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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와 찬양, 친미사대주의에서 벗어나야몰아경에 빠진 가스펠송, 역사성과 사회성 실종! 우리의 노래를 부르자
황규학  |  hpastor@m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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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4월 30일 (월) 00:00:00 [조회수 : 4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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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규학목사
보수우익과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대부분이 미국을 지향하고 있다. 시청이나 여의도에서 집회를 할 때마다 보수우익목회자들은 반공의 기치를 내걸며 미국을 선호하며, 심지어는 신앙까지도 미국화하고 있다. 대형교회의 성장원리는 대부분이 미국식 교회성장학, 미국식 제지훈련, 미국식교회행정 및 운영이다. 특히 최근에 윌로우크릭 교회나, 새들백 교회 스타일은 한국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윌로우크릭의 앵무새인 온누리교회는 90%이상이 윌로우크릭교회 스타일을 지향하고 있다. 온세상을 비젼교회라 이름붙여 스크린으로 하고 헌금은 중앙 온누리가 다 가져가고 있다. 스크린온누리로 온세상을 덮고있다. 심지어는 비젼처치라는 이름으로 미국까지 진출하고 있다. 새들백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성장과 제자훈련의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하여 한국이 새들백열풍으로 물들고 있다. 많은 목회자들은 새들백교회를 시찰하고 있다.
 
릭워렌의 저서 “목적이 이끄는 삶”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한국목회자라면 누구나 한권씩 갖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새들백처럼 부흥되는 교회는 과연 몇 교회나 될까? 새들백의 실정이 우리에게 적합할까? 새들백은 미국인들의 실용주의 삶에 교회성장원리를 잘 부여하여 성공적으로 이끈 전략을 추구했던 것이다.
 
사실상 한국에서 교회가 성장한 곳은 대부분이 새들백이나 윌로우크릭을 떠나 아파트가 군집된 곳이다. 여의도 순복음, 소망, 명성, 광림을 보면 모두 거대아파트 한가운데 있는 교회들이다. 시골교회에서 새들백이나 윌로우크릭 처럼 해보란 말이다. 점점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교회운영스타일이 미국화로 가고 있다. 미국은 자본주의, 성장주의 실용주의, 청교도주의를 토대로 하고 있다.        
 
찬양도 미국화
  
우리나라의 찬양도 마찬가지이다. 경배와 찬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찬양은 미국적인 락음악스타일을 반영한 실용성과 성장성, 청교도들의 순수성이 반영된 가스펠송이다. 시대의 흐름을 잘 반영한 것이다. 새들백교회, 윌로우크릭교회, 갈보리교회의 스타일과 경배와 찬양의 공통적인 특징은 정치성이나 신학성의 배제없이 신앙적이고 순수하며 역동적이며 복음적이다. 특히 갈보리 교회 척스미스 목사의 스타일은 내용있는 강해설교로 주종을 이루며 세계전역에 약 2,000여개의 교회가 존재한다. 한국교회도 갈보리의 복음주의적인 많은 영향을 받았다.
 
가스펠송, 대부분이 미국식 번역곡
 
사실 한국에서 성장한 교회는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교회가 없다. 대부분이 미국의 영향을 받은 목회자들이 이루어 낸 교회들이다. 곽선희, 옥한음, 조용기, 김홍도, 김선도, 옥한음, 이동원 목사 등이다. 미국을 체험하지 않았더라도 대부분이 미국적 교회를 지향한 교회들이 부흥하고 있다. 장점은 미국이 아니라 아프리카, 일본, 북한에게서라도 본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찬양은 무조건 미국 것만 본받는다. 필자가 미국에서 오자마자 대형교회의 저녁 찬양집회에 참석했는데, 95%이상이 미국곡이라 도무지 따라 부를 수가 없었다. 거의 번역한 곡이었다. 그래도 성도들은 은혜를 받고 열심히 따라했으며, 감화감동을 받는 이도 많았다.
 
요사이 나오는 가스펠송등은 한국인들의 곡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미국식을 흉내낸 곡 스타일이다. 작곡도 그렇고, 작사도 그렇다. 미국은 오랫동안의 기독교문화가 정착한 나라로서 한국보다는 기독교에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의 기독교는 순수기독교는 아니다. 장로교에 감리교의 직제인 권사제도가 있고, 감리교에 장로교의 직제인 장로가 있다. 순복음교단이나 침례교단에도 장로가 있다. 장로제도는 대의제도인데 직접 민주정체를 추구하는 침례교단에 장로가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독교 제도가 토착화된 것이다.
 
