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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2,3, 완결편 모음)먼저 장개위가 이 개정안을 철회하고 심도 있게 연구한 후에 다시 상정한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방현섭  |  raceer6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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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0월 13일 (토) 17:18:25 [조회수 : 5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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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만남교회 방현섭목사  
 

* 이 기사는 젊은교회네트워크(http://racer69.pulun.net/) 자유게시판에 실린 방현섭 목사의 글이다. 필자의 허락을 얻어 게제한다. 원래 목회는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 이후에 계속해서 3편을 이어 쓴 것인데 운영자가 미처 알지 못하여 뒤늦게 나마 1,2,3,4편을 모두 모아 함께 싣는다.  그래서 긴 글이 되었지만 한번 꼼꼼히 읽어보시라. 목회자 수급 정책 관련, 젊은 목회자들의 생각을 단번에 알 수 있다.

 

80년대인가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 중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하는 영화가 있었다. 이규형이라는, 당시로써는 독특한 시각을 가진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였는데 지금은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안지만 그 제목 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 당시 영화를 보고는 '정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로부터 약 20여년이 흐른 지금 행복은 성적순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성적순으로 한 인간의 인생이 결정나는 시대,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일류대학에 들어가려고 발버둥치고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기꺼이 목숨도 끊을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우겨야 할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느낀다.

행복은 성적순일지 몰라도 목회는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어린 시절 우리를 감동시켰던 부흥강사들은 종종 자신 있게 자기가 신학교 다닐 때에 별로 공부를 못했었다는 고백을 서슴치 않고 했었다. 깡패가 회심하여 유명한 부흥사가 됐다는 설교에 감동을 받은 것도 기억한다. 세상적으로는 별 볼일 없던 사람이 예수님 믿고 거룩한 도구로 쓰였다는 설교에 경도되고 감동 받아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공부 잘하고 시험 잘 치는 사람들만 들어 사용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적순으로 사람을 뽑지 않으시고 당신의 계획에 따라 가장 적합한 인물을 들어 쓰신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 목회자 수급에 관한 장정개정안이라고 나온 것을 보니 가관이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설교를 하셨던 분들도 그 장정개정안에 동의하시는 것 같다. 결국 그 감동적인 설교는 사기였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증명한 셈이 된다. 아니면 그들은 전혀 하나님의 뜻을 읽지 못하고 있는 반신앙적인 목사들이거나.

만약 목회가 성적순이라면 국제적으로도 그 명석함을 인정받았던 변선환 박사 같은 분은 당연히 우리교단의 감독회장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동의한다면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할 필요도 없다.

이번에 기독교타임즈에 실린 기사를 읽고 가장 많이 분개하는 사람들은 이 장정의 적용을 받는 당사자들일 것이다. 아니면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은 있으나 차마 그 입술을 열어 발설하지 못하는, 연급의 굴레에 매어 있는 준회원들일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별로 관심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진급, 안수 등의 주제와는 상관이 없는 경우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이 문제가 당사자들만의 문제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본다.

1. 감리교회의 전통을 부정하는 처사이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감리교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감리교회는 지난 100여년의 역사를 통해 경건한 신앙과 냉철한 이성을 균형 있게 존중해 왔으며 확실하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사회 한 가운데서 드러내고자 기도했던 교단이다. 그런데 이 장정개정안은 그와 같은 상식, 복음의 원칙을 정면으로 거부한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

상식적이지도 않고 복음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복음적이지 않다 함은 이미 말한대로 성적순으로 신앙과 하나님의 계획을 재단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이지 않다 함은 현실적인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흔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법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채 한 기수가 안수를 받기도 전에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감리교회는 하나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전통이 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하나됨의 전통을 포기하고 분열과 반목, 대립의 구도를 만들게 될 것이 뻔하다. 이미 출신대학별 반목이 심화된 상태인데 요즘은 학부출신이냐 대학원출신이냐(M.Div)의 대립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다시 담임전도사 출신이냐 수련목회자 출신이냐 하는 새로운 편 가르기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2. 3년 목회지의 독식현상
요즘도 목회 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교인이 한 명도 없는 유령교회(이런 교회를 담임하시는 분들에게 누를 끼치고자 함은 아니니 양해를 바랍니다)라도 차례가 온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만약 교인이 한두 명이라도 있는 교회에 목회를 나가게 된다면 그건 정말 큰 행운이다. 전라도고 충청도고 자리만 있다면 '감사합니다' 하고 불원천리 달려간다.

