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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는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만약 이 제도를 제대로, 잡음 없이 시행하기를 원한다면 성적순으로 임지배정을 할 각오를 해야만 한다. 즉 감독파송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현섭  |  raceer6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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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9월 13일 (목) 20:18:41 [조회수 : 4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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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젊은교회네트워크(http://racer69.pulun.net/)에 자유게시판에 실린 방현섭목사의 글이다. 필자의 허락을 얻어 게제한다.

80년대인가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 중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하는 영화가 있었다.
이규형이라는, 당시로써는 독특한 시각을 가진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였는데 지금은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안지만 그 제목 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 당시 영화를 보고는 '정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로부터 약 20여년이 흐른 지금

   
 
   
 
행복은 성적순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성적순으로 한 인간의 인생이 결정나는 시대,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일류대학에 들어가려고 발버둥치고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기꺼이 목숨도 끊을 수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우겨야 할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느낀다.

행복은 성적순일지 몰라도 목회는 성적순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어린 시절 우리를 감동시켰던 부흥강사들은 종종 자신 있게 자기가 신학교 다닐 때에 별로 공부를 못했었다는 고백을 서슴치 않고 했었다. 깡패가 회심하여 유명한 부흥사가 됐다는 설교에 감동을 받은 것도 기억한다. 세상적으로는 별 볼일 없던 사람이 예수님 믿고 거룩한 도구로 쓰였다는 설교에 경도되고 감동 받아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공부 잘하고 시험 잘 치는 사람들만 들어 사용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적순으로 사람을 뽑지 않으시고 당신의 계획에 따라 가장 적합한 인물을 들어 쓰신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 목회자 수급에 관한 장정개정안이라고 나온 것을 보니 가관이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설교를 하셨던 분들도 그 장정개정안에 동의하시는 것 같다. 결국 그 감동적인 설교는 사기였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증명한 셈이 된다. 아니면 그들은 전혀 하나님의 뜻을 읽지 못하고 있는 반신앙적인 목사들이거나.

만약 목회가 성적순이라면 국제적으로도 그 명석함을 인정받았던 변선환 박사 같은 분은 당연히 우리교단의 감독회장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동의한다면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할 필요도 없다.

이번에 기독교타임즈에 실린 기사를 읽고 가장 많이 분개하는 사람들은 이 장정의 적용을 받는 당사자들일 것이다. 아니면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은 있으나 차마 그 입술을 열어 발설하지 못하는, 연급의 굴레에 매어 있는 준회원들일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별로 관심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차피 진급, 안수 등의 주제와는 상관이 없는 경우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이 문제가 당사자들만의 문제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본다.

1. 감리교회의 전통을 부정하는 처사이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감리교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감리교회는 지난 100여년의 역사를 통해 경건한 신앙과 냉철한 이성을 균형 있게 존중해 왔으며 확실하게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사회 한 가운데서 드러내고자 기도했던 교단이다. 그런데 이 장정개정안은 그와 같은 상식, 복음의 원칙을 정면으로 거부한 처사라고밖에 볼 수 없다.

상식적이지도 않고 복음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복음적이지 않다 함은 이미 말한대로 성적순으로 신앙과 하나님의 계획을 재단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이지 않다 함은 현실적인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흔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법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채 한 기수가 안수를 받기도 전에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감리교회는 하나됨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전통이 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하나됨의 전통을 포기하고 분열과 반목, 대립의 구도를 만들게 될 것이 뻔하다. 이미 출신대학별 반목이 심화된 상태인데 요즘은 학부출신이냐 대학원출신이냐(M.Div)의 대립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다시 담임전도사 출신이냐 수련목회자 출신이냐 하는 새로운 편 가르기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2. 3년 목회지의 독식현상
요즘도 목회 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교인이 한 명도 없는 유령교회(이런 교회를 담임하시는 분들에게 누를 끼치고자 함은 아니니 양해를 바랍니다)라도 차례가 온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만약 교인이 한두 명이라도 있는 교회에 목회를 나가게 된다면 그건 정말 큰 행운이다. 전라도고 충청도고 자리만 있다면 '감사합니다' 하고 불원천리 달려간다.

