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의 깊고도 넓은 울림과 성찰을 가져다 준 김준우 교수(감신대, 한국기독교연구소)의 신학논단 “목회현장과 신학,  그리고 역사적 예수와 제국주의 시대의 살림 목회”는 사람됨의 신학 연구회 동문회에서 발행하는 『사람됨의 신학』/ 2003년 여름호 특집 - “신학으로 살아남기” 신학논단에 기고된 글임을 밝혀둡니다. 아울러 『사람됨의 신학』본 책은 지적재산권과 정보의 독점을 지향하며,  공공의 사회화에 배타적으로 작용하는 Copyright를 반대하고 정보의 공유를 뜻하는 Copyleft를 지향합니다. 그렇기에 본 책에 있는 내용은 원 저작자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는 한 허락, 동의 없이도 얼마든지 복제 및 복사하여 사용하실 수 있기에 이곳 『당당뉴스』에 게재함을 알려 드립니다.

첫번째 편지 - 목회현장과 신학, 그리고 역사적 예수

1. 문안

전도사님.

지난 연말에도 잊지 않고 보내준 편지는 반갑게 읽었습니다. 곧바로 답장 쓰지 못한 것은 나의 나태함 때문만이 아니라, 전도사님의 고뇌가 쌓인 글에 대해 답장을 쓰기 위해서는 나를 다시 되돌아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벌써 입춘이 지나고 다음 주에는 우수가 다가오는데, 사모님과 이제 갓 태어난 아기 모두 건강하신지요? 나는 요즘 스퐁 신부와 랍비 스피로의 대화를 엮어 만든 책 ꡔ그리스도교 신앙의 뿌리와 날개ꡕ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이후 시대(Post-Christian era)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기독교의 뿌리와 역사를 재확인함으로써, 종교적으로 제2의 차축시대(Second Axial age)를 맞이하기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겨울에는 특히 눈이 많이 와서, 전도사님이 계시는 그 산골에서, 더군다나 갓난 아기와 함께 생활하기가 매우 힘드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난방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택에서 아기가 감기에 시달리지나 않았는지 걱정되는군요. 날씨가 다시 쌀쌀해져서 오늘 새벽 역시 기도회에 참석할 대여섯 명의 노인들을 위해, 일찍 서둘러 교회에 난로를 피우느라 추운 교회당 안에서 몸을 떨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교인이라야 전부해서 열 명 남짓한 노인들만의 시골교회를 섬기느라, 캄캄한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인간적으로야 고생이 많으리라 짐작합니다. 여러 가지 일로 인해 힘겹다고 느낄 때마다 하느님의 위로와 교인들의 사랑이 전도사님을 지탱시켜주는 가장 큰 힘이 된다는 편지의 말씀에 나도 위안을 받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각각의 사연을 운명처럼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하느님의 생생한 꿈을 만나고 때로는 그리스도의 얼굴과 마주치면서 함께 아파하며 웃고 있을 전도사님이 나로서는 솔직히 부럽기도 합니다.

2. 목회라는 멍에, 그 좌절의 현장

이번 봄에는 드디어 목사 안수를 받으신다니 축하드립니다. 목사 안수가 우리를 제도적 종교 속에서 나름대로의 기득권을 갖게 하는 면허장(licence)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든다는 전도사님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어느 민족에게서나 제사장 계급은 일반적으로 권력자 편에 붙어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던 집단이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민중 해방적인 제사장 전통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안수를 받기를 바랍니다. 비록 시장의 세계화 속에서 사람들은 거룩한 꿈을 상실해버리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도처에서 울부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의 역사적 반동은 계속되고 있으며, 하느님의 “분통터지는 목소리”(도날드 메서)마저 외면당하는 시대이지만, 전도사님의 안수를 축하하는 마음으로 스톨(stole) 하나 선물로 동봉합니다. 목사 까운 위에 스톨을 하는 것은 원래 로마 귀족들의 넥타이 같은 것이었다지요? 소나 말의 목에 씌웠던 멍에를 상징하는 스톨을 목사 안수식 선물로 드리는 것이 인간적으로 매우 잔인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는 멍에야말로 목회를 가장 잘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성서를 읽을 때마다, 설교를 준비하는 심정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일만 해도 얼마나 어려운 멍에인지요. 그러나 무엇보다 가진 자들 편에 붙어서 억압과 착취를 위한 도구, 시장자본주의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묶인 사람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예수운동을 위한 멍에를 지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리는 선물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멍에는 가볍다(마태 11:28-30) 하신 말씀을 믿고 그분의 멍에가 실제로는 전도사님 자신의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 되도록 정진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드립니다.