그런데 앞으로 개정안이 통과되어 시행된다면 3년짜리 목회지는 아무나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닌 프리미엄 붙은 자리가 될 것이다.
어느 목사님은 아버지가 목사가 아니면 목회할 생각 안 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신다. 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그나마도 지원 받을만한 곳이 없어 생활이 힘들기 때문이다. 목사안수 과정에서 2년을 줄일 수 있는 자리는 분명히 특혜이다. 이런 자리는 거의 대부분 중대형교회 목사 자제나 장로 자제가 독식하게 될 것이다. 3년짜리 목회가 보장되는 자리는 이미 하나의 권력이 된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시험을 본다 해도 결국 아버지가 자기 자식 답안지를 채점하게 되는 꼴이다. 직접 채점하지는 않겠지만 이미 채점위원들은 다 친분이 있는 이들이 아니겠는가?
결국 이 개정안은 또다른 계급투쟁을 낳게 될 것이고 교단은 계급적으로 분열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교단에 큰 폐해를 낳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장점도 있긴 있다. 중대형교회 목사가 자기 자식들 목회하는데 나 몰라라 하지는 않을 테니 그 교회는 어느 정도 물질적으로 자립을 하게 되기는 할 것 같다. 개척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20명이라는 기준을 채우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자기 교회의 많은 교인들 중 20명만 이름을 빌려주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교회의 도덕성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3. 심사위원들의 자질
단독목회 혹은 개척을 하기 위해서는 심사를 받아야 한단다. 그러나 이처럼 적절하지 않은 말이 어디 또 있는가! 심사의 기준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이 평가를 받으라면 기꺼이 받을 교역자는 또 어디 있는가? 목회후보자들도 역시 교역자이다. 소명 받고 응답하여 나선 이들인데 이들을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심사하겠다는 말인지 의아하다. 오직 물을 수 있는 말은 소명의 확실성에 관한 것들 뿐이다.

준회원 자격심사만 해도 도무지 말도 안 되고 납득하지도 못할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교역자들이 해마다 심심치 않게 나온다. 많은 경우 학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준회원 심사도 이처럼 말이 많은데 신참들인 서리들이야 말로 할 필요가 있겠는가?

기독교타임즈의 장정개정안 기사 하단에는 평신도로 보이는 분이 쓴 댓글이 길게 달려 있다. 그는 새로 시작하는 서리들뿐만 아니라 기성 목사들도 역시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그만큼 기성 목회자들이 존경 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이 심사위원으로 자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까지의 관례로 보아 정당하고 적절한 심사라기 보다는 줄 세우기와 학연에 따른 차별, 기능적인 부분에서의 검증 등등 심사위원이 인간적인 잣대로 소명 받은 이들을 심판하게 될 것이 거의 분명하다.

회사에서 직원을 뽑기 위해서 인터뷰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목사가 되겠다고 부르심 받아 신학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기독교대한감리회라는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아니다. 심사라는 것은 최소화되어야 하며 목회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이 교단의 당연한 의무이다. 어차피 교단에서 주는 혜택이나 지원도 없으면서 왜 그처럼 깐깐하게 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4. 신학대학 입학정원의 축소 전제
해마다 세 개의 교단(신학)대학원에서 5백여 명을 배출해내고 있다. 이들은 (신학)대학원을 졸업함과 동시에 목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다. 물론 수련목회자 과정을 밟을 경우에는 소정의 자격조건을 위한 과정을 별도로 이수해야 한다. 수련목회자 과정의 파행적 운영에 대하여는 이미 많은 지적이 있어왔으나 넘쳐나는 졸업생들을 수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진급과정이고 이제는 어느 정도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왔음을 인정하기에 별다른 지적은 가급적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수련목회자 과정에서 겪는 진급당사자들의 불만이 있음은 심사위원이나 멘토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해마다 500여명이 졸업을 하게 되는데 목회자 수급 및 고시위원회에서 조정하게 되는 인원-대략 200명 선 안팎이 되지 않을까 한다-만이 목회를 할 수 있다면 나머지 300명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재수생들까지 감안한다면 해마다 시험에 응시하는 인원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300명은 결국 신학대학교 재정을 유지하고 선발된 200여명을 위해 존재하는 잉여신학생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은 신학대학교 혹은 기독교단본부에서 저지르기에는 너무나도 비도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심하게 말해 200명을 위해 300명의 주머니를 털고 갈취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런 발상은 예수 이름으로 저지르기에는 너무나 발칙한 생각임을 반성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만약 이 법을 시행하기 원한다면 교단은 우선 신학교에서 선발하는 입학 정원을 예상 선발인원의 1.2-1.3배 정도로 제한하여야 할 것이다.

