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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데레사 사이비 논란과 마리아 동정녀 논란
이용섭  |  lys9791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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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8월 25일 (토) 09:03:07 [조회수 : 7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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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자료 셋]마더 데레사 수녀는 사이비 성녀
임종 때 귀신들렸다면 거의 지옥에 갔을 것이다

다음은 마더 데레사의 편지 내용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의 공동 구속자(Coredemptrix)입니다.  성모는 예수님께 몸을 드리셨고 예수님과 더불어 십자가 아래에서 수난하셨습니다.  

  마리아는 모든 은총의 중재자(Mediatrix)이십니다.  성모는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 어머니로서 성모는 주님의 모든 은총들을 얻어주십니다.  

  마리아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 기도해 주시는 변호자(Advocate)이십니다.  우리가 예수의 성체의 성심으로 가는 것은 오로지 마리아의 성심을 통해서 뿐입니다.  성모 마리아를 공동 구속자, 중재자, 그리고 전구자로 교황께서 [교의로] 정의하는 것은 교회에 엄청난 은총을 가져올 것입니다.  

 

 


테레사 수녀 선종전 악령 쫓는 의식 받아 인 대주교 밝혀
발행일 : 2001-09-08 [국제]    기자/기고자 : 이태훈
 
 
인도에서 빈민구제활동을 벌여 ‘전세계 빈민들의 어머니’로 불리던 테레사 수녀<사진>가 97년 선종(善終)하기 몇달 전 심장질환으로 입원해 있던 병원에서 악령을 내쫓는 ‘구마(驅魔·exorcism)’ 의식을 받은 적이 있다고, AP가 6일 인도 콜카타 대주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앙리 드수자(D’Souza) 대주교는 “테레사 수녀가 의학적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불면증에 시달렸기 때문에 악마의 공격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며 “교회의 이름으로 악령을 쫓는 기도(exorcism prayer)를 행하겠다고 제안하자, 그분도 흔쾌히 수락했다”고 말했다. 드수자 대주교는 “절대 악마가 들린 것은 아니었다”며 “성인(聖人)도 인간적인 면을 갖고 있는 것이 당연하고, 이는 하느님께 더 가까웠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테레사 수녀의 시성(諡聖) 절차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마 의식을 실행했던 로사리오 스트로스치오(Rosario Stroscio) 신부는 “특별 기도를 시작하기 직전 그 분이 당황하면서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며 “아마도 사탄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기도가 끝나자 평정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신부는 “이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며, 가톨릭교회 역사에서는 수백명의 성인(聖人)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종교 전문가들은 “가톨릭 교회의 구마 의식은 모든 생리적·신체적 설명이 불가능하고 행동에 극적인 변화가 있을 때에만 극히 드물게 허용되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AP는 전했다. /이태훈기자 libra@chosun.com

<마더 데레사 수녀 영문기사 번역> 

Mother Teresa of Calcutta is destined to become one of the most popular saints in the Catholic Church.
캘거타의 테레사 수녀는 카톨릭 교회에서 가장 인기있는 성인들 중 한 사람이 될 예정이다.

It has emerged that she had to be exorcised of demons on her deathbed.
테레사는 자신의 임종시에 귀신들을 쫓았어야 했는데 쫓지 못했던 것이 드러났다.

Thanks to the work of Christopher Hitchens it is possible to see the truth about Mother Teresa who nobody dares criticise.
크리스토퍼 히첸스의 수고 덕택에 감히 아무도 비판할 수 없는 테레사 수녀에 대한 진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She aided the evil Duvalier family of Haiti and buttered them up.
테레사는 헤이티의 사악한 두발리어 가족을 도왔고 그들에게 아부했었다.

She got a million dollars from Charles Keating and kept it ignoring requests to her to return it after she knew he had stolen the money.
그녀는 찰스 키팅 으로부터 백만 달러를 받았고 그 돈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무시한 채 소유했으며 나중에 그녀는 그가 그 돈을 훔쳐갔던 것을 알았다.

She has opposed the human right to divorce, contraception and abortion and the rights of secular people.
테레사는 이혼에 대한 인권, 피임, 낙태 그리고 세속적인 사람들의 권리와 맞서서 싸웠다.

She thought she knew it all.
테레사는 그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It was okay for her to campaign against these things for she never needed them.
테레사가 결코 필요로 하지 않았던 이러한 것들에 맞서서 캠페인을 벌린 것은 물론 좋았다.

She was an epitome of the reprehensible selfishness that exists in the worst fundamentalist Christians.
테레사는 가장 나쁜 근본주의자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존재하는 비난 받을 만한 이기심의 전형이었다.

