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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come'선교에서 'comm'선교로 전환되어야기독교인, 개별적 공동체 의식강하나 국익을 위한 공동체 의식 약해
황규학  |  hpastor@m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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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7월 31일 (화) 13:32:17 [조회수 : 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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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혼게이자이 신문과 인터뷰, 선교열정의 이유
 
필자는 오늘 니혼게이자이신문 [日本經濟新聞(일본경제신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아  인터뷰에 응했다. 기자는 한국선교 열정의 배경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필자는 첫째로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의 영향을 받아 늘 선교의 빚을 진 자로서 생각하기 때문에 항시 이 빚을 남의 나라에 선교함으로서 빚을 갚으려는 마음가짐이 있으며, 또 하나는 성경에  선교의 사명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말씀이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가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위임명령으로 인해 선교의 열정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세 번째는 각 교파간의 경쟁심리도 한 몫을 더한다고 응답했다. 교단끼리도 한 명의 선교사라도 더 보내기위해 경쟁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한국선교는 해외선교 어디를 가나 선교사들끼리도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다른 정책을 추진한다. 서로의 협력관계는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해외선교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선교의 가장 장애물은 한인선교사라는 것이다. 그만큼 서로 다른 교파, 다른 선교 의식 등으로 인해 선교가 난립하고 있으며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선교를 하지 못한다. 즉 구멍가게 선교밖에 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한인교회들은 휴가 때만 되면 교인들이 단기선교, 단기봉사라는 미명하에 방문하여 천문학적인 돈을 공중에 뿌려버린다.   
 
캐나다의 한인교회, 카자흐스탄 단기선교 붐을 이뤄

 
캐나다에 있을 때, 한 장로교회 목사는 매년 교인들을 러시아 고려인들을 위한 단기선교로 보냈다. 20여명 가면 비행기비만 4-5만불이 소요된다. 교회의 매년행사이다. 선교지를 한번 방문하고 오면 많은 성도들이 변하고 은혜를 받는다. 그래서 교인들은 돈을 저축해서 러시아 선교 한 번 갖다오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다. 그 여파로 인해 교회가 날로 부흥했고, 급기야는 토론토까지 많은 교회들이 따라갔고, 선교지를 방문하는 것이 인기상품이었다.
 
한번 갖다가 오면 성도들이 변하고 교회가 부흥되기 때문이다. 많은 한인교회들은 교회부흥을 위해서라도 청년들이나 교인들을 러시아에 보내는 것이 일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단기선교로 인해 교회를 괄목하게 성장시킨  교회 담임목사는 부흥된 교회를 놔두고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고달픈 이민사회가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같은 일만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선교지 방문은 이민자들에게 많은 도전과 활력소를 불어넣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단기선교는 그 자체로 제한상품이었다. 단기선교는 엄청난 물질적 헌신에 비해 결과는 반짝 선교로서 끝났던 것이다. 결국 공중에 뿌리는 돈으로 현지인들을 교육하고 지도자를 양성하며 현지시설투자를 해서 그 현지인들이 교회와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는 쪽으로 여론이 조성되어갔다.
 
'Come'의 선교
 
이제까지의 한국선교는 ‘come’의 선교였다. 무조건 교회에 오라고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정책도 마찬가지이다. 한국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미국식의 성장방식이다. 교회의 프로그램은 어떻게 하면 성도들을 많이 오게 해서 교회를 성장시키는데 관심이 있다. 릭워렌을 상암 월드컵 운동장에 초청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목회자를 위한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은 교회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민경설 목사의 전도폭발, 유명모 목사의 셀교육 등은 목회자들에게 인기상품이다. 그 이외 교회성장이라면 새들백교회, 윌로우크릭교회, 크리스탈교회 등 미국의 저명한 교회 등은 다 방문하며, 심지어 셀교회방식으로 유명한 싱가폴까지 원정을 가기도 한다.
 
한 때는 빈야드 열풍이 불어 많은 한인목사들이 토론토와 시애틀 빈야드모임에 참여했다. 성도들을 교회에 많이 오게하는 'come‘ 프로그램이 있으면 미국, 캐나다, 싱가폴 등 온 세계까지 다 가는 것이 한인목회자들의 세계이다.
 
