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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외침 29] 중대형교회들은 빨리 사라질수록 좋다기복적인 샤머니즘에 빠져, '집단 공황 장애' 질환에 시달리는 중대형교회 교인들
당당뉴스  |  leewaon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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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4월 21일 (토) 00:00:00 [조회수 : 4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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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 이민교회의 실상을 다루는 복음과 희망( http://www.gospel-hope.org )에 " 이민성도" 라는필명으로 올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필자는 미주교회에서 전문직업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장로로 미주교회들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는 바 오늘날의 한국교회 실상에서 대단히 유익하고 귀담아 들어야할  "어느 평신도의 외침"이라고 판단하여 연재합니다.  당당뉴스가 책임지고 실명을 보호합니다.편집 수정 중에 어처구니 없는 운영자의 실수(이런 일은 당당뉴스 편집이후 처음)로 70회 조회의 기사원문이 삭제되어 다시 편집하여 올립니다. (당당뉴스 운영자)

[다음글은 상당히 긴 내용이며 자극적인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교회의 사정을 잘 모르시는 초신자들과 기복적인 샤머니즘과 공황장애 증세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읽지 마시기를 미리 말씀 드립니다 -필자]


주의 종을 건드리면 큰 일이 난다?

뉴욕, 뉴저지 일대의 이민 중대형교회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재정불투명 문제에 관련된 분쟁상황을 보면 교회 안팎으로 많은 분들이 의문을 가질 것이다.

누가 들어 보아도 불투명한 재정운영과 비밀주의와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인한 문제들로 교회 내 지도자들인 목회자와 관련 당회원들이 투명하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고 교인들에게 이해와 협조를 구하면 일주일이면 끝나는 일인데 왜 1년 이상을 끌어오고 있느냐는 것이다.

어떤 중형교회는 담임목회자와 교회 전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장로들이 교회 안에서 질문을 하거나 의문을 표시하는 교인들을 향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거나 멱살을 잡고 뺨을 때리면서 도리어 고발을 운운하는 일> 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 내에서 목사파, 목사반대파, 개혁파, 중간파….등등으로 나누어져 사분오열되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기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두커니 뒤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웅크리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며, 서로 각을 세우는 사람들은 침묵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서로 내 편일 것이라는 동상이몽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침묵하는 대다수의 사람들 속에 들어 있는 심리적인 갈등을 관찰하고 분석해보면 일관된 한가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주의 종을 대적하면 나에게 화가 미칠지 모른다> 는 일종의 <미신적인 신앙>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의 잘못된 사정을 잘 이해하고 믿음이 있는 분들조차도 <주의 종을 건드리면 큰 일이 난다> 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뒷걸음을 치며 교회문제에 관여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차라리 교회가 화목하고, 사랑하고, 평온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침묵을 하는 것은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속으로는 분명히 무엇인가 문제가 있고,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 생각도 없이 사는 사람들처럼 멍하게 있거나 그냥 주일날 왔다 갔다는 하는 사람들 속에 성경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미신적인 신앙> 이 자리잡고서 사람을 꼼짝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분쟁하는 교회 내에서 교회의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의 언행에 심정적으로 이해를 해주는 사람들의 숫자는 다수이지만, 실제로 교회를 위해서 일어나 함께 기도하고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 소수에 머물게 된다.

인도주의인가? 미신과 기복주의적 두려움인가?

이민교회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뉴욕장로교회의 전 담임목사의 간통사건이 전 담임목사의 사임과 노회로부터 정직 3년과 뉴욕뉴저지에서 목회를 할 수 없다는 징계를 내린 상황이다.

최근에 뉴욕장로교회는 간통을 하였던 전 담임목사를 이미 사임처리 하였다. 현재로서는 그는 공식적으로 교회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다. 노회(교단)법에 따라 징계를 당한 목사에 대해서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규정에 따라서 상식적인 선에서 최소한 생계유지는 할 수 있는 선에서 대우를 해주는 것은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서도 폭력, 강도, 강간, 도둑질, 간통행위 등의 범죄로 인하여 체포되어 감옥소에 들어간 죄수라고 할지라도 국가의 세금으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보호해주거나, 심지어 직업훈련까지 시켜주고 있다.