She even said that poverty was a gift from God.
그녀는 심지어 가난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이라고 말했다.

She accepted the vicious idea that the purpose of suffering is for the betterment of character.
그녀는 고통의 목적이 성격의 개선을 위해 있다는 사악한 생각을 받아 들였다.

The atheist refuses to condone suffering this way and so the atheist should have a greater hatred of the suffering in the world than the religionist.
불신자는 이러한 식으로 고통을 관대히 대하기를 거절하고 또한 불신자는 종교를 가진 사람들 보다 세상에서 더욱더 고통을 혐오한다.

She refused to use anything in her clinics to relieve pain for she accepted the Catholic doctrine that suffering is a good thing.
테레사는 고통은 선한 것이라는 카톨릭 교리를 받아 들였기 때문에 고통을 줄이기 위해 병원에서 어떤 것도 사용하기를 거절했다.

She checked into the best hospitals in the world when she was sick herself and anything was good enough for the poor she used to create her grand and glorious image.
테레사는 그녀 자신이 아팠을때 세상에서 가장 좋은 병원에 입원했었고 그녀가 만들어 내곤했었던 그녀의 거대하고 영광스러운 이미지의 어떤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매우 좋은 것이었다.

Mother stated that dogs were fed on human foetuses.
테레사는 말하길 개들에게 인간의 태아를 먹이로 주었다고 했다.

No evidence for this claim has ever been uncovered.
이 주장에 대한 어떤 증거도 전에 드러난 적은 없었다.

She approved of a film about her, Mother Teresa and her world, which claimed that there were a quarter of a million lepers in Calcutta while another film she collaborated in said it was 40,000.
그녀는 자신에 대한 영화, 테레사 수녀와 그녀의 세계를 승인했고 그 영화에서 그녀는 주장했다. 캘커타에는 25만명의 나병환자들이 있다고 했으나 그녀가 출현했었던 다른 영화에서는 나병환자가 4만명이라고 말했다.

She has exaggerated the number of lepers and has helped them in preference to the even more serious plague of malaria.
테레사는 나병환자의 수를 과장했었고 더 더욱 심각한 병인 말라리아 병 보다는 나병환자들을 도왔다.

She lied as well that she knew no poor woman in Calcutta who had had an abortion though Calcuttans regarded abortion as no big deal and all classes used it.
캘커타 사람들이 낙태를 대소롭지 않게 여기고 모든 계층들이 낙태를 함에도 테레사는 캘거타에서 낙태를 했었던 가난한 여성을 알지 못한 것처럼 또한 거짓말 했다.

Mother had 50 million dollars in the New York bank alone and yet the order greedily solicited for money.
테레사는 오천만 달러를 뉴욕 은행에 가지고 있었고 이미 욕심을 내어 돈을 요청했었다.

This was the order that used the same syringe on many sick patients under the pretext of hard times.
이것은 어려운 때를 구실로 많은 가난한 환자들에게 같은 주사기를 사용했다는 식의 요청이었다.

The money shouldn’t have been lying in accounts.
그 돈은 계좌에 있어야 했다.

Every penny should have been used.
푼돈으로 모은 돈은 환자를 위해 사용되어야 했지만 그러하질 못했다.

Mother Teresa spoke against Vatican II making any doctrinal or practical changes in the Roman Catholic Church in the sixties.
테레사 수녀는 60년도에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교리적이거나 실행적인 변화를 만든 교황 바오로 2세를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She supported the old horrific triumphalist and sectarian Church system that existed before Vatican II.
테레사는 승리주의자( 특정의 교리가 다른 종교의 교리보다 우수하다는 주장하는 자) 과 교황2세 앞에서 파벌적 교회제도를 지지했다.

She did not want the Church to become more human.
그녀는 교회가 인본화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She has frequently presented Calcutta as being a worse city than it really was to pull in the donations.
테레사는 자주 캘커타를 실제 기부로 후원되어야할 것 보다 더 나쁜 도시로 제시했었다.

Please look up the sites by Christopher Hitchens and Aroup Chatterjee on the Internet and do a search in Google.
구글과 크리스토퍼 해첸스와 애로우프 채터지에 의해 운영되는 사이트를 찾아 보시길...

It was reported in the Sunday Tribune of October 20<sup>th, 2002, (Vol 22) that Monica Besra, a West Bengali lady, who alleged that she was cured by Mother Teresa was not the recipient of a miracle though the Vatican formally recognised that she was.
2002년 10월 20일 선데이 프리뷴지에 의하면 테레사 수녀에 의해 치료를 받았었다고 발표했었던 서 벵골여성 모니카 베스라는 바티칸에서 그녀를 공식적으로 기적의 수혜자로 인정하고 있을 지라도 그녀는 기적의 수혜자가 아니었다.