토착화의 단점
 
가스펠송도 요즈음은 토착화시키고 있다. 토착화의 장점과 단점은 있다.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우리의 비신앙적인 요소로 토착화시키는 것은 위험의 소지가 있다. 불교와 기독교의 무속적인 토착화는 고등종교를 샤머니즘화하고, 리더는 샤먼(무당, 교주)으로 만들었다. 결국 샤먼들이 교주로서 등장하게 되어 비역사적이고 비윤리적인 추태를 반복하고 있다. 성도 몰래 교회를 팔아먹고, 교회재정을 횡령하고, 성도들을 별 이유 없이 제명 출교시키고, 성도들을 성적유희 상대로 만들어 즐기고, 자식한테 교회를 물려주는 세습무가 생기는 것이 한국교계의 현실이다. 이는 목사가 샤먼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샤먼의 스타일은 역사성과 민족성이 배제된 채 기복과 정열만이 남아있어 종국적으로 몰아적인 상태로 사람들을 유도하여 자신들의 본능적인 유익만 추구한다. 결국 그러다보면 굿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영향을 받거나 친미사대주의적인 목회자들의 행동이 비역사적인 행동으로 혼돈을 가져오게하기도 하고 교인들을 몰아경에 빠뜨려 자신들만 정신이 말짱한 채 탐욕과 부패로 일관하여 한국의 기독교를 세속화기키고 있다.
 
조용기목사는 철두철미 반공주의자이며 친미사대주의적인 목회자이다. 그러한 그가 명년에 북한에서 대성회를 한다고 들뜨고 있다. 이는 역사성의 부족에서 나오는 비일관 된 행동이다. 법까지 개정하여 만든 변칙적 정년도 1년을 줄인다고 한다. 곽선희, 김홍도목사는 친미, 사대주의를 주장했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식 성장으로 아우른 세습과 성추행이 자리하고 있었다.
 
친미사대주의자들의 변칙적 행위
 
조용기목사는 변칙으로 정년을 연장했고 곽선희목사는 변칙으로 세습을 시켰고, 김홍도목사 역시 변칙으로 재정을 사용했다. 옥한음목사 역시 변칙으로 후임자를 세웠다. 후임자는 일방적으로 선정할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주축이 된 청빙위원회를 구성하여 다양한 사람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청빙의 변칙이다. 
 
앞으로 FTA시대가 도래하면 교회는 더더욱 미국화 될 것이 뻔하다. 교회의 친미사대주의적 경향은 많은 조기유학생들이 미국에다 돈을 뿌리는데 일조했다. 경상수지 적자에 한 몫을 다하고 있다. 일본은 거의 조기유학생들이 없다. 미국을 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일본유학생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황인종은 거의 중국과 한국인들 뿐이다.
 
미국 가스펠송의 사회적 배경은 우리와 달라
 
미국은 미국의 역사성과 실용주의적인 민족성의 토대하에 기독교문화를 잉태시켰다. 디엘무디의 가스펠송은 배우지 못하고 인종차별당하는 흑인들이나 노예들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만든 노래이다. 그들의 혼합주의적인 문화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러다보니 찬양도 가벼워지고, 열정적이고, 몰아적이며, 실용주의적이다. 그것은 200년 정도의 얕은 역사와 노예제도를 추구한 사회에서 나온 노래이다. 경배와 찬양은 영국의 1960년대에서 나온 노래이다. 가스펠송과 경배와 찬양은 미국과 영국의 사회와 삶을 반영한 노래이다.  
 
우리는 5,000년의 역사의식을 갖은 사람들이며, 침탈과 억압, 수없는 전쟁, 독재정권과의 항쟁으로 눈물과 한을 몸으로 산 사람들이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속에서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기도 한 한반도를 부둥켜 안고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노래는 미국과 영국의 노래와는 달라야 한다. 우리의 신앙적 배경도 다르다. 그들의 사회성과 역사성, 민족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노래와 신앙은 삶과 역사의 반영이 되어야 한다. 미국을 지향한 목회자들의 타락과 부패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이사회에서 점점 힘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이제는 대형교회가 주도적 역할을 했던 미국식의 실용주의적이고 역사성과 민족성도 없는 성장만을 추구하는 락스타일의 가벼운 가스펠송을 배제하고 민족의 눈물과 한, 통일, 역사성을 담은 토지와 태백산맥과 같은 굴직굴직한 노래를 불러야 할 것이다. 러시아의 오랜 침묵과 한, 역사성을 담은 모래시계의 백학처럼 말이다. 선이 굵은 노래가 필요하다.
 