비록 교인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신학을 공부하는 동안에 나름대로 키워왔던 목회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기에는 미자립 교회라는 지금의 목회현장이 너무 척박한 현실이라는 사실 때문에, 심리적으로 좌절과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전도사님의 고백은 나 역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선 외적으로 교인들의 숫자가 매우 적은데다가 대부분 환갑이 지난 노인들이라는 사실과 지방의 선배 목사님들을 본다 해도 당분간 목회현장의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답답하게 생각될 때가 자주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자립한 교회의 목회자들의 고백을 들어보아도, 아무리 열심히 설교를 하고 심방을 해도 교인들의 생활방식에서 변화를 찾아보기 힘들고, 지방의 선배 목회자들을 보아도 서로간의 경쟁심과 시기심에 똘똘 뭉쳐 있는 듯이 보이며, 또한 출신학교에 따른 학연 싸움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요. 이런 현실에서 예수운동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답답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일부 대형교회 목사님들의 기막히는 이야기들, 그 반민주적이며 반민중적이며 반민족적이며 반기독교적인 작태들은 생각할수록 한숨이 절로 나오게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우리가 감싸 안을 수밖에 없는 “그리스도의 현실”(본회퍼)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세계적으로 대형교회가 가장 많은 것이 한국이지만, 그 대형교회들이 한국의 역사 속에서 과연 무슨 공헌을 했으며, 한국의 문화를 변혁시키기 위해 과연 무슨 긍정적 역할을 하였는가 생각하면, 결국 교회의 크기는 우리의 사역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지금 걸어가는 길이 외롭게 느껴지면, 주위에 계신 선배 목회자들 가운데, 혹은 한국교회사 속의 선배들 가운데, 우리 자신의 목회의 모델이 될 분을 찾는 것이 현장에서의 좌절을 극복하는 일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올곧게 목회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눈에 잘 띠지 않아 그렇지, 세계 구석구석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고 인터넷을 통
해서라도 그분들과 교제하는 것도 전도사님의 순수한 열정을 지켜나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3. 사막에서 홀로 미사를 드린 샤르댕 신부

풀타임 목회경험이라야 미국에서 개척교회를 2년간 담임했던 기간밖에 없는 나에게 새삼 목회자에 대한 정의를 내려달라는 전도사님의 요청은 나에게 적절치 않은 주문으로 생각되지만, 전도사님의 절박한 몸부림을 생각하면 나의 일천한 경험이나마 나눌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에 있던 시절에, 어느 개척교회 목사님이 보다 큰 교회로 가시게 되어, 그 개척교회가 문을 닫게 생겼다는 말을 듣고 그 교회 담임 전도사를 맡게 되었지요. 처음 목회를 담임하게 되어 큰 기대를 갖고 갔지만, 대부분의 교인들이 다 흩어지고 첫 주에는 교인이 다섯 분인가 계시더군요. 문제는 그 다음 주였어요. 예배 시간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오시지 않더군요. 하는 수 없이 나의 가족만 앉은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무런 생각 없이 하느님께 원망을 했답니다. 이게 무슨 꼴이냐고, 어떻게 이런 교회에 나를 보내셨냐고, 내가 당신 앞에 바짝 꿇어 엎드려 항복하도록 만들기 위해 나를 이처럼 참담한 어둠 속에 몰아넣을 만큼 내가 그토록 교만한 인간이기 때문이었냐고 투덜대었지요.

