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계 > 에클레시안뉴스
김은국의 순교자와 박은조 목사교인들이 아니라 박은조 목사가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
황규학  |  hpastor@ms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7년 08월 23일 (목) 22:47:50 [조회수 : 8161]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대학에 다니면서 내가 본 사람 중 특별히 기억나는 세 사람이 있다. 그 중의 한 명은, 민주화와 지역을 지키고자 나섰던 광주시민들을 순교자로 만든 광주학살 주범 전두환의 딸, 전효선이고, 다른 한명은 루게릭이라는 병으로 몸은 비록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록 비틀려도 순교적인 자세로 우주의 역사를 연구한 스티븐 호킹이며, 마지막 한명은 노벨문학상후보까지 오를 정도로 『순교자 』(The Martyred)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김은국 교수이다. 당시 전효선은 필자와 같이 인문대학에서 공부했고, 스티븐 호킹은 특강강사로 왔으며, 김은국 교수는 교환교수로 있었다.

김은국의 순교자

김은국 교수는 미국에서 『순교자 』(The Martyred)라는 소설을 써서 일약 대스타가 되어 미국에서 대학교수까지 지냈고, 1969년에는 스웨덴 한림원에 의해 정식으로 노벨상 수상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그의 작품은 까뮈와 도스프예스키의 작품과 맞먹는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순교자 』(The Martyred)가 1964년에 뉴욕에 있는 조지 브래질러 사(George Braziller)에서 출간 발표되자, 그는 일약 미국문단에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고 그의 소설은 소설 분야에서 20주 동안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김은국의 <순교자>가 이처럼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점은 한국전쟁이 바로 끝나자마자, 당시 세계의 조류였던 실존주의적인 철학과 허무주의적인 사상을 통해 6.25전쟁의 상황속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문학을 통해서 승화시킨 것이었다.

소설의 주제는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을 종교의 신념까지도 초월해서 표현했기 때문이며, 기존 기독교에서 추구하는 순교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버렸기 때문이다. 종교나 기독교에서의 순교개념은 특정종교가 선포하는 교리와 진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압박세력에 굴하지 않고 죽음으로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었다.

불교의 이차돈이나 기독교의 주기철목사, 천주교의 김대건 신부의 순교 등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순교의 Martyr는 헬라어 ‘증인’이라는 뜻의 ‘마르튀스’에서 온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순교자라고 말을 할 때는 죽는 그 순간까지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다 죽으면 순교가 되는 것이다.

김은국의 순교자는 기독교의 순교자 개념과 달라

그러나 김은국의 순교자의 개념은 기존의 기독교에서 내포하는 뜻과 전혀 상반된 것이다. 그것은 신앙과 신학이 아니라 실존주의와 인간적 낙관주의가 뒷받침된 것이다. 초점은 신의 영광을 위해 그를 증거하다가 죽는 사람이 아니라 신의 존재와 상관없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절망한 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다.

‘순교자’라는 소설속에 나오는 신목사는 신앙과 상관없이 인간의 양심과 성실성으로 고난의 상황을 극복해 가는 인간상이다.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을지라도 다른 인간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그들에게 희망을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허무와 절망을 나누어 진다. 김교수는 이러한 삶이 십자가의 삶이며 참된 순교라는 것이다.

