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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치는소리] 교회와 하늘나라오늘 예수를 믿는 다는 사람들이 왜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는 지 주객이 전도된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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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6월 27일 (수) 18:39:13 [조회수 : 3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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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텍사스나그네>라는 필명으로 '복음과희망'과 '당당뉴스 자유게시판'에 올려진 글이다. 필자는 얼마전 자원은퇴하였으나 당당뉴스의 칼럼니스트였다. 현재 미국에서 거주하는 님은 굳이 실명을 밝히길 원치 않아  필명으로 게속 연재한다. 필자를 아는 이 글에 대한 책임은 당당뉴스 운영자가 진다.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말이 있듯이 오늘 예수를 믿는 다는 사람들이 왜 예수를 믿고 교회에 다니는 지 주객이 전도된지 오래되었다.

오늘의 현존하는 한국 기독교회에 천국(하늘나라)이 있는가? “목사X(인터넷에 떠다니는 목사에 관한 언어를 자세히 살피면 님인지 놈인지 구분이 안간다) 우리를 우롱하는 거요? 아니면 무시하는 거요?” 이런 반박이 있을 수 있다. 다시 한 번 질문해 본다. 현존하는 한국어권 교회에 하늘나라는 있는가? 여기 현존하는 교회는 그 범위를 우주적 교회를 말함이 아니라,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들만의 한국인의 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논리적으로 부적절한 면이 없지는 않으나, 현존하는 한국어권의 교회는 그들의 입술로는 사도신경적인 교회라고 고백하나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는 무관다고 규정지어도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사료된다. 사도신경적인 신앙 고백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그대로 재현하려고 사력을 다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다수가 되고 전자가 소수가 되어야 함에도 현실은 정 반대임을 개탄해 마지 않는다.하늘나라와 천국은 같은 말이다.

그러면 하늘나라는 무엇인가?(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는 전제로 이글 이 읽혀져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하늘 나라를 간략히 살피자.

첫째, 하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자체다.

마태복음 3:2을 보면 “Turn away from your sins,” he said, “because the Kingdom of heaven is near!” 라고 했다. 이 말은 예수님의 길라잡이며 광야의 예언자 세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보고 회개하라고 외친 말이다. 하늘 나라가 네 곁에 왔으니 너의 가던 길에서 돌아 서서 예수 그리스도께 오라는 것이다. 요한은 예수라고 말하지 않고 “하늘의 왕국” 이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하늘 나라라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 도께서 우리의 작은 우주인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완전히 주장하시도록 돌아서면 하늘나라가 임한다는 것이다. 인생이 한 생을 사는 동안 기초가 중요하다. 예수쟁이가 예수를 영접하고 신앙 생활을 시작하면 기초가 중요하다. 그 신앙의 기초는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다. 이 기초를 잊고 성공주의, 배금사상, 기복주의, 시한부 종말론으로 걸어간 결과가 오늘의 현존하는 한국어권 교회들이 종교개혁 이전의 로마 카돌릭에서 일어난 타락상 보다 그 심도를 측량할 수 없도록 심히 부패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오늘의 결론이다. 예수님은 하늘나라 그 자체다. 예수를 믿고 하늘나라를 가는 것은 당연하지 않는가?(당근이다?) 과연 그러한가? 기초가 든든하면 수백층 건물도 세울 수 있다. 예수 쟁이는 모름지기 예수가 전부여야 한다. 오늘에 현존하 는 신자들이 과연 예수가 전부인가? 그렇다면 오늘 (6월 25일 자, 당당의 머리글 기사, 대구 순복음교회,,,,,,,등에 오르 내리는 부끄러운 글들은 예수쟁이들의 글인가? 아니면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의 글인가?

둘째로, 하늘 나라는 우리 마음 안에 있다.(눅 17: 20-21)

하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마태는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 라고 표현했다. 누가는 하나님의 나라( The Kingdom of God) 로 표현했다. 같은 의미다.) 영문성경에 “The Kingdom of God does not come in such as to be seen. No one will say, ‘Look, here it is!’ or ‘There it is!’; because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or among you, or will suddenly appear among you.) 하늘 나라는 여기 있 다, 저기 있다고 함이 아니라, 육안으로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영적 세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늘 나라는 이곳,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안이 천국이라는 말이다. 예수가 주장 하시는 마음에는 시기와 분쟁과 다툼이나 허영이나 인간의 정욕이 없다는 말이다. 나는 죽고 주님만 살아 계신다는 말이다. 주님이 주장하시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함께 만나 예수의 삶을 재현 하고자 하는 무리들이 12사도들었다. 제자들도 성령이 무엇인지 몰랐을 철 없을 때에는 시기와 다툼과 분쟁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영(정신,마음, 사상, 성령)이 제자들을 사로잡아 종으로 삼았을 때(이것이 하늘나라가 임한 것이요, 성령 충만이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 “ 하늘 문이 열리고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라”(행 7:55b) 하면서 그 얼굴에 광채가 나고 예수님의 영접을 목격하니 웃으면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편의상 예수님의 영에 사로잡힌 종을 1차 천국이라고 한다면, 사도들이 열어놓은 교회(성령에 사로잡혀 주의 종이 된 자들의 모임)를 2차 천국이라고 칭해 보자. 그러면 오늘의 가시적인 한국어 권 교회들이 2차 천국의 성격이 강한가 아니면, 분쟁중에 있거나 강압적인 투표로 아들에게 대물림한 교회들의 모습은 하늘나라의 모형으로, 세상에 빛을 비추는가?

