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계
젊은 신학자 박경은 목사와의 질의와 답변 2주석은 “성서본문의 원래적인 의미를 본문에서 있는 그대로 보자”
이용섭  |  lys979111@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7년 05월 25일 (금) 00:00:00 [조회수 : 306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저의 질문입니다.

"요셉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주의 천사가 말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아들을 낳을 때까지,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아들이 태어나니, 요셉은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표준새번역 마태 1:25)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문법상 "...할 때까지...하지 않았다"가 반드시 그후에는 그 일이나 사건이 이루어지거나 성취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데오토코스(하느님을 낳은 여인) 동정녀 마리아님의 "영구 동정성"을 부정하는 이들은 바로 이것을 곡해하여 그들의 이론과 주장을 선전 전파해 오고 있고 작금 한국 개신교계의 거의 모두가 이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4세기 말의 정통고대교부 에피파니우스(Epiphanius)는 그의 저서 "약상자"(Panarion)에서 초대교회로부터 자신의 시대까지 존재한 사이비 이단설 80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80가지들 중 마리아님의 "영구 동정성"을 부정하는 자들의 주장과 이론을 영어로 Antidicomarianitism이라 부릅니다. 이 주장이 전체 고대교부들의 눈에는 사이비 이단설로 비쳤던 것입니다.

당시 이러한 주장을 한 사람들은 정통고대교부들이 사이비 이단으로 정죄하였던 4세기의 헬비디우스, 요비아누스, 보노수스 등입니다.

그러나 루터, 캘빈 등은 정통고대교부들의 노선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쯔빙글리, 불링거, 재침례교파의 발타자르 휘브마이어, 월도파 등도 역시 마리아님의 "영구 동정성"을 수용하였습니다. 또한 이것은 감리교의 창시자 죤 웨슬리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세기의 대신학자로 일컬어지는 칼 바르트(Karl Barth)도 역시 그러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들에 대하여 박경은 목사님으로부터 좋은 답변을 기대합니다.
그럼...

박경은 목사의 답변입니다.

먼저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론적인 입장에 대한 두 가지 용어에 대해 개념 정리부터 하고 그에 따라 답변을 드리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는 주석이라는 용어입니다. 이것은 exegesis라고 표기되는데 “~로 부터”를 뜻하는 희랍어 전치사 ek를 접두어로 하여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따라서 이 용어는 “성서본문으로 부터”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성서본문의 원래적인 일차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본문에서 있는 그대로 보자”의 입장을 나타냅니다.

다른 하나는 통상적으로 해설, 설명이라고 말하는 ‘해석’이라는 용어로서 eisegesis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를 향하여, ~의 안으로’ 라는 희랍어 전치사 eis를 접두어 삼아 만든 단어입니다. 따라서 이 용어는 ‘내 생각, 내 의견, 내 주장을 본문속으로’라는 의미가 되어 어떤 선입견을 갖고 성서본문을 보는 입장을 나타냅니다. 대체로 조직신학적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성서의 구절들을 근거로 삼는 방식인데 이것은 성서의 본문의 원래의 의미를 추구하는 성서주석학과 정반대 방향에서 성서본문을 대하는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서신학은 원래 ‘~로 부터’를 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의 원래의 뜻이 무엇이냐를 본문을 통해 알아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하므로 본문의 원천적인 뜻을 알고자 하는 탐구의 입장을 지니게 됩니다. 이 탐구를 진행하느라고 동원되는 방법론이 역사비평학입니다. 그러므로 성서신학에서는 exegesis의 입장에서 성서본문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마1:25에 대해서도 exegesis를 추구하게 되는데 이에 바탕하여 본문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마1:25의 “...때 까지...하지 않았다”의 헬라어 원전에 사용된 단어들은 ‘아니다’를 나타내는 부정부사인 [웈]과 ‘마침이 있는 시간’을 나타내는 접속사인 [헤오스]로서 그 내용을 헬라어 원전의 어순에 따라 직역하면 “...(알지) 않았다[웈] ...(낳을) 때 까지[헤오스]”가 되어 우리말의 어순과 앞뒤가 바뀝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알지 않았다’는 말은 ‘부부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마1:25를 헬라어 원전 어순에 따라 그대로 직역하면 “그는 그녀를 알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그녀의 처음 아들을 낳을 때 까지”가 됩니다.

