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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의 '담배 꽃을 본 것은'시 한편이 있는 하루
김영동  |  deom-past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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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8월 02일 (화) 00:00:00 [조회수 : 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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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꽃을 본 것은


나 희 덕


   
마흔이 가까워서야 담배꽃을 보았다

분홍 화관처럼 핀 그 꽃을       

                         

잎을 위해서

꽃 피우기도 전에 잘려진 꽃대들,

잎 그늘 아래 시들어가던

비명소리 이제껏 듣지 못하고 살았다


툭, 툭, 목을 칠 때마다 흰 피가 흘러

담뱃잎은 그리도 쓰고 매운가

담배 꽃 한줌 비벼서 말아 피우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족도리도 풀지 않은 꽃을 바라만 보았다

주인이 버리고 간 어느 밭고랑에서

마흔이 가까워서야 담배 꽃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하지(夏至)도 지난 여름 날

뙤약볕 아래 드문드문 피어 있는,

버려지지 않고는 피어날 수 없는 꽃을

*

*


  벗님,                                   2005.   7.   25

  해안 영덕에서 안동으로 가는 국도 변에는 넓은 잎을 가진 담배 잎 농사를 짓는 농가(農家)들이 많았습니다. 농가(農家)마다 눈에 잘 띄는 2층 높이로 창틀도 없이 우뚝 선 흙벽 건물들이 바로 담뱃잎 건조장입니다. 감자를 실하게 하려고 감자 꽃을 따주듯 담배도 잎을 실하게 키우기 위해 꽃대를 잘라 주나 봅니다. 나도 담배 꽃이 분홍색인 건 알았지만 꽃이 아름다운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지나쳐 보았거나 먼발치로 지나며 보았을 뿐 실제로 시인처럼 밭고랑을 걸어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내 나이 쉰 세대 중턱이 되고 보니 시인이 보고 느끼는 감성이 내게도 알 것 같은 친밀감으로 다가 옵니다.


마흔이 가까워서야 담배꽃을 보았다

분홍 화관처럼 핀 그 꽃을


잎을 위해서

꽃 피우기도 전에 잘려진 꽃대들,

잎 그늘 아래 시들어가던

비명소리 이제껏 듣지 못하고 살았다


  살아보니 누군가를 위해 꽃피어나지 못하고 시드는 생명들이 어디 하나 둘이겠습니까? 유심히 살펴보면…… 아니 유심히 살필 것도 없습니다. 이런 분, 저런 계층의 사람들 식으로 아는 것 말고 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아 정직하게 기도만 해도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나를 위해 스러지는 많은 생명이 있음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나 때문에 자기들의 생명을 끝내고 내 식탁의 음식이 되었으나… 나는 고작 “일용한 양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 합니다…… 운운…… 이 음식을 만들고 제공하신 분께 은총을 베풀어주시길……” 기도할 뿐입니다. 생각을 해 보면 내가 “…… 이 음식에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한다고 자기들 생명이 끝나고 이미 음식이 된 그들에게 그런 내 기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시인처럼 “잎 그늘 아래 시들어가던 / 비명소리 이제껏 듣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 오히려 잘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툭, 툭, 목을 칠 때마다 흰 피가 흘러

담뱃잎은 그리도 쓰고 매운가

담배 꽃 한줌 비벼서 말아 피우면

눈물이 날 것 같아

족도리도 풀지 않은 꽃을 바라만 보았다


    지난 주간에 동해안 불영계곡으로 교회 여름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예전과 달리 담배밭보다 고추밭이 지천이었지만 간간이 보이는 담배밭에 목이 잘린 담배 줄기와 달리 꽃이 피도록 내버려 둔 담배 줄기에 우뚝 핀 분홍색 담배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인의 찬사와는 달리 담배 꽃은 생긴 모습으로는 결코 꽃 장식에 동원될 만큼 아름다운 꽃이 아니었습니다. 담배꽃이 시인의 가슴에 눈물겹게 아름다워 보인 것은 싱싱하게 활짝 펴 보지도 못하고 주인의 손에 꺾여 밭고랑에 버리진 체 시들 듯 피다마는 그 희생(?) 때문일 겁니다.