그러던 중에 문득 떼이야르 샤르댕 신부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글 쓴 것이 문제가 되어 쫓겨나다시피 중앙아시아의 어느 사막을 지나다가 문득 낙타에서 내려 혼자 미사를 드렸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빵도 없이 포도주도 없이 샤르댕 신부님은 사막 위에서 미사를 드렸다지요.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의 눈물을 포도주로 삼고, 이 세상의 모든 노동하는 육체를 빵으로 삼아 미사를 드렸다던 이야기가 기억나더군요. 그
순간 나는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물론 출석한 교인들의 숫자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었지요. 집 나가 밤길을 헤매고 다닐 자식을 기다리느라 “밤마다 문 열어놓고 마음 졸이시는” 하느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린다면, 성체나 머릿수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목회자는 “교인들이 성도들(saints)로 성숙하도록 돕는 사람”이라는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정의에 앞서서, 목회자는 교인이 있든 없든 간에, 세상이 나를 버리든 말든 간에, 사막 위에 홀로 선 샤르댕 신부처럼, 하느님 앞에서 예배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목회는 교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차적으로 목회자 자신이 하느님 앞에 온전한 인간답게 서는 길이며, 목회자 자신의 구원을 위한 길이라는 말이지요.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믿음과 구원의 길은 결국 자신의 삶 자체일 뿐 아니겠어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목회자는 다른 사람들을 자유롭게 풀어줄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셨던 것처럼, 생명력과 사랑과 창조성이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 목회자의 일차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목회자는 세상이 더욱 “풍성한 생명을 얻도록”(요한 10:10)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한숨과 비명 소리를 받아 마시고,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사역에 동참하여 모든 아픔과 상처를 싸매는 몸들과 함께 연대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뜻깊은 일을 위해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4. “주님의 성전의 신학적 환관”

대학원을 졸업하고 목회현장에 나가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을 줄 압니다. 전도사님 말씀대로 목회현장에 나가면 더 이상 신학서적들을 읽지 않는 채 목회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목회현장의 다양한 요구들 때문에 차분히 앉아 신학서적을 읽을만한 시간적 여유가 허락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신학이란 도무지 목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목회란 신학대학에서의 교육만으로 충분한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문자주의적이며 기복주의적이며 내세주의적인 교인들에게 학교에서 배운 신학이론들을 적용한다는 작업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교인들의 전통적 신앙과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신학을 버리고 현실에 안주하는 목회자들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나의 입장에서는 늘 신학교육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신학대학 커리큘럼이란 것이 각종 교양과목뿐 아니라, 구약학, 신약학, 조직신학, 윤리학, 교회사, 실천신학 등 각각의 전문분야별로 세분되어 있어서, 설교를 비롯해서 목회사역에 요구되는 종합적 시각을 4년이나 6년 동안에 형성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닌가 늘 반문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근본주의 신학은 터무니없고 자유주의 신학은 공허하게 들리는 상황에서 전문 신학자들조차 통전적인 시각을 형성하기가 매우 어려운 판국에 6년간의 신학 훈련은 결코 충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교회란 무엇인지, 기독교 전통이란 무엇인지, 또한 목회란 무엇인지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신학 이론들을 목회현장에서 그 현실적 타당성과 적용가능성을 검증하고, 이제까지 학교에서 배운 신학 이론들 가운데 수정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부족했던 부분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새롭게 확인함으로써, 비로소 목회자 자신의 신학을 정립해나가는 좋은 기회가 되어야만 하며, 특히 서양에서 수입된 신학이론들을 중심으로 배웠던 것들을 한국인의 심성과 문화 속에 적합한 것이 되도록 적용하는 과제는 매우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제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목회에 대해 신학적 관점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신앙발달이론을 기초로 하든, 해방주의적 시각을 철저화하든, 생태학적 시각을 구체화하든, 아니면 포스트모던 신학이나 역사적 예수 연구를 기초로 하든 자신의 목회신학을 확립할 시기에, 신학을 포기하고 교인들의 심리적 안정과 욕구에 일방적으로 부응하는 것은 로버트 펑크의 지적대로 “주님의 성전의 신학적 환관”이 되는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신학이란 결국 우리의 구원 경험을 체계화하는 것인데, 우리들 나름의 신학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폭넓은 설득력을 지닐 수 있도록 다듬지 않은 채 구원을 선포하며 목회한다는 것은 결국 목회자로서의 주체성을 상실한 채, 앵무새 노릇을 하는 것에 불과하겠지요.

목회현장에서 신학의 효용성을 쉽게 폐기처분하는 것은 결국 신학대학에서 신학에 대한 흥미를 제대로 맛보지 못했거나, 혹은 목회자로서의 전문가 의식(professionalism)을 길러주지 못한 채 목회현장에 내보냈다는 사실에 대한 단적인 증거일 것입니다. 법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어도 판검사를 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일 것입니다. 치과의사들조차도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하거늘, 아무리 신학 자체가 너무 전문화되었고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된다 하더라도, 꾸준히 공부하지 않는 목회자는 자신의 성장을 중단하고 말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 한국교회가 급격히 쇠퇴하는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신학의 전문가들이 아니라 아마츄어들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인구의 74% 이상이 대학졸업 이상의 학력을 갖게 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세시대의 언어를 사용하는 아마츄어들 말입니다. 18년간의 유배생활 동안 500여권의 책을 쓴 다산 정약용 선생과, 제국군대를 탈출해 중국대륙 6만리를 도망 다니면서도 틈틈이 성서를 읽었던 장준하 선생 앞에서 우리의 삶은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가요?

