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한국인 23명을 인질로 억류한 시점부터 2명을 살해한 뒤 21명 전원을 석방 발표가 나기까지 41일간, 한국교회는 한 일이 없었다. 아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해야 옳다.

이렇게 말하면 분당샘물교회와 피랍 가족들, 한민족복지재단을 드러나게 혹은 드러나지 않게 도왔던 단체와 목회자와 활동가, 학자들은 억울하겠다. 그렇지만 몇몇 단체와 개인의 활동을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정부가 이번 기간 내내 교회가 나서면 탈레반을 자극할 수 있다며 잠잠할 것을 권유했던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 전체는 스스로 우리 양이라고,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요 가족이라고 고백하는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사력을 다했는지, 한국교회의 역량을 제대로 쏟아 부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양대 연합기관의 실무 책임자에게 한국교회 차원에서 피랍 사태에 어떻게 대응했지, 과제는 무엇인지 물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에서는 권오성 총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는 선교위원장 김선규 목사와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아프간 피랍 사태가 터진 뒤 KNCC는 피랍 다음날 총무 서신 발표를 비롯해, 배형규 목사피살 뒤 성명 발표, 여성 인질 2명 석방 뒤 환영 논평, 19명 인질 석방 뒤 환영 논평…. KNCC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사건이 터지거나 풀린 뒤 반응했을 뿐이다. 여기에 KNCC가 가입한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아시아기독교교회협의회의 서신, 중국과 말레이시아 교회협의회의 서신을 받아내는 정도가 외교적 활동의 전부였다.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홍성현 목사(수송교회 은퇴)는 KNCC가 자기 식구가 아니어서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종교 간 대화를 통해 확보한 이슬람 지도자와 대화 창구가 있는 개신교 세력으로서 KNCC의 인맥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는 선교학자들의 지적도 이어졌다.

"한 게 없다고? 최선을 다했다"

"사실 오인이다. KNCC가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국제 네트워크를 활용해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의 요청으로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석방을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슬람교 지도자도 탈레반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NCC에도 도움을 요청해 노력 중이라는 답변을 얻었다. 교회는 나서지 말아달라고 가족까지 요청했고, 선교라는 말 자체도 쓰지 말라는 권고를 받은 마당에 교회가 할 수 있는 건 극히 적었다. 기도회 한 번 못했다. 그런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도 했어야 한다면…. (활동하지 않은 건) 우리의 판단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했다고 본다. 회원 교단이 아니기 때문에 소홀했다는 평가는 지나치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단체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권오성)

한기총의 대응은 더욱 처참했다. 이렇다 할 대응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일부 목사들은 한기총이 부시를 위해서는 기도해도 부시에게 도와달라는 말은 못하는 수준 낮은 친미주의 세력이라고 몰아붙였다.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와 밀접하게 협력하며 대책을 논의했다. 한기총에서 선교국장을 정부에 파견했다. 그는 문광부와 외교통상부와 국정원 직원들과 합동 근무했다. 정부에서 자제하라고 부탁했고, 외신을 통해 우리 기독교의 움직임이 탈레반에게 들어가면 인질의 생명이 위험하기 때문에 자제했을 뿐이다." (김선규)

한기총이 미국 정부 등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며 견해를 여러 차례 물었지만 김 목사는 답을 하지 않았다. 홍성현 목사는 "한기총은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반미운동을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그런 사고 속에서는 미국이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고 판단하는 일은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자성해야 하지만…"

권오성 총무는 일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교회가 자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자성이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해외선교사 대해서는 우리가 직접 관여한 게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한국교회에 지적하고 싶은 점은 해외선교 원칙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제가 생각하는 점은 세 가지다. 첫째, 현지 문화와 관습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둘째, 현지 종교에 대한 이해와 공존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120년 전 우리 땅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불교와 유교적 질서는 완전히 거부하고 조롱했던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셋째, 현지의 교회와 협력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우리는 현지의 상황을 무시하고 한국교회의 교파 이식을 위해 따로 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권오성)

권 총무는 세 원칙을 차근차근 살펴보며 그동안 원칙을 지키지 못한 걸 자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권 총무는 안전에 관한 수칙이 없었다는 점, 긴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한국교회 전체가 공유되지 않은 점도 지적하면서 함께 과제를 풀어가자고 말했다.

한기총, "선교 전략 바꿔야 한다"

한국교회가 자성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한기총도 동의하지만,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는 조금 달랐다. KNCC가 이웃 종교와 대화하고 협력하지 않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고 보았다면, 한기총은 전략적인 수정이 필요하다는 점에 역점을 두었다.