여기서 [알지 않았다를 알지 않고 있었다]로 번역한 것은 ‘알다’의 동사가 미완료형으로 씌였기 때문입니다. 미완료란 동사의 동작이 완료되지 않았음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과거의 일정기간 동안 같은 행위가 쭉 이어졌다는 뜻으로 영어의 현재완료 계속적 용법이나 또는 동사 자체가 계속의 의미를 갖고 있는 용법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웈... 헤오스...]는 [헤오스 이하의 기간 동안에는 특정 동작이 금지되어 오다가 헤오스 이하에 나타난 그 기간이 지난 후에는 금지되었던 동작이 해제된다]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헤오스]는 [to the point of]의 뜻을 갖기 때문에 “...까지만, ...동안만, ...하는 한에서”의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입다. 따라서 이것은 [헤오스 이하에 기술된 그 시간이 지난 후에는 ‘아니다’로 규정되었던 동작이나 행위가 해제된다. 또는 풀린다]를 나타낸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1:25는 [마리아가 예수를 출산하는 그 시간까지, 임신기간 동안에는 내내 요셉과 부부관계를 갖지 않았지만 출산 이후에는 그 금지사항이 해제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당연히 그 금지된 동작은 “처음의 아들을 낳을 때 까지”로 한정됩니다. 따라서 “처음의 아들을 낳은 이후에는 그 이전에 금지되었던 동작이 허용된다”는 의미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영역본들은 이 의미가 포함되는 untill이나 till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틴루터역 독일어 성경은 이에 해당하는 어휘로 bis(...까지)를 썼습니다.

제시하신 NIV는 “...had no union with her until...”이라고 번역하여 출산 이후에는 정상적인 부부생활로 들어갔음을 나타내고 있고, KJV는 "...knew her not till..."로 번역하여 역시 출산 그 이후로는 요셉과 정상적으로 생활했음을 나타냅니다. NASB도 “...kept her a virgin until...”로 번역하여 이 역시 일정 기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정상으로 돌아갔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until이나 till은 시간적인 계속의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까지 어떤 동작이 계속 금지되어 왔다가 그 이후로는 풀렸다는 것을 나타내며 keep동사는 동작의 계속을 담고 있는 동사이기 때문에 이 역시 그 이후로는 계속 금지되어 왔던 동작이 해제된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참고로 마틴루터 독역본도 이런 뜻을 갖는 bis(...때 까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1:25의 내용은 분명히 “예수를 출산한 그 이후로는 정상적인 부부생활로 들어갔다”는 뜻을 드러낸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마1:25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소개하고 증거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남자를 아직 알지 못했던 처녀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출생하셨다]는 것을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1:25를 어떻게 “마리아 영구 동정설”의 근거가 된다고 보는 것인지 매우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만일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면 이 구절은 하나님의 은혜로 마리아와 요셉이 부부의 인연을 갖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못하게 되었다는 의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정상적으로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를 첩신세로 만들거나 평생을 남편둔 과부로 지내게 만드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칼빈이나 쯔빙글리, 심지어는 18세기 합리주의의 시대속에서 옥스포드를 통해 지성을 닦은 웨슬리 조차도 마1:25를 ‘마리아 영구 동정설’로 인정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특정한 목적을 겨냥한 비약이 아니라면 위에서 말씀드린 해석을 비껴갈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대화참여자]의 내용을 참고로 하나 더 말씀드리면 마태복음은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의 중간시기에 해당하는 그리스도론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 탄생이야기는 마가복음의 예수 수세식과 요한복음의 그리스도 선재론 사이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마가복음-마태,누가복음-요한복음의 순서로 예수의 그리스도되심에 대해 점점 눈을 떠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론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복음서 본문을 통해 마리아 영구 동정설을 주장하는 것은 eisegesis의 입장에서 특정 이론을 주장하기 위한 '성서본문상의 근거만들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의 답변입니다.

박 목사님이 좋은 글을 써주신 것은 고맙고 분명하지만 저에게는 이 정도의 헬라어 문법 실력이 없습니다. 다만 루터, 캘빈, 웨슬리 등이 마태 1:25을 이렇게 해석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가 이미 오랜 옛날에 확인하였다는 것만을 말씀드립니다.

죤 웨슬리의 마태 1:25 영어 주석을 미국 야후에서 찾아 아래에 붙였습니다.

http://www.godrules.net/library/wesley/wesleymat1.htm
...................................................
25. He knew her not, till after she had brought forth - It cannot be inferred from hence, that he knew her afterward: no more than it can be inferred from that expression, 2 Sam. vi, 23, Michal had no child till the day of her death, that she had children afterward. Nor do the words that follow, the first-born son, alter the case. For there are abundance of places, wherein the term first born is used, though there were no subsequent children. Luke ii, 7.
...................................................
http://bible.christiansunite.com/jfb.cgi?b=40&c=1
...................................................

