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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의 은사를 이해하게 된 사연 1나의 고백 (4)
이용섭  |  lys9791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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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7월 19일 (목) 03:36:52 [조회수 : 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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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받은 후 여러 해 동안 나는 방언의 은사를 단지 심리적 현상으로만 이해했었으므로 방언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일부러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특히 당시 천주교의 영성의 대가라고 일컬어진 예수회 네메셰기 신부가 그러한 주장을 했었으므로 방언이 성령님의 좋으신 '은사'라고 인정되지 않았다. 예컨대, 성령기도회 모임에서 방언을 하는 천주교 신자들과 손을 잡고 기도할 때마다 저들이 왜 저런 미친(?) 짓을 할까 하고 생각하곤 했었다. 이렇게 약 2년을 그들과 함께 보냈다.

나는 1979년 1월에 강박신경증에 걸렸었는데 당시에는 그것에 대한 정확한 병명도 몰랐었다. 그 병에 걸리니 우선 공부를 하기가 어려워졌다. 그 증세가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심해져서 나중에는 공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1978년도에 악령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므로 그것이 악령의 장난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곤 했었다. 나는 1978년 가을 한국 천주교 수원교구 조암리(당시 화성군) 성당에까지 직접 가서 exorcism(구마. 축사)이 현대에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내 발로 신경정신과를 찾아갔다. 1978년 8월 서울 명동 성모병원(현 여의도 성모병원)에 가서 어떤 의사에게 악령 때문에 그런 것같다고 하니 그 의사가 악령같은 것은 없다고 해서 그와 타투고 나오고서는 다시 가지 않았다.

그후 1980년 초 내 병의 원인이 악령의 영향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했던 혜화동 가톨릭학생회관 김중호 지도신부(의사)와 함께 그를 잘 아는 서울대 신경정신과 홍강의 교수를 찾아갔다. 거기에서 정밀검사를 받으니 내 병명이 '약한 분열증', '강박증', '우울증'으로 나왔다. 그런데 천주교 신자인 홍강의 교수는 악령의 존재를 부정했었다. 하여간 그가 처방해 준 약을 얼마간 먹었다. 그러나 약을 먹고 너무 힘이 들어서 전화로 홍 교수에게 약을 먹지 못 하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해서 약을 끊었다. 약을 끊으니 당장 그 날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이러다가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커피를 더 타먹는 등 기도하면서 배짱으로 나갔더니 여러 날 후부터 잠이 오기 시작했다. 지금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당시 약 열흘을 고생했던 것같다.

당시 홍강의 교수는 나에게 그 병이 완치가 안되는 병이라 내가 평생 안고 가야만 하는 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 12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한 끝에 결국 하느님의 은총으로 치유된 1990년 12월에서 약 6개월이 지나 홍 교수에게 전화를 하였다. 왜냐하면 재발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통화 중 홍 교수는 그 병이 저절로 나을 수도 있다는 과거와는 모순된 말을 하였다.

당시 나는 나의 병이 현대의학을 통해서 완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기도에 의한 기적 치유를 하느님께 구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아무리 기도해 보아도 응답은 없었다. 그래서 기도에 관한 책들도 사서 읽어보았다. 그 중 어느 책은 기도의 응답이 없는 이유들 중 하나가 가족의 올바르지 못한 회개라고 해서 나의 노모도 성령세미나를 받게끔 했다. 하지만 그것은 반강제적(半强制的)이었다. 1980년 가을부터 나의 노모는 서울 삼양동 성당에서 열리는 성령세미나에 처음으로 나가게 되었다. 약 50일 후 노모는 삼양동 성당에서 천주교 신자들로부터 안수 기도를 받고 나서 어이가 없게도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방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후 집에서 노모가 혼자 방언을 하는 것을 보게 될 때마다 노모에게 짜증도 많이 내었고 화도 많이 내었었다. 왜 쓸데없이 일부러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 내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거의 노모의 이상한 소리는 더 커졌고 더 길어졌다.
(계속)
   
 
  ▲ 방언의 은사를 이해하게 된 사연/ 이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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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90.6.242.191)
2007-07-20 23:48:35
감사합니다.
이용섭님께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씀에 오히려 제가 감사드릴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만 찬양드릴뿐입니다.

