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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진영의 통일운동과 그 한계 넘기평화통일 운동 세미나와 복음주의 진영의 사회운동에 대한 고찰
정강길  |  minjung2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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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7월 06일 (금) 14:12:11 [조회수 : 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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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합ㆍ평화를 위한 공동세미나 : 평화통일을 우리가 어떻게 일궈나가고 맞이할 것인가?

민족통합ㆍ평화를 소망하는 공동세미나가 7월5일(목) 오후7시에 기독교회관 2층 강당에서 열렸다. 주최는 남북평화재단, 통일시대 평화누리, 평화한국, 하나누리가 함께 하였다. 이 자리에서 각 단체들에서 발제자가 나와서 각 단체 설립의 의미와 공동 시대적 과제 발제 및 토론을 하였다.

   
 
  ▲ 평화통일을 위한 공동세미나 @ 당당뉴스  
 
첫 발제를 맡은 남북평화통일재단의 김영주 상임이사는 말하길, 통일은 시대적 부응과 흐름에 의해 올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통일을 소극적으로 맞이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남북평화통일에 대한 주체적 조성과 연대를 더욱 증진시키고 강화하기 위해 설립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평화재단은 대북의 인도적 지원, 남북 평화의 삶 실천과 정착, 남북평화 통일을 위한 교육과 훈련 지원, 한반도 평화통일 지원을 위한 국내외 네트워크 구성을 중점으로 해서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온 박종운 변호사는 통일시대 평화누리의 창립취지와 시대적 과제를 이념적 대립을 넘은 평화공존과 민족통합의 길을 모색하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와 공의의 시각으로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다양한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하였다. 시작은 성서한국에서 만난 3-40대 활동가 그룹을 중심으로 해서 출범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통일시대 평화누리는 통일분과를 통해서는 보다 대중적이고 일상적인 실천으로서의 통일운동을 그리고 사회의제분과를 통해서는 정국의 주요현안 문제들을 연구 수집하고 필요시 각종 대응운동을 펼쳐나간다는 것이다. 그는 전체적인 시민의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또한 그러한 차원에서라도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세 번째는 평화한국의 허문영 대표가 발제를 맡았는데 크게 보면 앞서의 두 단체와 다르지 않았지만 언변만큼은 매우  재미있고 솔직하게 풀어나갔었다. 그는 2007년이야말로 카이로스라고 생각한다면서 민주화세력 이후에는 평화통일 세력이 이제는 주도할 때라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발제에서 성서한국을 먼저 만들고 모범한국, 평화한국, 봉사한국을 통해 영성 대한민국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었다.

그가 보기에 미션과 에반겔리즘은 다르지 않다면서 선교에 대한 총체성을 인식하고 이제는 팍스적 의미가 아니라 샬롬적 의미의 평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세부 실천방안으로는 기도네트워크와 성경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한 정기 혹은 수시 세미나 개최, 평화아카데미 개설을 내세웠다. 광복70주년은 통일 원년으로 하고서 2015년까지는 남북연합을 이뤄져야 한다고 보았었다.

마지막 네 번째 발제를 맡은 방인성 목사는 하나누리 단체가 뉴스앤조이로 시작하여 복음과 상황을 통합하고 기독청년아카데미와 통일시대 평화누리의 연대를 통해 탄생되었다고 밝혔다. 특히 하나누리는 남쪽에서는 통일시대의 공감대를 넓히는 데에 중점을, 그리고 북한과는 사회 문화 교류에 집중하고자 하는 단체라고 소개하였다. 

구체적으로는 통일 및 대북 교류, ‘교육, 문서출판 등 3가지 큰 영역에서 구체적인 활동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언론운동본부, 청년교육운동본부 그리고 통일운동부문을 구상하고 있다. 

덧붙임 : 복음주의 진영의 사회운동의 한계를 넘어서길 바라며..

크게 보면 이번의 공동세미나는 소위 말하는 보수와 진보의 중간쯤에 위치한다는 복음주의 기독 단체들의 평화통일 운동 구상을 밝힌 느낌이다. 적어도 첫 번째 소개를 했던 남북평화재단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세 개의 단체들은 창립된 맥락이나 구성원들의 면면을 볼 때도 분명하게 소위 말하는 복음주의 진영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기에 이들 간에 그다지 뚜렷한 차이를 발견하기가 힘들 만큼 그저 이름만 바꿔서 분할한 단체로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복음주의 진영의 한계를 생각해 볼 때, 아니나 다를까 기독교 신앙과 통일운동 같은 일반 사회운동이 어떻게 통합적으로 만나고 일관된 연관을 가지는 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모호하고 두루뭉술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번 발제문에서도 나타나고 있듯이 주로 쓰는 표현들을 보더라도 한반도 사회에서의 성경적 대안, 하나님 중심적이라는 이런 표현들은 어차피 가장 복음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얘기와도 별다르지 않는 얘기일 뿐이며, 통합적 신앙에서 보는 구체성이 상실되었다는 점에서 하나마나 한 표현이기도 한 것이다.