주인이 버리고 간 어느 밭고랑에서

마흔이 가까워서야 담배 꽃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주인이 버리고 간 그 버려짐과 희생 때문에 내 가슴에도 찡하게 전해 오는 바가 하나 있습니다. 주인이신 하나님께 십자가 죽임으로 버림받고(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쇠못 박힌 채찍으로 매 맞고, 가시 면류관 씌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창으로 찌르고 다리뼈를 꺾어 죽임당한 예수님이 흘린 붉은 피에 절은 십자가! 알아보고 바라볼수록 가슴 아린 희생의 그 십자가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지 그 붉은 십자가가 도시 미관을 해치는 지붕위에 우뚝 선 붉은 네온사인 장식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혹 기독교인일지라도 이제는 도시의 밤하늘에 우뚝 우뚝 서있는 붉은 네온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저 붉은 십자가야말로 나를 위해 피어나지 못하고 버려진 고귀한 생명의 상징이요 나를 향한 사랑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밭고랑에 버려져서 사람들이 담배 꽃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너무 오랫동안 도시의 밤하늘에 우뚝 우뚝 솟아 붉은 빛으로 당당하게 빛나는 십자가라 이제는 잘 바라보지도 않고 바라봐야 무심한 장식이 된 것은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오늘날 불뚝 불뚝 제 잘난 교회의 모습은 세상과 사회를 위해 버려져서 피어난 희생과 사랑의 생명을 다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하지(夏至)도 지난 여름 날

뙤약볕 아래 드문드문 피어 있는,

버려지지 않고는 피어날 수 없는 꽃을


  그렇게 보면 교회뿐이겠습니까? 먼저 목사인 내 생활은 어떨까? 뒤돌아봅니다. 이미 중년목사가 된 내 생활에서 대의를 위해 버려지거나 이웃을 위해 희생한다는 단어가 아직도 살아 숨쉬는 영역이 남아 있기나 한건지? 이미 퇴색하고 늙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닌지? 당혹스러워집니다. 글쎄요? 안정된 중년목사의 생활에서 버려진다거나 희생이라는 말이 혹 남아 있어도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 빈 껍질은 아닐까? 아아, 가슴이 아파 옵니다! 오늘따라 버려지지 않고는 피어날 수 없는 담배 꽃에게 조차 머리를 들 수 없도록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인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주인이 버리고 간 어느 밭고랑에서

마흔이 가까워서야 담배 꽃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하지(夏至)도 지난 여름 날

뙤약볕 아래 드문드문 피어 있는,

버려지지 않고는 피어날 수 없는 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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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 목사 ()
2005-08-03 06:39:29
아, 그런가요! *^_^*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으면 고쳐질 수 없었는데--- 고마움으로 표현하고 나니 이렇게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 수고 많습니다. 발빠른 담배꽃, 고맙습니다. '처제꽃'도 고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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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2
이필완 ()
2005-08-02 22:26:42
어이구, 올린 건 제가 올린겁니다.
네이버에서 애써, 아니 쉽게 찾았습니다만... 저작권을 얻지못한 사진이라... 도대체 인터넷에 공개로 올린 사진들의 저작권은 어떻게 되는 지 잘모르겠네요. 공개로 올렸으니까 상업적이용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괜찮을 듯해서 사용했습니다. 좀 더 알아봐야겠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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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2
덤 목사 ()
2005-08-02 21:40:24
꽃 사진 고맙습니다.
나는 이필완 목사가 참 발 빠르게도 꽃 사진을 찾아 올렸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님이 '처제꽃'으로 여겨 사진을 올리셨다니--- 고맙습니다. 사진이라 지나쳐 보기만 했던 담배꽃을 직접 눈맞춰 볼 수 있으니 좋습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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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2
이승칠 ()
2005-08-02 16:44:55
열매 맺는 꽃은 아름답지 않더라
하나님은 만물이나 인간에게 전부를 주시지 않은 듯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는 서로 연합하여 살아야 함을 알려주기 위함 같습니다.

청주에 3년 살면서 한 시간 거리의 농촌에서 담배 농사를 하는 처제의 담배밭을 한번도 가보지 못한 점이, 이 시를 읽으면서, 마음이 아프군요. 도시에서 자란 형부라 좋아하던 마음씨 착한 처제였는데....

저는 생전 처음보는 담배꽃의 사진을 등록시키면서 '처제꽃'이라 이름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내가 피우는 담배 한 개비를 위해 얼마나 많은 꽃들이 눈물을 흘러야 했는지... 시인같은 마음이 들어 담배를 한참이나 쳐다 보다 내려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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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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