그런데 앞으로 개정안이 통과되어 시행된다면 3년짜리 목회지는 아무나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닌 프리미엄 붙은 자리가 될 것이다.
어느 목사님은 아버지가 목사가 아니면 목회할 생각 안 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신다. 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그나마도 지원 받을만한 곳이 없어 생활이 힘들기 때문이다. 목사안수 과정에서 2년을 줄일 수 있는 자리는 분명히 특혜이다. 이런 자리는 거의 대부분 중대형교회 목사 자제나 장로 자제가 독식하게 될 것이다. 3년짜리 목회가 보장되는 자리는 이미 하나의 권력이 된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시험을 본다 해도 결국 아버지가 자기 자식 답안지를 채점하게 되는 꼴이다. 직접 채점하지는 않겠지만 이미 채점위원들은 다 친분이 있는 이들이 아니겠는가?
결국 이 개정안은 또다른 계급투쟁을 낳게 될 것이고 교단은 계급적으로 분열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교단에 큰 폐해를 낳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장점도 있긴 있다. 중대형교회 목사가 자기 자식들 목회하는데 나 몰라라 하지는 않을 테니 그 교회는 어느 정도 물질적으로 자립을 하게 되기는 할 것 같다. 개척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20명이라는 기준을 채우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자기 교회의 많은 교인들 중 20명만 이름을 빌려주면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교회의 도덕성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3. 심사위원들의 자질
단독목회 혹은 개척을 하기 위해서는 심사를 받아야 한단다. 그러나 이처럼 적절하지 않은 말이 어디 또 있는가! 심사의 기준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이 평가를 받으라면 기꺼이 받을 교역자는 또 어디 있는가? 목회후보자들도 역시 교역자이다. 소명 받고 응답하여 나선 이들인데 이들을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심사하겠다는 말인지 의아하다. 오직 물을 수 있는 말은 소명의 확실성에 관한 것들 뿐이다.

준회원 자격심사만 해도 도무지 말도 안 되고 납득하지도 못할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교역자들이 해마다 심심치 않게 나온다. 많은 경우 학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준회원 심사도 이처럼 말이 많은데 신참들인 서리들이야 말로 할 필요가 있겠는가?

기독교타임즈의 장정개정안 기사 하단에는 평신도로 보이는 분이 쓴 댓글이 길게 달려 있다. 그는 새로 시작하는 서리들뿐만 아니라 기성 목사들도 역시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그만큼 기성 목회자들이 존경 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이 심사위원으로 자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까지의 관례로 보아 정당하고 적절한 심사라기 보다는 줄 세우기와 학연에 따른 차별, 기능적인 부분에서의 검증 등등 심사위원이 인간적인 잣대로 소명 받은 이들을 심판하게 될 것이 거의 분명하다.

회사에서 직원을 뽑기 위해서 인터뷰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목사가 되겠다고 부르심 받아 신학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기독교대한감리회라는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아니다. 심사라는 것은 최소화되어야 하며 목회를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이 교단의 당연한 의무이다. 어차피 교단에서 주는 혜택이나 지원도 없으면서 왜 그처럼 깐깐하게 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4. 신학대학 입학정원의 축소 전제
해마다 세 개의 교단(신학)대학원에서 5백여 명을 배출해내고 있다. 이들은 (신학)대학원을 졸업함과 동시에 목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는다. 물론 수련목회자 과정을 밟을 경우에는 소정의 자격조건을 위한 과정을 별도로 이수해야 한다.

수련목회자 과정의 파행적 운영에 대하여는 이미 많은 지적이 있어왔으나 넘쳐나는 졸업생들을 수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진급과정이고 이제는 어느 정도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왔음을 인정하기에 별다른 지적은 가급적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수련목회자 과정에서 겪는 진급당사자들의 불만이 있음은 심사위원이나 멘토들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무튼 해마다 500여명이 졸업을 하게 되는데 목회자 수급 및 고시위원회에서 조정하게 되는 인원-대략 200명 선 안팎이 되지 않을까 한다-만이 목회를 할 수 있다면 나머지 300명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재수생들까지 감안한다면 해마다 시험에 응시하는 인원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불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300명은 결국 신학대학교 재정을 유지하고 선발된 200여명을 위해 존재하는 잉여신학생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은 신학대학교 혹은 기독교단본부에서 저지르기에는 너무나도 비도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심하게 말해 200명을 위해 300명의 주머니를 털고 갈취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런 발상은 예수 이름으로 저지르기에는 너무나 발칙한 생각임을 반성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만약 이 법을 시행하기 원한다면 교단은 우선 신학교에서 선발하는 입학 정원을 예상 선발인원의 1.2-1.3배 정도로 제한하여야 할 것이다.

