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내일 시간 좀 내실 수 있어요?”

“갑자기 무슨 일인데? 내일 토요일이잖아. 무슨 일이 생긴 게로구나?”

“아녜요. 형님이 보고 싶어서 그래요.”

	▲ 2006년 8월 좋은나무교회 수련회. 김은수 목사

겉모습은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고, 마음은 비단결이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입니다. 덕동계곡으로 유명한 곳에 교회가 위치해 있어서 우리 가정이 여름휴가를 김 목사네로 8년 동안을 갔었습니다. 해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흐뭇한 일이었습니다. 사모님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피아니스트입니다. 한밤중 평상에 앉아서 별을 보며 두런두런 얘기꽃을 피웠습니다. 그러면서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평일에 만날 수도 있는데 왜 토요일에 보자고 했을까?’ 나는 남양에서 버스를 타고 수원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내렸습니다. 김 목사를 오후1시에 수원시외버스 터미널 대합실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대합실로 들어갔더니 김 목사가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우리 둘은 반가워서 손을 꼭 잡았습니다.

“아니, 토요일이라 바쁠 텐데 나를 보자고 하고. 그래, 무슨 일인데?”

“아무 일도 없어요. 형님도 보고 싶고, 내가 형한테 전해 줄 물건이 있어서요.”

“그래? 그게 뭔데?”

“잣 효소예요. 내가 사는 데가 잣이 많잖아요. 지난 가을에 산에서 잣을 따다 효소를 만들었는데, 형님 생각이 나서 맛 좀 보시라고 갖고 왔어요.”

버스 대합실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잣 효소를 전해줄 거면 소포로 보낼 수도 있는데 일부러 나를 만나러 그 먼데서 예까지 온 것입니다. 김 목사는 잣 효소가 담긴 페트병 두 개를 나에게 건네주었습니다. 토요일은 목사들에게 제일 바쁜 날입니다. 나는 수원까지 3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지만, 김 목사는 자기 집에서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수원까지 오려면 4-5시간이 걸리는 매우 먼 거리입니다. 보통 정성이 아니었습니다. 김 목사의 마음을 내가 잘 알지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 2004년 8월 느릿느릿 수련회. 김은수 목사 부부

“형님, 내가 잠깐 구둣방에 가서 구두를 하나 사야겠어요. 지금 신고 있는 것이 다 되어서….”

김 목사가 신고 있는 구두를 보니 뒤축도 다 닳고 구두창은 밥 달라고 혀를 벌리고 있었습니다. 구둣방에 가서 기성화 구두를 하나 샀는데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김 목사가 한사코 구두 값을 내겠다는 것을 가로막고 값을 치렀습니다. 김 목사는 물질적으로 매우 가난한 목사입니다. 교회도 작고 교인도 많지 않아 사모님이 면소재지에 나가 피아노 레슨을 해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 번도 내 앞에서 돈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고 늘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아쉬운 작별을 했습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남양으로 오는데 차 안에서도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좀 더 좋은 걸로 사줬어야 했는데’하면서…. 버스 대합실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밥 먹고 구두사고 함께 했던 시간은 고작 1시간도 채 안되었는데, 덕동에 도착하려면 아마 한밤중이 되겠지요.

	▲ 김은수 목사가 만들어준 십자가

올 여름, 김은수 목사가 좋은 선물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통나무 널빤지에서 조각칼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라고 새긴 전각입니다. 아마 수십 번의 손길을 거쳤으리라 생각됩니다. 무슨 생각을 하며 그걸 만들었을까요? 그 생각을 하니 또 김은수 목사가 보고 싶어집니다. 미욱하기 짝이 없는 내게 김 목사 같은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걷는 길은 신성하고/ 길가의 들꽃 한 송이는/ 밤의 등불만큼 아름답습니다/ 가난한 사랑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빵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마지막 어둠 배웅하는 지상의 등불을 위해/ 기꺼이 더 가난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크게 성공하지 못해도/ 사방 곳곳에 이름 날리지 못해도/ 그냥 살다가 가는 것조차/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박철. 함께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