6.25 당시, 14명의 목사들이 공산당에 잡혀서 12명이 처형되고 두 명이 남게 된다. 남은 한 명은 정신이상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끝까지 신념을 지킨 신목사이다. 사람들은 죽은 12명이 진정 순교자라고 말을 했고, 살아있는 두 사람의 목사는 배교자라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당시의 처형현장의 주범인 공산당원을 통해서 알려진 사실은 자신은 비굴한 목사를 처형했고, 오히려 신념이 견고한 목사는 살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신목사는 전쟁의 참화속에서 신에 대한 회의가 생기게 된다. 과연 지옥과 같은 전쟁의 참화 속에서 처절하게 고통 받고 있는 인간을 외면하고 있는 신(神)은 정말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이 발생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고통 속에 처한 인간들이 살아갈 수 있는 의미를 신을 대신해서 부여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비겁자, 배교자의 소리를 듣는 것은 얼마든지 감수하면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 속에 함께 하면서, 자신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신 대신에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신이 없는 곳에, 신이 다하지 못한 곳에, 절망과 허무속에서 허덕거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같이 고통을 나누면서 그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위안과 꿈을 주는 것이다. 신목사는 월남도 하지 않고 끝까지 북한의 교인들을 지켰다. 신이 가슴속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과 마지막까지 함께 하며,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순교자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이것이 순교자에 나오는 신목사의 삶이었다.

그는 자신에게는 잃어버린 신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끝까지 희망을 가지라고 역설한다. 다른 인간들로부터 오해를 받을지라도 인간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그들에게 희망을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허무와 절망을 나누어 짊어지려는 삶이 십자가의 삶이며 참된 순교라는 주장이다.

즉 신이 죽은 시대에 신이 베풀지 못하는 사랑을 베푸는 그 인간이야 말로 참된 순교자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소설은 우리 인류 전체의 가장 소중하고 보편적인 가치인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에 따른 영혼의 고뇌를 표현한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은국의 소설속에서 순교자는 기독교의 순교자개념과 전혀 다른 것으로, 기독교의 신이 다하지 못한 곳에, 자신을 희생시키면서 허무와 고통, 절망을 나누어지면서 미래의 희망을 주는 사람이다.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

   
 
  ▲ 샘물교회 박은조목사  
 
앞으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게 될 사람이 박은조 목사이다. 그는 뉴스엔조이를 발행해 한국교계의 개혁을 이끌었고,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고신교단에 속한 교회이면서도 가장 개혁적인 정책을 추구했으며, 교회의 본질은 선교정책을 장려했고, 건강한 교회로 성장시킨 사람이다.

한국교회는 그간 사학법재재정, 종교인들의 소득세 납부, 세습, 횡령, 교회당 건축, 필립핀 선교사와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성범죄, 총회장 금권선거 등으로 얼룩져 부패와 비리의 친구가 되어왔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교계개혁을 위해 누군가의 순교자를 필요로 했다. 사학법이 재개정되고, 종교인들의 소득세 납부문제 등으로 기독교가 계속 얻어맞자, 아프간 선교인질사태는 오비이락으로 샘물교회에 날벼락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박은조 목사는 누구보다도 고뇌에 차 있을 것이다. 담임목사 자리를 던지고 어데론가 사라지고 싶기도 할 것이고, 차라리 아프간에서 배목사와 심성민 대신 자신이 희생당했더라면 차라리 나을 뻔했다는 생각을 먹은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적어도 박은조 목사의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볼 빼, 얼마든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러나 사회여론과 일부 교인들, 교단, 교계로부터 비난의 소리를 감당해야 할 것이고, 심지어는 책임지라는 행동도 요구되며, 압박도 거세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들이다. 박목사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짐이 생각보다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공영 방송관계자들도 기독교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면 샘물교회가 주연으로서 있게 될 것이다.

박은조 목사는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박은조 목사에게 순교자의 삶을 요구할 것이다. 누군가가 희생당해야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는 의미에서 박은조 목사는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 그 순교자는 김은국이 말하는 전쟁속에서 침묵한 신을 보며 좌절한 신목사의 그런 순교자로서의 삶이 아니라 아프간의 침묵속에서도 이 시대에 무언가를 말씀해 주고 있으며, 순간순간 우리의 삶속에서 고통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마음속에 부여안고, 자식들을 잃어버린 고통과 절망 중에 있는 가족들과 아직도 석방되지 않아 하루하루 불안하고 초조하게 지옥의 삶을 보내고 있는 인질가족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하며, 그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안겨주는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

자포자기나 뒤로의 후퇴가 아니라 박목사가 희생함으로 연약한 이들과 절망 속에 처해있는 형제들과 삶을 나누고, 미래의 새로운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 희망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종말론적인 부활의 희망이다.