장기간 동안 교회내 복수의 유부녀 여자 교인들과 간통행위를 하였고 그것으로 인하여 갑작스런 사임과 노회로부터 중징계를 당하였을지라도 은퇴할 나이이기 때문에 최소한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생계유지는 할 수 있도록 교회에서 배려를 해주는 것은 인간적인 도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뉴욕장로교회에서 전 담임목사에게 퇴직목사의 후생복지라는 이름으로 50만 달러의 현금지급과 지금 살고 있는 교회소유의 사택을 무상 제공하고 그 사택에 남아 있는 모기지(융자금) 25만 달러를 교회가 지불하며, 예배 중에 전 담임목사를 위한 특별헌금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당회와 제직회의 결의를 한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뉴욕장로교회와 같이 규모가 있는 대형교회의 경우에 지금까지 목회자 은급비(퇴직금)을 이미 장기간 적립해왔을 것이고, 또한 뉴욕일대에 70~80만 달러 이하의 집이 별로 없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간통으로 사임한 목사에게 실제적으로 적어도 150만 달러 이상의 비용을 교회가 지불하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뉴욕장로교회의 당회와 제직회가 결정한 사실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이렇다 저렇다 간섭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뉴욕장로교회는 이미 해외 이민교회의 교단 중에서 최대교단의 대표적인 대형교회이다, 간통을 저지른 전 담임목사는 그 교단의 부총회장이자 차기 총회장으로 내정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민교회의 대표성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거론하고 싶은 것은 돈이나 교회소유사택을 어떻게 주느냐라는 행정적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누구의 반대도 없이 그렇게 까지 할 수 밖에 없는 내면의 심리를 거론하고 싶다는 것이다. 혹자들은 성숙한 교인들의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필자는 결코 그렇게 보지 않고 있다. 그들의 내면 속에 장기간 동한 형성된 독특한 집단내면심리가 있다는 것이며, 오늘날 문제를 가진 대부분의 중대형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의 집단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뉴욕장로교회는 전 담임목사가 간통행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기 전 날까지 교회홈페이지운영에 있어서 대형교회로서는 보기 드물게 자유 필명제-익명제가 보장된 곳이었다. 교회 안팎에서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는 자유게시판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한마디로 전 담임목사는 수천명의 교인들이 있는 대형이민교회의 목회활동에 대해서 그 정도로 자신만만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보화시대라고 하는 21세기에 다른 곳도 아닌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보장된 미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뉴욕, 뉴저지의 문제점을 지닌 중대형교회들이 비리를 감추기 위해서 아예 교회홈피를 없애버리거나, 아니면 홈페이지가 있어도 철저하게 언론통제를 시도하고 있는 것에 반하여 동부최대교회라고 할 수 있었던 뉴욕장로교회가는 교회홈피를 자유필명 또는 익명제로 글을 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정도로 자신의 목회에 흠이 없다고 확신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가 지난 3년 동안 그렇게 자신만만한 목회자의 모습이었는가? 전 담임목사는 남편이 있는 복수의 교회내 여성도들과 어두운 곳에서 벌거벗고서 거짓된 사랑을 외치면서 본능만을 가지고서 음란한 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간통고백사건의 전말이다. 그러한 가운데 교회에 나와서 새벽기도와 수요기도회와 주일예배시간에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였고 성례 (성찬식, 세례식)를 집전하였다.

장기간 동안 자신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완전범죄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도 교회내 여론에 대해서 겁도 내지도 않았고, 따라서 필명과 익명이 보장된 자유게시판의 교회홈페이지를 그대로 두었다. 여자들 쪽에서 절대 발설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 확신과 그 믿음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우리들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수천명의 교인들이 3년 동안 목사와 간통여성들 외에는 단 한명도 몰랐다는 점에 대해서 그 완벽함에 놀랄 정도이다. 이것은 서울의 대형교회 유명 목회자들이 불륜을 저지르고도 절대로 꼬리가 잡히지 않았던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는 대목들이다.

무슨 믿음과 확신인가?

30년을 부부로 함께 살아도 1% 정도는 서로에 대하여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이혼율에 있어서 세계 상위권에 속하는 한국사람들의 이혼사유를 보면 대부분이 <상호불신> 이다.