5. 유전목회가능 무전목회불가
이 어렵고 험난한 목회자 진급 및 안수과정을 그나마 피할 수 있는 길은 기독교타임즈에서 지적한대로 교회개척이다. 교회를 개척하려면 무엇보다도 돈이 필요하다. 서울의 경우 지하실 3-40평을 얻는 데에도 보증금이 3-5,000만원 정도 필요하다. 물론 다달이 월세를 30-60가량 내야 한다. 입당을 위해 인테리어 공사를 간단하게 하는 것도 500-1,000만원 정도 소요된다. 교인이 하나도 없는 경우에는 목회자가 다달이 먹고 사는 비용도 큰 문제이다.

이 모든 비용을 보통 사람이 충당하기는 쉽지 않다. 소위 어느 정도 돈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중대형교회 담임목사의 자제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중대형교회 목사의 자제인 경우 아버지 교회에서 선교비 명목으로 다달이 지원해줄 가능성이 있다. 일반인의 경우에는 직장생활을 꽤 하고 퇴직한 사람의 퇴직금 정도가 가능하게 된다. 소위 정상적인 과정(신학교 졸업-신대원 졸업-군복무)을 밟은 이들은 개척은 꿈도 꾸지 못한다. 결혼자금이 없어서 결혼식도 계속 미루기 일쑤이다.
결국 돈 있는 사람만 목회하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

대형교회의 지원을 받는 사람의 경우에도 안수를 받은 후에도 그 교회에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안수를 받으면 아버지 교회나 아버지 친구 교회의 부담임자로 가게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3년 동안 나름대로 교회의 골격을 갖추었던 교회일지 모르나 안수 받고 떠나게 된다면 그 개척교회는 허공에 분해될 것이다. 아니면 비싼 프리미엄을 받고 거래될 것이다.
언제부터 목회가 성적 따지고 돈 따지고 했는지 모르겠다.

6. 목회자의 권위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될 터
시험으로 목회자를 선발한다면 그것은 교계 내 평신도들 사이에서 목회자의 권위가 상당히 훼손될 것이다. 시험점수가 정말 죽을 때까지 비밀리에 감취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수석으로 시험에 패스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간신히 턱걸이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평신도들이나 목회자들이 저 전도사는 수석 전도사, 저 전도사는 턱걸이 전도사로 보지 않겠는가?

턱걸이 한 전도사는 분명히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 것이고 평신도들도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좋은 성적을 받은 목사는 권위를 인정받겠지만 낮은 점수를 받은 이들은 권위가 땅에 떨어질 것이다. 목사들 내부에서도 이런 일이 있다면 평신도가 목사를 보는 태도든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성직자가 권위주의의 보루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정당하게 성직사로써 갖게 되는 권위까지 부정된다면 그것은 단지 몇몇 개인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몇몇 부정한 목사들, 물의를 빚거나 사회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목사들 때문에 전체 목사 직분이 전체적으로 매도를 당하는 현상을 보면 상상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7. 점수로 선발한다면 개체교회 담임직도 역시 점수대로 배분해야 한다.
나는 군생활을 카투사로 지냈다. 카투사교육대에 들어가면 3주간 영어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시험을 봐서 성적순으로 자대를 배치한다. 제일 성적이 좋은 이들은 소위 카투사의 천국이라는 용산에 군무한다. 그러나 하위 50%는 주로 보병부대로 배치를 받아 동두천, 의정부 등에서 체력적으로 우위인 미군들과 육체적으로 부대끼며 생활한다. 가끔 1등을 하고도 전방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빽에 밀리는 경우이다.

시험을 보는 경우에는 반드시 시험을 잘 본 사람에 대한 우선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한 결과이다. 만약 목회자 선발을 시험을 통해 한다면 마찬가지여야 할 것이다. 교회를 좋은교회 나쁜 교회로 나누는 것이 좀 모호하긴 하지만 만약 시험이라는 길을 택한다면 이것은 필연적이다. 시험 1등을 하고도-이 시험제도에 의한다면 시험에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것은 그 사람은 대단히 목회적 자질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전제해야 한다- 벽지 산골로 배정을 받는다면 그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가!

마찬가지로 시험을 잘 못보고 좋지 못한 성적으로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도시의 이미 자립한 교회로 배치를 받는다면 그것 또한 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험 성적이 나쁘다면 그는 목회자적인 자질이 비교적 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시험제도가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에는 1등으로 시험에 통과했음에도 목회지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만약 이 제도를 제대로, 잡음 없이 시행하기를 원한다면 성적순으로 임지배정을 할 각오를 해야만 한다. 즉 감독파송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설마 그럴까 하는 불명확한 점이 있다. 시험만 통과하면 교단에서 목회지는 책임을 지고 알선해 주는 것인가? 시험에 통과하고도 다시 목회지를 구하려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닐지 의문이다. 1등한 사람은 잘못하면 심각한 부당함을 느끼게 될 확률이 높다. 결국 교단을 상대로 싸우는 투사가 되지 않을런지.