25. And knew her not till she had brought forth her first-born son: and he called his name JESUS--The word "till" does not necessarily imply that they lived on a different footing afterwards (as will be evident from the use of the same word in 1Sa 15:35 2Sa 6:23 Mt 12:20); nor does the word "first-born" decide the much-disputed question, whether Mary had any children to Joseph after the birth of Christ; for, as LIGHTFOOT says, "The law, in speaking of the first-born, regarded not whether any were born after or no, but only that none were born before." (See on Mt 13:55,56).


이것은 미국 개신교 주석에서 퍼온 것이지만 루터, 캘빈, 웨슬리 등과 일치합니다.

http://bible.christiansunite.com/gen.cgi?b=Mt&c=1
..................................................
1:25 And knew her not l till she had brought forth her firstborn son: and he called his name JESUS.
(l) The word "till", in the Hebrew language, gives us to understand that a thing will not come to pass in time to come: as Michal had no children "till" her death day, (2Sa 6:23). And in the last chapter of this evangelist: Behold, I am with you "till" the end of the world.

이것도 역시 미국 개신교 주석에서 퍼온 것이지만 루터, 캘빈, 웨슬리 등과 일치합니다.

[관련기사]

이용섭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006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8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류노엘 (221.164.11.83)
2014-10-01 09:04:19
예표
우리의 삶은 천국에서의 삶의 예표입니다
천국에서는 시집가고 장가가고 몸으로 아이를 낳고하는 일이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지상의 삶에서 가장 천국의 삶의 예표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 계셨고 함께 계셨습니다. 그분과 일치되어 사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 이십니다.
그분은 예수님외에 육체적 자손을 필요로 하시지 않습니다.
성령과 가장 일치하시며 사셨던 사람으로서 수많은 영적 자식들을 세상끝까지 잉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육적 아들이 필요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영적으로 이 글을 쓰신 당신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리고 당신께 의탁하실 원하시며
당신을 눈물로 부르시고 계시는 분입니다.
리플달기
0 0
이용섭 (125.128.217.131)
2007-05-26 12:02:25
답변 5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태 28:18-20

공심판 후 주 예수님께서 저희들과 함께 계시지 않나요 ?

이런 일 때문에 사울의 딸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삼하 6:23

미갈은 죽고 나서 자식을 낳았나요 ?