그런데 이 영희목사가 간통행위를 자의반 타의반 어쩔 수 없이 공개적으로 고백하기 전까지 오랜 기간 동안 간통한 상대편 여성들에 대해서 교회 안팎으로 간통행위를 절대로 발설하지 않을 것이라는 100%의 확신과 신뢰와 믿음을 어떻게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정신의학적으로 솔직히 연구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일어났던 뉴욕, 뉴저지 중대형교회의 분쟁들, LA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형교회들의 분쟁, 시카코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들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결국 간통사건과 모양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잇다. 그것은 늘 분쟁의 중심에 있는 담임목회자와 함께 비도덕적인 비리에 관련된 사람들이 <목사를 위해서 목숨이 끊어져도 대신 뒤집어 쓰는 한이 있어도 절대 말하지 않을 것> 라는 100%의 확신을 목회자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 내 실제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은 채 계속 흘러가고 있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뉴욕장로교회의 경우에, 만약 간통상대여성들이 작년말에 서로 질투로 인한 싸움을 하지 않거나 임신의혹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교회내 간통행위는 미궁에 빠졌을 것이며, 여전히 변함없이 계속 간통행위를 반복하는 목사의 인도 속에서 설교와 성례의 집전이 계속 되었을 것이다.

3년이라는 세월은 짧은 세월이 아니다. 대형교회이기 때문에 담임목사가 일주일에 두번만 인도한다고 하여도 새벽기도 설교횟수를 계산하면 3년에 300회이고, 수요예배는 150번이다. 그리고 주일예배는 대형교회이기에 5부 예배에 매주 3회를 설교한다고 하여도 3년이면 450회를 하였다는 계산이다. 3년 동안 자그마치 900회의 설교를 하면서 그 기간 중에 교회 내 복수의 여자 교인들과 간통행위를 지속하여 왔다는 것은 목회자가 정신적으로 어떤 문제가 없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간통상대 여성들이 양심의 가책이나 심리적인 불안으로 인하여 누구에게 반드시 발설할 수도 있는 정도의 긴 기간이다. 그런 고백을 한번이라도 들었던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교회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에 충분히 글을 올릴 수 있는 정황이 있다.

더구나 이 삼백 명의 교인도 아닌 수 천명의 교인들이 있는 곳인데, 3년 동안 간통행위를 지속하였던 담임목사가 성례를 집전하고 설교를 하는 행위에 대한 분노를 누구 한 사람이라도 알았다면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3년 동안 교회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였고, 간통행위를 하면서도 표면적인 교회 성장은 되는 것처럼 보였고, 간통 목사는 해외 한인 최대 교단의 부총회장까지 하였고 차기 총회장까지 내정되었었다.

누구 하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3천만달러짜리 비전센터를 건축할 수 있는 교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 누구 하나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결론이다.

이것은 어디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슴 아픈 표현이지만 이단과 사이비 집단을 총칭할 때 불리는 <컬트집단> 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얼마나 평소에 교인들을 향해서 강력하게 암시하고 세뇌를 시켜 놓았으면 수 천 명의 교인들이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서 3년을 쥐 죽은 듯이 지낼 수 있었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간통이 드러나고 치리를 받고 징계를 받았는데도 목사가 은퇴를 할 때 받는 액수를 훨씬 초월하는 비상식적인 후생복지를 하고자 하는 교인들의 내부적인 심리는 <컬트집단> 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정상적인 그리스도인들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주하고 계시면서 끊임없이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성도들을 향해서 말씀하시고 계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고백공동체가 바로 교회이다. 그런데 수 천명의 교인들이 어떻게 900회가 넘는 설교를 간통하는 목사로부터 들으면서도 3년 동안 단 한명도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는 것이 영적으로 보면 가능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우리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이 그렇게 무지하고 무감각하고 무능력하지 않다는 것이다.

반복적인 간통행위를 하고 죄를 상습적으로 짓는 목사의 설교를 수백 회 지속적으로 계속 듣게 되면 우리의 심령에 심한 상처와 고통을 받게 되어 있다. 거룩한 성령께서 더럽고 추악한 죄라고 불리는 유부녀 교인들과 간통행위를 하는 목사의 심령을 통해서 역사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단이나 사이비들의 주장과 동일한 것이다. 성령께서는 반복적으로 속이는 자와 함께 할 수도 없고, 특히 음란과 탐욕과 우상숭배는 동일한 죄라고 불릴 정도로 무서운 죄이며 지도자가 생명을 걸고서 지어서는 안될 죄이다.

타락한 사이비목사의 메시지도 생명이 있다?