5. 축복의 요구와 일상의 감옥

실제로 교회현장에서 우리에게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치열한 예언자 직분보다는 제사장 직분일 것입니다. 생로병사의 굴레 속에 있는 우리네 삶이란 얼마나 취약하며 불안전한 것인가요?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특히 나이 어린 환자들을 볼 때마다 절감하게 되는 것은 우리네 목숨의 연약함이지요. 또한 전쟁과 폭력의 세상에서, 채 피어나지도 못한 채 꺾이고 마는 꽃봉오리들, 그 “작은 모짜르트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또한 죄악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깨어지고 상처받은 영혼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특히 이상을 품고 사회의 첫발을 내딛은 젊은이들이 사회적 모순 속에서 겪게 되는 좌절과 분노, 그 절망의 깊이는 얼마나 깊은 것인가요? 병들고 깨어진 영혼들 곁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통해 그들을 위로하고 그 상처를 싸매주는 일이란 정말로 아름다운 일이지요. 화초 한 그루를 키우는 일에도 온갖 정성을 기울여야만 하는데, 하물며 한 영혼이 “풍성한 생명을 얻도록” 돕는 일에는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하는 것일까요?

어둠의 세력이 마치 우리의 삶을 박살낼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는 듯한 현실에서, 생활의 안정과 번영을 가장 우선적인 욕구로 삼게되며, 그 불안과 고통과 슬픔을 벗어나기 위해 교인들이 목회자에게 죄의 용서와 축복을 요청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 자신의 신학적 성실성을 포기하고 교인들이 원하는 축복과 위로만 선포한다면 우리의 제사장 직무는 카멜레온으로 타락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요? 주일날 몇 차례의 설교를 한 후 기쁨보다는 자신이 정직하지 않은 설교를 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목회자들이 생겨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요? 자신의 신앙 양심을 지키지 않을 때 목회자는 쉽게 영적인 고갈상태를 겪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예언자적 직분이 필요한 것은 역사적 변화와 사회적 불의에 대한 민감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교인들 각자가 “일상의 감옥 속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상태”(루미)를 깨우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대인의 일상이란 이윤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초죽음이 되도록 뛰어야하는 노동조건, 텔레비전과 컴퓨터, 소비주의 문화로 인해 우리의 삶을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감옥, 생명의 신비와 감격을 원천적으로 차단시키는 두꺼운 껍질들 속에 둘러싸여 있기 십상이지요. 영국의 산업혁명이 900만 명의 노예들을 팔아 넘기고, 수많은 원주민들의 손발을 자르면서 은광을 개발해 얻은 이익을 토대로 이루어졌듯이, 오늘날 이 땅의 풍요가 수백 만 명의 여공들의 혹사와 농민들에 대한 착취, 그리고 30만 기지촌 여성들의 몸을 팔아 벌어들인 달러를 토대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주변의 흥청거림이란 얼마나 배은망덕한 것인가요? 미국이 석유확보를 위해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은 반대하면서도, 일인당 에너지 소비가 일본과 독일을 앞질러, 석유 소비량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은 나라에서 에너지 소비는 줄일 생각도 아니 한 채, 댐 건설과 핵발전소 건설에 열중하는 우리는 자가당착을 인정할 줄도 모르는 백성이 된 것이 아닌가요?

이런 일상적 감옥에서 잠들 수 있는 가능성은 매일마다 새벽기도를 하는 목회자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니 목회자들은 더욱 깨어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일상의 감옥에서 잠들어 있다가 문득문득 깨어나도록 만드는 계기는 자연 속에서 새롭게 느끼는 경이감뿐 아니라, 새 생명의 출생과 죽음, 질병 앞에서의 절망, 역사적 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자각 같은 것이지만, 이런 계기들조차 너무 자주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목회자들에게는 이런 소중한 계기들조차 습관화되어 무감각한 일상이 되기 쉽다는 사실은 정말로 두려움마저 들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매우 경계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6. 교회와 기독교가 사라진다 해도

