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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백 (8)이런 저런 이야기
이용섭  |  lys9791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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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8월 21일 (화) 11:35:43 [조회수 :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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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남+녀)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가 이것이 사라졌다면 그는 하느님께 큰 죄를 지은 것이다. 그러나 이 죄의 범위와 한계를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내 경험상 어떤 이가 교만해져서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로 자처하거나 아니면 사이비 이단에 빠지거나 커다란 영적 타락에 빠질 때에 방언의 은사가 사라지는 것을 직접 확인했다. 하지만 회개하려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이 은사가 회복되는 것도 목격하였다.

이번에는 나의 투병담을 하나 소개한다. 1980년대 중반에 있었던 일이다. 수유리에 영락기도원이라는 곳이 있다. 과거 나는 이 곳을 자주 갔으나 요사이는 그렇지가 못하다. 하루는 거기 예배당에서 많은 사람들과 예배를 올렸다. 예배가 끝난 후 어떤 젊은 부부가 당황하고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수락했고 남편으로 보이는 이와 대화를 했다. 그는 나에게 말하기 곤란한 것을 얘기해도 괜찮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어떠한 것을 말해도 좋다고 했다. 그랬더니 예배 중 그들이 함께 나에 관한 환상(환시)을 보았는데 커다란 구렁이(뱀)가 나를 칭칭 감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나도 그것을 알고 있고 많은 기도를 해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이번에는 내 자랑을 조금 하겠다. 나는 1979년도에 고 지학순 주교에게 스카우트 되었던 사람이다. 이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 그리고 1991년도에 첫번째 졸저 "로마천주교회와 알베르토 리베라"(도서출판 샘)가 나온 후 서강대학교를 운영하는 한국 예수회로부터도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 그래서 1992년도에 예수회 지원자 모임에도 나갔고 그때 동기 하나가 몇 년 전 예수회 신부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손우배"이다. 내가 1993년도에 예수회에 들어갔다면 지금쯤 서강대학교 교수 신부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1991년 수유리 한신대학원에서 거기 대학원장을 역임한 황성규 교수 목사를 알게 되었다. 1993년도에 졸저 "교황제도에 대한 교회사적 비판"(도서출판 들소리)을 내고 나서 황성규 목사를 가을에 만났다. 당시 황 교수가 나에게 "기장 목사가 되고 싶지 않느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기장 목사는 되고 싶으나 내가 정식 신학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것이 가능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황 교수가 기장 헌법에 평신도에게 목사 안수를 주는 조항이 있다면서 이번 기장 총회에서 나의 문제를 정식으로 상정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약 한 달 후에 전화하라고 했다. 그래서 그후에 전화를 했더니 황 교수가 나에게 총회에서 나의 문제가 부결되었다고 말했다. 덧붙여 기장 헌법의 그 조항이 사용된 전례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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