8. 시험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출제할 것인가?
요즘 준회원들은 난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과정고시를 보기 위해서 3,000개나 되는 성경문제를 달달달 외워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에는 참으로 한심한 시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성경시험은 어떤 성경을 기준으로 출제되는지도 궁금하다. 요즘 감리교회 안에서도 개역한글성경, 개역개정판 성경, 표준새번역성경을 골고루 사용하는 추세이다. 특별한 경우에는 공동번역성경을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험문제는 어떤 성경에 근거해서 출제하는 것이 맞는가?

그래도 가장 정직하고 공정하게 채점할 수 있는 것이 이런 방식의 시험문제가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답이 뻔하기 때문이다. 답이 여러 개가 나오거나 채점자에 따라서 점수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객관식 문제를 내야만 시시비비와 잡음 없이 공정하게 시험점수를 매길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주관식 문제를 낸다면 이는 심중팔구 시빗거리를 만들게 될 것이다. 출신학교마다 보는 책이 다르고 가르친 교수가 다르다. 한 학교 안에서도 어떤 교수는 보수적인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리버럴하다. 교수마다 목회라는 관점에서 찍는 방점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주관식 시험을 본다면 어떤 신학이고 어떤 교수에게 수학했는지를 불문하고 전적으로 채점자의 성향에 달려 있다.

리버럴한 답을 써 냈는데 만약 그 답안지를 보수적인 성향의 위원이 채점을 하다면 결과는 뻔할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상상할 수 있다. 주관식은 서로 다른 배경에서 신학공부를 한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시험 보게 할 경우 문제꺼리가 돌출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고등학생 암기식 시험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명색이 목회자 후보를 모아놓고 시험을 본다는데 객관식 문제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일생일대 삶의 모든 것이 달려 있는 시험을 앞에 놓고 고시원에라도 들어가야 할 형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이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 교단은 정작 목회를 위한 준비보다는 시험을 위한 준비를 먼저 요구하는 교단이라는 오명을 얻기에 충분할 것이다.

9. 시험과 채점에 소요되는 비용은 어디에서 충당할 것인가?
올해 서울연회는 축제적 연회로 만들기 위해서 이런저런 리셉션이 많이 열렸다. 그런데 이 중에는 준회원들을 모아 놓고 축제를 즐기는 자리가 열렸었다. 광림세미나 하우스인가에서 준회원 부부들을 1박2일인가 모아 놓고 먹이고 재우며 기도하고 예배하고 교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했다. 세미나하우스 렌탈비도 지불해야 할 것이며 식사비며 행사에 소요되는 비용이 꽤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 이 계획을 듣고 참 좋다는 생각을 했지만 곧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 비용을 준회원 당사자들에게 요구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후에 듣기로는 그 비용을 준회원들에게 부담시키지 않고 행사를 진행했다고 하는데 확실한 내역을 알 수 없지만 만약 준회원들이 떠맡아야 한다고 해도 역시 그들은 군소리 없이 비용을 댔을 것이다. 준회원은 밉보이면 일이년 꿇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든다. 시험장소를 섭외하는데도 돈이 들고 채점위원들에게도 채점비를 지출할 것이다. 시험에 관련된 행정을 맡아보기 위해 출장을 나올 연회총무나 간사들도 출장비를 받을 지도 모르겠다. 인쇄도 해야 하고 시험장에 간단한 음료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 모든게 사실은 돈이다.

그런데 현재 사회에서는 시험을 볼 경우 접수비를 받는다. 대학의 경우에도 입학원서를 비싼 값에 판다. 어떤 대학의 경우에는 경쟁률이 높아서 이 입학원서 판매한 돈으로 한 해 살림살이를 하고 새 건물을 짓는다는 말도 있다. 준회원들이 과정고시를 볼 때도 역시 심사비를 연회에 낸다. 이 시험을 시행하면서 당연히 응시생들에게 돈을 요구할 것이다. 200명 뽑는데 400명 정도가 응시한다면 그 원서대도 꽤나 짭짤할 것이다. 그러나 이게 말이 되나! 자기 교단의 일꾼, 자기 교단의 미래를 책임지고 이끌어갈 사람들을 뽑으면서 그 비용을 개인에게 부과한다니. 혹시 장삿속으로 이 문제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발 아니길 바란다.

