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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더 많이 알려질 필요가 있다!<잃어버린 한 마리 양?>보수와 진보에 대한 정보 소통의 불공정성 극복만이라도
정강길  |  minjung2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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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6월 14일 (목) 00:00:00 [조회수 : 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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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진보 기독교에 대한 정보를 금기시하는 편

진보는 보수보다 더 많이 알려질 필요가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보 소통 경쟁에 있어 양 진영의 출발 레이스부터가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보수나 진보 모두 화합할 수만 있다면야 참으로 좋다고 하겠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말하는 경우는 그렇지 못하고 서로 충돌하고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90퍼센트 이상이 보수 진영에 속해 있다.

그래서 보수 기독교에 대한 서적과 정보들은 쉽게 그리고 자주 접할 수 있지만, 진보 기독교에 대해선 접할 기회는 고사하고 정말 아예 그것이 뭔지 모르고 있는 경우조차 허다하다.

실제로 내가 아는 분은 80년대에 우연히 남미 해방신학 저서를 읽게 되어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자신이 다니는 동네 교회 목사님에게 말씀드렸는데 우습게도 그날 이후로 교회에서 거의 빨갱이 수준으로 낙인 찍혀서 더 이상 교회를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그 교회 목사님 왈, 왜 그런 사탄의 책을 읽느냐 하시면서 더 이상 사탄의 책을 논하지 말라는 것이다.

교회는 금기시한다. 성서비평, 종교다원론, 역사적 예수, 민중해방신학, 고전 유신론의 붕괴 등등 이런 얘기들은 한국의 교회에선 여전히 낯선 것이며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여기에는 교회 구조상으로도 '개교회주의'라는 시스템적 한계 역시 악습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한국교회 목사들이여, 적어도 일반 신자가 의문을 가지고 왔으면 이를 무시하거나 배제하진 말고 분명한 의문들이 있을 경우 제대로 된 설명이라도 해줘야 하잖은가. 그렇지 않고 그런 건 하나님만이 아시는 문제이기에 ‘무조건 믿어라’는 식으로 말해버리면 도무지 누가 진정으로 교회를 찾아오겠는가?

예컨대, 모세오경의 저자가 모세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허다할 뿐더러, 골리앗을 죽인 사람을 우리는 다윗으로 알고 있는 실정이다(아마도 이런 얘기에 ‘허걱! 그럼 누구지?’ 하고 놀랄 사람도 없잖아 분명히 있을 것 같다). 혹자는 그런 얘기들은 사실상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에서 얘기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줄로 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정보적 중요성의 여부를 누가 결정하는가? 일단 모든 정보들은 적어도 공정하게만큼은 모두에게 제공되어야 마땅치 않는가. 그런 뒤에 자율적 결정들을 존중하는 것이라면 그 최종적 판단은 정보 습득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나는 지금 주류 다수의 한계로 인해 편협하게만 소통되고 있는 이 현실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정보에 대한 진리여부 판단은 결국 <설명력>으로서 판가름을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보수의 논리가 진보가 주장하는 것보다 더 옳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더 많이 소통되고 있는 것이고,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보수 진영에 속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하지만 이런 얘기의 배경에는 “다수의 논리는 언제나 옳다”는 시각이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고 본다. 정말 그럴까?

▲ 출판된 정보들도 자본과 물적 기반의 차이로 인해 <'잃어버린 한 마리 양'으로서의 정보>도 있다.

보수 근본주의 기독교의 신앙 논리는 알고 보면 매우 단순한데, 예컨대 우리는 흔히 <4영리>로 요약되는 것을 들고 비기독교인에게 기독교를 전하기도 한다. 참으로 그것은 간단명료하다. 이 점은 대중에게 있어 장점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만일 보수 진영의 기독교가 오류와 비극이 전혀 발생되지 않는 기독교라면 사실 진보적인 기독교라는 게 나는 나오기가 힘들다고 본다.

즉, 진보 기독교는 오히려 보수 진영에서 설명치 못했던 그 오류와 한계에서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곤란한 문제가 있을 때 보수 진영처럼 꼭 ‘무조건 믿어라’는 식으로 나오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성경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던 권위 있는 거룩한 경전이었다. 그에 따라 모세오경의 저자가 모세라는 사실 역시 처음에는 아무도 의심치 않았던 교회 전통이었다.

모세저작설을 의심하면 불경죄로 몰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 점차로 성경 안에서조차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면서 이 전통은 결국 흔들리게 되었던 것이다('구약성서개론' 책들 참조). 물론 보수 근본주의 진영은 지금까지도 별다른 설명력 없이 ‘무조건 믿어라’의 해결책이기에 여전히 모세를 모세오경의 저자로 믿는다. 솔직히 한국교회는 보수적인 선교사로부터 전래받은 기독교이기에 초기의 시작부터 불공정한 점이 없잖아 있다.

