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연히 눈물이 난다. 눈물이 났다기보다 눈물이 나도록 아팠다는 편이 맞다. 이른 아침 물안개 머금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걷다 미끌미끌한 긴 줄무늬를 그으며 걸어가는, 아니 기어가는 달팽이 한 마리를 만났다. 하마터면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밟을 뻔했다. 가까스로 발을 다른 데로 돌리고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달팽이를 관찰했다.

자신의 목숨이 찰나에 갈 수 있었던 사건이 방금 전에 있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달팽이는 가는 길을 바꾸지 않은 채 그 죽음의 길을 마냥 가고 있는 게 아닌가. 너무 느려 가고 있는지, 멈춰 서 있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다. 내 눈에는…. 그러나 뒤에 그어진 금을 볼 때 그는 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 ⓒ 박철

하루는 지나야 달팽이가 그 위험한 포도를 벗어나 숲으로 가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달팽이를 민첩한 손으로 집어 숲으로 보냈다. 물론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도 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냥 내버려두고 오면 수없이 지나는 사람의 발걸음 밑이나, 농기계의 발자국 밑에서 납작한 시체가 되어 발견될 것을.

동일시라는 게 아주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난 그 달팽이가 꼭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져 그냥 놓고 올 수가 없었다. 더 큰 힘이 집어 옮겨주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또 그리 쉽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소원하지는 않고 자신의 깜냥을 다하여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고 믿고 있지는 않은지?

김성돈은 이렇게 읊었다.

‘긴 더듬이 곧추 세우고/ 널 찾아 두리번거리다가도

네 눈빛과 마주치면/ 움칫 긴장하며 움츠려 드는

어눌한 사랑이지만/ 붉게 이글거리는 불모지에서

메말라 죽지 않도록/ 너의 따뜻한 미소 안에서

너의 웃음 먹으며 살아간다,/ 난.’

‘그래, 난 그를 불모지에서 메말라죽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나를 다독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그 달팽이는 내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위험에 처한 것도 모를 테니,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나는 서운하지 않다.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그런 존재가 아닐까?

달팽이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척이나 열심히 그 길을 갔다. 그러나 꿈을 이루기는커녕, 하마터면 밟혀 줄을 뻔했다. 그러면서도 주검 앞에 놓여있었다는 시실조차 모른다. 이런 것을 어떤 공식이나 지식이나 진리로 설명해야 할까? 꿈은 아름답다는데. 사람은 꿈을 먹고 산다는데. 내가 꾸는 꿈이 달팽이가 꾸는 꿈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