작금 한국 개신교의 거의 모든 목사들이 친형제 자매들이라고 주장하고 설교하는 것은 교만과 무지 때문이고 또한 천주교에 대한 반감 때문입니다. 그냥 모른다고 하면 그만인데... 확실하게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 게 죄이지요.
리플달기
2 6
이용섭 (125.128.217.131)
2007-05-26 11:57:05
답변 4
만약 마리아님이 생과부처럼 평생 동정을 지키셨다면 오늘날 수많은 목사들은 엄청난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되겠지요. 차라리 모른다고 입을 다무는 게 정직할텐데...
리플달기
4 5
이용섭 (125.128.217.131)
2007-05-26 11:54:23
답변 3
지금 저는 자료들을 보지 않고 순전히 기억력에만 의존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형제라는 헬라어는 아델포스(주로 친형제라는 의미로 사용)와 아네프시오스(주로 사촌형제라는 의미로 사용)가 사용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자와 후자가 괄호 안의 뜻만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도 이 용어(아델포스)를 사용하신 걸로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의 이름들은 외경들에도(심지어 자매들의 이름도 나옴) 나오고 제가 신빙성이 상당히 있는 외경이라고 생각하는 한 외경에는 목수 요셉이 자식들을 거느린 늙은 홀아비로 나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요셉의 두번째 부인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건 제 기억의 착오가 있을 수 있는 것인데 결혼 후 곧 요셉이 세상을 뜨고 요셉의 큰 아들은 마리아보다 연상으로 기억합니다. 정통고대교부 에피파니우스도 이 외경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또한 소위 주 예수님의 "이복동생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대의 정통고대교부 제롬(예로니모)은 "사촌동생설"을 지지합니다. 정통고대교부들 중 그 누구도(예. 터툴리안=테르툴리아누스) 감히 "친동생설"을 주장하는 분은 없었습니다. 현대 천주교회의 양심적인 성서학자들은 이 문제(친형제. 사촌형제. 이복형제)에 대한 답을 알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저도 또한 "이복형제설"을 지지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요한복음의 십자가 위에서 주 예수님께서 마리아님의 노후를 사도 요한님에게 맡기시는 것 때문입니다. 만약 친형제가 있으시다면 그렇게 하시지는 않았었을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저는 성경(성서)을 바르게 알기 위해서는 고대교부들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작금 한국 개신교계의 형편은 이렇지가 않습니다. 저는 속사도교부(사도교부. 사도적교부. Apostolic Fathers)들이 분명히 사도들(Apostles)을 계승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2세기 초의 순교자 이그나티우스(이냐시오) 주교(감독) 등등입니다. 그리고 루터, 캘빈, 쯔빙글리, 웨슬리 등은 "사촌형제설"을 분명히 따르고 있습니다. 님들이 이 분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시나요 ? 초대교회와 고대교회에서는 주로 사이비 이단인 '영지주의'(Gnosticism)와 '아리우스파'가 골치를 썩였었습니다. 우선 이것을 염두에 두고 신약과 고대교부들을 읽어야 한다고 사료됩니다. 그래서 예컨대, 터툴리안은 주 예수님의 형제들에 관해서는 별로 관심도 없고 주 예수님께서 '환상이 아닌 실제의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에만 강조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가 기억이 납니다. 유세비우스(에우세비오)의 교회사에 예루살렘 멸망(70년 경) 직전의 사건이 하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 야고보(주 예수님의 배다른 제일 큰 형인 듯)가 유대인들에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해 순교당하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를 봐도 '이복형제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목수 요셉의 친아들이라고 나올 겁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루살렘의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사적 계시'가 내립니다. 곧 하느님의 엄중한 심판이 이 곳에 내릴 터이니 너희들은 펠라(?)라는 곳으로 집단 이주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단 이주를 한 후 곧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멸망되었다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의인 야고보가 아주 나이 많은 노인으로 소개되어 있을 겁니다(요사이 기억력이 좋지 않음). 그렇다면 그가 당시 80십이 넘었다고 추론할 수 있고(이런 교부도 있었던 것 같음) 그렇다면 이복형입니다. 그러나 이 기사에는 마리아님에 대한 묘사는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 천주교회의 일부 성서학자들은 그녀가 예수님의 승천 후 곧 세상을 떴으리라고 추측합니다. 그리고 한 전설에는 그녀가 40년 경에 세상을 떴다고 합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천주교회의 몽소승천 교리는 그 자리가 더 좁아지게 됩니다.
리플달기
3 6
이용섭 (125.128.217.131)
2007-05-26 11:43:19
답변 2
하나의 반론입니다. 한국 천주교회 200년 박해 시절 순교한 동정부부가 두 쌍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과 마리아도 가능한 일입니다. 찾아보면 외국에서의 이러한 사례들을 더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리플달기
1 6
이용섭 (125.128.217.131)
2007-05-26 11:39:59
답변
국내에서 섹스교 교주 정명석이,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전도관 교주 박태선이 등등이 마리아의 영구 동정성을 부정합니다. 고대교부들이 마리아의 영구 동정성을 지지한 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론합니다. 마리아의 영구 동정성을 고대교부들은 천주교회처럼 교리화하거나 신조화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이분들의 눈에는 여기에 댓글을 다신 분들이 사이비 이단자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걸 부정한다고 그렇게 간주하지는 않고 교만한 사람이나 머리가 좀 떨어지는 사람 중 하나로 간주합니다.
리플달기
4 5
목사 (81.51.23.241)
2007-05-26 07:53:07
이용섭님, 개혁자들이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개혁자들도 영구 동정설을 말했다면 그것은 정직하지 못한 태도로 보입니다.
심지어 칼 바르트도 그렇게 말했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정확한 근거가 없다고 보여 집니다. 혹시 그렇게 말을 했다면 성서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주장했다기 보다는
다분히 그 분들이 살았던 시대의 정신(일반 대중들)이 그것을 원했기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뿐이 엇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면에서 영구동정설 에대한 그들의 발설은 정직하지 못한 발설로 보여 집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사들이 "영구 동정설인지도 모른다" 라고 말하든지 "모르겠다"라고 말해야 정직한 것이 아니라, 그당시 개혁자들의 태도가 정직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당시 마리아경외 상황 이었기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예수 형제가 이복형제라는 설에 대하여
1, 요셉은 목수로써 다른 여인을 가질수 있는 부를 소유했다고 보기 어렵다
2, 요셉은 의로운 사람(마태1:19)이라서 마리아가 있는데도 다른 여인을 취할 수 없다고 본다.
3, 정혼을 하고 결혼을 한 입장에서 요셉이 아내 마리아를 취하지 않았다는 말씀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4.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라는 말을 "그뒤로 동침했다고 말하는 말은 아니다"라는 해석은 본문에 대해 지나친 해석이며,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일은 아니나 해석자가 강요한 생각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의도가 전제된 상황에 대한 요청적 해석이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마13:55)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시니"(요2:12)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도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1:14)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고전9:5)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갈1:19)