말씀이신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고 말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분명히 침묵하지 않으셨다.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가 죽어가도 침묵한 하나님은 그들의 행위를 통하여 온세상에 말씀하고 계셨다. 이번에 한 탈레반에 의하면 원래는 다른 사람이 석방되려고 했는데 한 자매가 자기대신 더 몸이 약한 다른 자매를 석방시키라고 했다고 말한 바가 있다. 하나님은 피랍상황에서도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그 자매의 헌신적인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희생의 정신을 온 세상에 말하고 계셨다.

기독교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언어철학자 비트겐쉬타인은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은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즉 형이상학속에 있는 세계는 삶이나 언어를 통해서 보여주어야 한다. 이제까지 샘물교회가 한국교회의 부패와 타락의 죄를 온통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한국교회가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계시와 정신을 온 세상에 드러내지 못하고, 인위적인 요인들만 드러냈기 때문이다.

성경은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했는데, 한국교회는 항시 운동장이나 광장에서 남보란 듯이 통성기도를 하였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일을 하라고 있는데 한국교회는 삼척동자까지 다 알도록 행동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의 친구였는데 한국교회는 기득권자들의 친구였다.

예수는 머리 둘 곳 하나도 없었고, 전도자를 파송하면서도 지팡이와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은 고급아파트에 고급 세단차, 고급 골프채를 갖고 있다.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는데, 한국교회는 가이사에게는 바치지 않고 하나님께만 바친다.

이상, 한국교회는 기독교의 참본질은 하나도 드러내지 않고, 인간의 본질인 부패와 기득권, 금권, 소유, 범죄, 탈세, 세습, 힘있는 정치인과 야합 등으로 말해질 수 없는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라 누구나도 알 수 있는 인간의 본질만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는 죽었다

아프간의 사태로 인해 한국의 기독교는 죽었다. 배형규와 심성민,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인질들, 이들 모두는 부조리한 한국의 기독교를 위해서 희생된 것이다. 기독교는 얼마 전까지 삭발 사학법재개정투쟁에서 승리했다고 하여 감사예배를 드렸고, 종교인 납세의무에 대해서도 철두철미하게 내지 않으려는 기득권적 자세를 견지했고, 대형교회는 서로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변호사비와 용역들을 동원하여 기득권이 하늘에 달했음을 보여주었다. 광성교회는 재산이 2,000억 이상 된다고 한다. 2,000억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교회분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박은조목사는 이제 순교해야 한다. 그 순교는 모든 것을 위해 자포자기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극심한 불안과 고통을 겪고 있는 인질가족들과 교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몰락한 한국교회를 위해 새로운 개혁의 고삐를 쥐고 헌신하는 순교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김은국의 무신론적 순교자로서의 삶이 아니라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에 기초한 유신론적 순교자로서의 삶을 말한다.

신이 없는 아프간이나 북한, 모슬렘권, 공산권, 아프리카에 처해있는 굶주림과 병에 찌든 사람들을 위해, 진정으로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껏 전파하는 순교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기독교의 순교자는 신의 영이 충만한 상태에서 신의 의지를 실현하는 사람

김은국의 순교자는 신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은 절망스럽고 고통스럽지만 남에게 기쁨과 희망 꿈, 위안을 주는 실존에서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순교자는 배형규목사 처럼 신의 영이 충만한 상태에서 신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이 땅에서나 사지에서 헌신자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박은조목사의 어깨는 점점 무거워질 것이다. 교회안에서는 피랍된 인질들의 가족과 죽음을 당한 가족들, 교인들과 고통을 함께 감수하고, 한국교회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개혁의 박차를 가하고, 모슬렘, 공산국가 상관없이 이념과 종교를 초월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아낌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함으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제대로 보여주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이제까지 한국의 기독교는 행함이 없기 때문에 죽었던 것이다.

