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교 > 복음과개혁 칼럼모음
[평신도의 외침]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내가 속한 교회공동체가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어 있는지 돌아보아야
당당뉴스  |  webmaster@dangdang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7년 06월 24일 (일) 13:45:14 [조회수 : 3640]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 미주 이민교회의 실상을 다루는 복음과 희망( http://www.gospel-hope.org )에 " 이민성도" 라는필명으로 올려진린 글중에 당당뉴스가 미처 전재하지 못했던 부분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올립니다. 필자는 미주교회에서 전문직업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장로로, 미주교회들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는 바 오늘날의 한국교회 실상에서 대단히 유익하고 귀담아 들어야할  "어느 평신도의 외침"이라고 판단하여 연재합니다.  당당뉴스가 책임지고 실명을 보호합니다.  복음과 희망은 근간 문을 닫고 새로운 모습으로 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당뉴스는 복음과 희망에 실렸던 여러 평신도들의 여러가지 시리즈 글을 계속해서 발굴, 보관하여 연재할 예정입니다...(당당뉴스 운영자)

너무나 아름답고 귀한 것은 분명히 존재는 하지만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신다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천하보다도 귀한 것이 생명인데 그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다.

사람이 단지 심장이 뛰고 숨을 쉬는 반응를 보고서 살아있다는 것을 알 뿐이지, 그 생명이 어디에 있는지 사람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물질인 산소는 공기 속에 존재하지만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다. 산소센서로 확인을 할 뿐이지 아무리 눈이 좋은 사람이라도 산소를 직접 볼 수 없다.

마음과 영혼도 사람의 눈으로 절대로 볼 수 없다. 사랑의 영혼을 볼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귀신의 힘을 빌어서 밥벌이를 하는 무당이나 점쟁이 정도이다.

이와 같이 정말 귀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도록 만드셨던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모든 창조의 법칙을 초월하여 구원자-메시아-독생자를 보내셨는데 바로 예수그리시도, 우리 주님이신 것이다. 창세 이래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말씀으로 임재하셨던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주신 그대로 인간의 육체로 오셨던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영적 비밀은 분명히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는 육체를 가지신 모습으로 오셨는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전혀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눈이 있다면 분명히 누구든지 알아 볼 수 있어야 하지만, 두 눈을 가지고도 전혀 알아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변장(?)을 하고 이 땅에 오셨다. 어떻게 변장을 하였느냐 하면 예수님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서, 귀한 사람이 태어나는 장소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말구유에서 나셨으며, 30세까지 이스라엘에서 가장 가난하고 척박한 땅인 나사렛에서 평범하게 살았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3년의 공생애를 보내시는 동안, 수많은 말씀을 선포하시고 이적과 기사를 행하셨지만 구약의 말씀을 거의 외우면서 가르쳤던 대제사장, 서기관, 율법사들, 심지어 제자였던 가롯유다의 눈에도 예수님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누동가, 미혹자, 신성모독자, 귀신들린자" 로 여겼으며, 급기야, 돈에 팔고, 포승줄에 묶고, 때리고,  침밷고, 조롱하였던 것이다. 마지막에는 합심하여 "살인강도를 풀어주고 십자가에 못박아라" 고 목 놓아 외쳤던 것이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예수님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아 구원의 하나님이다" 라는 사실을 볼 수 있었다면,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역사 속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수없이도 많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손에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성경을 사람들에게 주셨다. 그런데 지난 1500년동안 그 성경을 종교권력을 가진 사제들이 꽉 쥐고서 "우리들만이 그 성경을 볼 수 있고, 우리들만이 해석하고 가르칠 수 있다" 고 못을 박아 놓고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성경에도 없는 수 많은 거짓과 악행을 하였는데 극에 달하였던 것이 바로 "돈만 내면 죄가 사해진다는 면죄부판매" 였던 것이었다.