나로선 모세오경을 모세가 썼든 누가 썼든 간에 결국은 드러난 데이터들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력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보수든 진보든 그 주장들과 정보들의 설명력 싸움인 것이다. 가장 설득적인 것을 취하면 된다.

그러나 그 이전에 다양한 여러 가능성으로서의 정보들이 있다면 마땅히 공정하게 취급되는 것이 옳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나는 정보 소통의 경쟁에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정보를 나눌 수 있는 대화의 기초 전제

언젠가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그 사이에는 4가지 창이 필연적으로 전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1. A만 알고 B는 모르는 창
2. B만 알고 A는 모르는 창
3. A와 B 둘 다 아는 창
4. A와 B 둘 다 모르는 창

우리가 어떤 사람과 얘기를 나누든, 하다못해 초등학교 어린애와 얘기를 나누든, 세계적인 대석학이랑 얘기를 나누든 그 사이에는 저 4가지 창이 필연적으로 전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부터 알아두는 것이 의미있는 대화의 기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학생이자 스승일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좋은 대화의 방향은 3번에서부터 시작하여 1과 2를 거쳐 4번으로 이르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합리적 논증이 당연히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양자 간에 대화가 이뤄질 경우, 기독교의 보수와 진보의 대화도 매우 유익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걸 이제서야 고민하다니”

그런데 기독교의 보수와 진보가 이러한 대화를 진행해나가다 보면 대체로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 있다. 솔직히 진보는 보수의 고민들을 훨씬 넘어선다. 이는 특히 한국 교회사나 기독운동의 역사를 보면 잘 알 수 있을 테지만, 흔히 진보 진영의 사람들은 보수나 혹은 복음주의 진영이 고민하는 주제들을 놓고서 “우리가 훨씬 전에 고민했던 것을 그걸 이제서야 고민하다니” 하고 보는 사람들 정말 많다.

물론 이런 반응은 진보 측의 자만이기도 하다. 또한 진보의 자리가 보수 혹은 복음주의(나는 이 용어의 문제점부터 지적하는 입장이지만) 자리와 같은 것이라고도 보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 말이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나는 그러한 얘기들을 진보 기독인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보수나 복음주의에 계신 분들에게서도 들은 적이 많다.

어쩔 때는 보수 신학대의 교수들이 몰래몰래 진보 서적들을 읽고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었었다. 이유는 뻔하다. 그 교단에서 진보적 주장(예컨대 종교다원주의 입장)을 할 경우 자칫 교단과 학교에서 잘릴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기에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대부분의 보수 서적들은 진보에 대한 억지 비판들만이 대중에게 보여질 뿐이다.

혹시라도 이런 나의 얘기를 오해하진 말라. 나의 주장은 진보가 마냥 옳으니까 믿어달라는 그러한 차원보다 여기서는 정보 습득에 있어서 다양한 정보들이 있다면 공정하게만 소화될 수 있도록 취급해달라 는 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정확한 핵심적 주장이다. 그것만이면 된다. 정보적 가치의 최종 판단 여부는 어차피 정보 습득자가 알아서 판단하기만 바랄 뿐이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으로서의 정보>를 더 많이 알려야

왜 총신대 고신대 성결신대 등등 이러한 보수 진영의 신학대들은 배움의 과정 자체에서부터 아예 정보 습득의 기회마저 박탈시키는 것인가. 진보적 신학 사상들은 공정하게 커리큘럼에 들어가 있지도 않다. 내가 볼 때 이러한 작태는 한기총이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아예 출판 금지시켜서 입막음을 하는 처사만큼이나 어이없는 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모습들은 기본적으로 진리 안에서 자유하지 못한 모습들이자, 스스로 자신 없음을 예증하는 꼴이 될 뿐인 것이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기독교를.

적어도 한국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에도 관심이 있는 곳이라면 특별히 부탁할 것은, 같은 양의 정보라도 가능하면 나는 진보 기독교에 대해 좀더 많이 알려주었으면 하는 소망도 없잖아 있다. 즉,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더 귀중하게 보셨던 예수님의 <우선성의 원리>를 적용해 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까진 공평치 못한 불균형의 현실이 엄연히 현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동네 구멍가게에 아무리 좋은 물건을 들여놨다고 한들 엄청난 대형마트가 옆에 들어설 경우 당연히 작은 가게는 잘 들여다보지 않는 게 작금의 현실인 것이다.

보수와 진보에 따른 국내 기독교 출판사 분류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물량과 인적 규모 면에서 본다면 보수는 진보보다 훨씬 월등하다. 그러나 담겨진 정보 자체의 질(quality)로 본다면 적어도 보수보다는 진보가 훨씬 더 앞서나간 정보들을 다루고 있다고 본다. 혹시 이 말이 믿기지 않거나 거짓말 같다면 직접 기독교 서점에 가서 비교해보기를 바란다. 

