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이다.

행상은 길가에 과일을 진열해 놓고

매미는 한껏 여름을 노래하는데

나는 쉴 겸 아파트단지의 벤치에 앉아 지난날을 회상한다.

1950년 6월 25일

미쳐 피난을 못간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선친께서는 안암동에 있는 당숙집에 피신해 있고

나는 폭음소리와 함께 서쪽하늘의 검은 포연을 보며

선친의 문안을 염려하며 넘었던 동대문 낙산이 떠오른다.

급기야는

이른아침에 자하문에 가서 하얀 서리를 인 자두를 받아다가

동대문시장에 갖다팔았던 게 고등학생 시절.

살림에 보탬이 되어 다음에 나선 건 호박장사였는데

미아리고개까지 가서 호박을 받아다가

도매도 하고 소매도 하고...

무거운 호박광주리를 내려놓으며 울었던 일도 있다.

때마침 집에 들렀던 선친이 이를 보고 눈물 흘리시어

우리 부녀는 함께 소리내여 목놓아 울었던 일도 있었으니....

이런저런 일로 해서 9.28수복은 감격이었다.

선친은 남의 집 지하실에 숨어계시고 나는 밖에 나가 정황을 살피는데

가로수에 기대어 눈물흘리며 나는 행군하는 유엔군에 감사했다.

 (나가사키에 있는 원폭위령탑)

 (나가사키의 평화공원)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하와

8월 9일 나가사키의 원폭투하로 세계제2차대전은 끝났다.

그때는 어려서 전쟁의 비참은 몰랐다.

한참 후인 10년 전쯤, 나는 나가사키로 여행을 떠나면서 보았다.

전쟁의 비참함을...

미국은 폭탄투하 며칠 전에 비라를 살포하면서

8월 6일 오전 10시전까지 반경 50km밖으로 피하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히로시마는 10시 15분에 원폭의 피해를 입었다.

나가사키 박물관에는 시침이 11시2분을 가리키는 괘종시계가 걸려있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지금은 평화를 소원하며

학교수학여행의 코스로 원폭피해지를 순방한다.

간절한 소원을 담은 천마리 종이학을 걸어놓을 만큼.

오늘

우리에게 표면적인 전쟁은 없지만 평화는 아니니

긴장을 풀 수는 없는 형편이다.

<전쟁과 평화> 손바닥의 안팎과 같은 현실에

서로 노력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평화

어찌 하면 좋을까?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이웃이 모두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