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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따라살기천박한 자본주의사회에서 예수를 따라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허종  |  paulhu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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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0월 23일 (화) 01:03:04 [조회수 : 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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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자주 예수를 따라살기를 하려는 모임을 보게 된다.

예수따라살기를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궁금해진다.

왜냐하면 나도 처음 예수를 믿은 후 부터 겉으로는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내심 예수님을 따라 살겠다고 결심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예수를 따라사는 것인지 모르겠다.

예수님은 결혼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책임이 없었고

예수님의 목회현장이라는 것이 나의 목회현장과 다르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은 공생애를 짧게 사셨기 때문이기도 하다.

(웃기는 생각이지만 1-3년정도는 공생애의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28년 동안 목회를 했으니...)

 

나에게는 사생애와 공생애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혼자 살때에는 공생애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결혼하고나니 공생애라는 것이 없어진 것 같다.

 

목회자의 생활을 공생애라고 할 수 있을까?

결혼하고 예수님을 따라살겠다고 하면서 살다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얼치기가 된 것 같다.

그래서 예수를 따라사는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궁금해 지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예수따라사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신통치가 않았다.

땅 문제 때문에 다투다가 흩어지고 마는 모습을 보았었다.

복장들을 독특하게 입는다고 예수를 따라사는 것은 아닐터인데

예수를 따라살겠다는 사람들의 복장은 좀 독특했다.

 

가정을 버리고 사는 것이 예수를 따라 사는 것도 아닐것 같은데...

그래서 결혼한 사람들이 예수를 따라살겠다고 하면 궁금해지는 것이다.

 

나는 처음 예수를 믿고 목회의 길을 가려면 무소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무소유로 사는 것이 예수님을 따라사는 첫걸음이라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소유의 삶을 살지 않으면 목회를 그만 두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여러번 글을 통해 말한 것처럼 혼자 살 때에는 가능해 보였는데

결혼하고 나니 무소유로 살기에는 걸리는 일이 너무 많이 생겼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교육문제도 만만치가 않았다.

내 아이나 남이 아이나 같다는 생각을 해도 내가 돌봐야할 아이는 내 아이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아이 먼저 돌봐야한다.

그래서 나는 냅다 기도만 한다.

(무소유의 사람을 살기로 결심한 때부터 내 사전에는 소유격은 없다고 했으니

내 아이라는 표현도 틀린 표현이다. 그래도 소유격을 없앴지만 혹처럼 따라 다니는 것이 가족들이다.)

 

예수따라살기는 나에게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예수따라살기를 하는 사람들이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살까?

 

나는 지금도 무소유의 삶을 산다는 결심은 변함이 없다.

프랑스에 올 때 큰 여행가방 두개를 가져왔었다.

그런데도 지금은 살림살이가 많이 늘어났다.

나의 무소유의 기준은 예금된 통장을 갖지 않고 나의 소유의 집을 갖지 않고

나의 소유의 재산을 갖지 않고 항상 빈 손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생활이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공급하심만 기대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활을 돕는다.

그러나 소유하는 것이 많아지면 예수를 따라살기는 점점 더 멀어진다.

최소한 것을 가지고 산다고는 하지만 교인들이 마련해준 살림살이가 만만치가 않다.

 

천박한 자본주의사회에서 예수를 따라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유한 것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회에서 무소유의 삶을 살겠다는 생각은 무모해 보인다.

아니 거짓되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얼치기다. 얼치기 예수쟁이다.

 

   
 
  ▲ 허종 목사  
 
그래도 나는 예수님을 따라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예수님이 가셨던 십자가의 길을 가기를 아주 간절히 원한다.

그래서 주님 보기가 부끄러워 냅다 기도를 한다.

주님이 부르시면 훌훌털고 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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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선 (124.5.227.111)
2007-10-23 19:29:05
감동입니다.그리고....
정말 정말 궁금한 것 한가지. 아시는 분 꼭 답해주세요.

신학적 지식이 전혀 없는 저는 루터 목사님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해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목사님들의 결혼으로 인해 '성직자'에서 벗어났고 돈을 사랑하며 부패케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왜 그분은 결혼할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성경 어디에 근거를 둔 생각이었을까요?

유치한 질문,조금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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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8
이용섭 (125.128.217.132)
2007-10-23 07:01:01
허종 목사님
기가 막히는 사진 하나를 한메일로 보내겠습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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