"한국교회는 자숙해야 한다. 그동안 과시하려고 선교하였다. 이제는 전문적인 기구를 설치해 전략을 세우고 기존의 선교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앞으로는 선교지에 나갈 때 그 곳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해 가면서 충돌 없이 선교했으면 좋겠다."(김선규)

방향전환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신교 일각에서는 보수 진영의 선교신학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에 본질은 복음전파다. 의료 봉사, 구제를 해도 '예수를 믿으라'고 직접 말할 수 있다. 기독교 단체에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호감을 갖는 이들에게 복음을 받아들이는 기회를 마련하는 게 우리의 임무다."(김선규)

개신교의 여러 자선 활동이 개종을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김 목사가 말하는 '좋은 일'도 결국 개종을 위한 수단일 뿐이지 않는가.

"자선 활동을 개종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자는 말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방인에게 빛과 소금이어야 하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그들이 개종하는 거지, 미끼 던져주고 예수 믿으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다. 복음의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상황에 맞게 복음을 전달할 방법을 찾자는 것이다. 전도만 선교라고 생각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만을 우선하던 보수적인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김선규)

"선교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탈레반에게 군대 철수와 함께 "선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인질을 데려왔다. 정부의 발표와 동시에 KNCC와 한기총은 정부의 합의를 존중하면서도 유감이라는 반응을 표했다.

"일단이라는 단서를 붙여 합의를 존중한다고 했다. 정부가 선교를 할 수 있다, 없다 말할 권한은 없지만, 합의를 존중하는 게 필요하다. 선교라는 게 누가 막는다고 안 하는 게 아니지만, 19명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법적으로 아프간에서 선교 활동을 중단하는 건 옳다. 법적으로 한국 사람이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것도 어렵고….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선교의 손을 놓자는 말은 아니다. 이번 합의가 영구적인 조약은 아니다." (권오성)

"한기총은 정부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했다. 정부가 선교를 하니 마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정부가 협상 조건으로 선교를 하지 않겠다고 내세운 것은 기독교의 고유 활동에 대한 침해다. 선교는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다만 선교의 전문성을 기르고, 전략을 치밀하게 짜야 한다."(김선규)

개신교 비난, "오해하는 게 많다"

최근 개신교는 사회의 비난을 자주 직면하고 있다. 목회자 세금 문제로 사회의 지탄을 받더니, 개신교 기업으로 알려진 이랜드가 비정규직을 탄압하자 비난의 강도는 더욱 세졌다. 그리고 피랍사태에서 한국교회를 향한 비난은 극에 달했다. 교회 밖에서 불어오는 비난의 바람에는 어떠한 이성적인 판단과 사고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이 지경까지 온 것에 대해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해온 섬김과 나눔, 봉사에 대해서는 세간의 이해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러한 이해 부족에서 잘못된 견해도 나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 성찰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권오성)

"불신자들이 자기들 세금을 축낸다고 말하지만, 교회 밖에서 하는 이야기 가운데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게 많다. 가령 위험 지역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가서 사고를 쳤다던가, 개종하다가 잡혔다던가 하는 건 오보다. 그러나 피랍된 분들이 한국에 들어와 후폭풍을 맞을 수 있으니 일단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자고 한기총은 생각하고 있다."(김선규)

자성의 결과물이 나올까

피랍자들이 돌아온 마당에 한국교회는 진지한 성찰의 시기를 맞고 있다. KNCC와 한기총도 자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성이 말로 그치지 않으려면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필요하다.

"선교신학자, 선교사, 선교사를 파송하고 지원하고 관리하는 교단과 교회 대표들이 모여서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해외선교에 대해 되돌아보고 선교 원칙 확인하고, 안전에 관한 교육과 매뉴얼 공유하는 대토론 과정이 필요하다. 토론회 시점을 아직 잡지는 못했지만, 반드시 거처야 할 과정이다. 개신교가 가진 다양성을 인정하더라도 해외선교의 큰 틀과 원칙을 세우는 작업은 해야 한다. 우리는 해외선교가 아니더라도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 언어가 아니라 국민 대중과 소통하는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권오성)

"21명이 돌아오는 일을 위해 우리는 표면적으로 기도하지는 못 했어도 이면적인 기도는 잘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저항을 받으면서 복음 전파를 하기보다 호응을 받으면서 선교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특히 이슬람 지역과 사회주의 국가에 선교하는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 벌써부터 인질들이 고문을 받았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데, 그런 말을 할 시기가 아니다. 말 한 마디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지혜를 발휘해 예수 이름을 나태내기보다 다른 일을 통해 사랑을 주고 변화를 기대해야 한다. 우리의 선교신학에도 변화가 오리라 생각한다."(김선규)

* 뉴스앤조이 주재일기자의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