몰아경에 빠진 가스펠송, 역사성과 사회성 실종
 
밴드와 드럼으로 몰아지경에 치우쳐 역사성과 민족성을 상실한 가벼운 노래에만 치우치지 말고, 5,000년 민족의 역사와 우리의 고난이 담긴 삶의 노래와 앞으로 한반도 통일을 바라보는 희망의 삶을 위한 노래를 부를 수는 없을까? 대형교회 샤먼들에 의해 주도되는 어설픈 미국식의 신앙과 미국식의 경박한 가스펠송은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을 좋아하는 목회자들의 이면에 성추행과 세습, 교회재산 횡령, 몰아경, 경박, 자본주의, 성장주의, 인위적인 마아케팅, 개그 설교, 아말감을 금니빨로 만드는 추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가 캐나다에서 목회할 때의 일이다. 우리는 성금요일 여러 캐나다 교회와 연합해서 예배를 드렸다. 우리는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를 영어로 번역해 캐나다인들에게 노래하도록 했다. 그들은 너무나도 열심히 잘 불렀고, 예배 후, 너무 좋았다고 표현했다. 결혼예배 때, 캐나다 반주자 할머니에게 “사랑”(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을 반주하도록 했다. 할머니는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계속 사랑을 반주했다. 너무 좋은 곡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노래를 세계에 알려야
       
친미, 사대주의에 입각하지 말고, 반도체와 핸드폰, 현대차를 수출하듯 가스펠송도 수입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곡을 영어로 번역해서 수출해야 한다. 미국과 온 세계 크리스천들이 한국의 얼과 정신, 역사성이 담긴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미국식 가스펠송의 종속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민족의 노래를 세계에 알려야 그들이 우리한테 종속되게 해야한다. 적어도 우리의 노래는 미국식의 노래처럼 경박하지는 않다. 거대한 당나라에 대하여 싸우는 대조영처럼 거대한 미국의 경박하고 천박한 자본주의 문화와 싸워야 한다. 성장주의의 결과는 한국의 기독교를 부패와 타락의 기독교로 만들었다. 이런 면에서 친미사대주의 목회자들은 책임을 지어야 한다. 
 
박지성, 김연아, 박태환, 이승엽, 이영애, 장나라, 비 등이 한국을 세계에 알리듯 우리의 교회에서 나오는 가스펠송으로도 한국을 세계에 알려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의 기독교도 그러한 역량을 갖추지 않았을까? 한민족들이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데 유독 기독교인들만이 친미사대주의에 젖어 미국식의 설교와 미국식의 경배와 찬양만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청교도 정신이 담긴 노래여서 그럴까?  청교도의 잘못된 토착화는 전광훈 목사를 통해서 변칙적으로 드러났다.
 
이제 대형교회나 한국중소형교회들은 젊은이들에게 미국식의 신앙과 노래만을 강조하지 말자. 한민족의 혼과 정신, 역사성이 담긴 노래를 불러 이노래를 세상의 기독교인들이 부를 수 있도록 하자.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있고, 우리는 우리의 고난의 역사가 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자유의 노래(a song of liberty)로 온 세계인들에게 불려지는 것 처럼 우리의 신앙의 노래도 온 세상 사람들이 부를 수 있도록 좋은 곡을 계속 만들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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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랑 (218.209.187.238)
2007-04-30 19:47:04
오래간만에 자기 의견을
내놓는거 같네요.

찬양은 둘째치고 말입니다.
한복에 짚신신고 다녀야겠네요.

그럴듯해보이긴 하는데
옳다는 생각은 안듭니다.
리플달기
8 7
두 사랑 (108.78.13.226)
2011-07-12 02:33:01
겉으로 나타난 외장 연설같아 조금 선동적이고
이념적이고 선전적인 냄새가 많이 나 가족들의 모임에서
나눌 수 있는 교회 공동체의 진지한 대화를 벗어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예수쟁이 인사이더들은 자신을 호되게 반성함으로 시작합니다
어떻한 비판도 달게 받으며 눈물로 회개하며 자신을 닦습니다
황목사님은 조금 침묵해 보시고 다시 한번 글을 정리해서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써보시면 좋겠습니다
공감할 내용도 없지 않은데 의례적인 광고문으로
자신의 직함인 종으로서의 '목사'타이틀을
성의없이 폄하되지 않도록 하셨으면 합니다
리플달기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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