요사이는 셀교육으로 유명한 류영모 목사(한소망교회)가 금이빨사역을 하여 아말감의 이가 은혜를 받으면 금이빨이 된다는 것이다. 한인목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금이빨사역을 추구하고 있다. 아말감 이를 금이빨로 만들어주는데 교회에 안 올 신도가 있겠는가? 교인들의 ‘come’을 위해서라면 교회는 기독교의 본질과 원칙을 벗어나도 상관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이번 아프간사태도 겉으로는 봉사활동이지만, 이면은 봉사활동을 통한 선교이다. 실제로 고인이 된 배목사가 단기선교지원서양식을 만들어 단기선교지원자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중심이 된 탈레반들은 기독교인들이 미국을 돕고 있다고 해, 봉사활동이나 기독교 선교에 대한 배타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선교는 'Communication' 이다
 
따라서 이제 한국교회의 선교정책은 ‘come’의 선교가 아니라 ‘comm’의 선교로 바뀌어야 한다. 사회는 전달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communication(의견교환)을 통해서 존재한다. 선교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내 것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의견교환이 우선 이루어져야 한다. 작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선교단체는 1,500여명 기독교인들의 대행진 운동을 기획하려 했다가 한국정부 요청으로 중단한 적이 있다. 과연 현지인들과 의견교환이 되었는지, 의사소통이 이루어졌었는지가 의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국내선교도 마찬가지이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과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간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3년 전 총회 사무총장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현 정부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있는 지를 묻자, 당시 사무총장은 연결고리가 없다고 했다.
 
교단이 정부와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이다. 사학법개정과 관련해서도 정부와 교단이 의사소통이 안되다 보니 말로 하지 않고 삭발이라는 극단적인 행위를 표출하여 소통을 했던 것이다. 말이 아니라 삭발로서 의사소통을 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의사소통이 부족하다. ‘come'은 있으나 ’communication‘이 없다.
 
선교는 'Common sense'이다
 
두 번째, 'common sense'가 없다. 이번 아프가니스탄에서 한인들이 피납 되자, 많은 비기독교인들은 같은 한인이면서도  피납자들에 대해 슬퍼하거나 안타까워하기 보다는 “고소하다”며 부정적인 생각을 표출했다. 급기야 청와대에서 불을 끌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유는 이제껏 기독교가 한국사회에서 상식이하의 행동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사태도 상식의 룰을 져버렸기 때문에 변을 당한 것이다. 
 
한민족복지재단은 정부로부터 아프가니스탄선교를 자제해달라는 서신을 받고서도 묵살했다. 사실상 서구사회에서 정부가 그만 두라고하면 가지 않는 것이 상례이자 상식이다. 믿음이 좋은 한국사회만이 정부를 초월하여 정부의 결정을 위반하고 순교자의 각오로 떠나는 것이다. 상식을 상실했기 때문에 많은 네티즌이 비난의 봇물을 쏟아낸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현지에서도 단기봉사자들이 피납당한 곳은 탈레반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라 항시 아침에만 버스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저녁에 이동하다 변을 당했다. 그 이외에 현지인인 운전사가 경철에 호위를 요청하라고 하는 제안도 거절했다. 기본적인 상식의 룰을 모두 져버렸다. 현지인과 의사소통이 안 되고, 상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의 기독교가 오늘날 처럼 비난을 당한 적도 없었다. 이는 목회자들의 상식이하의 행동 때문이다. 성직자들의 횡령, 성추행, 세습, 억대연봉, 고급 승용차, 비행기 특별석 타기, 골프 여행 등은 상식이하의 행동들이다.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그토록 비난하는 것도 기독교가 상식(common sense)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아프간 사태의 본질도 상식의 상실에서 찾아야 한다.      
 
선교는 'Community' 이다
  
세 번째로 ‘community’의식이 약하다. 의사소통이 없고, 상식이 약하다 보니 결국 공동체의 의식이 약하게 된다. 공동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깝게 산다는 의식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이민사회를 가면 세계어디나 한인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가 거의 없을 지경이다. 한인회는 늘 분리되고 기득권싸움에 시달리며, 갈등이 주종을 이룬다.
 
이민사회내 한인교회도 갈등일번지이다. 건강하지를 못하다.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 해서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하지를 못한다. 사회적 공동체(community)는 공통으로 소유하는 것에 의해 존재하고, 공통으로 소유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이 있어야 하고, 상식적이어야 한다. 공동체의식이 약하다 보면 항시 개별적인 플레이를 할 수 밖에 없다. 세계각지에 나가있는 선교사들은 한인선교사들끼리 공동체 의식 없이 개별선교만을 지향하고 있어서 그 사회에 보다 큰 일을 하지 못한다.
 
