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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일, 그리고 살림
김영동  |  wewind@kmcweb.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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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8월 25일 (목) 00:00:00
최종편집 : 2009년 01월 21일 (수) 03:17:25 [조회수 : 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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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일, 그리고 살림


♠ 조심스럽게 들어가는 말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말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과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자못 평등한 듯 어우러져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도 길거리를 채워 무리 짓는 대립과 사회갈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과 일이 서로의 권위와 권익을 주장하며 심각하게 다투고 있음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그리 멀지 않은 어제로 가보면 일을 전문하는 사람들은 천대받는 계층들이었고 말을 전문하는 사람들은 높임 받는 지배자들이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는 아직도 그 흔적이 짙게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가 온 몸의 능력을 배워 익혀 일을 잘하는 일꾼이 되기보다는 머리만 잘 굴려 말을 잘 배워 일꾼을 부리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그래서 대다수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일을 배우는 교육보다 말을 배우는 교육으로 몰아세우고 대단한 사교육비까지 마다하지 않으며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지난 세대와 달리 일을 업신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많이 변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일을 천시하는 여전한 문화적 상황에서 살림을 논한다는 것은 자칫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내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다.


♠ 정신 없이 휘도는 말

살림은 반드시 일(육체 노동)을 동반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일(온 몸의 노동)을 해야하는 그 어떤 것도 무시되고 천시되어 아직도 존중받지 못한다고 말하면 지나친 나의 주관적인 평가일까? 그러나 일반적인 우리의 상식으로 살림은 가정의 일이요, 주부의 일이라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살림이 가정의 일, 주부의 일이라는 국한된 말뜻으로 인식되는 것은 육체 노동을 동반하는 살림은 전혀 존중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특별한 부류가 아닌 다음에야 우리 모두가 신앙과 신학을 배울 때 단 한 번이라도 하나님이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이 노동(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천지 창조조차도 하나님께서 일이 아니라 말씀으로 세상만물을 지으셨다고 전해 들었고 우리는 감격스럽게 아멘을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예수님의 구원사역이 일(노동)이라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을 만나 본적이 없다. 예수님이 인간을 구원하신 것은 말씀인 복음이라는 기쁜 소식이라고 전해들었고 말씀이신 예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배워 익혔다.

분주하게 식탁을 차리던 마르다의 요청이 핀잔을 듣는 상황이 교회 강단에서 반복 재생산되면서 예수님 발아래 다소곳이 앉아 말씀을 경청하는 마리아야말로 신앙인의 표상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말이 판을 치는 세상' 누가 있어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말이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사는 이 사회와 교회에서는 아직도 일(육체 노동)보다 말이 높임을 받고 존중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같은 세상과 사회가 정말 옳은 것인가? 바람직한 신앙의 길일까? 처음부터 다시 세밀하고, 세심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 말의 자리

말은 이제 겨우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다. 아기가 말(단순한 소리와 다름)을 먼저 배우지 일(단순한 행동과 다름)을 먼저 배우지 않는다. 일보다 말이 낮은 단계의 자리이고 말보다 일이 더욱 능력이 요구되는 높은 단계의 자리임을 깨달아 알 수 있다. 그러니 말이 가장 중요하다고 대접받는 수준은 오히려 실전은 꿈도 못 꾸는 이제 겨우 배우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머릿속 생각으로 자신들이 대단하고 마치 무엇을 다 알고 하는 양 특권의식을 갖는다. 실천하는 현실이 없으니 머리에 쥐가 나도록 복잡하기만 하고 오직 입만 살아있다. 사실은 쥐뿔도 모르고 실천해볼 의지력도 없는 말로만 해보려는 자들로 온 몸의 능력이 필요한 일과는 상관없는 나이 들수록 철없고 서툴고 한심한 무리들일뿐이다.


♠ 일의 자리

배운 것을 실천해야 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에겐 말보다 온 몸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현장의 다양한 사실을 확인하고, 미세한 차이를 분별하고 정확한 순리로 진리를 재현해 내는 창조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입보다 온 몸의 능력인 손발이 분주하다. 일의 자리에서 입이 아니라 손발로 산다는 것! 사람다움의 특별한 은총인데도 손발로 살아보면 말뿐인 말쟁이들에게 소홀한 대접을 받곤 하지만 온 몸의 능력을 요하는 일은 집중력과 많은 시간이 요구되기에 그런 무시당하는 것조차 관심 밖의 일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일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변화시킨다. 그래서 일은 성숙한 어른다움의 몫이기도 하다. 그러면 너도나도 성숙한 어른이 되길 원할까? 글쎄다. 성숙한 어른다움을 이루려면 눈물과 땀과 피를 흘릴 각오를 하고 온 몸의 손발로 세상을 변화시킬 일에 참여해야 하리라. 머리만이 아니라 온 몸의 능력을 요하는 일에 참여하면 비로소(처음으로) 지금도 살아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섭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말꾼이 아니라 일꾼인 하나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야말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유일한 분이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말을 전하는 구약의 예언자 같은 사람이 아니라 말씀이 생활이 되고 일이 되는 일꾼이신 하나님의 가장 뛰어난 일꾼인 하나뿐인 아들이시다.


