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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목사, 횡령목사들의 교회는 왜 번성하나[시론] 책임지는 목사없는 초대형 교회들, 국민과 신도에게 타도대상 돼
당당뉴스 편집실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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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9월 08일 (토) 00:12:27 [조회수 : 7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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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기사 제휴사 대자보에 실린 이동연 목사의 칼럼입니다.

간통목사, 횡령목사들의 교회는 왜 번성하나
 
[시론] 책임지는 목사없는 초대형 교회들, 국민과 신도에게 타도대상 돼
 
이동연
 
      종교는 세속을 초월해서일까? 
 
   
 
  ▲ 이동연목사  
 
      도대체가 책임을 지는  종교 지도자가 보이질 않는다. '명명백백'히 책임소재가 분명한데도 종교의 이름으로 덮어버리고 얼버무린다. 역시 비빔밥을 좋아하는 민족의 종교답다.
 
      
그뿐이 아니다. 간통한 목사교회에 사람이 더 몰려들고, 거짓말하고 횡령한 성직자의 좌판대에 고객이 더 몰려든다. 종이신문에 차마 또는 일부러 보도되지 못했던 유명목사들의 간통행각과 심지어 매독걸린 수치스러운 일까지 드러나도 그 성직자들의 영업장(?)은 초만원이다.
 
      영업장이라고 쓴 것을 이해해야 한다.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종교인들의 모임이라면 매독 걸렸다는 성직자, 간통했다는 성직자, 허위사실을 유포한 성직자를 내쫓아야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인가? 한번 대형화된 종교 집단은 좋은 일이 아니라 스캔들로라도 유명해지면 그 성직자의 점포엔 고객들로 차고 또 차고 넘쳐 줄줄줄 흐른다.
 
    어제 동시에 두 모임에 참석했다 아침에는 제법 규모있는 목사들의 모임에 저녁에는 한 학교의 시민강좌에 나갔다. 역시 새벽의 모임에서는 달콤 쌉싸름한 언설로 교인을 모아들이는 방법론만 난무했다.
 
    작금의 한국사회가 어떻게 교회들을 바라보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 평안하고 세상 물정모르는 광경위에 실험실의 알코올 램프위에 놀인 실험용컵 속에서 서서히 물이 뜨거워지는 줄도 모르고 기분좋게 죽어간다던 개구리가 오버랩되었다. 

▲양적 팽창에만 급급한 한국의 초대형교회, 이제는 내실을 기할 때며, 결국 평신도들이 움직여야 할 것이다.(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없음)     © 인터넷 이미지
 
     떨떠름한 기분으로 한 언론사에 들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저녁에 학교 강단에 서서  한국인의 종교심성에 관해 강의를 했다. 거기모인 청중들은 대부분 두번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신앙심이 좋은 분들이었다.

    대단히 조심스럽게 서두를 꺼냈다
 
      ‘왜 한국의 종교는 비합리적인 모습을 띨까요?. 도대체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단지 목사나 승려 등 종교지도자에게만 있는 것일까요?

  내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 학생이 급한 소리로 대답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을 우리도 봅니다. 그리 틀린 말들은 아니던데요’
 
     놀랍다. 저런 말을 한국에서 최고로 정열적인 집단에 속한 성도의 입에서 나오다니...
 
     아! 어쩌면 목사나, 승려들이 교인들의 겉모습만 보고 안심하고 있을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알기 시작했다.  성직자들도 자기들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믿으면 다 잘 된다고? 제대로 믿어서 올바로 망한 사람이 더 많다.
 
    십일조내면 다 부자된다고? 헌금 많이냈다가 주저앉은 사람이 더 많다. 큰 교회를 지어 주었어도 망한 재벌도 있다. 성직자 섬기면 세상 복을 받는다고? 그럼 종교탄압의 일인자인 김일성은 뭔데?
 