이제 박목사가 그리스도의 충만한 영을 가슴에 부여안고 피랍된 인질 가족, 고통당하고 희망이 없는 사람들, 어둠에 처한 사람들, 부패한 한국교회를 위해 다시 일어나 순교자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적어도 박목사의 가슴에는 신목사와는 달리 살아 숨쉬는 하나님의 호흡이 넘쳐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목사의 순교자적인 삶을 통해서 말해질 수 없는 하나님의 세계를 온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관련기사]

황규학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147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7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WithJesus (202.169.217.124)
2007-08-24 11:55:40
박목사님, 정 예수인이길 원한다면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며
성도들과 목사님들은 모두 지체입니다.
몸통(지체)의 중심은 나라고 나서서는 아니됩니다.
왜냐고요?
예수님이 머리시고 몸통의 중심이시니까요?
그러면 목사님은 입입니까?
아닙니다. 목사님이 입일 때도 있고
성도님이 입일 때도 있습니다.
목사님이 손일 때도 있고
성도님이 손일 때도 있습니다.

본인의 의지와 생각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하기 전
다시 둘러 보십시요.

어디에 문제가 있는 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바지께 자복하십시요.
그리하면 겸손히 섬기고자 하는
예수님의 영이 당신을 바르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리플달기
11 10
목사 (83.196.244.225)
2007-08-27 11:01:12
고 심성민씨 장례식 동영상을 보고
고 심성민씨 장례식 동영상에서 영상으로 처리된 심성민씨 모습과 식구들의 울부짖음
과 애통해 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300명 의 배형규 목사 아니 3000명이 더 나와야 한다"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은 박은조 목사의 말이 떠오른다..
어떻게 이 때에 그런말을 할수 있는가?
아무리 좋은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지나친것은 악이 된다.
부시가 이락크를 해방하기위해...태러와 싸우기위해 더 군인들을 증파해야 한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
왜 박은조목사의 말이
부시의 말과 같은 조로 들리는 이유가 뭘까..생각해 본다.
눈물흘릴때 같이 눈물흘리고 아플때같이 아파하고..
특별히 희생으로 복음의 꽃핀다 하지만 희생의생명들이 당황한 죽음을 맞도록 하지는 말아야한다. 또 그의 형제자매 혈육들을 당황시키지 말아야한다..
준비되지못한 희생강요는 신앙의 냉소주의가 자라게 되는 법이다.
슬픔들을 어떻게 보듬을 것인가?..."개인의 신앙에 달려있다"고 금방잊어버리고 무책임할것인가?
한국교회는 이래서는 안된다.
리플달기
3 14
이용섭 (211.171.137.213)
2007-08-26 12:38:15
박은조 목사는 목사직 사임하고
시골로 내려가 평생 회개하고 살아야 합니다.
리플달기
7 16
이권사 (220.121.193.238)
2007-08-25 16:18:13
박은조 목사님 힘 내십시요
주님게서 지켜 보고 계십니다. 좌절하지 말고 기도 하십시요. 반드시 주님게서 목사님과 함게 하십니다.
리플달기
11 16
이용섭 (211.171.137.222)
2007-08-25 09:36:52
광주사태를 똑 바로 이해해야 한다
아래 글은 한국논단 11월호에 있는 글의 일부입니다.

▲이도형 : 특수군단이 여기 공수 부대처럼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각 사단에도 1개 대대씩 있다는 것인가요?

▲임천용 : 그렇지요. 각 군단에 2개 여단이 있고 그 다음 각 사단 안에 1개 대대가 있지요. 그것은 사단장 자기 작전범위 안에서 지휘하고 활용하는 특전부대지요. 그런데 군단 내에 2개 여단씩 포진되어있는 특수여단이란 것은 우리가 하계나 동계훈련을 할 때 합동훈련을 많이 합니다. 이들은 전시의 특전 무력이니까 이미 주어진 대상에 대한 임무가 할당 되어 있단 말입니다. 특전사들은 고정된 임무가 없어요. 그들의 규모나 범위나 실력이 대단한데 여기 남한에서는 그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박화진 : 그런데 그 특전부대를 남한에서 실제로 써먹은 예가 있어요?