오늘날 한국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연대공동체의식이 실종한 것이다. 개별교회에서나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고, 한 사회나 국가전체의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지 않는다. 따라서 교회 개별적 공동체의식은 강하나, 사회나 국가와 관련한 집합적 공동체의식은 약하다. 노조와 같은 개별이익집단으로서의 공동체의식은 강하나, 국익을 생각할 때의 공동체 의식은 약하기 그지없다. 한 종단을 위해서는 삭발이나 단식투쟁도 하고 ‘come’ 선교를 위해서는 상암운동장에서 대규모 집회도 거행하지만, 국익을 위한 community 의식은 약하다는 말이다.
 
해외현지선교도 마찬가지이다. 그 나라의 상식과 문화, 공동체와 더불어 함께 호흡을 해야지, 내 민족의 문화와 교리적 선교만을 고집한다면, 오히려 반기독교정서만 가득차게 할 것이다. 무조건 교회에 오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현장에 달려가서, 그들의 공동체 일원이 되어야 한다. 아시아 신학자인 송천성의 '물소 신학'과 '쌀 신학'을 해야한다.  특히 모슬렘권사회에서 기독교의 선교나 봉사활동은 조심을 해야한다.  봉사활동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그들은 선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 개별적 공동체 의식강하나 국익을 위한 공동체 의식 약해
 
샘물교회 담임목사인 박은조목사는 목사로서 보기 드문 인물이다. 고신측 목사이면서 8번씩이나 부목사들에게 교회분가를 해주고, 결국 자신이 담임목사직을 포기하고 나가 다시 개척교회를 한 희생정신이 강한 분이며, 기독교계의 오마이뉴스인 뉴스엔조이와 복음과 상황의 발행인이기도 할정도로 건전한 인격과 개혁의식, 좋은 성품을 가져 누구에게나 존경을 받는 분이다. 
 
그러나 그는 한민족복지재단이사장이었고, 샘물교회의 담임목사이다. 형식적인 책임자이기도 하다. 누구보다도 교인들의 안전을 염려하고, 관심을 기울이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끝까지 신경을 써야했다. 그러나 그의 공동체 의식은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지 못했다. 종단으로 제한된 개별적 공동체의식은 있었지만, 국가와 연대할 집합적 공동체의식이 약했다. 뉴라이트의 핵심멤버라는 사실은 현정부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한민족복지재단은 북한을 비롯한 전세계의 복지를 위해서 일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시 여겨야 할 한인들의 복지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는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와의 연대 공동체 의식이 약했기 때문에 이 사건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개혁의식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교회와 교단안에서만 건설하려 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공동체 사상은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라는 단체적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다.
 
개별적 단체, 집단이기주의 강해
 
오늘날 한국의 문제점은 노조를 비롯하여 종단, 언론, 교육기관이 국익과는 상관없이 개별집단의 공동체 의식만 강조하는 것이다. 개별집단의 이기주의로 전락했다. 사학법 재개정을 위한 삭발사건도 여론의 70%가 사학법 재개정을 반대해도, 기독교 교단은 개별적 공동체만 강조하여 사학법 재개정을 밀어 부쳤던 것이다. 사학을 지켰는지 모르겠지만, 공동체의식을 상실하게 되어 기독교의 지탄소리만 높이게 되었다.

‘come’의 정책에서 ‘comm’의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따라서 한국기독교가 살기위해서는 ‘come’의 정책에서 ‘comm’의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무조건 ‘오라’(come)고만 하는 성장 지향주의로 나갈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여 의사소통(communication)이 이루어지고, 상식(common sense)이 통하고, 특정단체를 초월하여 국익을 위한 거시적 공동체 의식으로 변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피납자 사태는 값 비싼 댓가를 치루는 것이 된다.
 
정치도 'Comm'이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개발독재시대처럼 부가 있는 곳에는 무조건 오라고만 하는 'come'의 성장지향주의로 갈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하는 'comm'의 분배정책을 지향하며, 빈부, 지역, 좌우 이념, 보수 진보의 의식을 초월하여 우리사회에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도적적 상식과 윤리적 상식을 상실하지 않고, 특정 집단만을 대변하지 않으며 온 국가의 공동체 정신을 지향할 사람이 필요하다.
 
즉 땅투기와 차명 등 부동산을 통해서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사람들만 오라고 하는 ‘come’의 정책에서 벗어나 국민들과 의사소통을 이루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일을 진행하고, 평등한 정책으로 공동체 정신을 이루기 위해 ‘comm’의 정책을 구사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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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dney (58.107.149.92)
2007-08-02 12:39:22
참 귀한 글입니다.
결국 박은조 목사님은 다른 목회자에게 귀감이 될만한 훌륭한 목회를 하신 분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이 가진 신학적인 한계 때문에(누구나 한계가 있지만) 역사상 최고로 복잡한 선교지 상황과 제대로 communication을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불행히도 그 댓가는 너무도 크겠지요.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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