10. 수련목은 5년이나 봉사해야 한다.
야곱이 아내 라헬을 얻기 위해 총 14년을 외삼촌인 라반에게 봉사했다. 아내를 얻기 위해서도 14년을 봉사하는데 하나님의 성직자가 되기 위해 5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목회적 교육을 빙자한 심각한 노동착취로 전락할 위험요소가 다분하다. 수련목회자의 한 달 사례비는 얼마나 될까? 사택이나 공과금 등은 교회에서 지출해줄까? 참으로 궁금하다. 그런데 내 주위에 있는 수련목들만 그런 건지 경제적인 여건이 넉넉해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신학생과 신대원생, 그리고 수련목이 개교회 전도사 자리를 놓고 쟁탈전을 벌인다고 한다. 신학생을 월30-60만원 가량 주고(간혹 70을 주는 교회도 있긴 있나 보다) 파트타이머로 쓸 바에는 거기에 10만원 정도 더 얹어주면 대학원생을 쓰는 게 더 경쟁력 있다. 학부생보다는 대학원생이 더 폼나고 남자의 경우 군대도 갔다 왔을 나이이며 방학 때에는 매일 출근을 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원생에게 주는 사례비에 10-20만 원 정도만 더 얹으면(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안 해줘도 된다) 풀타이머 수련목회자를 쓸 수 있다. 수련목회자는 밤늦게까지 야근을 시키거나 잔업을 시켜도 된다. 그것도 정당하고 합법적인 목회적 수련의 한 방법이다. 목사가 되려는 사람이 당연히 거쳐야 하는 시련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잔업이며 야근이다.

그렇지 않아도 좀 가르쳐서 쓸 만하면 3년마다 나가게 되어 번거로웠는데 앞으로는 5년은 걱정 없이 데리고 쓸 만하게 된단다. 그것도 여전한 저임금으로 말이다. 못 참고 나가면 자기만 손해이다. 현행법으로는 단 한 번의 이적을 허용하고 있는데 튀어 봤자 벼룩이라고 옮겨 봤자 거기서 거기인 경우다 대부분이다.
연전에 교계를 뒤흔든 사건 중에 교회노조 결성에 관한 것이 있었다. 그것을 놓고 말들이 많았는데 앞으로는 감리교회 안에서 노조결성 혹은 노동쟁의 문제가 더욱 시끄럽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이 점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마 5년을 데리고 있었고 5년을 담임목사가 아버지처럼 가르쳤는데 5년 됐다고 머슴 내쫓듯이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를 개척해 주거나 목회를 나가게 된다면 물질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5년으로 늘어난 기간은 당사자를 위해서는 정말 훈련이며 또 고된 훈련을 통해 적당한 열매도 맺게 되는 기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가 되는 것은 열 중 몇이나 그런 특별한 혜택을 받게 될까 하는 것이다.

11. 목회후보자 교육과 검증은 교단 지도자가 아니라 학교가 해야 할 일이다.
신학대학교 혹은 신학대학원에서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앞으로는 M.Div가 필수라니까 7년이 될 것이다)을 꼬박 신학 한 길만을 걸으며 공부했던 목회후보생들이다. 교수들도 좋은 목회자를 길러낸다는 신념과 사명으로 최선을 다해 학생들을 교육했다. 그런데 그 긴 시간의 노력의 열매를 현장 목회자들이 전적으로 검증한다니 말이 되기나 할까? 만약 실천목회의 한 부분에 대해서 검증하겠다고 하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전인격적인 부분을 검증하겠다니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는 사실 신학대학교 교수들에 대한 명백한 도진이기도 하다. 교수(님)들은 교단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는 이 명백한 사실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목회에 나갈 만한 재목으로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신학교수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왜냐하면 길게는 6년씩 함께 지내며 얼굴을 마주하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신학교수들의 소견서를 받는 것이(물론 이도 100% 정당한 방법은 아니지만) 더 나을 것이다.

신학졸업생들이 공부를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 검증한다고 나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학교육을 강화해서 검증하지 않아도 될 만큼 공부를 시켜야 한다. 요즘 감신대의 모 교수는 알파코스를 수업시간에 강의한단다. 개인적으로 별로 동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차라리 신학대학교의 강의를 철저하게 검증하고 강화해서 학업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낙제시키는 방법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교단 지도자들은 신학대학교를 학부제로 만들고, 대학원 중심제로 만들고, M.Div 과정을 우선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이는 신학대학 4년 과정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처사이다. 3년만 공부해도 목사가 될 길을 열어주려는 발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질을 평가하겠다고 나서니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적인 이야기이다. 교단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사람을 별로 원하지 않는 것처럼 신학대학교의 정책을 변경해 놓고서는 이제 와서 실력이 어떻고 자질이 어떻고, 성적순으로 자르겠다고 하는 모양새가 어색할 뿐이다. 굳이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을 맞추려는 이같은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제대로 공부시킨다면 목회적 사명에 불타서 하지 말라고 말려도 개척하고 선교하고 교회를 세워 부흥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과 우리 교단 교인들도 비웃을 이같은 발상은 이제 접고 신학대학교를 제대로 가르치고 제대로 공부하며 제대로 실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욱 상식적이다. 교수를 더 많이 임용하고, 전공과목을 더 늘리고, 불필요한 교양과목은 정리하고, 필수적인 전공과목을 강화하는 것이 이따위 개정안보다는 더욱 현실적일 것이다.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이미 지적한대로 입학정원을 줄이든가.

