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나 공휴일은 철저히 혼자의 날

그 누구도 전화를 걸어오지 않을 뿐더러

나조차 조용히 있게 되는 날

그런 날이 바로 오늘, 현충일이다.

오전 10시에 울려퍼진 사이렌소리에

순국선열을 위한 묵도를 하고

기구한 한국의 역사를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한 시간 반이나 걸려

경복궁 옆에 있는 단골 구둣방에 가서

새 구두를 찾아 신어봤더니 여간 편안한 게 아니다.

어디론가 가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간 곳이 서현동의 Cinus영화관.

오늘이 공휴일인데다가 인기있는 영화가 많아서였던지

관객은 길게 줄을 만들고...

소문난 <밀양>을 보려 했더니 남은 좌석 세 개 중의 하나로

2층 1관 H열 7번, 앞에서 둘째줄이지만 그래도 샀다.

늦은 아침을 먹어서이기도 하지만 슬슬 배가 고파왔다.

영화가 상영되려면 아직도 시간이 남아

뒷골목 식당 간판을 살피다 한 집으로 들어갔다.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 두 분이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청국장 백반을 시켜 먹다가 뒤늦게 카메라를 꺼냈다.

오늘 손님이 없어 일찍 문을 닫으려고 한단다.

이 식당도 나만큼이나 휴일을 타나보다.

이 근처에 커피자판기 없느냐고 물었더니 없다면서

내게 커피 한잔을 갖다준다. 물론 공짜로...

밥값에 더해 커피값을 주려했더니 마다하는데

이런 인심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드디어 영화관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만 하면 그다지 어지럽지도 않으니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데말이다.

너무 영화에 기대를 걸어서였던지 기대에 못미쳤다.

그저 전도연의 연기가 볼 만 한 것외에는.

그다지 돈도 들이지 않은 영화에다가 장면 전환이 비약하고

선교 목적의 영화같은 인상이 짙은 것은

우선 교회설교가, 기도장면이 찬송장면이 너무 길었기 때문.

오래 전에 본 부라질 영화의 <중앙역>이 연상되었다.

연기파 배우의 명연기가 영화 한편을 꽉 채웠던 그것과 같이.

전도연의 상대역 남자는 어울리지 않아 미스 캐스팅

좀더 젊고 색시한 30대전반의 배우였더라면 했는데....

물론 연기는 좋았다.

관객은 청소년과 늙은이들뿐, 청장년은 없다.

마무리가 석연치 않아 옆의 젊은이에게 물었더니

요즘 영화는 다 그렇다고....

앞으로 나는 흘러간 옛날의 영화나 봐야할 것 같으니

국립도서관에서 상영한다는 흘러간 영화나 가봐야겠다.

그동안 영화보다 연극보다 더 기구하고 슬픈

세상사를 많이 보아와서인지

웬만한 자극 가지고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 걱정.

전도연의 명연기에 버금가는 장면 

이를테면 예술적인 영상이 없었던 게 아쉬웠다.

그래도 전도연은 상을 받을 만한 연기라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