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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발견, 느림의 행복
박철  |  pakchol@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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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7월 12일 (목) 09:59:50 [조회수 : 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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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잘못할 수 있지만 누구나 솔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의 아름다움은 무엇과도 비길 수 없다. 솔직함은 겸손이고, 두려움 없는 용기이다. 잘못으로 부서진 것을 솔직함으로 건설한다면 어떤 폭풍에도 견뎌낼 수 있는 강인함이 있다. 가장 연약한 사람이 솔직할 수 있으며, 가장 여유로운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자신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테클라 매룰로-      

 

"부자도 바지를 벗을 때는 한 다리씩 빼는 법"이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는 한 번에 한 입을 베어 먹고, 한 번에 한 노래를 듣고, 한 번에 한 신문을 읽고, 한 번에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한꺼번에 많은 것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삶은 단순할수록 좋다. 자연의 리듬은 단순하다. 새 울음소리를 들어보라. 바람 지나가는 소리를 들어 보라. 그러나 자연의 소리는 일정한 리듬에 의하여 조화를 이룬다. 자연은 결코 서두는 법이 없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열매를 거두기까지 자연은 순리(順理)에 의하여 조용히 움직인다.


   
 
   
 
내 어릴 적 별명은 '미련곰탱이'였다. 아버지는 걸핏하면 나를 그렇게 부르셨다. 한번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목사님 댁엘 갔는데, 도무지 그 날 심부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목사님 얼굴만 뵙고 돌아왔다. 나는 목사님 얼굴을 뵙고 돌아온 것으로 아버지 심부름을 훌륭하게 마쳤다고 생각하였다. 착각이었다. 저녁나절 아버지께 불려가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그날 심부름의 내용은, "목사님, 아버지가 개장국 잡수시러 우리집에 오시래요."라는 말이었다. 이 한 마디를 잊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행동이 굼뜨고 어리버리했다. 걸음을 걸어도 천천히 걸었다. 도무지 빠른 구석이 없었다. 아버지 눈에는 내가 답답하고 한심한 아들로 보였을까?


그러나 청소년 시절을 지나면서 나의 삶에도 속도가 붙길 시작했다. 밥을 먹거나 옷을 입는 시간도 빨라졌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도 '빨리빨리'는 말이 흘러나오게 되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후딱 해치우는 일이 많아 졌다. 외출을 하는데 아내가 조금이라도 시간을 지체하면 "뭘 하는데 그렇게 늦장을 부리냐?"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성격도 급한 성격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하여 삭히지 못하고 벌컥 역정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변해 버린 내 모습이 싫었다. 그런 고민 끝에 쉰 나이에 내가 붙잡은 삶의 표지가 '느릿느릿'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내 유년시절, 굼뜨고 어벙하고 좀 모자란 듯한 '미련곰탱이'의 삶으로의 복귀인지 모르겠다. 나는 내 앞으로 남은 삶을 느릿느릿 천천히 살고 싶어진 것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이 의미가 무엇인가를 가끔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자연과 사람에 대한 깊은 배려에 나오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순응과 조화가 없이 느리게 산다는 말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삶의 깊이를 논할 수 없다. 자연은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사람도 자연도 모두 자기 몫이 있다. 자기 몫을 사는 것이 신에게 가까이 가는 길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인가를 우리 모두는 안다. 다만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그 단순한 진실을 잊고 사는 것뿐이다.


지금 당장 숨넘어갈 듯 달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게 되리라는 생각 자체가 바쁜 현대 생활이 세뇌시킨 강박관념일 뿐이다. 잠시만 멈추어 서서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면 너무도 명백한 사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내면을 응시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의도적으로라도 우리의 삶 속에 '쉼표'를 만들어 놓아야 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쉬는 것조차도 하나의 일이다. 휴식을 위한 스케줄을 억지로라도 따로 빼어놓지 않으면 '쉼표' 하나 표기 할 자리가 없을 만큼 꽉 들어차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쉰다는 것은 숨을 고르는 일이다. 달리거나 노래할 때에도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는 일상적인 삶에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당장 울화통이 치밀더라도 깊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면 보다 차분하게 그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 아무리 할 말이 많아도 그것을 빠르게 내 쏟아버리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 그때마다 좀 더 느긋하게 천천히 여유를 갖고 생각하자. 그러면 한결 삶이 편안하고 원만해 질 것이다.


모두가 빨리 간다. 세월도 빨리 가고, 유행도 빨리 가고, 사람도 빨리 가고 모두가 '빨리빨리'를 외치며 허겁지겁 달려간다. 밥을 먹어도 빨리 먹고 일을 해도 빨리 하고 여행을 해도 빨리 하고 어디 가서 물건을 사도 빨리 산다. 나도 덩달아 빨리 간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속도'와 '편리'의 양면성에 푹 빠져있다. 이 '속도'와 '편리'의 전쟁에서 우리는 지금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 그걸 인식하던 안 하던 간에 거의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나는 쉰이 되어 '느릿느릿'이라는 표지를 붙잡았다. 이미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영감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나를 반성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맑은 영성을 회복하여 참인간, 참사람으로 거듭날 것인가 그런 진지한 모색을 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모든 동반(同伴)들로 하여금 따끔한 회초리를 맞고 싶다.


시나브로 계절은 여름 한복판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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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지만 삶에 대한 자세와 고민만은 치열한 부산의 좋은나무교회 박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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