이러한 비성경적인 거짓과 악행에 반기를 들었던 사람이 바로 개혁자 "루터" 였으며 "성경을 서민의 언어였던 독일어" 로 번역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해석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다" 는 "만인제사장" 을 부르짖었던 것이다. 그리고 루터가 부르짖었던 그 전후 시대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성경번역자들을 통해서 영어를 비롯하여 수 많은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기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 손에 "하나님의 말씀-성경" 이 주어져 마음만 먹으면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읽고 묵상하고 나누고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여 정경으로 완성시킨 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롭게 읽고 묵상하고 해석하고 나누고 전할 수 있도록 하는데 1700년간의 역사를 사용하셨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과연 그 성경을 사랑하고, 날마다 읽고, 묵상하고, 나누고 전하는데 1700년간의 기다림 속에서 이제는 됐다는 안도감을 보이실지 모르는 "하나님의 가슴" 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도 혹시 우리들 가운데 "목회자만 성경을 해석하고, 목회자만 성경을 나누고 전할 수 있다" 는 500년 전의 묵은 사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없는지 우려스러운 일들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강단에서 전해진 목사님의 설교 내용은 가슴에 두고서 마치 그 것이 모든 삶의 절대적인 기준을 삼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정작 생명으로 들어 있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 은 옆으로 제껴 놓고 살지 않는가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너무나 엉뚱한 일들이 교회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구약에 의하면 간통하면 돌로 쳐죽이라고 까지 할 정도로 대단한 범죄로 보았다. 그리고 간통은 탐욕으로 남의 아내나 남의 남편을 도둑질 하는 것이며, 음행은 악한 영과 합쳐지는 것과 같은 것으로 점쟁이들이 귀신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접신행위" 라고 할 정도의 영혼을 해치는 악한 것이다. 그래서 음행 앞에는 꼭 "더러운" 이라는 형용사가 붙는다. 음행하면 더러운 영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유명한 목회자들 가운데 몇몇이 간통을 하고 분명히 그 증거가 드러났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 목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더 놀랍고 한심한 일은 그런 목회자를 마치 하나님처럼 알고 따르는 교인들의 수가 수백명, 수천명이 아닌 수만명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왜 그런 맹종과 추종이 생기는가? 바로 성경 속의 하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을 들고 있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에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예수님 오셨던 당시에 예루살렘성전과 이스라엘백성들의 삶은 하나였다. 백성들은 제사장과 서기관과 율법사들의 가르침에 따라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기다렸던 메시아인 눈에 보이는 예수님" 이 오셨지만 일부를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거부하였다. 따라다닌 사람들도 대부분 병고침과 빵 때문이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을 정도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우리 손에 말씀을 주셨지만,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는데 교회에 나오거나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어떻게 하면 복받가 평안히 살것인가라는 기복적인 샤머니즘에 가득차 있는 것이다.

설교 잘하고 영적리더쉽이 있고 영성이 깊어서 목회성공을 하였다고 자화자찬하는 중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설교시간에는 입버릇 처럼 우리 모두가 예수님과 같이 그리고 바울처럼 살자고 하면서 본인만큼은 항상 예외이며 호의호식하며 왕노릇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약하고, 가난하고, 무지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하셨으며 소유없이 사셨는데 목사님은 왜 그렇게 살지 못합니까?" 라고 누가 말하면, "시대가 바뀌었다" 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와 지금 시대가 어떻게 바뀌었는가? 정말 바뀌었는가? 겉이나 정보나 지식의 전달속도와 양은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사람의 영혼과 마음은 2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바뀐 것이 없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훨씬 더 황폐하다고 볼 수 있다.

그 시대에도 지금의 중대형교회의 목회자들과 같이 화려한 예루살렘성전을 중심으로 엄청난 종교권력자들이 존재하였다. 율법을 들고서 긴 모자와 긴 옷을 걸치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으면서 백성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대접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부 자기들의 편의대로 해석하면서 사람들을 종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 때 생긴 것이 바로 "고르반" 이란 것이다. 부모에게 불효하여도 "하나님께 바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불효한 것까지 전부 보상해주신다는 사상이다.

오늘날 이러한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세하고, 음행하고, 사기하고, 거짓말하면서 벌었던 돈을 십일조나 감사헌금이나 건축헌금으로 많이 내면 하나님께서 지었던 죄를 감면해 주는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 받아 죽을 것처럼 세뇌당하고 실제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다. 누구에게서 그러한 "고르반사상"을 배웠는가? 가르친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어느 계명이 가장 큽니까라고 물었을 때 종교인들이 달달 외우는 "구약성경' 그대로 인용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고 대답해주었다. 너희들 손에 이미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도 "나는 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주신 것만 말을 한다" 고 하셨다.

이 시대의 교회를 보라. 과연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을 전하겠다" 는 사람들이 몇 %나 되는가? 건물을 성전으로 속이거나, 어떻게 벌었더라도 교회에 바치기만 하면 복을 받는다거나, 예수를 믿으면 물질적으로 무조건 축복을 받는데 조건은 많이 바쳐야 반든다는 등 성경에도 없는 거짓되고 다른 복음을 세뇌하고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건축한 거대한 건물 속에서 왕노릇 하고 불륜하고, 횡령하고, 세습하는 일들이 벌어지는데도 "우리 목사님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 이라고 맹종하고 맹신하고 있으니 놀랄 따름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3년의 공생애를 보내는 동안에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었던 것이 아니고, 바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율법사들의 말을 더 믿었던 것이다. 오늘날과 너무나 비슷하지 않는가? 성경을 줄줄 외웠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는 귀신들린 놈이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놈이다. 이런 자는 강도살인자보다 훨씬 더 악한 놈이다" 라는 말을 백성들에게 얼마나 세뇌를 시켰으면, "살인강도를 풀어주고 예수를 못박아라!" 고 백성들이 합심하여 외칠 수 있었겠는가? 결국 그들은 오직 예수님을 때리고 죽여야만이 자기들의 종교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 시대에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자, 예수님의 영이 거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거룩한 나라이다. 이 소자를 영접하는 것이 바로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할 것이다. 성령이 거하시는 소자들을 속이고, 울리고, 때려서 겁을 주면 호주머니를 털어서 거대한 건물을 짓고서 그 속에서 왕노릇하려는 몰지각한 목회자들의 모습이나 예루살렘성전에서 몸을 담고서 백성들의 옹노릇 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때리고 족치면서 십자가에 내어주었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는가?