5. 유전목회 가능 무전목회 불가
이 어렵고 험난한 목회자 진급 및 안수과정을 그나마 피할 수 있는 길은 기독교타임즈에서 지적한대로 교회개척이다. 교회를 개척하려면 무엇보다도 돈이 필요하다. 서울의 경우 지하실 3-40평을 얻는 데에도 보증금이 3-5,000만원 정도 필요하다. 물론 다달이 월세를 30-60가량 내야 한다. 입당을 위해 인테리어 공사를 간단하게 하는 것도 500-1,000만원 정도 소요된다. 교인이 하나도 없는 경우에는 목회자가 다달이 먹고 사는 비용도 큰 문제이다.

이 모든 비용을 보통 사람이 충당하기는 쉽지 않다. 소위 어느 정도 돈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중대형교회 담임목사의 자제들이나 가능한 일이다. 중대형교회 목사의 자제인 경우 아버지 교회에서 선교비 명목으로 다달이 지원해줄 가능성이 있다. 일반인의 경우에는 직장생활을 꽤 하고 퇴직한 사람의 퇴직금 정도가 가능하게 된다. 소위 정상적인 과정(신학교 졸업-신대원 졸업-군복무)을 밟은 이들은 개척은 꿈도 꾸지 못한다. 결혼자금이 없어서 결혼식도 계속 미루기 일쑤이다.
결국 돈 있는 사람만 목회하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

대형교회의 지원을 받는 사람의 경우에도 안수를 받은 후에도 그 교회에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안수를 받으면 아버지 교회나 아버지 친구 교회의 부담임자로 가게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3년 동안 나름대로 교회의 골격을 갖추었던 교회일지 모르나 안수 받고 떠나게 된다면 그 개척교회는 허공에 분해될 것이다. 아니면 비싼 프리미엄을 받고 거래될 것이다.
언제부터 목회가 성적 따지고 돈 따지고 했는지 모르겠다.

6. 목회자의 권위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될 터
시험으로 목회자를 선발한다면 그것은 교계 내 평신도들 사이에서 목회자의 권위가 상당히 훼손될 것이다. 시험점수가 정말 죽을 때까지 비밀리에 감취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수석으로 시험에 패스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간신히 턱걸이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평신도들이나 목회자들이 저 전도사는 수석 전도사, 저 전도사는 턱걸이 전도사로 보지 않겠는가?

턱걸이 한 전도사는 분명히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 것이고 평신도들도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좋은 성적을 받은 목사는 권위를 인정받겠지만 낮은 점수를 받은 이들은 권위가 땅에 떨어질 것이다. 목사들 내부에서도 이런 일이 있다면 평신도가 목사를 보는 태도든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성직자가 권위주의의 보루가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정당하게 성직사로써 갖게 되는 권위까지 부정된다면 그것은 단지 몇몇 개인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 몇몇 부정한 목사들, 물의를 빚거나 사회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목사들 때문에 전체 목사 직분이 전체적으로 매도를 당하는 현상을 보면 상상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7. 점수로 선발한다면 개체교회 담임직도 역시 점수대로 배분해야 한다.
나는 군생활을 카투사로 지냈다. 카투사교육대에 들어가면 3주간 영어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시험을 봐서 성적순으로 자대를 배치한다. 제일 성적이 좋은 이들은 소위 카투사의 천국이라는 용산에 군무한다. 그러나 하위 50%는 주로 보병부대로 배치를 받아 동두천, 의정부 등에서 체력적으로 우위인 미군들과 육체적으로 부대끼며 생활한다. 가끔 1등을 하고도 전방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빽에 밀리는 경우이다.