아래 어떤 분의 글처럼
우리는 얼마나 마음속에 하나님의 대상을 찾아내고 포착하려고 찾아 해매고 노력하고
방황합니까? 그러나 그분안에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훈련과 마음을 가질때 점점 침착해지고 평안해지며 숨을 쉴 수가 있고 감사가 나올뿐이지요.
한국교회는 대부분 너무 "뭘 하라...뭘 해야 된다"라는 식으로 가르쳐 왔습니다.
항상 주님안에 있는 내 자신을 느끼고, 그 안에서 숨쉬고 있는 내자신을 발견할때
감사할 뿐이고, 은혜 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귀하의 영혼이 항상 평안하시고 어떤 순간 그늘에 있을찌라도 그 평안 속에서
숨시쉬며 많은 사람들을 그 평안으로 인도하며 전달하시는 분이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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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125.128.217.167)
2007-07-20 04:09:16
아래 '목사'라고 하는 분에게
감사합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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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83.196.117.241)
2007-07-19 11:09:33
평안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그분을 우리마음속에 어떤 대상으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 안에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위의 말씀이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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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83.196.117.241)
2007-07-19 10:57:21
귀한 글 잘 읽고 갑니다..하지만
귀한 글 잘 읽고 갑니다. 님의 고통과 하나님의 대한 열망과 님의 개인적인 체험, 님에게 향한 하나님의 방식을 뭐라고 드릴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강박증은 계속 글 속에 느끼게 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초월과 인간의 이성등등을 애써 구분하려 하고 "초월만이 하나님의 역사이다"라는 것을 먼저 의식속에 주장하며 독자들에게 강조하려는 듯 보이며 스스로도 얼켜 얽매여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외람 됩니다만, 저의 방식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위의 기사중에 "차라리 이러다가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커피를 더 타먹는 등 기도하면서 배짱으로 나갔더니 여러 날 후부터 잠이 오기 시작했다."라는 님의 표현과 자세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귀하의 글은 방언을 강조하려고 글을 쓰시고 있씁니다. 그것은 당당 뉴스 기독자 들에게 초월적인것을 믿으라는 강요적인 글로 보여집니다. (그런 자세는 계속 본인역시 혼돈의 길을 가시게 될것입니다)
하나의 방법을 제시해 드립니다.
그냥 조용히 눈을 감고 마음을 평온하게 하시고 깊은 영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귀하의 잡념과 과거상처(?)의 영이 얼마나 방해하는지 모르겟으나.. 금방 사라질 것으로 보여 집니다. 눈을 감고 호흡을 깊고 넓게 하시고 침착하고 잠잠 하게 깊이 명상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하나님 주님을 마음속으로 느끼며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으로 기도내용들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언어로, 혀의 말로 하지말고) 짧은 시간에도 성취할수 있읍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머리가 개운해지실 것입니다.
귀하의 글들을 관심을 가지고 읽는 사람으로써 귀하의 글을 함부로 비평하는 것은 죄송합니다만 , 모든 사람의 글, 저의 글 역시 어떤 사람의 글을 반박하는 내용이 될수 밖에 없지만, 반박(이성/ 계시, 합리적/ 초월적, 데모/ 빨갱이, 이성합리적 성경이해/ 초월적 신비가 있음...등등 )이런식으로 반응하시는 글들은 좋으나 그 반대의 반응 자체가 오히려 그러한 초월적인 것이 꼭 있어야 한다는 귀하의 내면적 강박증으로 보여 더 고통스러워 보일 뿐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관념일 수가 있고, 인간본능인 유한함에 대한 불안으로 "두려움" 이 스스로 만들어낸 해답없는 방황으로 보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쫓는 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방황자체를 그대로 받아 들이시고 그 있는 그자리를 주님이 인정해 주신것으로 여기시고 그자리, 그시간, 그 모습이 주님과 함께한 자리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율법으로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완전한 틀이 저쪽에 있고 난 미달된 존재로 있다" 라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이 육신 자체가 영생이요 하나님이 허락한 용납된 자리"라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길어져서 이만 말씀을 맺습니다. 두서 없이 썼습니다. 마음이 전달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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