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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영어에서 개혁을 reform이라고 한다. reform은 form을 다시 잡는 것을 말한다.
황규학  |  hpastor@m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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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8월 15일 (수) 00:32:23 [조회수 :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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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 개혁을 reform이라고 한다. reform은 form을 다시 잡는 것을 말한다. 고양이를 공중에 던지면 접지하기 전에 폼을 다시 잡아서 사분히 내려앉는다. 이것이 reform이다. 고양이를 공중에 던져서 개혁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고양이일 뿐이다. 단지 폼을 잘 잡아서 떨어졌기 때문에 다치지 않았을 뿐이다.

이와 같이 개혁이라는 것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종교개혁을 주창했을 때 종교개혁자들의 슬로건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성경을 흔히 캐논(cannon)이라고 하는데 이는 자, 척도를 의미한다. 신앙의 기준이자 원칙이다. 사람이 흐트러질때는 항시 원칙으로 되돌아가려는 본성이 있다.

   
 
  황규학목사  
 
6.25의 폐허 이후 hungry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민족의 소망은 잘 살아보는 것이었다. 특히 개발독재시대의 슬로건은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 “100억불 수출 달성”이었다. 그 이후 30년 후, 국민소득은1만달러를 초과했고, 교회는 괄목할만하게 성장했다. 한국경제도 성장했고, 나라도 발전했고, 교회도 부흥을 이루었다.

그러나 사회는 자본주의의 폐혜가 나타나 양극화로 가게 되었고, 교회는 무분별한 성장으로 기복주의, 물질주의로 전락하고 말았다. 장로교는 많되 장로교의 본질도, 원칙도, 상식도 모두 없었다. 한국식 장로교이며, 한국식 기독교, 한국식 성경해석, 한국식 선교였다.

민주주의를 토대로 한 장로교회에 군주주의 체제가 머물렀고, 평등을 토대로 한 기독교에 수직구조가 존재했고, 세상에 빛이 되어 투명하게 하라고 했건만 모든 것이 불투명하여 어둠의 역할만 했으며,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했건만, 대낮에 시청 같은 넓은 광장에서 통성으로 기도했고, 좁은 길로 가라고 했건만 여의도처럼 크고 넓은 길로 들어섰고, 국가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건만 정부를 용공 빨갱이로 몰았고,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기도하라고 했건만, 물질적인 것만을 구했고, 심령이 가난해 지는 것을 복으로 생각하지 않고 배가 부른 것을 복으로 생각했고, 골방과 좁은 길보다는 넓은 기도원과 큰 교회당을 선호했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으나, 헌금할 때 이름을 항시 기재했고, 섬기는 자가 되라고 했건만 섬김을 받는 자가 되었다.

과부와 나그네를 돕고 배려하라고 했으나 비정규직을 거리로 내몰았다. 모든 회의 과정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사학법 개정을 했건만 삭발하면서까지 사학법 재개정을 요구했다. 여성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여긴 것이 예수정신임에도 불구하고, 기저귀 발언을 하여 여성을 폄하했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는데 독재정권의 하수인의 역할을 했으며 마음을 비우는 것이 예수의 정신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사유화하기위해 자식들에게 세습을 일삼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외치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을 대신해 영광을 받았다. 하나님이 주신 영감을 전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한 연설이었다. 단위에서 빈마음의 예수를 외치지만 정작 자신은 더 가지려 했다.

기독교의 사랑이란 더 가지지 않는 것이지만 금식기도까지 하면서 가지려 했고, 봉사란 값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지만 직분을 통해 댓가를 바랐으며, 자신을 낮추는 것이 예수의 정신이건만 신앙의 경력과 직분으로 남들 앞에서 높아지려고 했고, 십일조와 감사헌금은 내면서도 노동자들의 임금은 잉여노동으로 착취했고, 선교의 희생은 강조하면서도 선교의 시스템과 안정장치는 약했고,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게했다.

그리스도의 주장보다 목회자의 주장이 앞섰고, 골방보다 거대한 성전의 건축이 강조되었고, 겸손보다는 거만이, 나눠줌보다는 얻어냄이, 빈마음보다는 포만한 배가 중요시 되었다. 교단내에서는 작은 교회 목사의 배려보다는 큰교회의 목사가 보직을 독차지했고, 영성보다는 정치가 앞서고, 법보다는 관행이, 성경말씀보다는 목사의 설교가 우선했다. 이처럼 실천보다는 말이 앞서 한국의 기독교는 햄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었다.

오늘날의 기독교가 이처럼 비난받는 것도 성경을 한국식으로만 해석한데 있다. 서구의 기독교가 점점 몰락해져가도 기독교인들의 삶은 한국처럼 누추하지는 않다. 한국처럼 목회자의 권위가 판치는 교회도 없다. 한국교회처럼 목회자 세습과, 횡령, 사유화를 하는 나라도 없다. 모두 한국식교회이다. 한국식성경해석과 한국식 교회였기에 이처럼 비난받는 것이다.

이제 한국의 기독교는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즉 성경으로 돌아가, 골방, 좁은 길, 겸손, 사랑, 빈 마음, 분배의 정신을 갖고 새로운 기독교를 만들어가야 한다. 남을 배려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약자에게는 관용하며, 남앞에 겸손하며, 정치보다는 영성이 풍성하고, 기득권, 정복주의 제국주의 선교관 보다는 함께 사는 삶이, 부동산투기나 불로소득보다는 검약과 근검 정신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것이 기독교의 원칙이자 본질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성경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 곧 개혁이다. 더 이상 기저귀발언, 팬티발언, 용공발언, 세습, 사유화, 억대연봉, 등으로 인해 기독교가 망신을 당하거나 비참해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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