She said she was cured of a incurable cancerous tumour of the abdomen in 1998 on the anniversary of Mother Teresa’s death.
그 벵골여성는 테레사의 죽음을 기념하여 1998년에 치료가 불가능한 복부 암 종양을 치료 받았었다고 말했다.

She claimed that she was ill and that two nuns prayed with her to Mother Teresa when she felt strangely elated and discovered that she was healed.
벵골 여성은 주장하기를 그녀가 아팠었고 두 명의 수녀와 함께 기도했으며 테레사 수녀에게로 갔을 때 그녀는 이상하게도 기운이 돋았고 자신이 치료되었다는 것이다.

Doctors have testified that it was not cancer but a tubercular lump that died away thanks to prescribed drugs.
의사들은 벵골여성에게 있었던 것은 암이 아니라 종양성 혹 이었고 그녀에게 처방된 약 덕분에 치료를 받았다는 것을 증언했다.

She went for an ultrasound despite saying that her symptoms had gone and this was in May 1999!Were they gone at all?
벵골여성은 자신의 증상이 사라졌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초음파를 위해 병원에 갔었다.
이때가 1990년 3월이었다. 정말 모든 증상들이 사라졌던 것일까?

Parts of her story do not add up so her version cannot be trusted and it does seem that she had many of the same symptoms for she was admitted to hospital a year after the miracle with severe pain in the abdomen.
벵골여성의 말이 일치를 하지 않아서 그녀의 의견을 신뢰 할 수가 없고 그녀는 자신의 복부에 있는 심각한 고통과 관련해서 일어난 기적 1년 후에 병원에 입원할 것을 허락받을 것을 보아 많은 같은 증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According to a story that broke on 19<sup>th of October 2002, Dr Murshed claimed that representatives of the Roman Church and Mother Teresa’s order had come to him and applied pressure for him to declare the cure to be a miracle that can only be explained supernaturally.
2002년 10월 19일에 일어났던 한 이야기에 의하면 로마 천주교의 대표자들과 테레 수녀의 요구가 그에게 있었고 압력을 행사해서 닥터 무쉐드가 테레사 수녀의 치료가 오직 초능력적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기적이라고 선포하도록 했다.

Many doctors were claiming that they treated Ms Besra for her illness even after the alleged healing.
많은 의사들은 벵골여성 미스 베스라가 테레사 수녀로부터 치료를 받았었다고 공언한 후에도 그녀의 질병을 치료했다고 주장했다.

p.s
타 사이트에서 번역을 부탁하여 받아서 올린 것입니다. 

  이용섭 주, 위의 "교황 바오로 2세"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수정해야 합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 폭로 서적 사진
이 책의 주요 내용 셋. 근본주의자. 사기꾼. 위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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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을 낳는 걸 직접 눈으로 봤습니까 ?
한국 개신교는 예수 이름만 빌린 신흥종교

감리교 목사이면서 감신대학원에서 신학박사 학위 과정 중에 있는 어떤 이가 "그러므로 칼빈이나 쯔빙글리, 심지어는 18세기 합리주의의 시대속에서 옥스포드를 통해 지성을 닦은 웨슬리 조차도 마1:25를 ‘마리아 영구 동정설’로 인정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한국 개신교의 지적 도덕적 영적 수준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문법상 "...할 때까지...하지 않았다"가 반드시 그후에는 그 일이나 사건이 이루어지거나 성취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데오토코스(하느님을 낳은 여인) 동정녀 마리아님의 "영구 동정성"을 부정하는 이들은 바로 이것을 곡해하여 그들의 이론과 주장을 거짓 선전해 오고 있고 작금 한국 개신교계의 거의 모두가 이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4세기 말의 정통고대교부 에피파니우스(Epiphanius)는 그의 저서 "약상자"(Panarion)에서 초대교회로부터 자신의 시대까지 존재한 사이비 이단설 80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이 80가지들 중 마리아님의 "영구 동정성"을 부정하는 자들의 주장과 이론을 영어로 Antidicomarianitism이라 부른다. 이 주장이 전체 고대교부들의 눈에는 사이비 이단설로 비쳤던 것이다. 당시 이러한 주장을 한 사람들은 정통고대교부들이 사이비 이단으로 정죄하였던 4세기의 헬비디우스, 요비아누스, 보노수스 등이다. 아래는 하나의 증거 자료이다. 4세기 정통고대교부 제롬의 글이다

http://www.newadvent.org/fathers/3007.htm Jerome(예로니모<무스>)
The Perpetual Virginity of Blessed Mary Against Helvidius.