12. 왜 모든 책임을 신학생들에게 떠 맡기려는가?
오늘날 목회자 수급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것은 과거와 현재의 목회자들 책임이다. 시스템을 제대로 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잘못된 장정을 개정하고 운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적인 원인으로 한국사회의 고령화 추세에 사회적 원인으로 개신교의 성장 둔화 때문이다. 이 모든 원인들 중에서 지금 현재 목회자 수급법의 적용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자초한 일은 한 가지도 없다. 전적으로 무죄하다. 그럼에도 왜 모든 책임을 다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떠맡기려하는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목회자리가 없는 것은 은퇴연한이 너무 길기 때문이기도 하다. 70세까지 목회를 하는 것은 성장이 둔화되고 개척이 어려운 현실에서 너무 늦다. 그러나 이런 고려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장정개정위원들이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65세에 은퇴하기에는 너무나도 건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목회자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M.Div 과정으로 전환하고 수련목회자 진급과정을 5년으로 대폭 늘리고 각종 시험과 교육으로 연단시키겠다는 발상은 출발점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한다. 교육을 받아서 자질을 향상시켜야 할 이들이 과연 아직 목회의 목자도 시작해보지 못한 신학생들일까? 그들과 대화라도 해보았나? 왜 그들을 교육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는가? 혹시 안수를 몇 년 전에 받은 젊은 목사들의 자질이 심하게 염려스러워서 신규 목회자들이라도 제대로 가르쳐서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가?

이런 고려는 기성목회자들로 인해 생겨난 것이다. 현재 목회하고 있는 목사들의 자질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현상을 보았기 때문에 이런 법안을 제출한 것일테다. 그러면 기성 목사들을 바로 잡아야지 왜 젊은이들, 신학생들, 목회후보생들을 규제하려고 하는가? 내가 만약 신학생 처지라면 상당히 불쾌했을 것이다. 나의 자질과 소명, 능력과 헌신이 전체적으로 의심 받고 있다는 생각이 당연히 들테니까 말이다.
왜 책임을 신학생들에게 전가하려고 하는가? 공평하게 짐을 나누어진다면 눈 딱 감고 넘어가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책임전가하려고 하는 발상에는 쉽게 동의가 가지 않는다.

13. 여론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독불장군 장개위원들
법은 공평해야 한다. 그리고 변동성이 적어야 한다(안정성). 이것이 법의 원칙이다. 그런데 지금 감리교회의 장정은 전혀 공평하지 않다. 전적으로 원로원의 편의에 의해 좌우된다. 부부교역자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번에 개정준비 중인 50%, 15%, 10%법도 마찬가지다. 안정적이지도 않다. 수련목회자 관련 법안은 입법총회 때마다 개정된다. 물론 처음 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겠지만 심사숙고하지 않은 흔적이 너무 심하게 나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공평성과 안정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여론의 뜻을 조사하는 단계가 있어야 한다.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으니 공평하지 않은 것이고 여론의 동태를 살피지 않으니 이런 저런 난관에 부딪쳐 수시로 개정할 수밖에 없다.

여론의 뜻을 물어 그에 합당하게 법을 제정해야 현대의 소중한 가치인 민주주의에도 합치한다. 여론의 요구가 현실상 수렴하기 어렵다면 절충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드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도 어려우면 최소한 설득하려는 자리는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에 이와 관련하여 공청회를 개최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얼마 전에 3개 신학대학교 학생들이 모였을 때 공청회를 대충 했다는 기사는 보았다. 그것 외에 여론을 수렴하고 여론을 설득하려는 시도는 무엇이 있었는가 묻고 싶다.