 

보수

진보

기독교

출판사


엠마오, 규장, 두란노서원, 예루살렘, 나침반, 보이스사, 생명의 말씀사, 육일문화사, 크리스찬다이제스트, 나단, 복음주의, 서울서적, 에바다, 개혁주의신행협회, 네비게이토, 베드로, 기독교문서선교회, IVP, 낮은울타리, 대장간 등등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듦.

여하튼 옆에 언급된 진보 출판사를 뺀 나머지 대부분의 기독교 출판사들이 대체로 보수 측에 속한다고 보면 됨.


대한기독교서회(또는 '대한기독교출판사', 조금 진보적이면서도 보수적인 책도 일부 출판하는 중도적 성격),

한국기독교연구소, 한국신학연구소, 다산글방, 삼인, 한들, 나눔사, 종로서적, 삼민사, 컨콜디아사, 네쌍스, 분도출판사(가톨릭 측 출판사), 현암사 등등

 또한 일반 서적 출판사인 한길사와 한울의 종교 관련 서적들 등등


여기에 언급된 출판사들의 책 내용들을 서로 비교해보면 우리가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내용은 서로 상이하게 다를 뿐만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내용들이다. 보수 측의 기독교 서적들의 베스트셀러는 나의 간증 같은 신앙 체험에 근거한 얘기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는 반면에, 진보 측의 기독교 서적들은 학문적인 객관성을 담보로 하는 책들이 좀더 많은 편이다.

또한 위 도표에서 보수와 약간의 중도 진영이라는 복음주의와의 구분은 하지 않았다. 크게 볼 경우 복음주의 진영 역시 나는 보수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복음주의에 대한 본인의 또 다른 글 참조). 물론 그렇다고 해도 예컨대, 대장간과 IVP의 일부 서적들 가운데는 진보적 색조를 띠는 것들도 간혹 있긴 하듯이, 우리는 가능하면 그 출판사가 찍어내는 서적들을 유심히 잘 파악해두는 것이 더욱 좋을 듯싶다.

‘대한기독교서회’(대한기독교출판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대한성서공회의 바로 그 출판사다. 오래된 출판사이기에 내가 보기엔 다소 보수적인 서적들도 나온다. 여기서 발행하는 월간 <기독교사상>은 우리나라의 보수/진보 신학사상의 핵심과 그 흐름들을 잘 알 수 있게 한 책이다. 혹시 보수 측 진영의 두란노서원에서 발행하는 월간 <목회와 신학>이 바로 이 <기독교사상>에 반대해서 창간된 기독교 월간지라는 점은 알고 있는지.

‘한국신학연구소’는 우리나라에서 진보 계열의 책을 발간하는 대표적 출판사로 알려졌었다. 지금은 식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한국의 민중신학 서적들 대부분이 이 출판사에서 발행되었을 만큼 한때 외국학계에서도 널리 알려졌던 진보 출판사였다. 현재의 명성은 예전에 비하면 다소 가라앉은 편이다. 여기서는 계간지 <신학사상>을 발행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연구소’는 90년대 후반부터 떠올랐던 진보 계열 출판사로 특히 제3탐구 진영의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연구서들을 국내에 많이 소개한 진보 출판사로 익히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나름대로 기존의 진보 기독교인들에게서도 좋은 호응을 받고 있으며, 보수 근본주의가 지배하는 한국교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는 기독교 출판사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삼인' 출판사 역시 활발하게 진보 기독 서적들을 발행하는 출판사 중 하나다.

전반적으로 볼 때, 양적으로 본다면 진보 기독교 출판사는 보수 측 출판사에 비하면 일부 소량에 지나지 않는다. 혹시 위의 비교 목록에서 틀리거나 빠진 것도 있을 수 있기에, 여기에 언급된 기독교 출판사 분류를 꼭 기억해두고서 직접 가까운 기독교 서점으로 달려가 확인 비교 검토해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다고 보수-진보라는 표현 자체에 굳이 너무 얽매일 필요도 없다고 본다. 나는 '열린 보수'는 '진정한 진보'라고 생각한다. 같은 말로 '중심이 있는 진보' 역시 '진정한 보수'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진정으로 우리 앞에 추구되어야 할 것은 보수-진보가 있는게 아니라 오로지 '진리 추구'가 있을 뿐이다. 그것이 진정한 진리라면 모든 정보들을 피하거나 능히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

여하튼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핵심은 이것이다. 정보 소통에 있어서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 있다고 보는 것이며, 우리 자신들은 모든 정보들을 가능한 공정하게만 판단 처리해주기만 바랄 따름이다. 이때 정보들 간의 충돌은 곧 기회이며, 그것은 설명력으로서 판가름된다. 이 점에서 습득된 정보들에 대한 그 최종적 판단 여부는 어차피 정보 습득자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고 본다. 단지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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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감리교 농목수련회에서 특강을 하는 정강길님(세기연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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