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 > 정기호 신앙론
나그네 신앙론(1)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
정기호  |  texas.chung@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7년 08월 01일 (수) 00:55:57 [조회수 : 361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1,500 여년 전 면죄부를 팔아 물력과 권력을 양 손에 쥐고 흔들었 던 로마 카돌릭의 부패를 싫다고 나온 개신교는 당시 보다도 더 심 한 타락 속에 있습니다.

법에 의하여 유죄 판결을 받고 형집행 유예를 안고 <정교분리> 라는 이상한 논리를 주장하며 세상 법과 교회법은 다르다고 강단에 서서 정치 선동으로 특정인을 지지하고, 세상이 손가락질을 하여도 끄떡하지 않고 아들에게 자리를 교인들의 총의라고 손바닥을 하늘로 가리면서 물려주는 모습에서 예수의 사상은 추호도 찾 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전에 제가 어렸을 때 강단에 서신 목사님들은 여름철이면 단 벌의 양복을 세탁하실 수 없어 난방셔츠를 입으시고 강단에 서셨고, 교 인들도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공식 집회에 난방셔츠를 입 고 강단에 서신다면 대단한 비난을 각오하여야 할 것입니다. 보수적인 남부의 휴스턴에 소재한 대형교회 모 목사님은 주일 예배에, 부활절 체육관 집회에도 난방 셔츠를 입고 설교합니다. 아마도 양복이 한 벌 뿐이신가 봅니다.

필자는 수 년 전에 이곳에서 주일 예배를 인도할 기회가 있었습니 다. 개척 초창기었고, 이삿짐이 도착하지 않아 한 벌의 양복 뿐이었 습니다. 그래도 세탁소 신세를 진 후 성찬식과 함께 예배를 인도했 었습니다. 그 예배 후 한 교인의 비난은 저를 감당할 수 없게 했습니 다. 목사의 전 후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 부터 공격하는 한 교인에 의하여 경건하지 못한 목사로 소위 “찍히고 말았습니다” 목사가 예복을 입지 않고 어떻게 성찬식을 집례하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항변했습니다. 성찬식의 시작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단 한 벌의 외투로 낮에는 외출복으로, 밤에는 찬이슬과 찬바람을 막아 주 는 이불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지도자들이 영화 배우나 티이브이 탈렌트들 처럼 다채롭고 호화로 의상을 강단에서 자랑 하셨느냐? 고 말입니다.

그래도 이분법으로 철저히 외골수가 된 현대 기독신자들이야 말로 가운을 걸치지 않은 목사의 예배 인도는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외모를 보지않으시고 철저히 중심을 보시는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 보다도 더 외식하는 현대의 이중인격자들을 보시고 한탄해 하실 것입니다.

오늘 미국에서는 대형교회의 부작용 때문에 “가나안 교인”들이 많 이 탄생했습니다. 이웃 사람들 끼리 형식에 매이지 않고 주일 예배를 가정에서 드린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은 한글로 표기한 것이고 미국 인들은 “가정교회” 라고 부르며 한글을 뒤집어 읽으면 “안나가”가 됩니다. 즉 대형 교회나 교회에 “안나가”는 교인들입 니다.

필자는 30년 1977년에 목회생활을 시작하여 금년에 자원 은퇴한 중 늙은이입니다. 지난 30여년을 돌아보니 네티즌들이 부르는 대로 <먹사>로 지낸지 20여년, 기독교 신앙인은 누구나 <나그네>라는 사 실을 깨닭은지 10여년 되었습니다. 나그네로 설교하니 교회 비지니 스가 되지 않습다. 겨우 10여명 앉은 교회에 3-4년 설교하기도 했습 니다. 예수와 제자들과 바울께서 나그네로 살았으니 우리도 나그네 로 살자고 설교하면 “가난하게 보이면 누가 예수를 믿겠는가?” 라면 서 못따르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서의 기록은 어디를 살펴 보아 도 진리의 샘물을 찾는 이들은 나그네로 살았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고전인 죤 번연의 “천로역정” 을 아십니까? 근래에 “천로 역정”을 예를 들어 설교하시는 분을 만나셨습니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둘 씩 짝을지어 전도사로 파송하셨을 때 “전대를 가지 지 말라, 두 벌 옷과 신을 준비하지말라” 고 신신 당부하셨습니다. 근 래의 부흥사들 처럼 병고쳐 주었으니 헌금 바치라고 하지 않으셨습 니다. 예수님이 돈이 필요하셨다면 용한 의사들도 포기한 불치의 병을 말씀 한마디로 고쳤을 때 돈을 요구하셨을 것입니다. 제자들도 난치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렸으나 그 어느 곳에 돈을 요구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용한 의사인 주님과 제자들을 높이려하지 도리어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였고, 심지어는 5천 명이 먹고도 남은 기적을 베풀자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산으로 피 하셨습니다. 기복주의자들과 추종자들의 변은 시대가 변했다는 것 입니다. 시대는 변하었어도 길,진리, 생명이신 예수는 변함이 없음이 우리 믿음의 근본입니다.