이 땅에 있는 대부분의 이단과 사이비 교주들의 공통점을 파고 들어가보면 종점에 반드시 음란하고 탐욕스러우며 우상화되어 있다는 것은 교과서적인 사실로 잘 알려져 있다.

뉴욕장로교회 전도사출신의 어떤 목회자가 뉴욕장로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은 적이 있다. 요지는 <이 영희목사의 간통죄는 잘못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전한 말씀은 바른 것이다> 라는 것이다. 얼른 듣기에는 옳은 말인 것처럼 들리지만 틀린 말이다.

그 말은 정통교회와 동일한 성경을 가지고 있는 수 많은 이단과 사이비 교주들이 설교하는 유사 기독교단체 속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불륜과 횡령과 배임으로 얼룩진 전과자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에 열심히 다시는 사람들이 너무나 잘 사용하는 상투적인 문구와 같은 맥락의 말이다.

이단과 사이비 교주 또는 타락한 목회자들에 대한 비판을 하면, 그 속에 있는 구성원들이 늘 사용하는 상투적인 표현이 <우리들은 목사를 보지(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간다> 는 것이다.

그래서 목회자가 불륜을 하든, 횡령을 하든, 배임을 하든, 세습을 하든 교회 건물을 은행에 잡혀서 아들에게 수백억씩 융자를 하든 상관이 없다는 식이다. 엄청나게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여진다. 모든 비판자들이 할 말을 잃게 만드는 <목사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말을 반복적으로 되 뇌이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들이 <목사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일까? 목회자가 아무리 개판으로 살아도 전하는 말씀이 진리이기 때문에 그것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성경적인 말인가? 성경 어디에도 없는 말인데 이상하게도 이 말 한마디가 성경진리보다 더 위에 있어서 어떻게 보면 오늘날 타락한 목회자들이 목회하는 중대형교회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기초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집단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중대형교회 교인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논리를 조금만 파고 들어가서 관찰해보면 결국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이단 사이비들인 컬트집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단공황장애> 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타락한 목회자가 있는 중대형교회에서 수 년 또는 수 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여 왔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집단공황장애> 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오래 다니면 다닐 수록, 타락한 목사의 설교를 많이 들었던 사람일수록 이러한 <집단공황장애> 에 더 시달릴 수 있다.

<공황장애> 는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불안이 극도로 심해져 숨이 막히고 심장이 두근 거려 죽을 것만 같은 극심한 공포 증상을 보이는 정신질환이다. 정신의학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정신질환적인 공황장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해명되지 않고 있으며 현재, 약물치료방법도 있지만 가장 쉽게 극복하는 방법으로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나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중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유난히 교인들에게 카리마적인 설교와 목회를 하면서도 한편으로 긍정적인 사고, 적극적인 사고를 부르짖는 것은 한마디로 병주고 약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공황장애> 는 다른 사람들에게 배제를 당하거나, 혼자 있다는 고립감이나, 버림받을 수 있다는 불안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타나며, 특히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년 동안 대형교회의 담임목사와 어둡고 비밀스러운 장소에 가서 음란한 간통행위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남편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고 그리고 수요일과 주일날 교회에 가서는 간통상대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예배들 드릴 때,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간통목사도 자신의 간통상대 여성들이 앉아 있는 그 예배의 현장에서 거룩한 말씀을 전하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성찬을 집전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어떤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양심에 가책을 조금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3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교회 안에서 간통행위가 일어날 수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성령 받은 정상적인 인격과 정신구조를 가진 사람으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냥 지금까지 열심히 교회에 다녔던 본전 생각 때문에 본인들의 종교생활에 대한 위로를 삼고 있을 뿐인 것이다.

반복적인 죄인 간통행위를 하였던 목사의 입으로 흘러나오는 메세지가 진리라고 하여서 그 메시지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단과 사이비와 타락한 목사들이 있는 수많은 교인들을 향해서 그 속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하라고 격려해주어야 하고 이단이니 사이비니 하는 정죄를 범교단적인 차원에서 비판할 필요도 없다.

그 속에 있는 교인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목사를 보지 않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성경을 듣겠다> 라고 하지 않는가? 얼마나 믿음이 좋으면 더러운 행위를 하는 타락한 목사가 설교를 하는데도 그의 입에서 성경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불변의 진리인 성경만을 믿겠다는 그 믿음이 대단하지 않는가? 유감이지만 이것이 바로 속이는 자들의 다른 복음인 것이다.