교단은 군대가 아니다. 상관이 명령하면 ‘충성’ 구호와 함께 경례를 붙이고 바로 시행하는 군대가 아니란 말이다. 상명하복식으로 교단을 운영하려 한다면 머지 않아 큰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14. 적극적인 돌파는 포기한 개정안
개정안의 전반적인 내용이 앞으로 ‘목회하기 쉽지 않으니까 최소한의 인원만 키워 유지하자’는 의도가 내포된 것 같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회사경영의 귀재들을 보면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욱 전투적인 투자경영을 해서 대박을 내는 이들이 귀감이 된다. 물론 무분별하고 방만한 경영는 공멸을 피할 수 없게 할 것이다. 그러나 목회는 하나님 나라의 경영이다. 인간적인 고민과 경영도 중요하지만 신적인 도우심을 의지하는 믿음이 더욱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지금 장로교 통합측은 사회선교에 매우 도전적이다. KNCC,나 기타 사회참여적인 단체들에 적극적으로 목회자들을 파송하고 있다. 수년 전에 감리교회 인원이 차지했던 자리가 지금은 거의 대부분 장로교 통합측 목사들의 차지가 되었다. 감리교회는 기관파송에 유난하게 인색하다. 월급을 주거나 무슨 지원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기반을 잃고 이제는 대안적이고 진보적인 목회를 통해 미래교회의 비전을 보여주는 교회가 감리교회에는 단 한 군데도 없다.

사회참여에도 이렇다 할만한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교회가 거의 손에 꼽힐 정도이다. 또한 기독교사회참여운동계에서도 존경할 만한 사람을 감리교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감리교회의 대표적인 인권운동단체인 ‘고난함께’에도 기관파송을 받아 나와 잇는 목회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자기 목회와 병행하여 인권운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니 목회나 인권운동이나 어느 것 하나 충분히 만족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고난함께(의 총무)’는 지금 전체 기독교사회참여운동계의 핵심에 서 있다.

물질적인 지원은 고사하고 인력적인 지원도 없어 일을 줄이는 형편이다. 오히려 기관파송을 전투적이고 적극적으로 늘려서 기독교계의 발언권을 높여야 한다. 군대교회 파송도 늘리고 선교사도 많이 뽑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누구든지 오라’고 해야 할 판이다.

수급이 어려우면 차라리 당사자들이 알아서 수급하게 놔두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누군가 얘기하듯이 그냥 시장원리에 맡겨도 될 일이다. 그냥저냥 어찌어찌 하다 보니 목회의 길로 접어든 이들이 아니라 사명 받고 부름 받아 나선 이들이다. 왜 그냥 ‘아무 지원도 해주지는 못한다. 그러나 열심히 하려는 일을 막지는 않겠다. 열심히들 해봐라’는 말조차도 하지 못하고 인색하게 구는가.
규제는 완화해야 한다. 길은 열어 줘야 한다. 소극적으로 수세적 입장으로 있어 봤자 나아질 것은 없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발상을 전환한다면 달라질 것이다. 달라지지 않는다 해도 지금보다 더 나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리하며
마음이 급해서 제대로 논리정연하게 지적하지는 못한 것 같아 아쉽지만 너무 길어지다 보니 이제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끝낸다. 말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내가 말 많은 인간이기도 하지만 감리교회가 정체돼 있거나 크게 잘못돼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또 안타깝다.

문제해결 방법은 명확하다. 신학대학교에서 입학정원을 줄이고 목회자 정년을 낮추는 것이다. 그러나 자금난에 허덕인다고 주장하는 신학대학이 신학생을 줄이자는 의견에 동의할 리는 없겠지만 감신대의 경우 정교수들이 억대에 근접한 연봉을 받는다고 밝혀졌는데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는 논리도 정당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다른 학교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정년을 낮추는 문제는 은급도 연관이 돼있고 해서 역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일생 안식년도 별로 못 찾아 먹고 목회하신 분들, 좀 일찍 쉬신다고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목회자 수급의 문제는 제한과 규제가 아니라 발상의 전환으로 풀어야 한다. 신학생들이면 모두 감리교회의 새끼들인데 왜 자기 새끼들을 줄 세우고 잘라내려고 하는가, 이건 부모가 자식 내버리는 것처럼 정말 비도덕적인 처사이다. 이미 신학생들은 상처를 받을 대로 받았다. 더 늦기 전에 새끼들을 불러 모아 보듬어 안고 품어줘야 한다. 그래야 이 교단에 미래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비웃는 것은 그렇다 쳐도 우리 안에서 우리 새끼들이 비웃는다면 정말 소망이 없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대다수의 기성 목회자들이 잘 알지 못하고 별로 관심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해당 분과위원을 제외한 일반 총대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고민했을 리는 없다. 그러면 아마도 쉽게 통과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더군다나 총회가 원로원화 된 상태에서는 말이다. 그들은 아무래도 민주적 절차나 다양성의 가치관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경직된 7-80년대 방식의 사고에 더 익숙해 있기 때문에 당장 눈앞의 가시적인 효과에만 관심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총회장을 점거해야 할까? 총회장에서 피케팅을 하고 반대성명을 내고 전단지를 뿌려야 할까? 당장 오늘부터라도 서명운동을 벌여 총회에 탄원서라도 올려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총회시까지 죽을 각오로 금식기도라도 올려야 할까?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먼저 장개위가 이 개정안을 철회하고 심도 있게 연구한 후에 다시 상정한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얼마나 존경스러울까!