▲임천용 : 실제로 써먹은 예는 저는 직접 관련된 자는 아닙니다만 광주사건의 경우는 확실하다고 저는 인정합니다.

▲이도형 : 광주사태 때는 얼마나 투입이 되었어요?

▲임천용 : 그 때 우리 대대에서 저는 대대장 연락병을 하던 당시인데요. 우리 대대에서 7명이 광주에 파견되어 갔었어요. 그때 상황을 들어보면 특전부대 내에서 훈련이 잘된 사람들을 뽑아서 임시 단위를 구성해서 광주로 보낸 거지요.

▲이도형 : 육지로 보냈나요? 아니면 배로 보냈나요?

▲임천용 : 아니에요. 제가 여기 와서 전두환 정권 때의 실세들도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했는데 그들이 이야기 하는 것하고 약 80%정도 맞는데 그때는 계엄령이 내려져서 육지는 전부 봉쇄되어있었고 그들은 전부 서해안으로 들어왔지요. 그런데 광주에 그 사람들이 내려와서 절반으로 나뉘어져서 한 무리는 진압군 쪽 군복을 입고 계엄군 쪽에 침투하고 그리고 절반쯤은 시민군 쪽에서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도형 : 7명인데 그들이 그랬단 말입니까? 그리고 무기는 무엇이었나요?

▲임천용 : 아니지요. 우리 대대에서만 7명이 나왔다는 이야기이고 총체적으로 약 1개 대대가 내려 왔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추산하면 한 4백50명 정도로 볼 수 있지요. 그리고 무기는 잘 모르지만 그때 여기서 방산 업체 습격 같은 것 많았잖아요. 그러니까 저희도 사실 의문을 가졌던 것이 교도소는 봉기군이 교도소를 습격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런데 왜 습격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 두환 씨 밑에 있었던 분들도 그러더라고요. 그때 상황에서 여기 봉기군 능력으로 방산 업체나 그 밖의 국가 시설물을 습격한 사례나 교도소 습격한 사례, 탱크나 장갑차등 중장비를 탈취한 사례 등에서 볼 수 있었던 그런 능력이 봉기군에게 있었겠느냐, 없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있어도 한두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대중적으로 무장봉기가 될 수 있었던 여건 면에서 볼 때 광주 땅에서는 기반이 없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벼락같이 상황이 반전되고 무력 대 무력 대결로 나오니까 여기 사람들 상당히 당황했던 모양이지요. 그래서 저희가 북한에서 이런 자료가 있었는데 여기서 말을 한번 맞춰볼 필요가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진압군 쪽은 백퍼센트 응사한 것이지요. 증언하는 것을 들어보니까 그때 사상자들을 병원에서 수습하고 치료한 내용을 분석한 것을 보면 뒤에서 맞아 사망하고 부상한 경우가 더 많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북한에서도 그런 소리를 들은 바가 있거든요. 그러니까 북한에서 내려간 특수요원이 양쪽 진영에 포진해서 말하자면 이것은 내부교란 내지 배후교란이지요. 양쪽에서 소요를 일으켜 싸움을 붙이고 당사자들은 모르니까 말이지요. 봉기군 쪽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은 혼란상황을 이용해서 사상자를 내고 그러면 거기서 나는 사상자는 무조건 진압군 쪽에 원인이 있는 것이 되니까 문제는 북한 쪽에서 이렇게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지요.