과연 이러한 말씀들을 가지고 예수님의 동생들이 없었다고 말할수 있을까? 의문이며 그 동생들은 예수의 이복동생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작위적 해석이며 강요된(마리아의 순결을 강조)해석이라고 보여 집니다.

많은 교부들 , 많은 개혁자 들이 영구 동정론을 말했다고 해도 그것은 당시 순결을 강조하기위한 시대의 영합적인, 정직하지 못한 증언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예수십자가 순간 이복동생들이기때문에 그자리에 없었지 않은가? 라는 이용섭님의 자유게시판의 증언은 지나친 자의적 해석입니다.
왜? 예수의 동생들은 벌써부터 예수를 "미친ㄴ "으로 생각하고 있었기때문에 당연히 십자가 처형 순간에 그 장소에 없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라는 말씀을 "낳은 다음에 꼭 동침해야만하고, 동침 했다는 말은 아니다" 라는 주장은 그럴듯한 주장이나 너무 동정 순결을 전이해로 가지고 강요하는 지나친 해석입니다.

추측)요셉이 아기 예수에 대한 놀라운 충격이든지, 엄청난 감동, 메시아,구원주에 대한 증거로 영향받은 후라면 마리아에 대한 경외감으로 영원히 취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교부들과 개혁자들의 주장은 그런 주장도 아니쟎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모든 반문(성경에서의 동생들에대한 언급 기록 자체도)이 마리아를(동정, 신성시) 높이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함이라고 말씀드립니다.

만일 영구 동정론이 사실이라고 주장 할 경우 그것은 거짓진리입니다.
왜? 그것은 진짜라 할찌라고 그 진리는 성의 타부로 이어지며, 순결과 거룩은 곧 성과 관련된 사항이 되버리고, 죄는 곧 성과 관련된 것으로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가복음에서 다루지도 않은 마태의 동정녀의 이야기는 신격화 하는 과정에서 다윗의 자손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을 상대로 그 메시아는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였다는 주장을 하려는 마태의 담론일 뿐이라고 주장하고자 합니다.

개혁자들이 그렇게 주장했고(영구동정론), 특별히 칼 바르트도 그렇게 말했다면 오히려 그들이 정직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마리아의 순결을 먼저 강요하며 생각하고 타협했기 때문이라 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리플달기
2 6
지나가는 이 (167.206.48.221)
2007-05-26 05:07:35
영구동정설?
1. '질의와 답변1'을 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누가 질문을 하는 것이고, 답변을 하는 박경은 목사는 누구인지 설명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전공은 무엇이고 관심은 무엇인지 등등

2. 질의와 내용은 매우/지나치게 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런 주제를 다루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마리아의 동정설은 이슈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영구"동정설은 일반 독자(심지어 전공자에게도)에게 생경한 이슈입니다.

3. 철학적 사유의 발전과 더불어서, 텍스트의 본래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이미 결론이 나왔고, 따라서, 오리지널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역사비평'에 대한 신뢰는 오래전에 무너진바 되었습니다. (물론, 구라파와 보수적인 미국신학교에서 여전히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음니다면...) 설령, 박경은 목사가 주장하는 대로, 텍스트의 본래적인 의미를(희랍어의 문법적 분석을 통해서) 파악해서 영구동정설을 주장할 수 있다해도, 성서저자의 신념/신앙/주장에 따라서 텍스트가 쓰여졌기 때문에, 본래의미가 이래서, 영구동정설이 맞다는 주장은 학자적인 주장이 될 수 없습니다. 물론, 혹시 보수적인 장로교분이셔서, 성서의 축자영감설을 믿으시는 학자라면, 텍스트에는 오류가 없으니, 이것은 맞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말씀하시는 분의 믿음이니까, 뭐라 반박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학문적인 담론을 벗어난 논의가 되는 것이지요.
리플달기
2 5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