벌써 주일 밤이 되었는데 이제 드는 잠자리에서 이런 꿈들이라도 꾸어 봤으면 좋겠다. 정말 우리 교단이 우리 자신들에게는 물론 세상 사람들에게도 존경 받고 칭찬 받는 그런 교단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 기도는 언제나 응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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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회 (121.184.232.159)
2007-10-19 01:08:06
꿈과 현실
난 은퇴 닥아온 노병이오! 이필, 이현 등을 좋아하오! 신경하회장이 한창 땐 얼마나 기대찼소? 그러나 그 분도 현실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지 꿈을 잘라내야 했소!( 난 그분을 존경만 하는 야인이오, 한번도 만난 일 없없는 존경인이에 불과하지요.) 김홍도를 죽이지 못하는 풍토가 한국 기독교의 현주소요! 찡그리리신 주님의 얼굴만이 우리의 시야입니다. 목회자의 얘긴 끝내도 될 시기가 됬습니다. 평신도들이 더 썪었습니다. 장로, 권사등등 까짜 투성입니다. 목사를 조종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희망이 없다고 예수께서 선언하셨습니다. 한국기독교는 일부를 제외하고 제거되야합니다. 하시겠지요! 그냥 이름없이 빛도없이 쬐끄만 농어촌, 소형교회에서 묵묵히 수단 부리지 않고 사역하는 목자들에겐 죄송합니다. 대형주의, 각종 프로그램 만들어 제 사상을 전파하는 자칭 큰 이들이여! 죽어라! 비 합법 제도를 만들어 교계를 어지럽히는 감독(감) 들이여! 죽어라! 세상 무서운줄 알아라! 정치인은 죄 없다. 정친 뺨친는 종교인이 문제다. 감독(감) 이 문제다. 에이 더런 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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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6
광야의샘 (58.234.166.12)
2007-10-14 01:48:02
없는 법 관례라면서 우기고, 있는 법 누가 법대로 다 하냐는데...
그러면서도 계속 법을 만드는 이유는?

기득권의 아성을 쌓기 위하여!!!

없는 법 관례라면서 우기는 것도 기득권층,

있는 법 지키지도 않으면서 교회 현실 안타깝다며 새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기득권층,

송사리 기들이기 해야 한다면서...

가지고 있는 것 나눌 줄 모르는 것도 기득권층....

음...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자들의 절반 이상이 목사, 전도사라네...

대단하신 분들...난 그렇게 길거리 전도할 용기도 없는데...

그런데,,,그 분들 못지 않는 배짱과 힘으로 자신들의 뜻을

법으로 관철하는 자들도 기득권층... 안되면 법을 만들어서라도 뜻을 이루는 자들,

우리같은 송사리들은 아예,,,???

장개위에 의견조차 내지 못하지...

감히 택함받은 입법총회장에서 발언인들 할 수 있을까?

그저 어르신들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교회와 교단과 이 나라와 민족의 복음화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법에

"충성,복종"하므로 순종의 미덕을 길러야 겠쮜이...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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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6
이필완 (121.160.10.67)
2007-10-14 01:17:25
이미 송양현전도사가 수정한 모양이네요.
사진은 전주 예수살기 모임 때 지역 답사 때 찍은 것입니다. 마음에 들면 보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그리고 미처 이어진 글을 제때에 갈무리하지 못하고 뒤늦게 기사화해 죄송합니다. 앞으로 혹 좋은 글이 있으면 [나도기자]란을 이용해서 글과 사진을 올려 주시면 언제나 환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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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5
방현섭 (58.229.139.84)
2007-10-14 00:19:18
중간에 글이 반복되는 내용이 있네요.
옮겨 붙이는 과정에 당당뉴스의 실수가 있었네요.
4-7이 두번 반복됩니다. 반복된 부분은 삭제하셔야 겠네요.
그리고 제 사진... 어디서 구하셨는데 후배 말마따나 조폭 똘마니처럼 나온 사진을 게시하셨나요. ㅋㅋㅋ
장정개정위원들이 서울연회 감리사 협의회가 기독교타임즈에 실은 장정개정안 반대 광고때문에 패닉상태에 빠졌다는 말이 들리던데, 아직 감리교단에 상식적인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같아 희망이 생깁니다.
악법은 말살되고 부당한 개정시도는 처음부터 거부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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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신학생 (218.155.237.194)
2007-10-13 22:46:35
목사님의 글을 보니 마음이 시원합니다...
기도가 응답되기를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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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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