뉴욕장로교회의 출신이라는 어떤 목회자가 말한 <간통죄는 문제가 있지만 간통목사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진리입니다> 라는 말이 겉으로는 틀린 말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신학적으로 굉장히 무서운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그 분 역시 그곳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였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집단공황장애> 의 부작용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아닌지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공황장해는 실제적으로 정신적인 질환과 더불어 수면장해, 우울증, 당뇨, 고혈압, 부정맥, 심질환, 뇌질환, 고지혈증, 파킨슨씨 증후군 등도 동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아마 교회에 다니면서 <집단공황장애> 를 가지고 있는 대형교회 교인들 상당수가 그러한 질환에 노출되어 있을 수도 있다.

장기간 동안 자기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와 간통을 하면서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던 간통 상대 유부녀 교인들의 심리는 <집단공황장애>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여성들은 이렇게 상상하였을 것이다, 만약 간통행위를 누구에게 발설하면, <주의 종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임으로 나는 화를 당하거나 죽을지 모르며, 내 가족들도 죽을지 모른다> 는 극도의 불안과 공포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죄성은 특이하고 다양하다.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반복하게 되면 양심의 가책 때문에 상습적인 죄를 그만 두어야 하는데 도리어 죄를 짓는 스릴과 쾌감이 증폭되는 <자학적인 도착증세>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돈 많은 부자인데도 백화점에서 반복적인 소매치기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바로 <스릴과 쾌감> 이 있기 때문이며 결국 <중독현상> 까지 오게 되는 것이다.

50대 후반의 목사와 30대와 50대 후반의 유부녀 교인들은 자신들의 간통행위가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하나님을 속이고 교회를 속이고 배우자를 속이는 가정파괴와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하는 엄청난 일이 되는 줄을 몰랐을 리가 없을 것이다. 장기간 동안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학적인 성도착증세> 에서 오는 스릴과 쾌감이며, 절대 발설하지 못하는 것은 <스릴과 쾌감> 과 <중독현상>과 <집단 공황장애> 가 복잡하게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기복적인 샤머니즘을 앓고 있는 중대형교인들

한편, 간통사건으로 중징계를 받아서 사임하였던 전 담임목사에 대한 후생복지문제에 관여한 당회원들과 제직회원들의 내면적인 정신구조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일종의 연구대상이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뉴욕장로교회의 구성원들 대부분은 지금까지 자신들도 모르게 <공황장해> 속에 있지 않고는 75만 달러의 현금과 교회 소유의 사택명의 변경과 특별헌금이라는 파격적인 일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으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한마디로 오랫동안 우상화된 지도자의 가르침 속에 있다 보니 <기복적인 샤머니즘>이 몸에 배여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앞에서 언급한 <타락한 주의 종이라도 적선하고 선대하면 복을 받는다> 는 <기복적인 샤머니즘> 이 그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들 속에 있는 <공황장애지수>와 <기복적인 샤머니즘>이 전 담임목사의 간통행위에 대한 <실망과 분노지수>를 훨씬 초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대형교회에 있는 유명목사들이 불륜하고, 횡령하고, 세습하고, 축재를 하여도 내부적으로 교인들이 꿈쩍도 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기복적인 샤머니즘>과 <집단공황장해> 를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세운 주의 종이 아무리 타락하고 더러운 행위를 하여도 평신도들이 조금이라도 비판하고 대적하면 나에게 화나 저주가 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듣고서 세뇌를 당하였기 때문에 <의식화된 집단> 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혼자가 되거나 <의식화된 집단> 내에서 일어나는 눈총과 비난의 소리에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자포자기> 를 하도록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북한공산정권이 지금까지 요지부동인 것은 김일성-김정일부자가 인민을 상대로 지난 반세기 동안 <컬트집단 공황장애> 를 가지도록 끊임없이 학습시키고 세뇌를 시켰던 결과이다. 우리들도 과거에 독재시대에 당하였던 적이 있다. 그래서 해외에 나가는 것을 꼭 무슨 국외탈출 또는 간첩이 될 가능성이 있을 우려가 있다는 식으로 필수적으로 정신안보교육을 받도록 한 적도 있었다.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에 대한 반동분자들과 월남자들과 탈북자들의 가족과 일가친족들에 대해서 인정사정이 없이 고립시키고 하층민 취급을 하는 것은 단 한가지 이유밖에 없다. 우리 집단에서 반항하거나 탈출하면 죽는다는 <컬트집단 공황장애>를 인민들이 가지도록 끊임없이 본보기를 보여주면서 학습시키고 세뇌시키는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비판하지 말라는 의미를 곡해하고 있는 교회지도자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모든 유대백성들을 정신적으로 종교적으로 율법에 따라 노예로 삼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네 아비는 마귀이다. 너희는 마귀다> 라는 대단히 급진적인 말씀을 하셨던 것을 우리들은 기억하고 있다.