     교인들은 아이들 학원도 제대로 못 보내고 낸 헌금으로 성직자라는 사람은 자기 자녀들 유학 보낸다. 교인들은 지하 셋방 살면서 낸 헌금으로 성직자는 고급빌라에 산다. 
 
    성직자가 회장실만한 사무실을 꾸며 놓고, 그 안에 침대와 세면시설까지 갖춘다.  그리고 시건장치를 해놓았다.. 여비서까지 두고.... 도대체 아무나, 언제든지 만나 위로를 주고 받는 성직자의 모습은 아니다. 고도의 성채속에서는 교만한 영주같다. 그 돈이 모두 교인들 주머니에서 나온다.
 
    뜨거운 여름철 교회 안에서 수많은 부서들이 사방각지로 흩어져 수련회 및 봉사활동을 하러간다. 이때 고위 성직자분께서는 고위 장로들을 대동하고 교회 돈으로 수박과 간식을 사들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납신다.
 
    한참 무더운 여름철 고생하던 교인들은 저 멀리 고급승용차가 스스로 밀려 들어오면 줄서서 환영한다. 내가 직접 체험한 이야기다. 그렇게 성직자는 시원한 차안에서  산천구경하며 순례하듯 봉사현장을 답사하고 캠코더 찍혀 주고 박수받고 돌아다닌다.
 
   수재 의연금 내지 구호품도 마찬가지. 돈은 교인 주머니에서 나오고 플래쉬 받고, 상 받는 것은 성직자다. 오 거룩한 성직자여, 대단한 성직자여.
 
    이런 모습들에 대해 성도들이 반성하기 시작했다.
 
    ‘씨, 난 시다바리가?’ ‘돈은 누가내고 생색은 누가 내는데.’
 
   그래서 종교의 대중집회에 교인들의 참석열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사실 한국 종교의 제일 큰 문제는 너무 집회가 많다는 점이다. 매 주일 예배는 기본이라고 그렇다 치고, 수요예배, 금요권찰회, 금요철야기도회, 매일새벽기도회, 화요성경공부. 전도대모임, 심방 심지어 매일 철야기도까지, 신도 귀찮을 지경이다.
 
    그 수없는 모임속에서 달콤하고 쌉싸름한 말들이 춤을 춘다. 그 말에 점차 맛들여진 성도들도 덩달아 춤을 춘다.
 
    따라서 한국 종교는 집회수를 줄여야한다, 사실 종교에서 말하는 신적 존재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신비가 아닌가? 그런 분을 말로 나타내고자 하니까 더욱 궁색해진다. 도대체 성직자도 사람이라면서 새벽이면 새벽, 밤이면 밤, 언제든지 줄줄줄 신의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성직자는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늘어 놓게 되어 있다.
 
   본인의 신변잡기 내지는 자기가 최고 잘났다는 투의 이야기와 자기만 따라 오면 복을 받는다는 뉘앙스의 설교를 주야장창 퍼붓는다. 서서히 묻지마 식으로 헌금하는 교인들이 늘어 나고 성직자는 점점 부자가 되어 심지어 간통까지 하고도 번들거리고 다닌다
 
    그런 면에서 샘물교회의 박은조 목사는 억울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는 간통은 하지 않았고 외형상으로는 크게 치부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그러기 때문에 더더욱 박은조 목사께서 살신성인의 모습으로 샘물교회를 사임하고 새로 목회를 시작하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간통한 목사, 거액연봉에 도끼자루인 한국교회가 썩는 줄도 모르는 목사. 대형교회를 세습해 주고도 그것이 왜 잘못인지도  모르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들을 지겹도록 보아왔다.
 
    언제가지 우리는 간통성직자, 세습목사, 정욕에 눈멀고 권력욕에 눈먼 정치 목사들을 참아야만 하는가. 이러다가 정말 종교 타도 집회가 거세게, 거세게 일어 날 수도 있겠다.
 