신자들은 교회에 몇 년 다니고 세례 받고, 직임(권찰,집사, 권사, 장로)을 맡고, 부흥회 때에 받은 쇠뇌 교육대로 주의 종에게 충성하면 대대 손손이 복을 받는다는 논리로, 지도자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로도 다 용서해 주거나 묵인해 주는 현실을 개탄해 마지 않는다.

교회는 무엇과 같은가? 천국의 모습을 세상에 보여 주어 믿지 않는 이들에게 천국을 사모하도록 삶으로서 예수를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재현해 내어 빛을 비추어야 마땅한 것이다. 보이는 건물은 무엇인가? 성전인가? 성전과 교회를 혼돈하여 사용하는 것도 문제다.(여의도 순XX 에서 대형 건물일 짓고 예루살렘 성전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음이 그 시효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전에는 장로교 보수파에서는 <례배당> 이라고 하였고, 일반적으로는 <교회> 라고 통칭해서 불렀다.)

근래에는 한국 교회의 건물들이 대형화 대면서 <성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다. 성경에는 솔로몬이 지은 <솔로몬의 성전=예술살렘 성전> 하나 뿐이다. 이 외의 다른 소위 성전이라고 불리우는 건물들은, 교회당, 집회소, 건물일 뿐이다. 로마 카돌릭 교회는 베드로 성당을 비록하여 큰 건물 짓다가 타락하여 <면죄부 판매>까지 이른 것이다. 언제 주님께서 대형 건물을 지어 봉헌하라고 계시 하였나? 모두가 자기 최면에 걸려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들의 작품이다.

유럽의 수백년, 수 세대를 걸쳐 지은 건물들은 교회 세력이 쇠퇴하였어도(유럽의 대부분의 큰 건물들이 거의 공동화 현상을 만나고 있다) 예술적인 가치가 많아 돈 받고 관광객에게 공개함으로 관광 수입을 올릴 수 있으나, 급조한 한국의 대형건물들은 수백년은 견디기는 커녕, 산업 쓰례기가 되고 말 것은 자명한 일이다. 외국인들이 볼거리도 없는 썰렁한 건물을 보려고 돈을 내고 입장이나 할런지.

큰 건물 건축과 함께 스트레스 쌓이는 교인들의 주머니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많이 바칠 수록 다다익선으로 수백만 배로 하늘에서 쏟아 부으실 줄 믿고, 기복신앙으로 무조건 바치는 것도 제피는 제가 돌려 받을 것이다.<”People of Israel! It was not to me that you slaughtered and sacrificed animals for forty years in the desert, Act 7:52>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40년간 드린 희생의 제물을 단 한 번 도 받으신 적이 없다고 스데반의 입을 빌어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의 거대한 건물에 바쳐진 수 많은 신자들의 희생과 봉사의 결과가 과연 하나님이 받으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친 분들의 자위행위가 아닌가? 하나님이 과연 받으셨는가? (후에 헌금론에 상세한 이야기를 하겠다)

한국의 속담에 “재주는 곰이 피고 돈은 누구가 챙긴다” 하였다. 신자들은 하늘나라를 너무나 열망 하여 희생의 제물을 아침 저녁으로 드렸더니 대물림하거나 암시장 처럼 뒷거래로 후임을 결정하는 오늘의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인가?

보이는 교회 건물은 성전이 아니다. 성전은 예루살렘에 하나 밖에 없다. 그것도 하나님이 지으시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다윗이 짓겠다고 하니, 다윗은 피흘림이 많아 불합격하고, 하나님은 백향목궁에 거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우리 사람들의 마음에 천국으로 거하기를 원하셨던 것이 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속죄의 마음을 잃고 아버지의 소원풀이로 성전을 지은 것이다. 그것도 원형이 남아 있는가? 이미 하나님의 심판으로 돌위에 돓나도 남지 않고 무너진 것이 아닌가?

전주의 모 장로교회와 서울의 감자탕 교회, 개봉동의 모 감리교회는 대형건물 짓고도 남을 실력이 있으나 목사님들이 건물 짓는 여력으로 선교에 힘쓰는 것은 하나님의 칭찬감이다.

오늘의 천오백 여년전 로마 카돌릭의 베드로 성당은 제쳐 놓고 오늘의 대형 집회소 (소위 성전들) 는 어떤 모습인가? 미국의 호황기에 지어진 유수한 도심속의 대형 건물들이 유지 되고 보존되며 하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열심인 교회가 과연 몇개나 되나? 뉴욕의 유명한 감리교회건물은 백년도 훨씬 넘어 박물관 적인 교회이지만 할머니 몇 분만 주일에 모이는 곳이 되었다. 도심의 대형 건물들이 비지니스로 이용되거나, 술집으로 바뀐 경우를 생각해 보라. 성전이 감히 그렇게 될 수 있는가?

교회는 무엇인가? 하늘 나라를 이루었으나 아직은 미완성인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 나라 훈련 받 고(자동차가 바테리가 부족하면 충전하거나 바꿔야 함) 재충전하여(말씀의 빛을 받고) 어두움의 세상에 나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도록 힘을 얻는 충전소요, 교육의 장소다. 사무실이거나, 비지니스 건물이거나, 어디든지 하나님 나라 이룬 사람들이 모여 하늘 나라를 이루고 그 힘을 뫃아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종들로 살아 행복을 만드는 기관이어야 한다.

1차 천국, 2차 천국을 이룬 사람이 장차 갈 곳을 3차 천국이라고 칭한다. 즉 예수님께서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 “내가 가거 장차 너희들이 있을 곳을 예비하고 다시 온다”(요 14:27-30) 는 <하늘 나라를 이룬 사람들이 장차 갈 곳>을 3차 천국이라고 한다.
그러니 교회에서 시기와 분쟁과 원망의 피로 얼룩지고서 하늘 나라가 임할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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