시험을 보는 경우에는 반드시 시험을 잘 본 사람에 대한 우선적인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당연한 결과이다.
만약 목회자 선발을 시험을 통해 한다면 마찬가지여야 할 것이다. 교회를 좋은교회 나쁜 교회로 나누는 것이 좀 모호하긴 하지만 만약 시험이라는 길을 택한다면 이것은 필연적이다. 시험 1등을 하고도-이 시험제도에 의한다면 시험에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것은 그 사람은 대단히 목회적 자질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전제해야 한다- 벽지 산골로 배정을 받는다면 그게 얼마나 허무맹랑한 일인가!

마찬가지로 시험을 잘 못보고 좋지 못한 성적으로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도시의 이미 자립한 교회로 배치를 받는다면 그것 또한 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험 성적이 나쁘다면 그는 목회자적인 자질이 비교적 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시험제도가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에는 1등으로 시험에 통과했음에도 목회지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만약 이 제도를 제대로, 잡음 없이 시행하기를 원한다면 성적순으로 임지배정을 할 각오를 해야만 한다. 즉 감독파송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지만 설마 그럴까 하는 불명확한 점이 있다. 시험만 통과하면 교단에서 목회지는 책임을 지고 알선해 주는 것인가? 시험에 통과하고도 다시 목회지를 구하려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닐지 의문이다. 1등한 사람은 잘못하면 심각한 부당함을 느끼게 될 확률이 높다. 결국 교단을 상태로 싸우는 투사가 되지 않을런지

할 말이 아직 많은데 밤도 깊고 해서 일단 마친다. 내일 이어서 계속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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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신 (166.104.92.197)
2007-09-14 11:59:33
신정아 허위 보도를 어제 일일이 확인해 보고 나서.
신정아에 대한 어제 허위보도를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상식이 있는 기자라면 어떻게 이렇게 기사를 쓸 수 있을까?



너무 납득이 되지 않아서, 어제 서대문구 봉원동에 있다는 b교회에 직접 전화해서 사실 여부를 물었다.

기자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답변했다.



1. 신정아가 매달 50만원을 헌금했다?

기자의 소설이었다. 기자가 마음대로 지어낸 내용이라는 것을 들었다.

3만원 정도 돈이 있는데 (사실 누가 낸 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얘기했더니

기자 마음대로 3회 곱하기 한달.. 이렇게 소설을 쓴 거다.



2. 매주 꼬박꼬박 3회 교회에 왔다?

집 근처에 있어서 새벽에 잠깐 들른 것을 몇 번 봤다고 한다.

그게 꼬박꼬박 매주 3번으로 둔갑한 것이다.



3. <독실한 기독교신자>?

이 대목에서 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는 교회에 등록도 하지 않았고 공중예배에는 한 번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절에는 그만큼 방문하지 않는가?

절에는 더한 돈을 내지 않는가?

왜 그게 <독실한 불교>가 아닌 <기독교>로 둔갑을 했는지,

<중앙일보>가 외압을 받았는지,

타종교계에서 엄청난 돈을 받았는지

정말로 그들을 조사해야 할 것 같다.



751-5175 서명수 국장

isotope@joongang.co.kr 기자 이메일
리플달기
6 14
신학생 (218.37.1.66)
2007-09-14 00:35:14
감사합니다..
목사님같은 분이 계셔서 저희는 너무 힘이 되네여..^^
리플달기
5 14
감리교 신학생 (222.112.55.193)
2007-09-13 23:01:28
우리를 지지해 주시는 목사님!!
우리를 지지해 주시고 우리를 걱정해주시고 우리 감리교를 사랑하셔서 걱정해주시는 이러한 목사님들이 계셔서 우리 신학생들은 너무나 감사하고 힘이 납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리플달기
9 13
신학생 (219.250.206.186)
2007-09-13 22:31:51
시원합니다.
우리들 소식이 궁금하여 들어왔다가 속 시원히 내맘을 풀어쓴 둣한 글을 읽게 되니 기뻐서 한자 적고 갑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지만 우리를 소명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인도하실것을 믿습니다. 모든 신학생들 힘냅시다.! 아자! 아자!
리플달기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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