수업시간에 항상 강조했던 이야기지만, 이제는 목회자가 전문가들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요즘에 산부인과 의사들조차 자기 병원에서 출산하는 산모들에게 6주 동안 출산 훈련을 시키고 있다는데, 교회에서는 세례를 받을 사람들에게, 혹은 혼인 주례를 부탁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얼마나 교육을 시키면서 그토록 중대한 인생의 결정을 준비하도록 만드는가 말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나는 아직 어느 교회가 은퇴자들을 위해, 혹은 이혼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특별 교육을 실시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더욱 풍성한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해 당장 시급한 교회 안의

노인 문제, 환경 문제, 청소년 사역, 혼인 예비 훈련과 이혼 상담 등의
전문가들이 필요할 뿐 아니라, 실직자를 위한 선교, 도시 빈민 문제, 외국인 노동자 문제와 통일 이후의 한국사회에 대한 비전과 같은 문제들도 전문적인 사역자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하기사 기독교라는 강물은 지난 2천년 동안 도도히 흐르면서 이제는 악취가 나는 흙탕물로 변해버려, 어지간히 새롭고 강력한 샘물이 주입되기 전에는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쇠퇴를 거듭한 서구교회들은 이제 임종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한국교회도 이제 한 세대 후에는 석양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두려운 역사적인 변화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올바른 목회를 위해 우리가 더욱 깨어 있어야만 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 옛날 조로아스터교가 사라졌지만 그 신학적 유산은 상당부분 그대로 유대기독교 전통 속에 남아 있듯이, 비록 제도적인 기독교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날이 온다 할지라도, 기독교가 가르친 생명의 길, 사람됨의 길,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한국문화 속에 길이 살아남도록 단호하고 철저하게 목회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찾아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이 없는 껍데기는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고통에 신음하며 죽어가고 계신데, 그분 때문에 손해보는 것이 두렵거나, 입술로 그분을 팔아 우리가 안락하게 산다면, 그분을 배신한 가롯 유다와 우리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7. 역사적 예수는 목회에 반드시 필요한가?

목회를 오래하신 분들 가운데, 더 이상 시도할 새로운 프로그램이 없다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부흥회와 수련회는 물론 새신자 환영회와 전도대회뿐 아니라, 베델성서, 크로스웨이, 교사대학, 부부세미나, 노인대학, 해외선교 등 이것저것 다 해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프로그램이 없다는 말들을 하십니다.
 