1960년대에 서울 아현동에 “아현교회”를 개척하신 김현봉 목사의 삶은 이랬습니다. 그는 저녁 6시면 잠자리에 들어 12시면 일어나 명상하다가 통행금지 싸이렌이 울리면 연세대학 뒷산에 마련된 기 도굴에 들어가 거의 낮 12시 까지 하느님을 만나는 황홀경에 젖어 들었습니다. 기도가 끝나면 교인들 집을 심방하는 데 문 밖에서 문 안인사만 하며 극히 가난한 교인들의 집은 특별이 방에 들어가 방구 둘을 손으로 만져 보고 연탄불을 때지 못하면 연탄을 들여 주고, 쌀이 떨어진 가정에는 쌀을 들여 놓았습니다.

교인이 이 세상을 떠나면 24시간이 지난 후 수례고 끌고가 산에서 손수 화장하였습니다. 어린아이가 죽어도 손수 지게에 지고 산에가 매장했습니다. 결혼식에는 20명이상 참석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호화 사치는 아현교회에서 통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이 머리를 늘 삭발 하심으로 중목사라고 불리웠고 두루마기와 고무신만을 신고 다니 심으로 돈이 특별히 들일이 없었습니다. 여자 교인들도 파마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교인들도 김목사님의 검소 하심을 따라 대대분 머리를 삭발하고 살았고 검소한 의상을 입고 생 활하였습니다. 그는 항상 안주머니에 돈을 두둑히 넣고 다니다가 가난한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나 자신에게는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기도 먹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서울 장안에서 교인들의 수가 많은 교회는 영락교회와 아현 교회였습니다. 예배당을 거대하게 지을 힘이 없어 건축하지 못한 것 이 아니라, 재정적인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예배당의 자리가 모자라면 간이 지붕을 얹고 또 얹어 판자집 모양의 크기를 늘여갔습 니다. 당시에 예배당 주변의 200 여채의 판자집을 소유하였으나 가난 하고 병든 교인들에게 살도록 하였고, 소금이나 연탄 장사를 하 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시던 그는 교회 지하 단칸 방에서 연세의료 원 간호사이던 얼굴이 천연두로 얽으신 사모님과 간단하게 사셨습 니다. 사모님은 젊은 시절 이미 자궁 적체 수술을 하셔서 아기를 가 질 수 없음을 김목사님은 아시고 결혼하셨습니다.

65년에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의 평소의 당부대로 울지 말라는 당부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1,200 여명의 교인들이 장 례행렬은 장관을 이루었고 그의 부탁대로 수례에 싣고 산에가 화장 하였습니다. 교인들의 울부짓음은 언제 또다시 말로만의 설교가 아 니라 삶으로서 예수의 삶을 구현한 목사를 만날 수 있겠냐는 한탄이 었다고 봅니다. (이상의 내용은 한겨레 신문의 조연현 종교전문기자 의 글을 임의로 옮긴 것입니다.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지 못했슴)

나그네의 삶은 예수의 삶이었고, 제자들의 삶이었고, 바울의 삶이 었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삶이었습니다.

솔로몬의 호화로움을 추구하는 현대 교회의 신자들이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할 주제라고 생각되어 다음 편 부터 성서 속에 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 하느님을 만난 이들을 추적해 보고자 합니다.

[관련기사]

정기호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150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