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베이커리>, 키티 테이트&앨 테이트 저, 이리나 역, 윌북, 2023)

따뜻한 오렌지색 표지에는 밝게 웃는 두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앨 테이트와 키티 테이트이다. 키티가 열네 살이 되던 해, 그녀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부모인 앨과 케이티는 딸이 갑작스레 우울증을 앓게 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애썼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이유 없는 절망 속에서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들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티며 키티의 곁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키티 역시 이 갑작스러운 우울증이라는 파도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녀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겁이 나고 자신이 없고 이 세상에 조금도 존재하고 싶지 않은, 그런 나날들이었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면 늘 똑같은 오렌지색 멜빵바지를 입었다.”

그의 부모 케이티와 앨은 키티가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주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다. 정원 가꾸기, 그림 그리기, 바느질 등. 빵 굽는 일은 그 여러 가지 시도 중 하나였다. 놀랍게도 키티는 빵이 구워지는 순간에 집중했고, 지푸라기를 잡는 것 같은 심정으로 시작한 베이킹은 키티와 가족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과연 베이킹의 무엇이 키티를 사로잡았을까? 키티는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을 '빵의 노래'라 불렀다. 이 책의 원제인 <Breadsong브레드송>은 바로 그 '빵의 노래'에서 비롯되었다. 키티는 이렇게 표현한다. “오븐에서 막 꺼낸 뜨거운 빵은 껍질이 팽창하면서 타닥타닥, 쉭쉭 소리를 낸다. 선반 위에 한 줄로 늘어 놓은 빵에 몸을 가까이(귀가 타지 않게 조심하면서) 기울이면 멀리서 박수갈채가 들리는 것 같다. 이게 빵의 노래, 빵의 마법이다.”

빵의 노래를 들으며, “돌멩이처럼 아무것도 아니던 것이 찬란하게 변신”하는 모습을 지켜본 키티는 매일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첫 빵을 구워냈던 그 때부터 키티와 가족들의 삶은 이전과는 다르게 펼쳐졌다. 다시 반죽을 하고, 실패하고, 따뜻한 빵을 굽고, 이웃과 나누고, 구입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빵을 만들고, 레시피를 연구하고, 스승을 찾아가고,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가게를 열기 위한 자금을 모았다. 마침내 키티는 자신이 늘 입고 다니던 오렌지색 멜빵바지와 같은 이름의 '오렌지 베이커리'라는 가게를 열게 된다. 처음 자신의 가게를 열었던 그 때를 기억하며 키티는 이렇게 적었다. 

“오렌지베이커리는 내 머리를 진정시키고 마음을 안심시키는 장소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정말 행복한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 말은 ‘불안’이 화두가 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과 내가 하는 일이 분리된 것 같은 느낌, 의미 없는 반복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불안함은 누구에게나 익숙할 것이다. 빨리 답을 찾고 싶지만, 인생은 그렇게 쉽게 답을 주지 않기에 그 불안에 이리저리 휘둘릴 때도 많다. 그럴 때 잠시나마 내 발을 땅에 딛게 해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키티에게는 그것이 빵을 굽는 일이었고, 그곳에서 그녀는 온전히 존재하며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내가 누구인지 알고, 온전한 나로서 다른 존재와 만날 수 있는 곳. 우리에게도 자신만의 '오렌지 베이커리'가 필요한 시절이다.

- 정유은 (고난함께)