♠ 말과 일의 자리

누가복음 24장 19절의 '말과 일에 능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구약성서의 간절한 말인 예언자, 그 예언 말씀의 실천인 공생애(예수님은 아버지가 일하니 나도 일한다며 구체적인 일들을 한다) 동안 예수님과 함께 살아 본 신앙인들의 예수님 인식이다. 그들은 무심결에 '예수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들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한 분'이라고 고백을 한다.

말과 일에 능한 예수님! 우리가 본받으며 살아야할 우리 시대의(오죽하면 국민이 대통령이고 참여 정부겠는가) 바른 신앙모범이다. 말과 일이 예수님에게서 비로소(처음으로) 한 몸이 된다. 사람살이에서 말과 일의 하나됨! 이것이 복음의 실체요 요체이다. 말은 생각과 입만으로 되지만 일은 생각과 입을 포함한 온 몸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결코 되지 않는다. 참여해서 손발이 움직이지 않으면 결코 일은 안된다. 그러니 말의 단계를 지나 일이 능숙해져야 비로소 말과 일에 능한 사람이 된다.


♠ 이야기꽃이 만발하는 살림의 자리

자,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우리 시대의 신앙인이라면, 우리 시대의 바른 기독교인이라면 말과 일에 능한 예수님을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필히 말과 일에 능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말과 일에 능한 사람이 되는 길! 신앙의 순례길인데 잠시 멈춰 서서 여길 자세히 보라. 말은 자라 일이 되고 일은 마침내 열매되어 다시 말이 된다. 이 말은 이전 말과 달라 사람들이 구별하여 이야기라 불렀다. …이야기(말+일)… 아, 그래! 말과 일에 능한 예수님의 생활에서는 늘 이야기가 생산되고 푸르렀고 꽃을 피웠다.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고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린 여인의 이야기가 혹 단순한 말이 될까봐 생명이라는 이야기꽃인 예수님은 복음이 전파될 때마다 이 여인의 이야기(말+일)가 이야기(말+일)로 전해지도록 하라고 특별히 당부하셨다. 단순한 말이 아니라 말과 일이 하나되어 이루어진 열매인 말은 더 이상 단순한 말이 아니라 생명이 담긴 이야기인 것이다. 바로 이 이야기가 복음, 곧 기쁜 소식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살이를 살림이라고 말하는데 살림이라는 말은 말과 일에 능한 사람이 살아 일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말과 일에 능한 사람이 살림을 하면 살아야 할 생명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된다. 말과 일에 능한 사람이 가정 일을 하면 가정 살림을 잘하는 것이고, 교회 일을 하면 교회 살림을 잘하는 것이고, 나라 일을 하면 나라 살림을 잘하는 것이 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5장 45절에서 사람은 산영이요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라고 정의 내린다. 살리는 영이 바로 성령이요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모범을 삼을만한 생명의 살림꾼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니 한 사람 안에 말과 일이 하나가 되는 상황을 우리는 살림이라 말한다. 각자 자기의 일터에서 살림을 사는 사람은 말과 일이 하나가 되는 말과 일에 능한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이야말로 살아 계신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된다.


♠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런데 이 세상에는 아직도 하나님이 주신 복이 자기 것임을 깨달으면 신앙인이요 그 주신 복이 생활과 살림을 통해 자신과 이웃 속에서 자라게 하면 일하는 능력의 사명자가 되는 것도 모르고 여전히 온 몸의 능력을 요구하는 일은 뒷전이고 축복! 축복! 축복을 주소서! 하면서 복덩이 애 노릇이나 하겠다는 말쟁이, 말뿐인 기독교인들이 정말 징그럽게 너무 많다. 그런 딱한 현실에서 우주의 살림꾼인 일하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말과 일에 능한 예수 그리스도를 쫓아 말과 일에 능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인 살림을 이야기하는 것이 참으로 막막하고 내 스스로도 낯설기 짝이 없다. 예수님 당시엔 어땠을까? 그땐 지금보다 나았을까? 아니면 더 막막했을까? 제법 궁금하다!

아, 이젠 끝내야할 결단의 자리이니 이 한 말씀 벗님들께 축원 드린다.
'그 사람! 정말 매력 있는 멋진 살림꾼이지!' 벗님들이여, 우리 그렇게 하나님과 이웃들에게 그리고 풀잎과 작은 풀벌레와 흔한 돌멩이들에게까지 살려주는 매력 있는 멋진 살림꾼으로 기억되시길 축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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