, 멈춰 서서 그리스도인에게서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한두 사람이라도 있다면, 난, 그리고 당신은 이래서는 안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