▲이도형 : 그 광주사태 직후에 육군본부에 근무하던 내가 잘 아는 장군으로 광주지구 계엄사령부 참모였던 사람인데 희생자들 屍身彈痕(시신탄흔) 조사를 했어요. 1백68구인가 그랬는데 그 당시 국군은 모두 M16을 갖고 있었거든요. 칼빈이나 M1은 그때 국군에게 없었어요. 그런데 탄흔 조사를 하니까 약 3분의 2가 칼빈에 맞아죽었더래요. 이것이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소위 봉기군 시민군 그 사람들의 총격에 맞아 죽은 것을 의미한단 말입니다. 자기들 끼리 쏘아죽인 것이란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아무튼 그것은 전후맥락을 다시 따져 봐야 되겠지만 어쨌든 확실한 것은 북한이 광주에 커밋트(commit)했다는 사실이지요.

▲임천용 : 그거야 확실하지요. 저 혼자 이야기도 아니지요. 여기 내려와서 북한 통전부(통일전선부)에 있던 사람한테 최근에 들은 이야기 인데 통전부 지하 자료실에 대남관련 자료들이 쭉 전시되어 있대요. 그중 한곳에 광주사태 관련 자료들도 전시되어있대요. 그 사람은 당사자니까 거짓말 아니겠지요. 그 밖에도 여기 북한에서 내려온 특수부대 출신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특수부대 출신들은 말을 섞어보면 이 사람이 실제로 특수부대 출신인지 금방 안다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특수부대 근처에서 군사 근무를 했거나 그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은 혹간 나도 특수부대 있었다고 위장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분명한 특수부대면 만나서 말을 몇 마디 섞어보면 금방 상대한테서 답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무조건 특수다 아니다 하는 것이 말이지요.

▲박화진 : 광주사태는 그렇고 그전이나 후에 다른 무슨 소요사태나 큰 데모가 벌어진 경우 일테면 89년 6월 10일 이른바 「6. 10항쟁」말이지요. 그 결과 6 29선언도 나오고 그랬는데 그런 때는 침투한 예나 흔적이 없어요?

▲임천용 : 그 때 상황은 나로서는 말할 내용이 아니라고 보는데, 김일성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있지요. 남조선을 해방시킬 수 있는 기회를 딱 세 번 놓쳤는데 아쉽다. 그러면서 광주가 참 아쉽다 그랬다지 않습니까.

▲이도형 : 그런데 그것은 광주에 그렇게 조금 침투시킬 것이 아니라 그것을 풀로(전면적으로)이용해가지고 남조선을 해방 시킬 수 있었는데 못했다. 그런 뜻이겠지요.

▲임천용 : 아 그거야 그렇지요. 특히 그들은 광주에서 다른 도시로 4.19때처럼 번져나가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그런데 북한쪽 개입이 이쪽에서 진압군한테 봉쇄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중요 역할을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당시 유독 광주에서만 지독했지 타 도시에서 거기에 호응할 움직임 같은 것은 없었다고 그러더군요. 옛날부터 광주가 ×××소굴이라는 냄새가 나던 곳인데 이제 북한 김정일 이가 남한에 내려오면 광주에서 영웅들이 수태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더라고요.

▲이도형 : 아까 나온 광주사태 이야기 다시 한 번 듣고 싶은데 그러니까 1980년 5월18일 이른바 5. 18 광주사태가 사실은 그 전 날부터 전남대학, 조선대학 등에서 데모가 격화되다가 확대된 것인데 실제로 그러니까 임천용 씨가 거기서 겪어본 것을 토대로 말하자면 어떻게 거기서 개입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임천용 : 광주사태를 제가 이제는 제 입으로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말하자면 자신감이랄까 그런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선 한국에 와 있는 특전사 출신들이 한결같이 자신의 생명을 걸고 보증하는 것입니다.

▲이도형 : 특전사라는 것이 북한의 특전사 말입니까?

▲임천용 : 예, 북한의 특전사 출신들이 지금 나처럼 남한에 와있는 사람들이지요.

▲이도형 : 그것이 몇 사람이나 되요?