이것은 진보 진영의 기독단체 운동과 비교해볼 경우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 있다. 즉, 바로 신앙의 우선성을 생각할 때, 결국은 전통 교리 중심에 놓느냐 민중(약자)해방 중심에 놓느냐를 생각할 때 진보진영의 경우는 적어도 후자를 우선적인 중심에 놓고 있는 반면에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이 부분이 아주 모호하게 그려져 있거나 나이브하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혹자는 양자택일의 가능성 자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추상적인 의미로서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얘기들, 흔히 말하는 선교의 총체성 혹은 통전적 선교라는 표현들은 사실 그 자체만은 틀린 얘기는 아니겠지만, 이것이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들과 어떻게 소통되고 나아갈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투명하게 놓여 있을 따름이다. 이들 복음주의 진영의 기독 신앙은 치밀하지 않은 느슨한 차원에서 기독교 신앙과 사회적 실천운동이 모호하게 공존적으로 결합되어 있을 뿐이다.

이를 테면, 성서한국을 생각해 볼 때도 이들이 신앙고백으로 삼는 성서관은 보수 근본주의자들의 성서관인 성서무오설에 기반해 있다. 물론 몇몇 복음주의 활동가들은 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이들 진영 안에서는 합의되지 않고 잠복되어 있는 문제로 남아있을 뿐이라는 점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로 복음주의 진영이 아닌 에큐메니칼 활동가들인 진보 기독교인들의 성서관은 어떠할까? 여지없이 이들은 성경을 읽을 때도 전통교리에 우선성을 두질 않고 민중해방 전통으로서 읽어나간다. 따라서 진보 기독인의 신앙구조란 사회운동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어떤 면에서 진보적인 에큐메니칼 활동가들에게 기독교란 사회변혁운동을 위한 프락시스를 담보하는 거처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이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의 좌파적 흐름과 친화성을 가지면서 기독교 신앙 구조를 해석해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진보진영의 에큐메니칼 활동가들과 복음주의 진영의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교류와 연대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드러나고 있는 사회 실천적 교류의 맥락일 뿐이지 서로 간의 진지한 신앙적 소통으로서 연대하고 교류하는 것은 못된다. 즉, 어디까지나 외연적 교류와 연대일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크게 봤을 때 이것이 전략적인 맥락에 놓여 있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일진 몰라도 그저 사회운동 전선에서의 연대와 교류에 그칠 뿐이라면 서로 간의 기독 신앙의 문제들은 여전히 요원하게 남아 있는 그저 수박겉핥기식의 연대와 교류밖에 안될 것이다.

바로 그래서 복음주의 진영이나 진보 기독교 진영이나 끊임없이 추구하는 신앙으로서의 화두가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간의 온전한 통합적 신학>인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이것은 근원적으로 해석학적 존재론이라는 기초 토대부터 다시금 새롭게 뒤바꿔서 재수립하고 축조해야할 커다란 문제이다. 어쨌든 기존의 낡은 기독교에 기초된 것을 대체하고 대안적인 해석학적 존재론으로서 수혈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내가 보기에는 이제 기독교인들의 사회운동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 자체가 근원적으로 건강하게 바뀌어서 참 신앙인이 됐을 때 정의와 평화를 지향하는 사회운동도 그 안에 저절로 담지될 것으로 본다. 즉, 기독교 신앙의 구조자체가 근원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 자체가 바뀌게 될 때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현장을 통해서 자신을 넘어선 사회운동, 통일운동, 평화운동에도 관심하게 되고 투신하게 될 것으로 본다.

만일 기독교 자체를 새롭고 건강하게 수립하려는 이러한 새로운 기독교 운동과 병행되는 가운데 통일운동 평화운동 같은 사회적 실천운동을 펼친다면은 나로서도 얼마든지 찬성하고 지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 구조 문제 자체부터 요원한 것으로 남아 있는 한, 기독교가 정작 기독교의 발목을 잡게 되는 이 끔찍스런 현실은 앞으로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치 사회운동을 가만히 보더라도 기독교가 기독교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최근 사학법재개정 문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지만 기독교가 기독교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 끔찍스런 현실부터 잘 인지했으면 한다. 이 끔찍스런 사태들은 오래 전부터 박정희 유신체제나 전두환 군사독재체제 때도 나타났었던 이미 오래된 사회현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금까지도 이러한 식의 패턴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제부터는 기독교 자체부터가 새롭고 건강하게 변혁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는 것이다.

기독교만 제대로 뒤바꿔보라. 나는 대한민국 우리 사회 전체가 업그레이드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으로 나는 의심치 않는다. 건강한 변혁을 위한 종교운동은 이미 그 자체 안에 사회운동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 역은 결코 아닌 것이다. 참종교는 바로 그 사회가 가고자 하는 궁극적 답변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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