    타도하자 간통 성직자, 타도하자 거액연봉에 눈먼 성직자. 타도하자 세습 성직, 이런 구호가 인터넷을 넘어서 길거리를 난무하면 어쩔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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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사랑 (123.109.109.156)
2007-09-18 20:55:55
목사교인 예수교인
목사교인 / 예수교인

목사교인 신자는 "우리 목사님은~"을 입에 달고 살지만
예수교인의 신자는 "우리 예수님은~"을 입에 달고 삽니다.

목사교인의 신앙중심에는 예수님과 목사가 함께 있지만
예수교인의 마음 중심에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목사교인들은 그들 목사가 비판 받는 것을 못견디지만
예수교인은 피조물(목사)이 비판 받을 수록
더욱 더 자세를 낮추고, 주의 말씀으로 분별하려 합니다.

목사교인은 그들 목사가 비난받는 것에 분노하지만
예수교인은 사람이 비난받는 것에는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진리(예수님)가 왜곡되는 것에 의분합니다.
사람은 언제든지 잘못 될 수 있음을 깊이 깨닫고
사람을 따르거나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목사교인은 삼상 8장 7~8에 나오는 어리석은 백성들처럼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때문에 버려서 자기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보이는 사람으로 왕(인도자)을 삼아 왕의 제도(사제 제도)를
만들어 조직을 키우고 맹종하는 것을 신앙인냥 착각합니다.
그러나 예수교인들은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그 어떤 피조물도 끼어들지 못하도록 순결하게 자신을 지킵니다.
아브라함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주님만 따라가는 순례자들입니다.

목사교인은 사람의 눈치를 살피고 아부하는 사람의 종이 되지만
예수교인은 오히려 사람(죄인)의 궤휼과 미혹을 조심하면서
오직 진리이신 성령께 순종하려 애통하며 부르짖습니다.

목사교인은 보이는 사람과 조직과 건물을 섬기는데 열심입니다.
그들은 성령이 내주하고 계신 사람-성전보다는
건물이나 죽고 낡아지고 사라질 비본질에 목숨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교인은 비본질과 본질을 구분하여
오직 사람을 영육간에 돕고, 살리고, 세우려 하며
진짜-성전인 자신과 남을, 참된 믿음으로 세우는데 열심입니다.

목사교는 목사를 우상화하거나 특별계급인냥 세뇌합니다.
목사교는 목사가 교회의 머리처럼 행세하지만
예수교는 사람의 계명이나 지어낸 거짓말에 담대하게 맞섭니다.
우리는 차별이 없는 주님 몸의 여러 지체들이라고 분명히 강조합니다.

목사교는 목사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목사의 뜻이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높이고 맹종하려는 분별없는 충견을 양성하게 됩니다.
예수교인은 교회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며 의논하며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에만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목사교인은 목사의 말에 무조건 아멘하지만,
예수교인은 목사의 말이 진리인지 분별하려 합니다.

목사교인들은 사람과 사람의 교리에 세뇌되어 영적 맹인이 되지만
예수교인들은 분별하므로 그 지각이 그리스도의 분량으로 자라갑니다.

목사교인은 집단 이기주의와 목사의 배가 항상 우선되지만
예수교인에게는 소외된 자, 약자, 가난한 자, 병든자가 우선입니다.

목사교는 성공, 기복, 계급상승을 추구하는 종교 클럽일 뿐이지만
예수교는 남을 섬기고, 나는 낮아지고 깨어지려는 제자도입니다.

목사교 신자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사람의 성공과 풍요의 물신인 아론의 금송아지를 섬깁니다.
성공하면 그건 하나님의 뜻이고 실패하면 저주라고 맹신합니다.

성경속에 나오는 믿음의 선배들, 즉 선지자나 제자들은 대부분
복음을 위해 자발적 가난속에서 핍박을 받았으며
(인간적인 시각으로 볼 때는) 실패하고 죽어갔지만

목사교 신자들은 제자들의 길과는 정확히 정반대로 갑니다.
그들은 세상에서도 잘 먹고 잘 살다가 천국에 갈 것이고
천국에서도 높은 자리 차지하고, 영광을 누릴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예수교 신자들은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며
잠시 누릴 세상의 즐거움보다는 하늘의 영광을 더욱 갈망합니다.