종교지도자들이 백성들을 향해서 통제하는 수단이 바로 율법과 각종 규례였다. 율법과 각종 규례에서 벗어나면 벌을 가하고 고통을 가하고 공동체에서 고립시키거나 배제키는 수단을 통해서 백성들을 끊임없이 컨트롤 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율법은 거룩한 것이었지만 그들의 행위는 마귀 짓이라는 것이다. 마귀를 아비로 두지 않는 한 불가능한 행위를 하고 잇다는 지적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에 자유를 주시는 분이지 노예로 삼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는 그 말씀 속에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케 하는 것이지 우리들로 하여금 그 진리로 인하여 통제를 당하고 그 말씀으로 탐욕이나 우상숭배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대부분의 백성들은 종교지도자들의 율법적인 손아귀에서 끊임없이 날마다 정죄를 당하고, 심판을 당하였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율법만으로 정죄를 당하였던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전통과 절기와 관습과 규례로 모든 백성들은 정죄와 판단과 심판을 종교지도자들에게 당하였던 것이다.

모든 백성들은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나면 고립되고 배제된다는 <집단공황장애> 속에 있었으며, 종교지도자들의 말이 곧 법이었고, 그 법을 어기면 자기 집단으로부터 버림받게 된다는 두려움을 누구나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조금만 율법이나 규례를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하고서 죄의 속죄를 받기 위하여 반드시 제물을 제사장에게 바쳐야 하였다.

제사장과 율법선생은 동업자로 있었다. 율법선생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심판하였으며, 그 죄를 속죄 받기 위하여 백성들은 날마다, 절기마다 자기의 재산이었던 양과 소와 비둘기와 같은 속죄물을 들고서 제사장 앞으로 가야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토실 토실하고 살찐 것은 따로 놓아두고서, 팔아먹었고, 그 중에서 눈멀고, 병들고, 약한 짐승들만 잡아서 제물로 사용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 현장의 내용을 아셨기 때문에 성전정화를 위해서 채찍을 휘두르셨던 것이다.

율법사와 제사장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율법과 규례에 따라서 많이 정죄하고 많이 심판하면 할 수록 백성들은 더 많이 바쳐야 하였으며, 날이 가면 갈수록 죄책감으로 인하여 더 꼼짝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종교지도자들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는 삶이 바로 예수님 시대의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대적인 사회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누가복음 6장 37절의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비판은 우리들이 남을 견책하거나 책망하거나 권면하는 의미가 아닌 심판과 정죄를 한다는 의미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판과 정죄>는 권력과 권위와 탐욕에 눈이 어두웠던 종교지도자들의 전유물이자 백성의 통제수단이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의 <비판과 정죄>라는 통제수단 하에서 끊임없이 학습 당하고 세뇌되었던 백성들이 종교지도자들과 똑 같이 서로를 향해서 율법과 규례를 들고서 비판하고 심판하고 정죄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3년 반동안 공생애 사역을 하시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하셨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고침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 그 핵심이 바로 <율법적인 심판과 정죄> 에서 벗어난 <은혜의 복음> 이었던 것이다.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율법을 파괴하는 자> <신성모독을 하는 자> 로 몰아서 체포하였으며, 모든 백성들은 결국 다시 <집단공황장애> 속으로 돌아가 <율법의 심판과 정죄>로부터 구원을 위해서 오셨던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님을 도리어 집단으로 손가락질하고, 욕하며, 때리고, 저주하면서 살인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아라고 외쳤던 것이다. 예수님은 예언된 말씀대로 구원자로 오셨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고 또한 평생을 <율법적인 비판과 심판과 정죄> 속에서 묶여 있었던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지만 오직 <비판과 심판과 정죄의 잣대> 만을 가진 종교지도자들의 거짓된 가르침에 속아 있었던 백성들은 진리이신 예수님을 도리어 가짜라고 매도하고, 때리면서 결국 십자가에 매달라고 목놓아 외쳤던 것이다.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정신질환증세들

오늘날도 똑 같은 일이 중대형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성경을 말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탐욕과 음란과 거짓으로 가득찬 목회자들이 수많은 교인들에게 지속적으로 암시시켜 왔던 결과로 만들어진 <집단공황장애>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 필요가 있다.