종교권력을 유지하는 면이나, 무지하여 까막눈이 되어서 속아서 돌아다니면서 "예수님을 못박아" 라는 군중들의 모습은 2천년 전이나 지금은 전혀 차이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 말아야 한다. 교회나 목회자들이 사라지면 큰 일이 날 것처럼 속이는 자들을 경계하여야 한다. 교회건물과 신학교들이 전부 폐쇠를 당하였고, 선교사들을 추방되었으며, 목회자들은 전부 강제수용소에 보내졌던 공산중국과 공산 동유럽과 공산 구소련을 보았을 것이다. 그 때까지 수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사기를 쳤던 것이다. 특히 제정러시아는 굉장하였다. 백성들의 피를 빨아서 교회를 세우고 그 속에 종교지도자들은 그 피를 먹고 살았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죄악들이 넘쳤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신학교출신이거나 목회자의 자녀이었던 마르크스나 레닌 같은 자들이 일어나 철저한 무신론 공산주의를 주장하고 폭력혁명을 일으키고 계급투쟁을 하면서 종교계급자들을 깡그리 쓸어버리도록 허용하셨던 것이다. 교회건물도, 신학교도, 목회자도 전부 사라졌지만, 과연 그리스도인들도 사라졌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그 어떤 시대보다도, 그 어떤 나라보다도,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이 넘쳤으며, 수많은 복음증거가 있었다. 공산정권들이 무너지자 숨어 있었던 엄청난 그리스도인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교회건물이 없어지고, 신학교가 없어지고, 목회자가 없어지면 기독교가 사라진다고 속였던 무신론공산주의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의 상식을 전부 깨트려 버렸던 것이다.

무엇으로 깨트렸는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손과 가슴에 성경을 주셨기 때문에 끈질긴 생명을 가진 잡초와 같이 죽여도 또 일어나고, 죽여도 계속 일어났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최대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우리들의 가슴과 손에서 떠날 때 우리들은 2천년동안 끊임없이 사람들을 속여서 돈과 권력과 명예를 움켜쥐려고 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계속 속을 것이다.

마귀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쓰는 가장 교묘한 수법을 하나님의 말씀을 어렵게 느끼게 만들고, 지겹게 생각하게 하며, 복잡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렵고, 지겹고, 복잡하게 만드는 자들이 누구인가를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어떤 아버지가 식사시간에 플라스틱으로 된 가짜음식모형을 만들어 놓고서 아이들에게 억지로 먹으라고 하면 아이들이 죽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은 제쳐 놓고서 플라스틱 모델과 같은 철학과 사상과 잡지식으로 차려 놓고서 성도들에게 먹어라고 강요하는 미친 자들이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배탈이 나버리니까 누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플라스틱 음식모델을 먹어라고 하겠는가?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10년을 들어도 한 명도 전도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도해서 자기 교회에 데리고 오지 않는 것은 대단히 양심적인 일인지 모른다. 죽어도 혼자 죽는 것이 낫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수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고자 하는 교회들은 많이 않을 것이다. 늘 교회 속에는 종교권력을 가지고자 하는 자들과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자들 사이에 모순과 갈등과 아픔이 넘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초대교회도 그랬고, 종교개혁시대도 그랬으며 지금도 그렇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은혜의 삶을 살아가고 누릴 수 있는 길은 "오직 말씀,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의 주권, 오직 믿음"을 붙잡고서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 속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 진입의 장소는 먼저 골방이며, 그 다음에는 가정이며, 삶의 현장이 될 것이다. 골방과 가정과 삶의 현장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전해지고 나누어진다면 그곳이 바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시면서 보여주셨던 것이 바로 그 교회였던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이 보여주신 교회를 보았기 때문에 아무리 핍박을 받고 흩어져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인 교회의 기초도, 머리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였던 것이며,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유기적으로 살아서 역사하심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렸던 것이다.

내가 바로 교회가 되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내 가정이 과연 교회가 되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내 직장이 과연 교회가 되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속한 교회공동체가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되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 기준은 전부 "하나님의 말씀" 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말씀을 주야로 읽고 묵상하고 나누고 전함으로 진정한 교회됨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

당당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126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