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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하는 교회의 특징-8] 가망성이 없는 고집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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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9월 26일 (수) 11:19:33 [조회수 : 5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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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기사는, 지금은 그 역할을 다한 것을 자임하고 아쉽게도 문을 닫은 복음과희망(www.gospel-hope.org/)에 실렸던 '작은이'님의 글, 14회 분량을 차례대로 연재하는 것이다. 미주<복음과희망>이 <복음과개혁>으로 새로 태어났다 http://www.gospelreform.org/  
 
[분쟁하는 교회의 특징-8] 가망성이 없는 고집통들                                               

사전적인 의미로 고집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쓸데없이 계속 부리는 고집을 닭고집, 검질기게 센 고집을 쇠고집, 아주 심한 고집을 옹고집, 융통성이 없이 외곬수의 고집을 외고집, 지독하게 센 고집을 황고집이라고 부릅니다.

교회내에 고집을 피우는 목회자, 고집을 피우는 장로가 있다면 그 교회는 틀림없이 분쟁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죽어도 자기고집대로 말고나가는 목회자가 있는 교회는 괴롭고 어둡고 불행한 교회가 됩니다. 죽어도 자기고집대로 처리해 나가는 장로가 있는 교회는 시끄러운 교회가 됩니다.

고집에도 레벨이 있습니다. 고집을 피우다가 겁주면 고집을 포기하는 고집초단이 있습니다. 고집을 피우다가 명분이 생기면 포기하는 고집이단이 있습니다. 권위의식 때문에 고집하다가 또 다른 권위가 주어질 가능성이 있으면 포기하는 고집 삼단이 있습니다.

틀렸는데도 옳다고 주장하다가 증거가 드러나면 포기하는 고집 사단이 있습니다. 틀렸는데도, 끝까지 옳다고만 주장하는 고집 오단이 있습니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차라리 함께 죽자고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고집 육단이 있습니다.

그런데 잘못된 것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을 다 죽이고 나 혼자 살겠다는 고집 십단이 있습니다. 고집 십단은 한마디로 "입신경지에 도달한 고수의 고집통" 입니다.

성경에서 고집십단이 누군지 아십니까? 바로 "바로왕" 입니다. 열가지 재앙이 주어질 때까지 고집을 부렸습니다. 애굽의 모든 장자들이 죽을 때까지, 즉 죽음을 맛볼 때까지, 한마디로 뜨거운 맛을 볼 때까지 고집을 피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고집십단보다 훨씬 대단한 고집 십일단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집십단을 넘어서 홍해바다를 건너면서 40년동안 고집을 피웠던 이스라엘백성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의 고집때문에 여호수아와 갈렙만 남고 전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개역성경에서는 "목이 곧은 사람"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공동번역이나 표준새번역 등에서는 "고집" 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고집통들 속에서는 확률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응답받을 가망성이 극히 낮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앨백성들의 숫자가 거의 200만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요단강을 건넌 것을 보면 100만분의 1이라는 확률이 나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탈출하여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롯과 딸 둘이었습니다. 홍수심판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숫자는 노아가족 여덟사람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누릴 사람들의 숫자, 구원받을 사람들의 숫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증거들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다면 구원받을 숫자가 드물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안심놓고 함부로 놀고 까불다가 큰 코를 다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이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마태복음24:37)"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휩쓸어 가기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마태복음24:39)"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누가복음18:8)"

고집 뒤에 반드시 따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불통" 입니다. 한마디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고집불통=의사불통" 이라는 말입니다. 분쟁하는 교회 안에서 고집을 피우는 목회자나 장로를 가족과 주위의 친구들이 아무리 설득하여도 "들을 귀을 잃어버린 고집불통, 의사불통" 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한마디로 소귀에 경읽기 식으로 되어버립니다.

아마 인간의 속성 중에서 가장 고치기 힘든 첫번째 죄성이 바로 "고집" 일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고집" 이 어느 정도 무쇠처럼 단단한 가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고집이 얼마나 문제가 되었으면 하나님의 청지기가 지켜야 할 금기사항에 들어가겠습니까?

"감독(목사, 장로)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디도서1:7)"

분쟁하는 교회에서 틀림없이 볼 수 있는 특징은 앞뒤가 완전히 꽉 막히거나 의사소통이 불능인 "고집불통의 목사, 고집불통의 장로" 가 존재합니다. 이 고집이 얼마나 세었으면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장로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는 말이 나오겠습니까?