▲임천용 : 우리 단위에 있던 사람들이 20여명 되는데 그 외에도 제가 알기로는 저처럼 탈북 해 와 있는 사람이 한 7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압니다. 그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확실히 다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도는 제가 모르는 것이고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상황만 말하는 것입니다. 김정일이 사촌동생 김선일 이가 저희부대에서 군사복무를 7년이나 같이 했어요. 이 사람이 80년도 10월부터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는 소위계급장을 달고서 편제가 없는 작전참모부에 4급 작전 참모로 내려와 있었는데 7년을 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광주문제는 81년 6월 정도부터 그 소리를 대대장과 김선일 두 사람 사이에 하는 이야기를 통해 듣기 시작했는데 그 대대장은 직접 나왔던 당사자고 김선일이는 김정일이 사촌형이잖아요. 김일성의 막내 동생 김영주 아들인데 이들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나왔고 그 다음에 김일성 교시나 김정일이 방침이나 광주문제를 부각시키는 발언들을 많이 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없는 일을 말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에요. 공연히 인민군 상상교육 하느라 없던 일들을 만들어 내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리고 광주에 나왔다가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현재 살아있습니다. 3명이. 우리 대대 사람이 3명이 살아있는데 한 사람은 92년도에 제대를 했고 그리고 두 사람은 현재 현역으로 복무중입니다. 북한에요. 그러니까 이런 문제는 장난이라고 볼 수 없는 거지요.

▲박화진 : 그 이후에 특수부대출신으로 남한의 각계각층에 침투되어있다고 여기서 많이 추정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해요?

▲임천용 : 글쎄 저는 보지 못해 장담은 못하지만 광주에 내려왔다가 돌아간 인원이 3 분의 1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와서 많이 죽었겠지요. 우리대대에서 7명 나왔다가 4명 죽었어요. 그 4명중 한사람이 여기서는 1. 21 사건이라 하는 청와대습격미수사건에 참가했다가 여기서 죽은 함장근 이라는 사람 친동생 함장관인데 그 사람이 바로 광주에 내려왔다가 여기서 죽었어요. 그러니까 이런 사실들이 구체적으로 있습니다. 그때 광주에 내려왔다가 3분의 2는 못 돌아갔는데 그 인원이 북쪽에서 추산하기로 그게 다 죽었겠느냐 부상당했거나 합류 못했거나 하는 경우들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잠재세력이 여기 내부에 분명히 있을 것이고 최근 들어 평택시 사태 등을 볼 때 이것은 이곳의 민간주도는 아니다, 내부에 모종의 세력이 상당히 조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일부로 보인다는 것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기서 전시나 전시뿐만 아니라 어떤 내부적인 반란 내지 소요를 동원할 수 있는 북한의 계획된 인원들이 내려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도형 : 광주에 온 것이 4 - 5백 명 된다고 그랬지요. 그 중에서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 살아있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이 지금도 반정부 반체제 운동을 한다면 나이로 봐서 그때 20대면 지금은 40대가 넘을 거란 말입니다. 그들이 지금도 좌익조직에 침투해가지고 활발히 활동한다고는 볼 수 없겠지요. 있다면 그 이후에 다시 남파해서 침투한 사람들이겠지요?

▲임천용 : 그러니까 그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분명히 여기서 전향은 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만약에 그때 여기에 침투했다가 귀대 귀환을 못하고 여기 살아남아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전향을 했다면 세상에 광주에 북한 특전무력 부대가 나왔던 당사자가 여기 살아있다고 인터뷰기사가 나왔겠지요. 그러니까 분명히 그것은 어느 정권이 감추고 있을지 모르는데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어딘가 잠적해 있다고 봐야지요. 자기 정체를 안 내놓는다는 것은 분명히 저쪽 또는 누군가의 비호를 받고 밥을 먹는다는 소리겠지요.