문제는 목회자 나름의 예수상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교회사에 있어서 예수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수많은 만행들을 생각하면, 예수상을 설정하는 문제는 목회의 첫 번째 기초인 것이 분명합니다. 대형교회가 아무리 멋진 건물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정신에 기초한 교회가 아니라면 예수님이 그토록 탄식하며 맞서 싸웠던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교회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목회자가 아무리 설교를 잘 해서 교인들이 벌떼처럼 몰려든다 하더라도 그 목회자가 예수님의 제자인지, 아니면 모세의 제자인지, 혹은 바울의 제자인지, 아니면 세례 요한의 제자인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내가 지금 번역하고 있는 크로산의 ꡔ기독교의 탄생ꡕ은 바울의 눈으로 예수를 이해할 것이 아니라, 예수의 눈으로 바울을 이해하려는 시도입니다. 또한 교회가 아무리 많은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정신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면, 과연 기독교적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역사적 예수가 목회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진정으로 기독교적인 목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목회를 계승하기 위한 방향설정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목회자 자신이 정직하게 설교하고 깨어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교회의 언어가 대학생들 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해가능한(intelligible) 언어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깨어있도록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내 생각으로는 예
수님께서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언제나 자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이”의 뜻을 열심히 추구하였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둘째로는 예수님께서 주변의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받아들이며 그 고통을 나누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깨어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잠시라도 이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고 계급적 혹은 심리적 장벽을 쌓는다면, 우리는 쉽게 잠들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느님 나라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공동체적 운동으로, 사회적 대안으로 이끌어나가려 했기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깨어있었던 것이라고 믿습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의 종교문화적 의미에 대해서는 지난번 발표했던 논문에서 자세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8. 역사적 예수와 제자 양육을 위한 가이드라인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목회적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전도사님의 물음에 대해 평소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 예수를 우리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예수에 관한 교리를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생활방식(life-style) 자체를 우리의 생활방식으로 전폭적으로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1) 예수의 제자는 재물과 소유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매인 사람입니다. 하늘의 뜻을 헤아리며 사는 사람이지요. 사람들이 예수에게서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의 정신이 하늘의 뜻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를 “하늘이 낸 사람” 즉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는 당시 로마제국의 브로커 체제와 헤롯 정권의 제도적인 폭력과 대지주들의 살인적인 착취, 독립투사들의 대응적 폭력으로 인한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식민지의 아들로 살았지만, 세상의 보이는 현실 너머에 있는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닮으려고(imitation of God) 했던 영의 사람이었습니다. 즉 예수는 물질의 소유와 상품의 소비가 인간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유물론적 인생관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사로잡혀 사는 것이 삶의 도리이며 행복의 원천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이 세상에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 무외(無畏)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만큼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하느님을 닮아가는 삶이란 하느님의 특성을 닮아가는 생활이지요. 즉 “거룩한” 하느님이란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며, “사랑의” 하느님이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며, “창조의” 하느님이란 우리가 창조적인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며, “생명의” 하느님이란 우리가 생명을 키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며, “축복의” 하느님이란 우리가 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처럼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닮는 생활은 우리들 속의 잠재력을 극대화시켜 현실화시키는 생활입니다. 이를 통해 외적인 성공과 출세보다는 내적인 성숙을 지향하며, 끈질긴 탐욕을 하느님의 영에 의해 씻어내고 우리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확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 예수의 제자는 일상생활 속에서 시적인 감수성을 일깨우며 존재의 황홀감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는 비록 소수의 지배자들은 넘치는 재물을 어찌할 줄 모르는 반면에 대다수 민중들은 끼니를 이어가기 어려운 시대를 살았지만, 세상 만물이 하느님의 한없는 신비 앞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기회 있을 때마다 잔치에 참여하면서 그 사실을 축하하며 살았던 시인이었습니다. 수 백년 동안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으로 인해 모든 희망들이 계속해서 물거품이 되어버리던 절망적 세상이었지만, 예수에게 있어서 살아있다는 것은 축제 자체였지요. 예수를 나의 주로 고백하는 것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내가 어제밤에 이제까지 살았던 목성을 떠나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에 이민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벌레 한 마리에 대해 감격하며 사는 생활이라고 생각합니다. 150억 년의 우주 역사 속에서, 또한 지름 1억 5천만 광년의 우주 속에서 우리가 지금 숨쉬며 살아있다는 사실이 기적 자체임을 기억하고,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감사와 이 우주의 신비함 속에 우리의 마음을 푹 담근 채 만물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감사하며 하루를 어린이와 같은 순전한 마음으로 축제로써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세상 만물과의 연대성이 우주론적인 연대성이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는 당시 대다수 사람들이 비록 각종 세금과 부채, 끼니 걱정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신뢰하기 힘든 상황에 있었지만, 우리의 삶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깨닫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은총에 맡기고 살아가도록 가르쳤습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쌀 한 톨 속에 우주가 들어있을 뿐 아니라, 흙 한 줌 속에, 물 한 모금 속에 하느님의 은총과 영광이 들어있음을 확인하고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양식을 주신 하느님께 단지 감사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식사를 통해 우리 속에 살아계신 하느님의 형상과 예수(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의 몸 속에서 더욱 생생하게 살아나 활동하시도록 식사와 제사를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4) 예수는 당시 사람들이 당연시하던 사회종교적 관습을 정면으로 도전하여, 하느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성전이나 제사장 같은 종교 브로커(broker)가 필요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용서하며 빚을 탕감함으로써 그런 중개자 없이 직접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습니다. 예수를 우리의 주로 고백하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죄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예수의 빈틈없이 철저한 눈으로 검토하여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구조악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반성하고, 특히 권력 앞에서 당당히 맞서는 생활입니다. 특별히 한국의 최근 역사에서 나타난 양민학살의 잔인성에 비추어보거나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부정부패의 현실을 생각할 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외적인 권위나 권력 앞에서 굴종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현실을 비판하고 그에 대해 저항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5) 예수는 하느님의 강권적인 역사를 준비하고 기다리던 세례 요한과 달리 이제는 우리가 소매를 걷고 이 세상 속에서 해방을 실천하도록 하느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고 믿고 실천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에 특히 고통 당하는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해방을 위해 내가 도전하여 실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기꺼이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눈물을 씻어주기 위해 그들을 무진장으로 사랑하는 길을 선택함으로써, 그들의 새로운 잠재성을 극대화시키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전도사님.
인류 역사의 거대한 탁류가 시장과 폭력에 의해 더욱 거세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전도사님의 삶이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고 죽임을 생명으로 바꾸는 빛이 되기를 간절히 빌며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