"This tract appeared about a.d. 383. The question which gave occasion to it was whether the Mother of our Lord remained a Virgin after His birth. Helvidius maintained that the mention in the Gospels of the "sisters" and "brethren" of our Lord was proof that the Blessed Virgin had subsequent issue, and he supported his opinion by the writings of Tertullian and Victorinus. The outcome of his views was that virginity was ranked below matrimony. Jerome vigorously takes the other side, and tries to prove that the "sisters" and "brethren" spoken of, were either children of Joseph by a former marriage, or first cousins, children of the sister of the Virgin. A detailed account of the controversy will be found in Farrar's "Early Days of Christianity," pp. 124 sq. When Jerome wrote this treatise both he and Helvidius were at Rome, and Damasus was Pope. The only contemporary notice preserved of Helvidius is that by Jerome in the following pages."

길어서 일부만 인용했다. 나머지 전문과 또 다른 정통고대교부 기적행사자 그레고리(우스)의 글 셋은 당당뉴스 자유게시판에 있다. 그리고 루터, 캘빈 등도 역시 정통고대교부들의 노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쯔빙글리, 불링거, 재침례교파의 발타자르 휘브마이어, 월도파 등도 역시 마리아님의 "영구 동정성"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또한 이것은 감리교의 창시자 죤 웨슬리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리고 20세기의 대신학자로 일컬어지는 칼 바르트(Karl Barth)도 역시 그러했었다고 알고 있다. 죤 웨슬리의 마태 1:25 영어 주석을 미국 야후에서 찾아 아래에 붙였다.

http://www.godrules.net/library/wesley/wesleymat1.htm

"25. He knew her not, till after she had brought forth - It cannot be inferred from hence, that he knew her afterward: no more than it can be inferred from that expression, 2 Sam. vi, 23, Michal had no child till the day of her death, that she had children afterward. Nor do the words that follow, the first-born son, alter the case. For there are abundance of places, wherein the term first born is used, though there were no subsequent children. Luke ii, 7."

http://bible.christiansunite.com/jfb.cgi?b=40&c=1

"25. And knew her not till she had brought forth her first-born son: and he called his name JESUS--The word "till" does not necessarily imply that they lived on a different footing afterwards (as will be evident from the use of the same word in 1Sa 15:35 2Sa 6:23 Mt 12:20); nor does the word "first-born" decide the much-disputed question, whether Mary had any children to Joseph after the birth of Christ; for, as LIGHTFOOT says, "The law, in speaking of the first-born, regarded not whether any were born after or no, but only that none were born before." (See on Mt 13:55,56)."

이것도 또한 미국 개신교 주석에서 퍼온 것이지만 루터, 캘빈, 웨슬리 등과 일치한다.

http://bible.christiansunite.com/gen.cgi?b=Mt&c=1

"1:25 And knew her not l till she had brought forth her firstborn son: and he called his name JESUS.
(l) The word "till", in the Hebrew language, gives us to understand that a thing will not come to pass in time to come: as Michal had no children "till" her death day, (2Sa 6:23). And in the last chapter of this evangelist: Behold, I am with you "till" the end of the world."

이것도 역시 미국 개신교 주석에서 퍼온 것이지만 루터, 캘빈, 웨슬리 등과 또 다시 일치한다.

아래는 미국의 "The Orthodox Church"에서 나온 자료 중 일부이다.

http://www.stathanasius.org/bible/dormition.html

"Thus James was very highly regarded, both among the Christians and among the Jews who rejected Christ. How did James come to be the person he was? One answer is that he imitated his Step-brother and Lord. But James was 8-10 years older than Jesus. Imitation was possible for James when he was in his 20’s; but before that, credit for James’ training in righteousness can be laid at the feet of his step-mother, Mary, and also at the feet of his father, Joseph. Since Joseph was away from home much of the time building houses76, Mary had the primary responsibility for the young children. Since Mary’s lifestyle from the time she was a toddler was one of prayer and fasting and devotion to God in the Temple, it’s just natural for the young James to imitate her. And it is out of this life of devotion to God that James wrote his liturgy for the Jerusalem Church."