2006.10.20
리플달기
8 16
이용섭 (211.171.137.222)
2007-08-25 09:33:01
황규학 목사님
광주사태의 희생자들이 순교자들은 아닙니다. 용어를 잘 골라 사용하십시오. 이것도 하느님께 큰 죄입니다. 그리고 저도 70년대 말 김은국의 순교자를 정독했었는데 그 책은 그럴 듯 하게 신앙을 말살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까뮤의 페스트를 흉내낸 것에 불과합니다. 그 책 서문에 이 책을 까뮤에게 바친다고 썼습니다. 그럼...
리플달기
7 15
목사 (82.126.224.188)
2007-08-24 23:50:2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고귀함의 가벼움이여~
한국교회에 보낸 "박은조 목사의 네번째 기도편지" 라고하여 읽어 보았는데
화가 치미는 맘 금할길 없습니다.
그것은 박은조 목사님의 기도부탁을 올리는 글을 읽고난 후에 영적인 느낌입니다.

목사 아들과 또 독자 아들을 위한 한마디의 변호도 없이 총으로 죽임을 당하고
졸지에 슬픔으로 가득할 그 부모와 사모 자녀들에 대한 애통한 마음이 전혀 전달되지 않을 뿐더러 한구절도 애도의 표현은 없고
또 기도제목이라는 내역으로 순서만 정해논 기도프로그램을 볼때 정말 화가 치밀고
뒤로 나자빠질지경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가르쳤는가? 정부의 발걸음보다 더 빨리 아프간이라도 달려가려고 했어야 되지 않았을까?
기도부탁을 올린다는 내용이 처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비신앙인들의 비판적시각에 대한 변명반론, 그리고 입바른 정부에 대한 감사치레, 그리고는 오히려 교회에 모이는 수는 더 많아졌다는 그윽한 기쁨조의 문장 ...
그리고는 기껏 프로그램화 한 기도제목나열에나 나열된 생명을 잃은 두분의 이름이여~
그리고는 여러분들의 귀한 사랑의 빚진자 박은조라?
아 ~~이 존재의 가벼움이여~~
담당 책임목사는 아무말씀없고 기도실에서 물만 잡수시고 있다고 해도 그 슬픔과 안타까움이 가시지않고 하나님께서 준 그 고귀한 생명의 존귀함의 희생들이 높아질텐데..

아~ 나불대는 존재의 가벼움이여~
빨리빨리 왕국이여 ~
영혼을 잃어버린 주둥이와 몸체의 가벼움들이여~
저 기도제목을 놓고 주절주절 떠들며 기도하며 울부짖으면 다 되는것인가?

언제부터 우리가 이리되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것은 인간의 깊은 시간의 예의를 잊어도 되는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속에는
벌건 대낮에 아무 대변 변호자 없이 총으로 온몸이 구멍뚤려 돌아온 아들을 보고 슬픔에 잠길 시간마져 빼앗아 가는 것인가?
성서의 많은 신앙인들의 죽음뒤에는 긴시간 함께 통곡하며 울어준, 울어주어야할 시간들이 기록되어있다.

기도제목으로 나열된 그 모든 기도제목이 담긴 용지가 한낮 행사프로그램으로만 보이는 이유는 뭘까? 슬픔과 사랑과 안타까움은 없이~~

연기자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탄 영화 "밀양"에서 범인을 용서하고 주려했던 꽃다발을 도로 들고나와 멍하니 서있다가 땅에 떨어뜨리고 주저앉아 버리는 그 장면과
기도하는 교인들 뒷자리에 앉아 기도소리를 듣기싫어서 의자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우는 모습이 왜 아들목사를 잃고 아무말할수 없는 아버지 모습과 배목사님 사모님모습 그리고
그 유가족들의 모습과 교차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앞에서 장렬한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그러나 박은조 목사는
그래서는 안된다... 그래서는 안된다...

회개해야한다...

뭘회개해야 할는지 알기나 알까?

아 인간의 가벼움이여 ~~

이것은 이 세대입니까? 아니면 교회가 영혼을 잃은 것입니까?

참을수 없는 존재의 고귀함의 가벼움이여~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3)
리플달기
11 14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