세계 최대 감리교회라고 불리는 K교회의 K목사는 분명히 교회 헌금 27억 원의 횡령과 배임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던 인물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에서 지탄을 받고 있는 세습목회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다.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도 교단은 꿈쩍도 하지 않았으며, 교인들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들을 꼼짝도 하지 않도록 만들고 있는가?

18건의 간통의혹과 여전도사와 간통행위를 한 것이 법정에서 증거와 함께 백일하에 드러난 간통목사를 보고서 200% 무죄하다고 주장하면서 도리어 지적하는 교인들을 출교시키고 목회자들을 고소하고 고발하는 교회 중직자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것은 누구인가?

오늘날 이단과 사이비로 선정된 수많은 유사 기독교 단체와 조직 속에 있는 수천명, 수만명, 수 십 만명의 구성원들이 지도자(교주)들의 비도덕과 비윤리와 불법이 아무리 언론지상이나 법으로 고발되고 밝혀져도 꼼짝도 하지 않는 그들의 내면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교회 내에서 복수의 여성도들과 장기간 동안 간통을 하면서 하나님을 속이고 교회를 속이고 성도들 속이고 배우자를 속였던 죄로 사임을 하고 중징계를 받았던 목사에게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서 거액의 현금과 교회소유의 사택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특별헌금까지 결의하는 그들의 내면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바로 그들 속에는 <뿌리 깊은 기복적인 샤머니즘>과 <집단공황장애> 라는 정신질환이 있는 것 외에는 해석할 길이 없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고 기득권을 가진 권위주의적인 세력이 되어가고,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제쳐 놓고서 자신들의 만든 계획과 목표만이 남아 있는 형식적인 종교집단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불법을 저지른 타락한 담임목회자에 대해서는 한 없는 자비와 사랑과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왕 같은 대우를 해주지만, 교회의 세속화와 타락을 지적하고 견책하고 책망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상상을 표현할 수 없는 적개심과 분노를 표출한다는 점이다.

정말 이상하지 않는가? 분명히 마음은 하나인데, 타락한 목회자에 대해서는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서 한 없는 사랑과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교회의 타락에 대하여 교훈을 삼고, 지적하고, 분별하고 견책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판만 하는 자들> <교회를 무너뜨리는 자들> 심지어는 <마귀새끼들>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교회 내에서 욕하고 중상모략하고 고발하려는 또 다른 마음이 한 곳에 존재한다는 것이 과연 정상이냐는 것이다.


타락한 목회자가 있는 중대형 교회 안에서 카리스마적인 담임목사의 설교만이 귀에 들어오고 그 조직을 떠나면 죽을 것 같고 구원이 없는 것처럼 불안해 하는 <집단공황장애> 를 가지게 되면, 말씀과 환경과 사건과 사람을 통해서 끊임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전혀 체험할 수도 없는 가운데, 모든 예배행위와 훈련프로그램의 참가는 단지 <뿌리 깊은 기복적인 샤머니즘> 에 따라서 움직이는 중독된 인간 만이 남아 있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 필요가 있다.

인격적인 교제를 거부하는 무리들

중대형교회에 몰려 있는 <기복적인 샤머니즘>과 <집단공황장애> 를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인격적인 관계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예배참가와 여러 가지 프로그램 속에 움직이고는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목회자와 성도들, 성도와 성도들 사이에 인격적인 교제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담임목회자가 섬기는 교인들을 위해서 매일 단 5분도 기도해줄 수 없는 인격적인 관계라면 그 교회의 존재의미는 상실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 정도의 교회라면 미국의 경우에 하롤드켐핑이 주창하는 패밀리스테이션 방송을 들으면서 성경만을 묵상하는 가정예배만 드려도 될 것이며, TV나 인터넷을 통해서 생방송으로 주어지는 한국의 대형교회 실황중계 예배를 드려도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다수의 신자들은 가정에서 드리는 주일예배는 가짜 예배처럼, 교회 예배당에 가서 드리는 예배는 진짜처럼, 그리고 더구나 내가 존경하는 카리스마적인 담임목사가 설교하는 예배는 은혜가 있는 예배로, 반면에 전도사가 메시지를 전하는 예배는 은혜가 적은 예배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실상이다. 이것은 세속화된 의식과 가치관으로 인하여 전부 세뇌되고 학습된 부작용인 것이다.