아래는 영어를 잘 하는 어떤 천주교인의 번역이다.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를 거부한 유대인들 양측으로부터, 그래서 야고보(James)는 매우 귀하게 여겨졌다. 어찌하여 야고보는 그와 같은 사람이 된 것일까? 하나의 정답은 주님이신 그의 이복형제를 그가 모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보다 야고보는 8-10살 나이가 더 많았다. 야고보가 20대일 때에 모방하는 것이 가능하였을 것인데; 그러나 그 이전에, 야고보의 정의로움(righteousness)에 대한 수련(training)의 신뢰(credit)는 그의 의붓어머니인 마리아, 그리고 그의 아버지인 요셉의 발밑에 둘 수 있다. 집들을 짓느라고 대부분의 시간에 요셉은 가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마리아가 어린 자녀들에 대한 주된 책임을 졌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마리아의 생활방식이 대성전(Temple)에서 기도와 단식과 하느님에 대한 헌신 중의 하나이었기에, 젊은 야고보가 마리아를 모방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리고 하느님께 헌신하는 바로 이러한 삶으로부터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전례문(liturgy)을 썼다."

한국 천주교에서 쫓겨나서 성공회대 초빙교수로 간 정양모 신부는 "(ㅂ)"그녀와 동침하지 않고 지냈다"(25a절)는 의역이고 직역하면 "그녀를 알아보지 않았다"이다. 25a절을 우리 말 역문으로 읽으면, 요셉은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다음에는 그녀와 동침했다는 인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스어에서는 "... 때까지... 않았다"라 하면 뒷날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울러 주석의 상식에 따라 문맥을 고려하여 25a절을 풀이해야 한다. 앞 문맥을 보면 마태오는 마리아가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하고 낳았다는 데 관심을 쏟았을 뿐, 예수 탄생 후에 양친이 성관계를 맺었는지 아닌지에 관해서는 흥미조차 갖지 않았다."(39쪽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신약성서 마태오 복음서 정양모 역주 분도출판사) 라고 말하면서 마리아님이 주 예수님의 출산 후 요셉과의 성관계를 통해서 자녀들을 더 두었는지, 두지 않았는지도 신비라고 말한다.

1977년 8월 15일에 나는 하느님을 믿기로 결심했었다. 그후 많은 사이비 이단을 거의 직접 겪어보았다. 사이비 이단을 많이 겪으면서 그 와중 속에서 정통 신앙을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사이비 이단은 정통을 흉내낸다. 즉 짝퉁인 셈이다. 그런데 짝퉁도 수준이 높은 것이 있고, 낮은 것도 있다. 나는 92년 휴거 시한부 종말론(이장림), 서달석, 이송오, 김기동, 나주 가짜 마리아교 윤홍선 율리아 교주, 강춘오, 이흥선, 이재록, 김홍도, 이초석 등을 직 간접적으로 겪어보았다. 그런데 여기 윤홍선 교주를 빼고는 모두가 주 예수님의 모친 동정녀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perpetual virginity)을 부정한다. 희안하게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모두가 한 입을 모아 한 목소리로 외쳐댄다. 통일교 문선명 교주, 전도관 박태선 교주, 섹스교 정명석 교주도 위와 같은 주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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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125.128.217.159)
2007-08-26 03:14:31
나그네님에게
그것은 거짓이고 저는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사탄의 교리) 그리고 묵주의 기도 그리고 감실(신부가 축성한 성체 조각들을 모아 놓은 곳)에 기도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저는 천주교인이 아니고 정통 캘빈주의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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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5
목사 (81.51.23.167)
2007-08-25 21:16:02
하하하 동방교회 자료...
그것을 논의해 봄이 더 구체적이 되겠군요.
동방교회의 그리스도 초자연적 공간이동 출산...

또 제안하고 싶은 데, 별의 출현을 연구바람. 동방의 박사가 정말 왔었는지 연구,

믿음을 육의것으로 증명하려하고 육의 것으로 그 접촉점을 찾으려하면 매우힘들며 끝없는 방황과 설에 시달릴것입니다.
죤쉘비스퐁감독의 저서 "예수를 해방시켜라" 를 권해드립니다.
리플달기
7 16
나그네 (220.77.252.170)
2007-08-25 15:57:52
이용섭님께 질문
이용섭님의 입장은 그리스도교리의 근간이 삼위일체신앙을 흔드는 마리아 공동구속자설을 반대하지만 로마 카톨릭의 보편된 신덕 도리중 하나인 성모마리아의 평생동정설을 신봉하시는 것으로 정리됩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그분 "누"가 되겠지만 ... 마리아께서 예수님의 출산행위로 인해 그의 처녀성의 육체적 표지가 훼손될 수 있기에, 마치 석가모니가 그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출생했다는 전설이 있는 것처럼 동방교회는 예수그리스도가 성모님의 자궁에서 산도를 통하지 않고 초자연적인 공간이동을 통해 출생했다고 믿는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로마카톨릭의 "semper virgo"에 대한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초자연적인 출생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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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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