목사교 신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교 신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깁니다.

목사교 신자는 큰 교회당, 많은 교인, 부자와
세상적인 성공을 축복이라 여겨 자랑으로 여기지만
예수교 신자는 광야에서 마귀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을 따라
재물과 명예의 유혹을 물리칩니다. (마태복음 4:1~11)
부하려 하는 자들이 각양 올무에 걸릴 것을 알고
가진 것에 자족하며 유명세를 부끄러워합니다.

목사교인의 열심은 종교성의 충만으로, 지옥으로 안내되지만
예수교인의 열심은 성령충만으로, 천국으로 안내합니다.

목사교인에게는 심판이, 예수교인에게는 상급이 기다립니다.
당신은 조직원리에 사로잡혀 집단으로 달려가는 목사교 신자입니까?

아니면, 무엇이든지 냉철하게 분별하고 기도함으로
십자가의 좁은 길로 걸어가는 예수교 신자입니까?
리플달기
22 70
나그네 (222.233.88.121)
2007-09-17 23:45:26
비판의 요지가 궁금합니다.
무엇이 문제라는 말씀입니까
글이 제시하고자 하는 바가 너무 많습니다.
그 안에서 교회를 향한 건전한 비판은
그저 부패한 현실에 대한 넋두리 정도로만 들립니다.

책임있는 영성, 책임있는 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안 없이 문제만 늘어놓는 기사는 쓰기만 하고 득이 되지 않는 약과 같습니다.
부정적 의미의 플라세보라고 할 수 있지요.

더 좋은 기사 부탁드리면서 고견 드립니다.
리플달기
47 71
무릇돌 (121.141.148.251)
2007-09-12 11:45:13
‘간통목사’, ‘횡령목사’들의 교회는 왜 번성할까?
그 답은 ‘유유상종(類類相從)’일 게다.

교회는 ‘거룩한 곳’인 줄 알았던 뭇 ‘잡 것’들이
자신들도 ‘충분한’ 자격이 있음을
알아채고는 ‘교회’에 몰려든다.

이제, ‘교회’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이름으로
‘신분 세탁’을 하려고.

이 얼마나 ‘수지맞는’ 일인가?
이 세상에서 ‘개’처럼 살아도
저 세상에서 ‘상’까지 얻는다니.

하여간 ‘교회’는 ‘복 받을’ 곳이다.
‘개’도 ‘신분 세탁’하고
‘목사’란 이름의 중생의 ‘견행(犬行)’도
‘짝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칭찬’받으니...

그러니
‘교회’는 더더욱 ‘왕성’할 수밖에...

-한울성경서당-
리플달기
47 72
무릇돌 (121.141.148.251)
2007-09-10 21:11:33
살아계신 하나님! 어디계시나요?
할말을 잃었습니다.
어찌되어가는지요?
한국교회

---------
어느 분의 댓글에서

하나님과 예수는 '한국교회' 안에 잘 모셔져 있습니다.
단지 '박제'된 채로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실천)가 그분들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울성경서당-
리플달기
49 72
daniel (222.106.192.213)
2007-09-10 11:22:03
살아계신 하나님! 어디계시나요?
할말을 잃었습니다.
어찌되어가는지요?
한국교회
리플달기
52 72
그래서 (71.207.219.221)
2007-09-08 21:46:17
난 회의한다
정말 하나님의 공의의 하나님이신가 하고 말이다.
목사가 잘못하면 교회가 안 되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더 잘된다?
정말 하나님이 다 보시기나 하는가?
리플달기
50 73
해답 (218.153.59.142)
2007-09-08 10:33:16
그이유는?
교인도를 병신도로 만들어 놓앗기때문!
특히 괴벨스보다 선동술에능한 악질부흥사도 한못!
리플달기
59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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