그래서 메가쳐치(대형교회)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무조건 건물을 크게 지어 놓게 되면 사람들은 몰리게 되고 헌금도 많이 들어오고 유능한 인재도 들어온다는 것이다. 실제 그렇게 되어 있으며, 한마디로 점점 몬스트화 되어 가면서 인격적인 교제가 거의 배제된 채 프로그램 속에서 움직여지는 기계적인 인간으로 변질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하니 교인들에게 강력한 <기복적인 샤머니즘>을 불어 넣어야 하고, 예배당 분위기를 최고조로 만들고,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성가대와 음향장비로 사람들의 감정을 터치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러한 분위기에 습관화 시킴으로 그 조직과 집단을 떠나면 너무나 허전하고 공허감을 느끼게 하는 <집단공황장애>를 지속적으로 조장한다는 것이다.

기존교회의 예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대형화로 인하여 성령의 역사 속에서 인격적인 교제는 전부 사라진 채, 무조건 복종하고 헌신하기만 하면 복을 받는다는 의식에 가득찬 기득권 직분자들과 각종 프로그램진행자들과 <기복적인 샤머니즘>과 <집단공황장애> 를 가진 참석자 교인들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대형교회의 분위기와 프로그램에 일단 중독된 그들은 동네 작은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너무 초라하게 보여지고, 작은 교회에서 드려지는 새벽기도와 수요기도회에 하나님의 역사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여진다는 것이다. 중대형교회에 문제가 터지면 또 다른 중대형교회로 수평이동은 하지만 절대로 작은 교회에 가서 섬기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심령상태가 되어버린다.

더구나 가정에서 오손 도손 모여서 드려지는 반주 없는 찬송과 합심기도와 말씀을 나누는 것이 왜 그렇게도 어색하게 받아들여지는지 이유도 모른 채 속에는 허풍만 잔뜩 들어가 있는 껍데기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중대형교회는 빨리 사라지면 질수록 좋다

돈이 드는 수많은 비지네스형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대형교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교회성장주의자들이 있지만, 인격적인 교제가 사라진 중, 대형교회는 빨리 사라지면 사라질수록 좋다. 그렇게 해야 <기복적인 샤머니즘>과 <집단공황장애> 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줄어지기 때문이다.

이 땅에 교회의 90%이상은 작은 교회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기억해야 한다. 그 작은 교회 안에서 인격적인 교제가 주어지고 목회자가 성도들을 위해서 하루에 적어도 10분 이상을 기도해줄 수 있으며 성도들은 목회자의 섬김을 통해서 성숙해져 감으로 주님의 나라는 소리 없이 전세계 곳곳으로 확산 되어진다.

현재 전체교회의 10%만이 중대형교회에 속하는데, 10%의 중대형교회가 마치 전체 교회를 대표하고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 보여지도록 하는 심각한 착시현상이 있다. 문제는 그 10%속에 있는 비성경적인 <기복적인 샤머니즘>과 <집단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실제로 복음의 문이 닫히고, 교회의 거룩성이 무너지며, 수많은 신실한 목회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부당한 피해를 당하고 욕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양산되는 가짜들 때문에 가짜가 진짜처럼 보여지고, 다른 복음이 참 복음처럼 보여지는 영적 혼돈의 시대가 되고 있다

이러한 속에서 우리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갈등하고 고민하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에 기초하여 바르게 분별하여, 이 땅에 일어나고 있는 어그러짐과 굽어짐과 비틀어진 것에 대하여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 할 책임이 우리 안에 있다.

이 땅과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불의와 죄들이 바로 나의 죄임으로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고백하고 죄사함을 받는 제사장으로서, 왕 중의 왕인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세상과 죄와 마귀들을 향해서 담대하게 견책하고 책망하는 선지자의 가슴을 살아갈 때 우리들에게는 여전히 희망이라는 불꽃이 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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