한 가지 알아야 할 사실은 이러한 고집불통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도 꺽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즉 자기 고집 때문에 자기가 망하고, 자기 고집 때문에 자기나 교인들이나 가족들이 죽을 때까지 그대로 계속 쌓아 가도록 하나님께서 허용해 놓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로마서2:5), 내가 알거니와 너는 완고하며 네 목은 쇠의 힘줄이요 네 이마는 놋이라(이사야48:4)"

하나님께서 특별히 미워하시는 죄들 가운데 으뜸이 되는 것을 들라고 하면 "우상숭배죄" 입니다. 그런데 고집을 부리는 것을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다고 할 정도이니 이 고집이 얼마나 대단한 죄입니까?

"거역하는 것은 점을 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사무엘상15:23)"

분쟁하는 교회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유심히 관찰해보십시오. 반드시 그 속에 고집을 피우는 한 두사람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풀리지 않고 고착화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바꾸시지 않고 방치하는 고집을 사람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절대로 불가능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보십시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고집불통의 집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자비를 구하였지만, 소돔과 고모라는 고집을 버린 열명이 없어서 망하였습니다.

분쟁하는 중대형교회들의 지도자들이 가진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바로 "고집불통들" 입니다. 그 고집의 뿌리를 찾아들어가면 전부 "정욕(탐욕)" 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이권이나 기득권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고집을 꺽지 않는 그 내면의 뿌리가 바로 "탐심(탐욕)" 이라는 것입니다. 이 탐심이 또한 우상숭배라고 하였습니다. 요약하면 "고집=탐심=우상숭배" 라는 공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로새서 3:5)"

고집피우는 자들의 뿌리를 추적해들어가면 반드시 돈과 관련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돈이 움직이지 않는 곳에 고집을 피우는 고집은 사실 애교스러운 고집입니다. 그런 것은 고집이라고 하지 않고 강직함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죽어도 말씀대로 살겠다고 하는 것은 고집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거룩함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훔친100억을 준다고 하여도 양심대로 살겠다고 하는 것은 고집이 아니며 그것은 정직함입니다. 여성 앞에서 함부로 바지를 내리지 않는 것은 고집이 아니며, 그것은 정결함입니다.

(한국에서 18건의 간통을 하고도 고개를 쳐들고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서 매주일 강단에서 뻔돌이가 되어서 매주일 설교하는 목회자가 있었고, 그런 목사에 항의하는 교인들을 출교시켰던 114년된 분쟁하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부리면 반드시 망신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부리면 반드시 처절한 꼴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부리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부리면 반드시 비참한 여생을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부리면 회복할 길이 없습니다.

분쟁하는 중대형교회 안에서 황고집을 피우는 지도자들이 영원히 그 교회 안에서 목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이 되면 반드시 젊은 목회자에게 물려 주어야 합니다. 이미 영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상처주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고 짓밟힘을 당한 후에 은퇴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모든 교인들을 굴복시켜서 "나는 절대 무죄하다, 내가 절대 옳다" 고 고집을 피운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결국 하나님 앞에 전부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가서 후회를 해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버스 떠나고 손 흔드는 겪이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정도가 아닙니다.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주어져 있습니다.

어느 편에 서 있건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길에 서 있는 "고집불통" 은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이며, 날마다 진노를 쌓아가는 허망한 인생을 산다는 것을 꼭 기억하면서 이 공식만큼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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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68.238.230.65)
2007-11-04 10:02:01
똥고집인 목사가 성도를 불행하게 만든다
이 똥고집이 저희 교회에 있으니 불 보듯 뻔하지요
콩을 콩이라고 해도 부정한 말이라고 하는 목사를 뭐라고 해야 할까요
자기가 콩을 팥이라고 하면 팥으로 믿으라는 겁니다
교회서 해야 할 말을 하면 부정적인 사람으로 몰아 붙여서 아예 교인들이 말을 못하게 하지요 제직회때에 혼자 말하고 혼자 회를 끝내는 상황에 이르렀다면 그 목사를 누가 정상이라고 할까요 자신을 모르는 목사 자기밖에 모르는 목사 자기 외에는 없는 목사 그런 목사가 똥 고집을 가진 목사지요 이런 목사가 있는 교회는 절대 부흥을 못합니다 성도가 웃음이없어 집니다 사랑을 식히는 목사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목사를 저는 이제 하나님이 손대셔야 하는 목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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